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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평점 :
고등학생 시절이었을것이다. 「옆집여자」라는 그녀의 단편집을 처음으로 마주했던것은. 무려 1999년에 출간 된 책이었으니 십 년도 더 넘은 그녀의 작품을 다시금 곱씹는 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그도 그럴것이 「옆집여자」라는 단편이 그녀와 마주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기적과도 같이 내 기억속에 각인되어 있는 「옆집여자」속의 한 문장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음에 10년만의 장편소설을 펴냈다는 이 작가를 잊지 않을 수 있었던 충분한 이유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그 문장을, 정확히 필사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런 문장이었을 것이다. '여자들의 우정이란것은 후라이팬이 긁히는 것만큼이나 쉬운것이다.' 지금에와서는 그닥 의미있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내가 「옆집여자」를 읽을 당시에는 무던히도 '우정'이라는것에 짓눌려 있었다는것쯤은 단언할 수 있다. 의무교육의 졸업이후로, 나의 모든 감정과 지나 온 과거들에게 등을 돌렸으니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책을 읽기 전, 모티브가 되었다는 '오대양' 사건을 검색어로 넣고보니 '오대양집단자살사건' 이라는 단어로 백과사전에 등록이 되어있었다. 사건은 1987년이었으니 내가 아직 세 살도 채 되지 않은 해였다. 집단 자살이니, 집단 타살이극이니, 풀리지않은 미궁의 사건을 소설로 보듬었으니 책을 받아들고 찬찬히 읽어내려가기 전까지는 뜻 모를 기대감들이 대책없이 몰려들어, 한 줄 한 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데 쿵, 하고 내려앉는 실망감에 책을 탁, 소리나게 덮어버렸다. 모티브로 잡은 사건이 미궁으로 치달았다한 들 충분히 허구성을 반영할 수 있는 소설이라는 장점을 유도리있게 잘 활용해야하는데 이거 너무 겉핥기 그러니까, 너무 겉돌아도 한참 겉돌아버린다.
고백하자면, 이백 페이지까지는 가까스로 정독을 했지만 남은 백 페이지 가량은 훑어보기에 가까운 속독으로 책을 마무리하기에 이르렀다. 작가의 말까지 얼렁뚱당 읽다가 재차 흘러나오는 한숨을 밭아내는 건 비단 내용의 겉핥기때문만은 아니었다. 실망감, 그러니까 오랜만에 마주한 조경란, 그녀에 대한 실망감에 평점의 별 두개를 찍어내는 손이 결코 가벼울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십년 전에 읽은 「옆집여자」 이후로도 그녀는 달라진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다는 것, 내겐 더 이상 그녀의 작품을 마주 할 까닭이 없는거다.
사랑도, 애정도, 미련도, 어떠한 집착도 결여되지않는 '관계'에서 탄생되었던 작은 여자들의 움직임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아버지 따위, 라는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그 작은 여자아이들과 어머니들의 집단죽음으로 사건을 기록하여 기억해내는 할멈과 신신양회라는 공예품 공장의 우두머리이자 사건의 시발점이자 교주였던 어머니를 닮아가던 기태영. 미궁의 사건의 쫓는 기자 최영주. 사건이 그러하듯 소설 또한 미궁으로 그치고만다. 추적하는 자는 있지만 도망자는 없다는 것, 그로인해 결과라는 것 또한 흐지부지가 되어버리고마는 미완성 소설.
부실했던 소재로 인해 텅 빈 듯했던 구성은 실로 읽는 내내 밀려드는 답답함을 어찌 할 수 없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구난방으로 흩어지던 내용들이 절대적으로 한 곳으로 무리지어 치달을 수 없었던만큼 집중력 또한 흐트러지고 이렇다 할 결론이 없으니 책의 여운마저도 나동그라지는 허무함을 표현 할 길이 없다. 읽는 내내 부산스러워지는 마음들을 어쩌지 못했던 만큼, 리뷰조차도 쓸 용기가 없어 느즈막히 끄적여보지만 단점들을 보완해 줄 장점을 찾지 못 해, 유감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차라리 소설이 아닌 연재작으로 일찍이 그녀의 작품을 만나보았더라면 조금 나았을것이리라 생각되지만 그득한 실망감을 뿌리 채 뽑아낼 수는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