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을 읽다보면 눈길눈길 가는 데마다 어찌나 셱스피어(셰익스피어를 줄였다)가 밟히든지. 그래서 양쪽 책이 다 궁금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20세기 미국문학의 3대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너새네이널 웨스턴의 [미스 론리하트]에 대해서 블룸은

"뛰어난 문장과 패러디, 허무주의적 신랄함은 셱스피어의 [자에는 자로 Measure for Mesure]와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Troilus and Cressidar] 이후 유사한 예를 찾기 어렵다" 고 한다.

[미스 론리하트]도 셱스피어의 두 작품도 그냥 금시초문이다.

 

 

 

 

 

 

 

 

 

 

 

 

(건국대출판부의 [자에는 자로]는 원서강독용이다)

[자에는 자로]와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는 한번 더 나오는데 마르셸 프로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언급된다.

"마르셸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화자 마르셸의 대모험이 주는 최상급의 아이러니와 매혹적인 악취에 가장 가까운 것은 [자에는 자로]와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정도이다."

전예원에서 나온 신정옥 역의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는 당시 구입할 때 교보에 없었던 관계로 도서관에서 형설출판사의 이덕수 역의 책을 빌려다 읽고 있는 중인데, 영한 대역에 교재용 책처럼 편집된 책이다. 오탈자에다가 인물 표기법도 엉망이어서 내용이 대충 어떤지 읽어볼 생각으로 잡고 있으나 한숨만 나오는 책이다. 화도 난다.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는 일종의 '다크 코미디 dark comedy'로, 이런 식의 장르 구분에 예전 비평가들은 비판적이었다고 하는데 요즘 독자들에겐 재밌는거 아닌가. 트로이전쟁 동안 벌어진 그리스와 트로이의 왕과 영웅들 간의 '가치'논쟁이 흥미로운 것 같다.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연설하면서도 행동은 이를 배반하는 이중적이고 분열적인 인물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 같다. 그러니 얼마나 정신사나운 극이겠는가. 아직 읽고 있는 중이다. 더 가자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까지 가야하는데, 갈 수가 있겠는가. 쯧.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 세권을 읽은 게 전분데, 생각보다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계속 읽고 싶었으나, 완독은 너무나 장구한 프로젝트를 요구했기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권 '스완네 집쪽으로' 속 페이지에 들뢰즈의 [프루스트와 기호들]에서 인용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 책은 어떤 배움의 이야기이다. 더 정확히는 한 작가의 배움의 과정의 이야기이다"를 써놓았다. 이 말을 미스터리삼아 읽어갈 생각이었을 것이다. 지금부터 아주 오래전 일이다. .......

 

 

 

 

 

 

 

 

 

 

 

 

다시 셱스피어로 돌아가서, 새삼 내가 읽은 셱스피어 작품을 꼽아보니 4대비극(햄릿,오셀로,리어왕,맥베스)에다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샤일록이 나오는데다 여성 캐릭터(포샤)가 흥미롭다는 [베니스의 상인] 정도가 전부였다. 햄릿만 번역본을 달리 해 몇 번 읽었고 이번에 또 다시 읽었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박우수 역의 [햄릿]은 운을 중시한 것이나 지나친 고어를 피해 요즘 읽는 이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문장을 쓴 건 이해할 수 있으나 맛이나 아취가 휘발된 것 같은데다 호칭도 통일되지 않은 채 사용된 것도 있고, 게다가 상감마마, 세자는 뭐냐? 에잇, 구입을 후회했어. 로쟈님이 여러 번역본 비교할 때 흥미롭게 본다는 1막 2장의 햄릿 대사,

"A little more than kin, and less than kind"는 "친척 이상이지만 친척만도 못하죠"로 번역했다. 친척 사이로 머물렀어야 하는데 부자관계가 되버린 상황에 대한 냉소적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읽었을 때 남의 다리 긁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읽는내내 조금씩 부족하고 헐겁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햄릿은 그렇고, 다른 셱스피어 작품에 관한한 무식하다고 해도 변명할 말이 별로 없다.

블룸의 셱스피어 언급 대목 몇개만 더 들여다보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과 [맥베스]의 친연성이라든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화자 닉 캐러웨이는 [햄릿]의 호레이쇼와 같다고 비교하는 것 등이 재미있다. 

 

"호레이쇼/캐러웨이는 햄릿/개츠비의 고뇌와 의문을 감싸고 있는 까다롭고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인물이다. 개츠비의 실질적인 근거는 없다. 플라톤적 자아관에서 볼 때 개츠비는 실재하지도 않으며 우리가 알 수 있는 존재도 아니기 때문이다. 햄릿을 향한 호레이쇼의 자유로운 사랑처럼 개츠비를 향한 캐러웨이의 지독한 사랑은 감동적이긴 하지만, 개츠비는 단지 열망 뿐이고 정신은 없으며 의미없는 충동에 흔들린다."

 

또 [인형의 집]의 헨리 입센의 대표작으로 블룸이 꼽은 건 [헤다 가블레르Hedda Gabler]라는 희곡인데 주인공 헤다는 셱스피어의 클레오파트라와 이아고가 결합된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오셀로의 이아고야 알겠지만 [헤다 가블레다]는 번역서가 없는 듯하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대략 이 세 권 정도에 나온듯하다. 어떤 책이 제일 읽을만한지 하, 이거야 원 한 권만 읽고 말 것인가 세 권 다 읽어볼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여튼 블룸은 입센의 작품에는 셱스피어의 자취가 짙게 배어 있다라고 하는데 [헤다]와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Titus Andronicus]와의 친연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 작품 또한 금시초문아닌가.

  

 

 

 

 

 

 

 

 

 

 

 

이 작품은 유혈이 낭자한 소극이며 어쩌면 풍자극이라는데 전예원에서 나온 신정옥 역의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를 구입했었다(지만지는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다. '러'냐 '로'냐 이 한 글자의 차이가 신경을 긁는다. 왜 표기법 하나 통일이 안되냐.). 지만지 것을 구입하고 싶었으나 당시에 교보에 없었다. 젠장. 살 때는 다급하게 구했는데(읽고 싶어서) 아직 읽지 못하였다. 작품해설부터 읽어보니, 이 작품은 "악몽이라고나 할 세계에서 일어나는 그야말로 참혹한 비극"이란다.

"잔학, 폭력, 광기가 무성한 피비린내나는 복수의 비극"

1593년 경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셱스피어가 원작자인지 의문이 무성하다고. 공연횟수는 셱스피어의 타작품에 비해 많지 않다고. 초기 습작기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높이 평가하는 측과 폄하하는 측의 주장이 팽팽하다나 어쩐다나.

내면적 갈등에 촛점이 맞춰진 후기 비극에 비해 이 작품은 외면적 비극이 핵심적인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는데 인간의 극단적인 잔학성을 드러내 보인다는 작품이다. 블룸은 소극이며 풍자극으로 정의했다. 여튼 읽어볼 일이다. [헤다 가블레르]는 번역서라도 있어야 읽어볼 것 아닌가.

 

코맥 맥카시의 [핏빛 자오선]에 이르러 맥카시는 셱스피어적인 고고한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이며 작품의 홀든 판사는 이아고와 같은 인물이라고 본다. 비극적인 주인공인 소년이 이 불가사의한 이아고 같은 인물인 홀든 판사에 의해 끝내 파괴되는 작품이라고 해설했다.

 

 

 

 

 

 

 

 

 

 

 

더불어 셱스피어의 4대 사극이 한데 묶인 이태주 역의 범우사 판을 읽고 있는데....... .

 

 

 

 

 

 

 

 

 

 

 

 

헨리4세 1부, 헨리4세 2부, 헨리 5세, 리처드 3세 네 작품이다. 헨리 4세에 그 유명한 캐릭터 폴스타프가 나온다.

이아고와 버금가는 캐릭터로 꼽는 폴스타프의 매력을 어떻게 구해내며 읽어야할지 난감해 하고 있는 중이다. 폴스타프와 헨리 5세(헨리4세 때는 헨리(할)왕자였던)의 이중성이 흥미로운 주제라는데 아직 내게는 모호하고, 책 붙잡고 있기가 힘들다.

범우사 판이 아닌 다른 번역본도 구해봐야 할 것 같다.

 

 

 

 

 

 

 

 

 

 

 

 

이 외에도 전예원의 셱스피어전집에는 리처드2세, 헨리8세, 헨리6세 1,2,3부가 있다.

셱스피어 전집만해도 평생 읽어야 할 프로젝트다운 볼륨감을 자랑하지 않는가. 거기에 해설서나 분석, 비평서까지 넣으면 엄두가 안난다. 관심 갈 때마다 한 권씩 찾아서 읽으면 되지 욕심부릴만한 일이 아니다.

 

[맥베스]와 [오셀로]는 늘 헷갈리고(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비웃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이번에 다시 [오셀로]를 읽으며 오셀로는 왜 그다지도 빨리, 순간에 의심에 빠지게 되는지 다소 의아했다. 지 아무리 이아고가 있었다해도 그건 오셀로 안의 뭔가가 있는 것은 아닌가. 오셀로 자체가. 이에 대해서도 수많은 해석이 존재한다. 연극상연을 위한 대본이었으니 대사만을 보았을 때와는 다른 공연상의 보완적 상황이 보태졌을 것이라는 것에서부터 질투라는 것 자체가 지닌 속성, 오셀로의 무어인이라는 인종적 설정에 기인하는 인종차별적 성격 등을 지적한다.

셱스피어의 작품을 흥미롭게 깊이 읽기 위해서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상연을 위해 내가 연출자로서 혹은 배우로서 어떻게 해석해서 표현할 것인가라는 절박한 입장에 서 봐야할 듯하다.

 

전에 읽었던 가와이 쇼이치로의 [햄릿의 수수께끼를 풀다]를 읽다가 햄릿의 그 문제의 문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에 대한 해석이 늘 맴돌곤 했는데,

 

"햄릿이 단순히 복수라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가 존재해야 할 방식을 고민한다는 점이 이 극의 본질"이라고 쇼이치로는 정리했다.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마음에 더 숭고한  태도는. 고통으로,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견디는 것인가,

 아니면 무기를 쳐들어 난관의 바다에 맞서는,

 그리고, 거부하며 그것을 끝장내는 것인가, 죽는다, 잠든다-

 그뿐, 그리고 잠든다는 말이 끝장,

 상심과 천 가지 당연한 충격,

 육신이 물려받은 충격의 끝장이라면 - 그건 완료지,

 몸 바쳐 바라 마지 않을. 죽는다, 잠든다.

 잠든다, 어쩌면 꿈군다. 아하, 그게 골치로다.

 그 죽음의 잠 속에 어떤 꿈이 올지

 우리가 이 필멸의 육신을 벗어 버린 다음에 말야.

 망설일밖에 그런 고로

 그토록 오랜 삶이라는 재앙이 생겨나는 거야.

 (이하 생략)

 

  김정환 역, [햄릿] 3막 1장, 아침이슬

 

'견디는 것'과 '끝장내는 것' 사이의 결정, 그런데 죽음 이후 올 꿈이 어떤 꿈일지가 두렵다는 것이다.

하, 이토록 생각많은 남자 같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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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에 미칠 것 같은 날이다. 사무실 돌아와 숨 좀 돌리면서 인터넷 들여다보는데 한겨레 기사에 재밌는 게 떴다.

지난 26일자 기사인데 나는 이제 봤다. "남자는 여자를 의식할 때 왜 '인지손상' 보일까"라는 제목의 기사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카>의 심리학 실험 결과 기사를 계기로 이 주제에 대한 몇 가지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어쨌든 이 기사의 주요 핵심은 여자들은 이성이 있다는 것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데 비해 남자들은 매력적 이성이 있는 상황, 아니 여성이 다른 방에서 비디오캠을 보고 있을 것이라는 간접정보만 주어도 행동이 크게 달라진단다.

무엇을 수행하는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곧 '인지적 손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적으로 해석하길, 이는 좋은 인상을 남겨서 씨를 퍼뜨리려는 데 기여하려는 심리적 메카니즘에서 나온다는데 그따위 말은 개나 줘버리라고 하고.

남자는 왜 여자를 만나면 어쩔 줄 몰라할까 라는 참으로 수수께끼같은 현상에 대해 이렇게 웃기는 연구결과를 보여주다니, 한참을 웃었다.

'인지손상'이래잖아.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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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4-10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이거 재미있는데요? 인지손상이라뇨. 하하핫

포스트잇 2012-04-10 10:40   좋아요 0 | URL
재밌죠?기사 읽고 정말 많이 웃었답니다.인지손상이 어떤 맥락에서는 심각한건데,저 경우에는 쫌 웃기잖아요^^그렇게 쩔쩔매는 남자들 보면 쫌 귀엽긴 하죠,헤헤.
 

차기작이 기대되던 이용주 감독이 명필름에서 <건축학개론>을 준비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역시... 라는 생각과 함께 다소 비대중적인 제목에 놀라움과 흥미로움을 동시에 느꼈다.

어제 시사회가 있었던 모양인데...... 기대한다.

첫사랑에 대한 시간과 건축의 시공간 감각이 잘 연출되었다고. 리듬도 좋고.

이동진 기자는 이명세의 <첫사랑>,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에 이은 첫사랑에 관한 기억할만한 영화가 나왔다고 상찬했다.

감독 이용주, 제작 명필름, 배우 이제훈, 모두 이 영화를 기다리게 했던 요소들이다.

최근 김수현도 그렇고 이제훈도 그들의 연기가 궁금해지는 젊은 피들이다.

젊디 젊은 배우들의 출현을 보면서 세상은 참으로 무섭게도 뚜벅뚜벅 변화해가며 나아간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순간 흐름은 바뀐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이. ......

 

한달 가까이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을 무한 반복으로 들으며 기다리고 있는데,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군.

 

P.S.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부족하지만 지난 첫사랑의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는 덴 성공한 것 같다.

'왜 나를 찾아왔니?'라는 질문에서 더 흥미로운 얘기가 나왔다면 좋았을텐데 이것마저 첫사랑만큼이나 뽀사시해져버렸다.

한가인도 제주도 집도 병원도. 기억의 집에 넣어진 첫사랑이란 아련하게 보일 때만 그리워할 수 있으니까?

 

풋, ...... 가슴 떨리던 첫사랑은 목련꽃 아래에서 시작됐고, ....... 어느 날, 그사람, 모임에 부부동반으로 아이 데리고 나왔는데 머리 벗겨지기 시작했더라는 얘길 들은 게 마지막으로 들었던 소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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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출간된 문학동네의 [앨라배마 송] 뒷날개에는 F.스콧 피츠제럴드 전집 출간 계획을 소개하면서 근간을 예고하고 있다.

 

 

 

 

 

 

 

 

 

 

 

 

 

 

 

 

그 중 [아름답고도 저주받은 사람들 The Beautiful and Damned]도 있는데, 언제쯤 나오는지 궁금하다.  

 

 

 

 

1922년 출판된 이 책은 20년대 유명하고 아름다웠던 부부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의 자전적 요소가 가득 담긴 책인 모양. 작중 인물인 앤소니와 글로리아는 스콧과 젤다를 닮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일찌감치 파탄난 모양인데 젤다는 정신병원과 요양원을 오가면서 저주받은 운명을 한탄하며 1940년 다른 여인의 집에서 죽은 피츠제럴드를 떠나보낸 뒤, 8년을 더 살다가 노스캐롤라이나 하일랜드 정신병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사망했다.

 

 

[앨라배마 송]은 작가 질 르루아가 탐구한 피츠제럴드와 젤다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소설이면서 젤다의 고백록과도 같다. 사실 많은 부분이 영화나 드라마 또는 책들을 통해서 봐왔던 파탄난 부부, 부부로서도 그렇고 한때 저명했던 작가와 활화산 같은 성격과 재능을 가진 여자의, (어쩌면) 아름다움이 구원했건만 이미 허무해져버린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아무 것도 억누르지 못하고 뿜어내는 여자를 보고 남자는 모든 것을 부숴놓지 않고는 못 배기는 여자라고, 그 충동을 누를 수 없는 여자라고 비난한다.

남자는 초기 작품을 제외하고는 별달리 인기를 끌지 못하고 알코올중독에 빠져들고 점점 늘어나는 빚 때문에 미친 듯이 글을 써대고 시나리오 집필에도 참여하지만 결코 아름다웠던 시절을 회복하지 못한 채 길지 않은 인생을 마감한다. 

 

질 르루아는 젤다의 입장에서 고통스럽게 되뇌어본다. "혹시 내가 잘못 살아온걸까? 내 어리석은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 삶을 망쳐 버린 걸까? 엊그제부터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나를 괴롭히고 있어."

그것이 운명이든 하늘의 운을 받은 기질과 성격이든, 자기 그릇만큼 살게 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요즘 든다.

돌아보면 ..... 이미 알고 있음에도 어쩌지 못했던 길들을 따라왔던 것 같은,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 피로함만 남은 것만 같은.

 

어쨌든 젤다의 얘기는 그렇고, 이번에는 피츠제럴드가 느낀 환멸을 읽어보고 싶다. [아름답고도 저주받은 사람들]

 

피츠제럴드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피츠제럴드의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멸망의 미학이나 (혹은 환멸이 아니라) 구원의 확신 때문이라고 본다.

현실에 가혹하게 시달려도 글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글을 통한 구원을 끝까지 확신하지 못하고 자살한 헤밍웨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20년대 미국의 청춘기에 정확히 부응한 피츠제럴드가 공황 이후 30년대의 회한의 시대에 점점 잊혀져갈 때 부름받은 이는 헤밍웨이였다. 단호하면서도 건조한 문체와 강력한 목소리는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었다고. 마흔이 되기도 전에 이미 과거의 사람이 되어버린 피츠제럴드. 심장마비로 세상을 뜰 때까지 글을 썼다. 물론 맨정신으로 감당할만큼 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 세상이란 어찌나 가혹한 것인지.

[위대한 개츠비]에서 캐러웨이가 개츠비를 남기고 또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때 피츠제럴드는 캐러웨이였을까, 개츠비였을까?

 

 

 

 

 

 

 

 

 

 

 

 

 

 

드라마틱한 삶 이편에 남겨진 그들의 작품들을 좀더 꼼꼼히 읽고 싶다는 생각은 굴뚝같다.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 전집 수준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다. 새롭게 나온 번역서들의 판매나 반응 정도는 어떤지도 궁금하다. 새롭고 좋은 번역으로 읽고 싶은 기대가 있는데.

 

에덴의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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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카를스루에 대학 조형예술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한병철 교수의 책 제목이 [피로사회]란다.

2010년도에 나온 책인 모양인데 작년 [권력이란 무엇인가] 국내 출간된 걸 계기로 이전 저서가 번역된 듯하다.

출간 이후 현재까지 8쇄를 찍었다니 하니 반향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현 자본주의의 '자유를 통한 착취' 시스템에 대한 분석, 자발적인 착취주체로 나선 개인들과 현 사회를 탐구한 에세이식 문화비평서인 듯. 무한한 긍정성을 부추기면서 개인들을 자발적인 성과주체로 나서게 내모는 지금의 사회는 필연코 피로하고 우울한 개인들을 생산하게 된다는 현상진단을 읽으면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봄직 하겠다. 아님, 그냥 아무 것도 안하든지. 

128페이지의 얇은 책인데 목차의 소제목들이 쬐끔 섹시하달까.... .

'깊은 심심함', '활동적 삶', '바틀비의 경우'.... '활동적 삶'이 주는 분주함과 공허감을 담고 있는 거겠지? 깊은 심심함이라...

'성공시대' 이야기로 넘쳐났던 때가 엊그제고 요즘은 이 역시 비판적으로 바라보긴 하는 것 같은데, 광풍이 지나간 뒤 묘하게도  '힐링'이니 '위로'를 내세운 '콘서트'가 차고 넘친다. 

힘들어진 '성과주체'가 위로받고 나와서 행복갈구주체로 태어나는가.

 

요즘 나는 봄이 오는 기척에 바람이 들어서인지 마음이 한없이 흩어지는데, 딱히 다른 취미를 갖지 못한 관계로 책만 붙잡는다. 책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는 위기이지만 책들을 놓고 분열 직전인 상태를 원망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헤밍웨이 책들을 잔뜩 쌓아놓고도 책구경 하다가 또 참을 수 없이 궁금해지는 책들에 한눈 팔고 있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설왕설래인지. 일본 3대 기서 중 하나라는데

 

 

 

 

 

 

 

 

 

 

유메노 큐사쿠의 [도구라마구라]

 

 

 

 

 

 

 

 

 

나카이 히데오의 [허무에의 제물]([허무에의 공물]이 원제인 모양인데, 번역서의 문제가 상당한 듯)

 

 

 

 

 

 

 

 

 

도대체 어떤 책들인지, 특히 [허무에의 제물]은 반추리소설(안티미스터리)이라는 형식실험 같은 실험적인 측면도 있는 모양이다.[흑사관 살인사건]도 탐정이 자꾸만 잘못된 추리를 해나간다고 하는데 극도의 현학성과 잘못된 추리와 진실이라는 삼각관계를 엿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  

이들 책은 기서를 넘어 거의 괴작이라 평하는 이들이 많아서 작정하고 도전해볼만하다. 우선 [흑사관 살인사건]을 주문해놓았다. [허무에의 제물]은 읽어보고 싶은데 번역 등에 대해 말이 많아 일단 보류.

 

느와르 스릴러의 신성이라는 홍보성 문구가 거슬리기도 하고 또 그로 인해 호기심이 당기기도 하는 마이클 코리타의 책들.

 

 

 

 

 

 

 

 

 

 

 

 

 

 

 

 

82년 생이라니. ... . 게다가 [오늘 밤 안녕을]은 스물 한 살에 내놓은 데뷔작이라는데, 할말이 없네. 스물 한 살짜리 데뷔작은 도대체 어떨까. 이제 서른 살. 범죄심리학을 전공했고 전직 사립탐정이자 신문기자 생활도 했다는 이 젊은 작가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주말에 고요하게 책읽으며 보낼 계획이다. 계획 속에 늘 불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건.... .

진공상태에서 보내게 될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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