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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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날들이다. 장마가 시작되고 폭우가 쏟아진다.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는데 빗방울마저도 아프게 내리친다. 그런 날들이다. 하염없이 울어도 결국 손등으로 훔친 묽은 눈물을 탈탈 털어낼 수 밖에 없는 날들. 도무지 책을 읽을 수 없어 책장 조차 바로 볼 수 없을지경이 되어 한 없이 지나 온 과거를 되새김질하던 때, 불현듯 더 고통스러워지고 더 슬퍼지고 더 아파지고 싶은 마음들이 들어찬다. 이 여름, 고이 보낼 수 만은 없겠구나 싶어 포기하는 심정으로 집어 든 책이 신경숙의 작품이다. 작가의 문체만으로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 한 신경숙작가만의 작품.

 

 마지막 작가의 말까지 완벽하게 읽어내니 다른때와는 달리 개운함이 첨벙거리며 가슴으로 뛰어든다. 수고했어,라고 누군가가 내 귓가에 숨을 불어넣는 듯 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정윤과 명서, 미루 그리고 단이. 어떠한 출구도 없어 비상구로 뛰어다니던 스무살 청춘들의 사랑으로 일그러진 이야기들. 소설의 주제와 소재가 아닌 오로지 신경숙의 문체에만 집중하려했던 초반의 마음들이 어느새 윤과 명서와 미루를 따라 서울 한복판을 걷고 명동거리를 쏘다니며 윤이 누웠던 누에 함께 눕기도 하고 명서를 따라 시위도 하고 미루의 플레어 치마자락 끄트머리에서 위태로이 휘청였다. 그리고 단이를 따라 내 입 속 가득 총구를 밀어넣기도 했다.

 

 주인공 어느 누구에게도 애정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해야 하나. 윤 보다는윤의 옥탑방이, 명서보다는 명서의 갈색노트가, 미루보다는 고양이 에밀리가 그리고 단이보다는 스케치북이 되려, 더 깊은 애정이 가 닿았다. 그들에게 어떠한 애정을 품었다가는 남은 윤과 명서조차도 무사하지 못 할 듯 너무도 가냘파 손 한 번 잡아줄 수도, 꼭 한 번 끌어안아 줄 수 없어 지켜보는 두 눈에 실핏줄이 깨어질 듯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단이의 자의에 의한 혹은 타인에 의한 죽음과 목을 맨 미루의 자살과 그들을 이어주던 윤교수의 죽임이 치닫기까지 그들 모두 완벽한 이별은 하지 못 한 채, 소설의 끄트머리에서조차도 서성거리다 남겨져있는 청춘 그대로의 이십세의 청춘으로 꾹꾹 보듬고 또 보듬었다.

 

 감히 말해보자면 신경숙의 작품속 주인공은 슬픔과 고통이 수반되지 않은 인생은 삶일 수 없다는 듯 켜켜이 묵은 아픔들까지 질척거리며 현실적이게 풀어낸다. 현실의 이데올로기에 갇힌 꿈과 이상들이 곧은 길로 뻗어나갈 수 만은 없는 것 처럼 철저한 슬픔들이 존재한다. 개인적인 기호로서, 삶의 무게에 지쳐 고독과 우울과 마주칠때면 늘 신경숙의 작품은 이루말 할 수 없는 힘이 된다. 나 보다 더한 고통속을 헤메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위로라고 해두어도 괜찮을까. 무시치 못 할 강력한 힘으로 내 가슴을 후려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윤이었으면 했었고 미루였으면 했다. 잃은 것에 마음은 주되 몸은 두지 아니하는 윤이었으면 했고 떠나고 버리는 것에 의연해하지 않고 죽음을 가까이함에 있어 두려워하지 않는 미루였으면 했다. 쉬이 끊어낼 수 없는 것들이 수두룩하여 걷는 발끝마다 채이는 것이 사람인지라, 무던히도 느끼며 깨닫는 것은 삶이 나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와 손을 잡은 사람들이 나를 더 고달프게 한다는 지리멸렬한 분명함. 허나, 그 분명함이 삶을 버티게하고 견디게 해준다는 사실 또한 묵과할 수 없는 진실임을, 그로인해 이리도 오롯이 살아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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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사는 너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나중길 옮김 / 살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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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박또박, 글자 하나하나 놓치지않고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여 읽어내렸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러하지않으면 책을 쥐고 있는 손이 당장에 힘을 잃어 놓아버릴 듯 불안했기 때문인지도 모를일이다. 작가의 전작인 「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잃지 않아 비교하여 설명할 수는 없지만 도대체가 빈틈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독자의 이입을 차단하는 듯 한 문체에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을 여전히 떨쳐낼 수 없다. 오랜만에 마주한 영미소설은 학창시절에 읽었던 느낌 그대로다. 메스를 쥐고 유능한 의학자처럼 세밀하게 해부하지 않는 한 작품과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몸소 체험했음에 뜻밖의 감사함까지 전하는 바다.

 

 줄리아, 발렌티나, 엘스페스, 에디, 로버트, 잭, 마틴 - 주인공의 이름을 미리 적어두지 않으면 어느날인가 잊혀질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마틴의 아내 이름을 잊은것처럼. 마레이케였던가. 쌍둥이 자매인 줄리아와 발렌티나는 엘스페스 이모가 유산으로 남긴 아파트에 들어오면서 가늠하지 못하고 생각치도 못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듯 하지만 사실, 발각되어지는 일상이었다는 것이 더욱 적절한 표현일것이다. 줄리아는 윗층의 마틴에게 그리고 발렌티나는 아래층에 사는 로버트에게 연정을 품는다. 쌍둥이라는 틀 안에 옭아매어지길 원하는 줄리아와 그런 줄리아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발렌티나의 감정들이 쉴새없이 부딪히며 앓던 병으로 죽은 엘스페스 영혼이 환상이 아닌 현실화되어 어떠한 힘을 가지면서부터 이야기는 붕- 하고 떠오른다. 그 어떠한 힘이란 ,

 

 살아있는 영혼을 건드리는 불편법의 힘. 그리고 영원히 자유로와지기를 바랬던 발렌티나의 갈망. 그로인한 엘스페스와 로버트, 발렌티나의 암묵적인 계획이 성립된다. 쟁점은 바로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엘스페스의 살고자하는 욕망과 발렌티나의 비상하고 싶어하는 욕망, 마지막으로 로버트의 비틀어진 도덕적 윤리. 로버트의 말처럼 진정으로 엘스페스는 치밀하고 악랄했을까. 어리고 여린 발렌티나의 젊은 몸에 발렌티나의 영혼을 흩뿌리고 자신의 영혼을 밀어넣는 계략들이 정말이지 나쁜일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분명, 악인은 없다. 그 어느 누구도 불행해지지 않았으며, 엘스페스와 에디의 장난스런 잭에 관한 지난날의 과오도 숨은 진실로서 암묵적으로 용서되어지고 있었으며, 강박증과 심한 결벽증을 앓던 마틴의 병도 스스럼없이 치유되어진다. 비단, 로버트가 -

 

 아니, 로버트는 어느 지점 어느 곳에서 상처를 받았던 것일까. 인간의 비틀어진 도덕적 윤리가 허무맹랑한 소설의 결말처럼 개념을 잃어서일까. 로버트의 부재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지금 내가 내리려는 결론과 일치할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이야기하자면, 인간에 의해 인간에 의한 사랑이 돌연 배신의 형태로 아로새기는 상처를 두둔하고자 했던 것을 아니었을까. 그리고 사랑이라는 불멸할 듯 했던 감정들의 절망적인 윤리로 부각되면서 인정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어 차마 받아들이지 못 했던 현실로 로버트는 부재라는 공허함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비록, 주인공 개개인에 대한 감정의 묘사가 얕았지만 무시할 수 없었던 작가의 섬세했던 필사가 눈에 선할 정도로 빡빡하게 채워졌음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것이 영미소설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흔쾌히 손을 들어 줄 수 없음은 지당한 사실일 터, -물론 개인적인 취향에 불과하겠지만- 실로 무미건조하게 읽었지만 책을 덮는 순간 어떠한 여운도 남지않아 말끔했던 소설임은 분명하다. 사람 감정을 들어다 놓았다 하며 결국에는 인간의 본성까지 헷닥- 하니 내동댕이쳐 잊은 상처마저 긁어내는 미묘한 소설보다는 백프로의 매력적인 작품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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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림의 러시아 예술기행
최하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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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시작이었고 어둠이 끝이었다

어둠 속에서 보낸 고통스런 경험의 산물이 바로 예술이었다

* * * 



'이럴수가!'

출근한지 몇 시간이 채 지나지않아 도착한 책을 받아들고는 흔들흔들 어깨춤을 추며 미세한 생채기라도날까 무서워 아스테이지로 신속하게 포장을 먼저 했더란다. 그리고는 휘리릭, 훑어보기를 하는데 뭔가 심상찮았다. 분명있어야 할 그리고 있어야만 하는 사진 한 장 없더란다. 손에 꼽을 정도라지만 내가 알고, 읽었던 여행기행문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기행문이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초등학교 시절의 소풍이 그러했고 고학년의 수학여행이든 졸업여행이든 사진이 생명이라해도 과언이 아닐터인데, 이것은 대체 무슨 기행문이란말인가. 더욱이, 러시아라는 나라에 관해서는 무지하다 말해도 더 모자를판인데!   

 

괜스레 숨을 몇 번 고르고 다시 한 번, 훑어보고는 찬찬히 목차부터 읽어보자며 바쁘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데 '첫 번째 러시아' 와 '두 번째 러시아'로 나뉘어지는 만만찮은 여행기. 결단코 책의 굵기가 얇다하여 우습게 보면 안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아야했다. 어떠한 명칭이든, 건물이든 생소하기는 물론이고 발음하기조차 난감한 목차에서 지레 겁을 먹고는 책을 덮는 찰나 - '아! 파스테르나크!' 망설임없이 목차가 가르키는 페이지를 가르면서 다소 엉뚱하게도 '두번째 러시아' 부터 작가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두 번째 러시아, 모스크바 ㅣ

파스테르나크 / 타르콥스키 / 숄로호프 / 아흐마토바 / 쇼스타코비치 그리고 체호프.

 

실로, 목차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듯 했다. 러시아가 어디인가 ? 감히 상상도 못 할 예술인들의 나라가 아니었던가? 초반의 막막함은 물론이고 잠시잠깐 까막눈이 되었던 찰나는 모두 사라졌다. 사진 한 장 없으면 어떠랴. 한 분 한 분 이름을 뱉어낼때마다 머리속에서 잔잔한 단상으로 떠오르는 것을 , .

러시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파스테르나크부터 시작하여 러시아의 여류시인으로 사회주의 노선을 거부한 아흐마토바, 그리고 러시아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까지. 실로,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그들의 생과 예술과 죽음까지 기행자 최하림은 특유의 시적 흐름으로 단아하고 정갈했을법한 복잡미묘했던 그네들을 보따리에 담아 하나하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 숄로호프는 최하림의 기행으로 처음 알게 된 사실임을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난 여기서 최하림과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왜 그들은 , 러시아인지. 아니 왜 그들은 러시아여야만 했었는지.

 

중간중간 사전과 인터넷을 구동해가며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기행자 최하림이 본 것들을 나도 단 몇 프로라도 더 가까이 느끼고 함께 그 땅을, 그 예술인들의 나라위를 걷고 싶다는 생각이 절절하리만치 긴박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런것이 첫 번째 러시아에서는 인터넷이 모르는 것을 찾아주지 않으면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살짝 토로하며 최하림이 첫 번째로 다녀온 러시아를 나는 두 번째로 읽어내려간다.

 

첫 번째 러시아,

시베리아 / 페테르부르크 / 톨스토이 / 도스토옙스키 / 루블료프 / 안톤체호프

 

어느 누가 톨스토이를 모른다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분명, 우리가 아는 그 톨스토이가 러시아의 예술인이었음을 모르는 사람은 분명 상당수임을 나는 확신한다. 두 번째 여행에 비해 다소 많은 사람들과의 기행은 우주의 궁륭이자 샤먼의 바다라 불리우는 바이칼을 횡단하는 기분으로 나 역시 그 무리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일행인마냥 발꿈치를 쫓았다. 읽는 내내 톨스토이에 대한 기행자 최하림의 각별한 애정을 양끗느끼며 다시 한 번 나의 얕은 지식과 별 볼일 없는 지식 그리고 들추어내봤자 깡그리 무시되어 부끄러워질 지식에 몸서리를 쳤다.

모두가 아는 톨스토이와 '죄와벌'의 도스토옙스키 그리고 수사화가인 안드레이 루블료프와 소설가이자 극자가인 안톤 체호프. 모두가 러시아가 낳은 예술인이다.    

 

기행이 아닌 러시아에 대한 공부를 하는 양, 참담함에 뱉어낸 한숨만 셀 수 없을 지경이다. 이 예술인들 모두가 아닐지언정 톨스토이와 어느 정도는 연관을 짓게 만드는 러시아는, 혹 톨스토이의 독무대가 아니었을지 감히 말해본다. 완벽하다 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를 여행하기 전, 최하림의 예술 기행을 읽고 떠나는 자가 있다면 이 책이 선사해주는 모든 곳의 땅을 밟지 않는 한 돌아 올 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리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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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1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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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쿠다 히데오, 실은 - 그닥 좋아하지 않는 작가다. 유쾌하고 위트있는 소재로 다작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공중그네'를 읽다가 중도포기를 해 버렸으니 애초부터 나와는 기호 자체가 전혀 다른 작가라고 생각했다. 주위 사람들의 극찬에도 읽는 내내 진도가 나가지 않아 꽤나 땀 흘리며 고생했던 책이라 두번은 이 작가의 작품은 읽게 되지 않을거라 다짐까지 했었는데 나도 모르는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걸'이라는 책까지 무료 소장하는 조금은 우스운 헤프닝까지 있었다. 물론 , 읽지 않고 책장에 고스란이 꽂혔있다. 여전히. 어쩌면, 서평이벤트가 아니었다면 올림픽의 몸값 또한 읽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지만 진심으로 다행이다 싶다.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를 다시,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사마자키 구니오   스가 다다시   고바야시 요시코  오치아이 마사오

 

 늘 그래왔듯이, 주인공들의 이름을 되뇌이고 책을 덮는다.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어지는 느낌에 온 몸에 전율이 인다. 보름정도의 기간동안 미스테리 추리소설만을 고집하며 읽다보니 어느샌가 주인공을 쫓아다니는 것이 그리고 , 그 주인공이 꼭 나 자신인 마냥 함께 밥을 먹고 같이 잠을 자는 소소한 일상마저도 주인공의 일들이 모두 내 일이 되어버린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그 순간조차도. 가슴에 사무친다. 사마자키 구니오 - 이젠 이름만으로도 안타까움에 서글프지만 그때 그 시절이 과연 구니오를 심판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럴 순 없다 - 도리질이 쳐 진다.

 

 그때의 도쿄는 그리고 그때의 올림픽은 선진국이고자했던 일본을 휘황찬란한 비단길에 세워놓고, 그 비단길 아래로 지방 벽지의 실태를 짓밟았다. 오직 올림픽이 열리는 도쿄만을 꾸며놓고는 '세계에 선 일본'를 보여주고 알아봐주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뒤로 짓밟힌 지방 벽지 촌의 다이너마이터를 쥔 사마자키 구니오가 있다. 가족에 대한 결핍이 아니다, 그리고 그를 자극한 건 도쿄 올림픽도 아닌 오직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구원, 그 작은 손짓이었다. 욕심과 오기가 아닌 오로지 한 사회라는 공동체에 대한 결합이었을 뿐 한 일본인으로서의 자긍심이었다. 그런 그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마사오가 구니오를 놓쳐주기를, 풀어주기를. 얼마나 바라고 또 바랬는지를 모른다.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으니 구니오가 무사해주기를- 마사오의 총에 가슴을 저격당했을 때에도 도망가주기를 바랬었다. 구니오가 쓰러지고 한꺼번에 몇장을 넘겨버렸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혹 정말 가슴을 부여잡고 도망은 갔는지. 그럼 그렇지. 구니오 역시, 그가 일으켰던 몇 차례의 사건이 보도되지 않듯이 사라졌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기록조차도 되지 못하는 역사의 오점처럼.  

 

 

 뭉클뭉클하다.

 추천은 물론, 별 다섯개도 가능했지만 - 구니오가 없어졌으니.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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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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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에 마키 아키코 유카 그리고 ,에미리와 아사코 아주머니 .
  구원받지 못 한 어느 한 시절의 속죄 아닌 결핍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

 

  성기호증의 남편을 살해한 사에.

  어린시절의 생생한 결핍에 의한 마키의 의도치 않은 세키구치의 죽음. 

  환각과 환영속에 증발한 아키코의 친오빠의 살해.

  그리고 ,열등감이 만들어낸 유카의 형부의 살해.

                           

  지리멸렬할 정도로 뚜렷한 성격의 소유지인 네 소녀의 '성숙' 하는 과정조차도 발목을

  붙잡는 아사코 아주머니의 속죄하라는 말 한마디는 과연 그녀들의  

     인생 전반을 뒤흔들었다.

  열 살 ,이라는 어린 나이가 에미리의 죽음과 부딪히며 어느 누구에게도  

      구원 받지 못 한 삶을

  다시 한 번 에미리의 어머니에게 구속 당해야만 했던 - 속죄 ,

 

  네 소녀 나름의 속죄였을까 아니면 그녀들 앞의 미래와 현실이 그것이었을까.

 

  불온전한 여자였던 사에와 리더쉽이 강박감이었던 마키.

  평범함의 균형을 깨트리는 친오빠의 강간현장과 맞닺뜨린  

     아키코와 친언니에 대한 열등감이 결국 형부를

  죽음으로 내 몬 유카까지 . 어는 누구를 탓해야 이 소녀들이 용서  

     받아 구원 될 수 있을까.

 

  책을 받아 든 순간부터 ,서늘했다 .

  어떠한 무서운 이야기로 나를 괴롭힐까 싶어 읽는 내내 긴장 한 번 놓친적이없다 .

  평소 , 접 할 생각조차 없었던 장르의 책이니 그럴만도 했지만 - 손을 뗄 수도 없었다 .

  굉장했으며 매력이 넘쳤고 흥미로웠다 , 진정 .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다. 

 

  한참이나 미루고 망설였던 -고백- 을 ,빠른시일내에 읽어봐야겠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 듯 용서받지 못할 죄 역시 또 다른 죄를  

      야기 시킬 수 있다는 것 ,

  변치 않을 진리임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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