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잊었지만, 많은 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나는 옹기종기 앉은 '가족 아닌 가족'이라는 둘레에서 청포도를 뜯어 먹으며
꿈벅꿈벅 눈꺼풀만 태연히 움직이며 청포도가 토톡 터지는 입감에 온 신경을 집중했었다.
누구하나 울거나 큰소리를 내지 않았던 찰나,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 온
또 다른 타인은 나를 대신해 '가족 아닌 가족'에게 이것저것 따져묻고 대답을 듣길 원했다.
우스웠다. 누구를 위한 자리이며 누구를 대변하고 변호하는 자리인가 싶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고 그이에게 말했 듯, 나는 그이의 가족에게 말하고 싶었다.
이제 그만 날 좀 내버려둬달라고. 싫다고, 정말이지 싫다고 .. .
이런 나를 지켜보는 그이나, 당신들도 힘겹겠지만 나는 지긋지긋해서 매순간 살고 싶지 않다고.
.. . 그리고 ,끔찍하고 극악스러웠던 악몽의 연속.
다 잊었지만 많은 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동안 , 굉장히 많은 책을 손에 쥐었지만 끝까지
읽지 못한 책만 열 권이 넘는다. 억지스레 읽거나 술에 취해
펼쳐진 페이지를 무한 반복으로 소리내어 읽다보니 이 책,
저 책이 모두 하나의 책으로 느껴진다.
오랜만에 가방 속에 넣고 버스에서 찬찬히 읽기 시작한 책은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 왕복 서간이다.
가나에의 작품은 고백과 속죄를 읽어 어느 정도 그녀의 패턴과
문체를 기억하고 있다. 진부하지만, 그래서 질리지 않고
끝까지 읽어 내릴 수 있는 두터운 친근함이 서린 문체들.
편지라는 매개체로 이어지는 세 편의 이야기들은 의아스러운 생경함과 같았다. 스토리는 전작인 '고백'과 '속죄' 그리고 '소녀'와 '야행관람차'의 주인공들이 그러했듯 초점은 어리고 철 없던 시절에 대한 회상을 벗 삼아 풀어낸다. 치기어린 시절의 인위적인 왜곡들과 불편한 진실 그리고 결코 숨기고 묻어 둘 수 만은 없는 진짜 이야기들. 이러한 세 편의 이야기들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에서 시작한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그래서 너는 지금 행복하니.' 모든 이야기는 행복이라는 감흥을 쫓아 흐른다. 뒤늦은 후회와 그때는, 그랬더라면 하는 회환의 감정들 그리고 서로 다른 기억의 잔해들.
잊으려 했던것들이 많다. 또한 놓쳐야만 했던 것들도 많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삭제되어지거나 묻혀진 일들 또한 많다, 라는 걸 알고'만' 있다. 열아홉이라는 나이를 지나며 스물 다섯이 되기까지의 세월이 무참히 짓밟혔다는 건 온 몸이 기억하고 있다. 자멸해간 세월들이 못내 아쉬운건 아니지만 잊을 수 없는 더러운 감정들이 간헐적으로 괴롭다. 그저, 타협하기 싫었던 모든것들에 대한 반기였으며 이단이었지만 말이다. 지쳐있던 독서에 왕복 서간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큰 기대를 않고 읽었던 탓도 있었지만 생각치 못했던 반전들의 연속이라, 재미있던 책. 개인적으로 마지막으로 실린 단편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은 단연 절정을 달린다.
연이어, 손에 든 책은 김주영이다.
그의 소설 「빈집」을 이후로 얼마나 그의 작품을 기다렸는지
망설일틈도없이 책이 출간된 날 구매를 했더란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근 한달동안 이 책을 가방에 담고 다녔다.
받는 즉시 표지를 벗겨내고 위생봉투에 책을 넣어서 말이다.
오늘에서야 마침표를 찍었지만, 그래도 좋다.
며칠 전 알라디너들의 서재를 보니 어디선가 리뷰대회라도
하는지 연달아 이 책의 리뷰가 등록되는 모습을 보고는 조금
참담하더랬다. 제일 먼저 구매하고 제일 먼저 책 소개를 하고
싶었던 바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훗.
이렇다 할, 이유따위는 없지만 꽤나 그의 소설 빈집을 충격적으로 읽고서는 급작스레 김주영이라는 작가가 좋아졌었다. 문학동네 카페에서 김주영의 다음 작품 연재 소식을 들었지만 부러 , 단 한 편도 읽지 않았다. 책으로, 제발, 빨리, 하며 기다렸더랬다. 역시나, 전작인 빈집이 아주 미세한 세포들이 빈틈없이 채워진 타이트한 소설이었다면 이번은 유연하면서도 절제 된 유약함의 결정체들의 모음이라 할 수 있다. 감격이다. 좋다. 같은 작가라고는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작과는 극과 극이다. 진부한 소재의 김주영만의 호흡. 뜬금없지만, 난 그래서 연령구별없이 남자들의 뒷모습이 애처롭다. 떠도는 쓸쓸함들이 이 책 안에 그득하다. 다시 한 번, 난 김주영이 좋다.
어머니는, 두 번이나 사내를 갈아치운 여자가 감당해야 할 이웃의 조소와 경멸을, 모질고 벅찬 노동으로 자신을 학대함으로써 극복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되도록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새벽같이 일을 나갔다가 해가 빠지고 어둑어둑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새아버지가 집에 들어온 후 마을을 배회하고 다니던 나와 맞닥뜨릴 때면, 어머니는 나를 손짓으로 불러 머릿수건으로 인중을 타고 흐르는 콧물을 훔쳐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매몰차게 뿌리치고 도망치듯 돌아섰다. 돌아설 때마다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지만, 그런 앙탈을 멈출 수 없었다. 그때는 어머니의 심기를 괴롭힐 수 있다면 천둥 번개와도 담대하게 맞설 각오가 되어 있었다. p. 196
다시, 할렌 코벤이다.
그의 작품인 「아들의 방」과 「결백」을 소화해냈지만
아직 그를 알기엔 많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또 며칠을 끌 것인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지만 조금은 여유롭다 말 할 수 있는 출퇴근 길의 버스를
믿어보련다. 아마도 이 책을 다 읽어야, 잠적해있는 페이퍼들
을 모두 끌어올릴 수 있겠다.
그러는 동안 아마 언제적일지도
모를 감정의 잔해들을 되새김질을 해 다시금 아플지도 모르
지만 그래도 나, 조금은 괜찮아질 수 있다.
(*)
태풍이 온다지요.
내 첫사랑은 태풍을 좋아했어요, 무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