블루 노트북
제임스 A. 레바인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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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해가 지면 가을 바람이 분다. 오후 내내 낮은 비행을 하던 새들이 기어코 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피던 담배를 비벼 끄고는 싱크대 앞에 선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컵에 우유를 붓고는 데우려다 바깥 공기와는 다르게 열이 오르려는 몸을 식히려, 커피 두 봉을 탈탈 털어 얼음 가득 냉커피를 탄다. 저녁 식사 후, 배가 부르지않음에 맥주 한 캔을 들이킨 탓이리라. 무릎 위에 베개를 얹고 그 위에 책을 올려 읽던 부분을 체크해 둔 책갈피를 걷어낸다. 어린 창녀, 바툭이 오롯이 그곳에 서 있다. 그녀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뭄바이라는 곳의 사창가에 버려진, 달리 운명을 어쩌지 못해 살아가고 견뎌내는 바툭의 이야기. 몇 차례, 그녀의 이름이 나올때마다 엄지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름을 문질렀다. 그러면 좀, 그녀의 삶이 나아질까. 그러면 좀, 그녀가 덜 고통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까,그러면 좀, 안타까운 마음들을 추스릴 수 있을까, 하는 부질없음에도 여러차례 문질러댄다.     

 

 바툭, 그 어린 창녀는 자신이 치뤄내야하는 성행위를 달콤한 케이크를 굽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결단코, 그 달콤한 케이크로 비유한 바툭의 일은 개개인이 갖는 투철한 직업 정신도 아니요, 이상적인 꿈도 아니다. 세상 어느 누가 평생을 욕정의 그늘 아래 굴복되어지는 삶을, 꿈꾸겠는가. 뭄바이의 커먼가, 초록색 커튼이 쳐진 쇠창살의 방에 바툭, 어린 소녀가 산다. 그리고 푸른 노트에 글을 쓴다. 지나온 과거와 살아가는 생, 그리고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적어내린다. 글을 쓰는 것만이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양 빼앗기고 산산히 무너져내린 자신의 삶을 겹겹이 두르고 둘러 온전히 숨을 쉬고 있음을 확인사살하 듯, 필사적으로, 그렇게.

 

나는 분명하고 명확한 존재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똑같은 방식으로 보기 때문이다.

나는 달콤한 케이크를 만드는 존재일 뿐 다른 어떤 존재도 아니다.

나는 음식을 먹고, 호흡을 하고, 달콤한 케이크를 굽기 위해 몸을 움직일 뿐이다. p. 231.

 

 아버지의 손을 잡고 뭄바이로 건너오던 바툭의 삶은 어두운 계단을 오르고 돌아서던 아버지의 등을 보는 순간 깨어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첫 케이크를 굽고는 (아동 성폭력, 즉 강간이지만 그녀의 비유를 따른다.) 제 스스로 소멸해버리듯 증발해버린다. 정체성의 증발, 존재의 증발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증발한다. 생에 대한 체념, 포기하여 받아들이는 의지력 잃은 삶이 시작된 것이다.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고아원을 거쳐 커먼가로 돌아오며 자신과 같은 처지의 소년, 소녀들을 만나 비열한 평화로움속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권력. 휘황찬란한 호텔에서 바툭의 삶은 처절하게 무너져내린다. 순간, 바툭이 바라고 또 바랐던 일은 두 팔을 옥죄던 손도 아니요, 가슴위를 누르던 몰상식한 힘도 아니요,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미던, 그, 그, 치욕스러움도 아니요, 단 하나, 오로지, 이러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 하나. 다만, 그 작은 바램 하나 뿐이었을텐데.

 

 스스로의 위선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 위선을 넘어서려는 사람은 과연 타인에게 어떠한 상처를 아로새기는 것일까. 눈물이 앞을 가린다. 새하얀 시트위에 상체를 드러낸 채 누워 있는 어린 여자, 검푸른 멍자욱이 눈 밑을 드리우고 짙은 달 밝은 어둠이 걷히어 해가 떠오르기를, 바라는, 어린 소녀가 표지에 스러지듯 누워있다. 바툭, 뿐만이 아니리라. 타자기에 올려진 손가락이 단어를 만들어 내기에는 너무 아픈 그 모든 영혼들이 구원되어지기를. 그 맑은 영혼들, 부디 머리카락 한 올 다치는 일 없기를. 감히, 염원해 본다.

 

내가 가는 길이 비참하다고 누가 감히 판단할 수 있겠는가?

판단은 편견이 드리우는 그늘이다. p.284.

 

 체념이었다고, 말해두어도 괜찮을까.

 아무리 손을 뻗어보아도, 아무리 발길질을 해 보아도, 잡아주는 이가 없어, 닿는 곳이 하나 없어 그저 무너져내리는 자신과 마주하는 일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없어 진작에 미래 없는 삶을 택해 타락했노라고, 그것만이 그동안과, 현재를 견디게 해 주는 원초적인 체념에서 온 것이라고 .. . 조그마한 목소리로 기침을 해대며 못내 뱉어내지 못한 가래 끓은 바툭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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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무게
헤더 구덴커프 지음, 김진영 옮김 / 북캐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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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 h e     W e i g h t     O f     S i l e n c e

 

 

 

 

 폭력적인 여름, 그리고 폭염의 연속이다. 뜨겁게 작렬하는 태양의 빛이 고스란히 세상 만물을 달구고 온 몸에 찰싹 달라붙어 살갗을 태우는 듯 하다.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 끄트머리에 땀이 베어나와 습한 면지로 번져 퍼져나간다. 새벽 녘이었고, 베란다 창문 너머로 하나 둘 점멸해가는 아파트단지 특유의 고요함이 묵묵히 내려앉았다. 디지털 시계는 정확히 숫자 일과 삼십이라는 숫자를 찍어내고 있었으며 잠이 올 때 까지만, 이라고 읊조리며 책 모퉁이를 손가락 끝으로 잡고는 달랑달랑거리며 이브자리로 들어선다.  「침묵의 무게」, 제목을 한 번 되뇌이고는 살짝 입술을 깨문다. 표지가 강렬하다. 그러니까 단지, 분홍색 잠옷을 입은 어린 아이가 뒷모습 일 뿐인데도, 고작 뒷짐 진 두 손에 음표 목걸이 하나를 늘어트린 채 쥐고 있을 뿐인데도 소통할 수 없는 강렬한 슬픔이 전해져온다. 느닷없이 치닫는 왈칵, 하는 목메임에 화들짝 표지를 넘기고는 다섯줄에 그친 작가의 소개글을 읽는다. 세상에, 영미권 소설은 손사래부터 치고 보는 나인데 설사가상으로 데, 뷔, 작, 이라니. 흡, 하고 숨을 길게 들이쉬고 하, 뱉는다.

 

 시점은 주인공 한 명 한 명에게 골고루 나누어 진다. 일곱 살의 소녀이지만 네 살때 말을 잃은 칼리와 그의 어머니 안토니아 그리고 칼리의 오빠 벤. 이웃집의 마틴과 안토니아를 어린시절부터 사랑해왔던 부보안관 루이스, 이렇게 다섯개의 시각이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전혀, 정말이지 놀랍도록 부산스럽지도 흐트러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시선이 책의 내용에 활력을 불어 넣어 멈출 수 없는 속도로 내달리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 속도가 어느 부분부터 내달렸는지 가려내어 본다면야 단박에, 첫 문장, 첫 마디, 첫 시작부터라고, 이미 출구없는 고속도로로 진입한 느낌이었다고 자못 경이롭게 말해본다. 흘러내리던 앞머리는 실핀으로 고정시키고 자세를 바로 잡고 앉아 데운 우유를 단숨에 들이키고 다시금 시선을 책으로 돌렸을때는, 고작 두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네 방 앞엔 범죄현장 주변에 두르는 노란 테이프가 쳐져 있네.

어서 나가 숲에서 너를 찾고 돌아다녀야 할 시간에 네 방이나 뒤지고 있다니

별 멍청한 짓을 다 한다 싶다.  p. 126 , 벤.

 



 

 사건은 늦은 새벽 녘, 말을 잃은 칼리 곁을 지켜주며 친구가 되어 준 페트라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힘으로 숲 속으로 끌려 가던 칼리가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이어지는 실종 신고와 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예민한 신경들이 파괴 된 이성으로 부딪히며 지난날의 회상과 과오들로 제법 탄탄하게 이야기는 진행된다. 떨칠 수 없는 김장감과 긴박감들이 한데 뭉그러지며 슬픔에 젖어 있을 새도 없이 그렇게, 이 책의 저자 헤더 구덴커프는 어린 소녀들을 위험한 현실과 맞닥뜨리게한다. 칼리의 어머니 안토니와와 페트라의 아버지 마틴과 어머니 필다의 필사적이면서도 슬퍼할수도, 그렇다고 최악의 상황을 인식하여 받아들일 수 없는 망연자실함 속에 주저 앉는다.  일 년, 아니 십 년, 아니 평생은 족히 되었을법한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사실, 단 하루만에 끝나버린다. 결말을 이야기 하지 않는 건, 오랜만에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동이 틀 때까지 붙들고 놓지 못한 것과 같이 말이다. 책을 벗어나, 이 작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발생하는 아동 유괴와 성폭력을사회는 언제까지 처벌로만 간과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주인공인 칼리와 페트라만의 일이 아님을, 전 세계는 유감스럽게도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묵인하고 있다. 지극히 사실적으로 말이다. 

 

 가장, 가슴 저리고 머릿속에 잊혀지지않는 한 장면이 있다. 소통의 방법 중 가장 쉬운 것이 입을 터트려 전달하는 '말'이라고 한다면 칼리는 그 보다 더 짙은 호소력이 있는, 눈과 마음으로 세상 만물과 소통을 한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라는 것, 길을 잃은 채 흙구덩이에 몸울 숨기고 있던 칼리 앞에 나타난 사슴과 왈츠를 추는 모습에 숨길 수 없는 실로 깊은 감탄이 새어나왔다. 책을 덮으며 무심코 평소에는 읽지 않던 표지 뒷편의 세 작가들의 문구에 마음이 일치했다. 수잔 윅스의 ' 긴장감이 폭발할 것 같은 순간을 숙련된 솜씨로 멋지게 써내려나간다.' 와 앤 후드의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끝까지 읽을 시간을 남겨둘 것을 권한다.'.

 

 우습지만, 짝짝 소리내어 박수를 친다. 데뷔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완벽했던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헤더 구덴커프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을 기대하며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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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 청춘의 밤을 꿈을 사랑을 이야기하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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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하는 시점에서, '작가'라는 것에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라는 큰 공통분모는 굉장히 많은 문화의 분자들을 획일화시키고 예술을 극대화시키기에 가장 걸맞고 적절한 직업의 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창조, 어떠한 발견, 어떠한 공상화 된 생각에서 비롯 된 이야기들 그리고 그것들을 다듬어 세상 밖으로 거침없이 토해내어, '눈'으로 읽혀 '마음'으로 닿게하는 기적적인 직업은 아마도 '작가'라는 직업, 단연 이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나의 꿈이었고 그로인해 좌절과 한계라는 절망과도 맞부닥쳤지만 하나의 이상으로 자리잡은 이상, 잃지않고 잊지않을 십대의 '청춘'의 모습으로 마음 저 구석에 여전히,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시나리오, 드라마, 영화, 소설 등 여러 작가들이 많지만 진득히 사람냄새나는 작가는 라디오 작가들이 아닐까 싶다, 아니 그러하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뭇사람들의 인정과 맹목적인 신뢰와 선호하는 분야의 책이 아니면 초이스를 쉽사리 할 수 없는 성격인데 내게도 쉬어 갈 수 있는 쉼표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것도 제멋대로 내달려가는 감정들에 대한 마음의 쉼표, 말이다. 그리고 여기, 성장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면서도 인생의 굴곡에 발을 내딛는 청춘의 사연들이 정갈하게 담아있는 책을 만났다. 어른은 아니지만 어른이고 싶었고, 어른이고 싶었지만 십대,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가 되어서도 결코 다다를 수 없었던 어른들의 이야기, 사람냄새 진동하는 사연많은 책.

 

 이 작가, 라디오 작가란다. 그것도 젊은글만 쓰고 싶다는 작가, 강세형. 책을 맞이 할 당시에는 여러 사람들의 사연들을 묶은 책임을 몰랐는데, 받아들고 훑어보는데 표지 뒷 장에 적힌 문구가 툭, 하고 발등을 찍는 느낌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 움찔했다. 흔하고 흔한 청춘소설들은 남부럽지않게 소화해냈지만 이런 문구는 또 처음이라 생소했던 탓일까. 괜스레 의기소침해져 책을 바로보던 시선을 홱, 하니 돌려 외면해버리고 말았다.

 

 

 화려하지 않아도 특별하지 않아도

청춘, 그 날것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다.

 

 

 사람냄새가 난다는 거, 별거 없다. 킁킁거리며 그 사람의 옷자락에 코를 대어 냄새를 맡지않아도, 경이롭게도 인간에게서는 그 사람만의 특정적인 '온도'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목소리라던가, 움직임 혹은 말투에서조차도 그 사람만의 특유한 성질의 것을 찾아 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 적힌 수 많은 사연들 하나 하나에도 사람 냄새를 맡았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너무도 사실적인 생생함에, 담긴 모든 사연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듯 청초해보였다. 내가 겪었던 이이기들, 나도 느꼈던 그 때 그 시절의 감정들, 지나고 흐르는 그 모든 시간들이 내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생각했었던 젖비린내나던 청춘들. 그리고 나 또한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무언의 끄덕임.

 

 군데군데 포스트잇으로 붙여놓은 페이지들이 수두룩하지만, 단 한차례도 쉬지않고 책 속의 사연들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마음과 마음이 일치되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래, 그래 - 라며,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던 , 순간들때문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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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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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생 시절이었을것이다. 「옆집여자」라는 그녀의 단편집을 처음으로 마주했던것은. 무려 1999년에 출간 된 책이었으니 십 년도 더 넘은 그녀의 작품을 다시금 곱씹는 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그도 그럴것이 「옆집여자」라는 단편이 그녀와 마주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기적과도 같이 내 기억속에 각인되어 있는 「옆집여자」속의 한 문장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음에 10년만의 장편소설을 펴냈다는 이 작가를 잊지 않을 수 있었던 충분한 이유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그 문장을, 정확히 필사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런 문장이었을 것이다. '여자들의 우정이란것은 후라이팬이 긁히는 것만큼이나 쉬운것이다.' 지금에와서는 그닥 의미있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내가 「옆집여자」를 읽을 당시에는 무던히도 '우정'이라는것에 짓눌려 있었다는것쯤은 단언할 수 있다. 의무교육의 졸업이후로, 나의 모든 감정과 지나 온 과거들에게 등을 돌렸으니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책을 읽기 전, 모티브가 되었다는 '오대양' 사건을 검색어로 넣고보니 '오대양집단자살사건' 이라는 단어로 백과사전에 등록이 되어있었다. 사건은 1987년이었으니 내가 아직 세 살도 채 되지 않은 해였다. 집단 자살이니, 집단 타살이극이니, 풀리지않은 미궁의 사건을 소설로 보듬었으니 책을 받아들고 찬찬히 읽어내려가기 전까지는 뜻 모를 기대감들이 대책없이 몰려들어, 한 줄 한 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데 쿵, 하고 내려앉는 실망감에 책을 탁, 소리나게 덮어버렸다. 모티브로 잡은 사건이 미궁으로 치달았다한 들 충분히 허구성을 반영할 수 있는 소설이라는 장점을 유도리있게 잘 활용해야하는데 이거 너무 겉핥기 그러니까, 너무 겉돌아도 한참 겉돌아버린다.

 

 고백하자면, 이백 페이지까지는 가까스로 정독을 했지만 남은 백 페이지 가량은 훑어보기에 가까운 속독으로 책을 마무리하기에 이르렀다. 작가의 말까지 얼렁뚱당 읽다가 재차 흘러나오는 한숨을 밭아내는 건 비단 내용의 겉핥기때문만은 아니었다. 실망감, 그러니까 오랜만에 마주한 조경란, 그녀에 대한 실망감에 평점의 별 두개를 찍어내는 손이 결코 가벼울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십년 전에 읽은 「옆집여자」 이후로도 그녀는 달라진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다는 것, 내겐 더 이상 그녀의 작품을 마주 할 까닭이 없는거다.

 

 사랑도, 애정도, 미련도, 어떠한 집착도 결여되지않는 '관계'에서 탄생되었던 작은 여자들의 움직임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아버지 따위, 라는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그 작은 여자아이들과 어머니들의 집단죽음으로 사건을 기록하여 기억해내는 할멈과 신신양회라는 공예품 공장의 우두머리이자 사건의 시발점이자 교주였던 어머니를 닮아가던 기태영. 미궁의 사건의 쫓는 기자 최영주. 사건이 그러하듯 소설 또한 미궁으로 그치고만다. 추적하는 자는 있지만 도망자는 없다는 것, 그로인해 결과라는 것 또한 흐지부지가 되어버리고마는 미완성 소설.

 

 부실했던 소재로 인해 텅 빈 듯했던 구성은 실로 읽는 내내 밀려드는 답답함을 어찌 할 수 없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구난방으로 흩어지던 내용들이 절대적으로 한 곳으로 무리지어 치달을 수 없었던만큼 집중력 또한 흐트러지고 이렇다 할 결론이 없으니 책의 여운마저도 나동그라지는 허무함을 표현 할 길이 없다. 읽는 내내 부산스러워지는 마음들을 어쩌지 못했던 만큼, 리뷰조차도 쓸 용기가 없어 느즈막히 끄적여보지만 단점들을 보완해 줄 장점을 찾지 못 해, 유감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차라리 소설이 아닌 연재작으로 일찍이 그녀의 작품을 만나보았더라면 조금 나았을것이리라 생각되지만 그득한 실망감을 뿌리 채 뽑아낼 수는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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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장화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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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이런점을 좋아했던 거다. 곤란해하는 구석.

말이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듯한 구석.

 

어째서일까. 어째서 이 사람은 내 말을 이렇게 곧이곧대로 믿는걸까.

말은 통하지 않는데, 어째서, 무엇을, 믿어버린 걸까.

 

 

 

 

날은 맑고 부는 바람만큼이나 스산한 계절이 농염한 꽃씨들을 흩뿌린다. 그리고 어제는, 민들레꽃씨가 곰살맞게 허공을 가로지르며 뭉텅뭉텅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것을 보자니 영화 '공기인형'의 마지막 장면이 문득 떠오르다 말았다. 결혼 십년차의 히와코와 쇼조의 이야기. 무슨 이야기? 스스로에게 묻다가 히와코처럼 쿡쿡 웃어본다. 대관절 히와코는 누구이고 쇼조는 또 누구인가. 싱그러운 연인사이인가 결혼한 부부사이인가 그것도 아니면 공황상태의 활주로에 놓인 거추장스러운 돌덩이들인가. 다시, 히와코처럼 쿡쿡.

 

믿을진 모르겠지만, 기이하게도 나는 히와코에게서 까닭없는 동질감에 난데없는 구성에도 불구하고 쉴새없이 끊어지는 맥락을 억지스레 부여잡으며 한숨을 토해내 듯 마지막장을 덮을 수 있었다. 쇼조에게 있어 불가항력적이었던 히와코의 움직임과 생각들, 꾸미지않고 유난스럽지않고 적당한 수다스러움과 소란스럽지않던 마음의 분열까지-물론, 쇼조 앞에서만의 히와코의 모습. 그러니까 남편 앞에서의 아내의 모습-나를 보는 듯 해, 더운 바람이 불던 늦은 밤에도 무릎 끝까지 덮고 있던 이불을 몇 번이나 땀이 찬 손으로 쥐었었는지. 그리고 그이를 힐끔거리기를 몇 번. 실로, 갑작스레 웃음이 터져나와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데운 우유를 단박에 들이켰다. 신경질적으로.

 

맹목적인 사랑을 담뿍담은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내쳤을 작품이었음을 알고있다. 허무맹랑하고 무미건조함에 소금이라도 치고 싶었던 히와코와 쇼조의 결혼생활이 정녕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건지 아니, 좀 더 진부하게 따져 묻자면 행복하기는 한건지 사랑이 존재하기는 한건지. 외출시에 끼던 가느다란 손가락에 걸린 결혼반지가, 널부러진 남편의 빨랫감 따위가 주는 안식이, 타인과의 마주함과 견주어 불현듯 그려지는 쇼조에대한 이유없는 그리움의 정체들이 진정으로 히와코라는 여자를 지탱해주는 것인지, 너무도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던 쇼조의 색깔없고 화딱지나던 '응', '아니' 식의 단조로움도 이해 할 수 없을뿐더러 용서조차 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런 쇼조를 모두 이해한다는 듯이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려대던 히와코의 마음도 납득할 수 없다.

 

여자에게 있어 결혼이란 보이지도 않는 환상에 사로잡힌 채 비극도 희극도 아닌 로맨스의 결말로 치닫고 싶은 욕망과도 같은 염원이라 생각한다. 작가도 인간인지라 그 간사함이 허구와 맞물리지 않을 수 없다는 백프로의 믿음으로 감히 이야기하자면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결혼생활이 '빨간장화'의 지반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자니 퍼뜩 까무러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쇼조의 역할이 그녀 자신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거침없이 해보는 바, 무례를 범한다.

 

가볍다 못 해 실수로 떨어트려 깨어져 활자들이 나뒹군다해도 아무렇지 않을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다소 실망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테지만 군더더기없고 불필요한 수식들이 붙지않은 가슴에 멍들지않을 소설임을 인정한다. 책장 어느곳을 펼쳐도 그곳이 시작이 되어 문제없이 읽어내려 갈 수 있으며 히와코의 쿡쿡거리며 웃는 소리가 급작스레 튀어나온다해도 쇼조의 시건방진 태도와 같이 왜 웃느냐 한 번 묻고나면 이 또한 스스럼없이 지나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이란 여자의 무덤이라 누군가 내게 말했던 적이 있다. 나 또한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내 그이는 내가 그리 생각하는 것을 못마땅하기에 내게 적정수위의 자유를 선사한다. 넌덜머리나는 현실감에 몸부리치는 것을 제외한다면 앞으로도 함께 살 의향이 있다. 살가운 자상함만으로도 그이와 함께하고 싶다는 것이야말로 단 1%의 희망앞에서도 좌절할 수 없는 여자의 농밀한 감정이 아닐까. 그래서 히와코도 쇼조의 곁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표현하지않고 말하지않아도 자신이 쇼조에게 아낌을 받고 지켜내야 할 존재로 여긴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채색의 결혼생활을 견디게하고 살고싶어지게 만드는 그것. 숨은 진실을 명백하게 보지 않으려는 이기심과 무관심과 득도 실도 되지 않을 안식.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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