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무게
헤더 구덴커프 지음, 김진영 옮김 / 북캐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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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 h e     W e i g h t     O f     S i l e n c e

 

 

 

 

 폭력적인 여름, 그리고 폭염의 연속이다. 뜨겁게 작렬하는 태양의 빛이 고스란히 세상 만물을 달구고 온 몸에 찰싹 달라붙어 살갗을 태우는 듯 하다.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 끄트머리에 땀이 베어나와 습한 면지로 번져 퍼져나간다. 새벽 녘이었고, 베란다 창문 너머로 하나 둘 점멸해가는 아파트단지 특유의 고요함이 묵묵히 내려앉았다. 디지털 시계는 정확히 숫자 일과 삼십이라는 숫자를 찍어내고 있었으며 잠이 올 때 까지만, 이라고 읊조리며 책 모퉁이를 손가락 끝으로 잡고는 달랑달랑거리며 이브자리로 들어선다.  「침묵의 무게」, 제목을 한 번 되뇌이고는 살짝 입술을 깨문다. 표지가 강렬하다. 그러니까 단지, 분홍색 잠옷을 입은 어린 아이가 뒷모습 일 뿐인데도, 고작 뒷짐 진 두 손에 음표 목걸이 하나를 늘어트린 채 쥐고 있을 뿐인데도 소통할 수 없는 강렬한 슬픔이 전해져온다. 느닷없이 치닫는 왈칵, 하는 목메임에 화들짝 표지를 넘기고는 다섯줄에 그친 작가의 소개글을 읽는다. 세상에, 영미권 소설은 손사래부터 치고 보는 나인데 설사가상으로 데, 뷔, 작, 이라니. 흡, 하고 숨을 길게 들이쉬고 하, 뱉는다.

 

 시점은 주인공 한 명 한 명에게 골고루 나누어 진다. 일곱 살의 소녀이지만 네 살때 말을 잃은 칼리와 그의 어머니 안토니아 그리고 칼리의 오빠 벤. 이웃집의 마틴과 안토니아를 어린시절부터 사랑해왔던 부보안관 루이스, 이렇게 다섯개의 시각이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전혀, 정말이지 놀랍도록 부산스럽지도 흐트러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시선이 책의 내용에 활력을 불어 넣어 멈출 수 없는 속도로 내달리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 속도가 어느 부분부터 내달렸는지 가려내어 본다면야 단박에, 첫 문장, 첫 마디, 첫 시작부터라고, 이미 출구없는 고속도로로 진입한 느낌이었다고 자못 경이롭게 말해본다. 흘러내리던 앞머리는 실핀으로 고정시키고 자세를 바로 잡고 앉아 데운 우유를 단숨에 들이키고 다시금 시선을 책으로 돌렸을때는, 고작 두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네 방 앞엔 범죄현장 주변에 두르는 노란 테이프가 쳐져 있네.

어서 나가 숲에서 너를 찾고 돌아다녀야 할 시간에 네 방이나 뒤지고 있다니

별 멍청한 짓을 다 한다 싶다.  p. 126 , 벤.

 



 

 사건은 늦은 새벽 녘, 말을 잃은 칼리 곁을 지켜주며 친구가 되어 준 페트라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힘으로 숲 속으로 끌려 가던 칼리가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이어지는 실종 신고와 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예민한 신경들이 파괴 된 이성으로 부딪히며 지난날의 회상과 과오들로 제법 탄탄하게 이야기는 진행된다. 떨칠 수 없는 김장감과 긴박감들이 한데 뭉그러지며 슬픔에 젖어 있을 새도 없이 그렇게, 이 책의 저자 헤더 구덴커프는 어린 소녀들을 위험한 현실과 맞닥뜨리게한다. 칼리의 어머니 안토니와와 페트라의 아버지 마틴과 어머니 필다의 필사적이면서도 슬퍼할수도, 그렇다고 최악의 상황을 인식하여 받아들일 수 없는 망연자실함 속에 주저 앉는다.  일 년, 아니 십 년, 아니 평생은 족히 되었을법한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사실, 단 하루만에 끝나버린다. 결말을 이야기 하지 않는 건, 오랜만에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동이 틀 때까지 붙들고 놓지 못한 것과 같이 말이다. 책을 벗어나, 이 작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발생하는 아동 유괴와 성폭력을사회는 언제까지 처벌로만 간과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주인공인 칼리와 페트라만의 일이 아님을, 전 세계는 유감스럽게도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묵인하고 있다. 지극히 사실적으로 말이다. 

 

 가장, 가슴 저리고 머릿속에 잊혀지지않는 한 장면이 있다. 소통의 방법 중 가장 쉬운 것이 입을 터트려 전달하는 '말'이라고 한다면 칼리는 그 보다 더 짙은 호소력이 있는, 눈과 마음으로 세상 만물과 소통을 한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라는 것, 길을 잃은 채 흙구덩이에 몸울 숨기고 있던 칼리 앞에 나타난 사슴과 왈츠를 추는 모습에 숨길 수 없는 실로 깊은 감탄이 새어나왔다. 책을 덮으며 무심코 평소에는 읽지 않던 표지 뒷편의 세 작가들의 문구에 마음이 일치했다. 수잔 윅스의 ' 긴장감이 폭발할 것 같은 순간을 숙련된 솜씨로 멋지게 써내려나간다.' 와 앤 후드의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끝까지 읽을 시간을 남겨둘 것을 권한다.'.

 

 우습지만, 짝짝 소리내어 박수를 친다. 데뷔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완벽했던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헤더 구덴커프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을 기대하며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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