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진기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순서의 문제]

꽤나 재밌다. 잘 쓰네. 다음 이야기 [나를 아는 남자]도 기대된다. [순서의 문제]에 실린 7편의 중단편 모두가 좋았다. [신노란방의 비밀]은 그 '비밀'이 쪼금 허무한 감은 있긴 하다. 그 '비밀'이 밝혀지는 그리고 밝혀내는 과정에 공을 들였다면 너무 작위적인 기교만 가득한 작품이 됐을까? 그 '비밀'이 그럴만한 이야기나 트릭을 만들 수 있는 소재인지 고민했을 것이다. 

탐정 진구의 지나친 활약으로 지칠 뻔하지만 구제되는 [티켓다방의 죽음]은 가장 흥미롭게 봤다. [뮤즈의 계시]가 가장 훌륭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알리바이 트릭 자체는 신선했지만 살해시간을 위한 살해방법은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구와 여자친구 해미 콤비 설정도 괜찮네. 여자친구 해미는 왓슨의 역할을 맡는다.

책 뒷날개에 있는 '모호한 선악의 경계, 지적유희에만 반응하는 천재성, 도덕과 휴머니티를 후천적으로 학습한 그가 온다'라는 말에 선입견이 생겼는지, 단편이 이어지면서 진구 캐릭터가 의미심장한 변화를 겪는 인물로 꿰어지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첫 단편 [순서의 문제]에서는 다크진구 모습이 보여서 더 흥미를 갖고 기대했는데 이어지는 단편들에서는 시트콤 인물같아서 내가 헛짚었구나 싶었다. 표제작 '순서의 문제'처럼 수록된 7편의 작품 순서가 맨 마지막에 실린 [환풍기]가 인물의 시간으로는 가장 처음이고 다음이 첫번 째 실린 [순서의 문제] 순으로 되는 것은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인가? 앞으로 이 진구라는 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발전시킬지 관심 갖는 건 작가의 의도와 전혀 무관한데도 과도한 의미 부여인지도 모르겠다. 탐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국에서 매번 사건에 관여하기 위해 개연성을 만들어내야 하는 작가의 짐이 무겁기도 하겠다. ...... 써놓고 보니, 어쩌면 도 작가 정도라면 그 정돈 일도 아닐 수 있겠다. '그거 만드는 게 제일 쉬웠어요.' 뭐, 이러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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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말에서 이달로 넘겨 또 책들을 쌓아놓았다. 읽을 수 있을런지는 알 수 없다. 로쟈님의 적극 추천으로 일본의 니체라는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벌써 셋째 밤을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나에겐 재미가 없었다. 카프카는 어떤 맥락에 처해있을 때 '초조해하는 것은 죄다' 라는 말을 했을까, 혹은 썼을까?

루터, 무함마드를 거치며 셋째 밤 한가운데까지 와 있는데 그리 중요하다는 서구의 종교에서 진행된 혁명들이 나는 별로 흥미롭지 않다. 후반부는 어떨지 끝까지 읽어야겠지.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몇 대목이 있었는데,

어떤 책을 읽거나 쓰는 것으로 인해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사회에서 벗어났다는 기적에 대해 언급하면서  아시아 중에서도 다소라도 - 다소라도입니다- 언론의 자유가 지켜지고 있는 나라는 일본 밖에 없습니다. 아시아에 일본이 공헌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일단 이 한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대목이었고,

또 한 대목은, 무함마드는 일종의 여성적인 사람이었고, 분명히 여성성으로 떠받쳐지고 있으며 세계의 교조들 중에서 유일하게 유언으로 너희들의 아내, 누이, 딸들은 신으로부터 위탁받은 자이므로 소홀히 대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여성과 여성성에 대해 존중한 종교인데 이슬람이 왜 아직도 여성 차별적인 사회의 존립을 허용하고 있는지 자신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비판한 대목이었다. 읽기만으로 안되는 세상이니. 또 그 읽기가 혁명적임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참 여러가지 계기들이, 요인들이 결합돼야 하는 이치 아닌가. 내가 또 경어체 문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영복 선생 빼고. 가끔 김훈도 빼고.

 

매일 들르는 블로그에서 우연히 대동법에 대해 언급한 글을 보고 역사 시간에 그토록 중요하다고 외웠던 그 법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다지도 궁금해하지 않았던가에 대해서 뒷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좋은 책이 이미 있었다. 2010년도에 나온 책인데 카피들을 보면 '조선 최고의 개혁',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200년의 모색, 100년의 개혁' 등이다. 대동법의 계보, 대동법의 정치, 대동법의 해부, 대동법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기대해본다. 

 

 

 

 

 

 

 

 

 

 

 

 

 

 

 

국가를 경제적으로 규정하면, 그것은 결국 세금과 민생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것은 정부가 어떤 기준으로 누구에게 얼마큼 세금을 걷어, 누구를 위해서 어디에 얼마큼 쓰느냐의 문제다. 미시적으로 본다면, 우리 삶의 인프라에 해당하는 교육, 의료, 실업, 혹은 노후 문제 등을 우리의 생활비로써 충당할 것인가 아니면 세금으로 집행할 것인가의 문제다. 세금과 민생이 만들어내는 모습이야말로 바로 특정 시기, 특정 국가의 맨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다. 

 

                  - 책머리에 - 

 

읽을 책, 류짜이푸의 [쌍전 : 삼국지와 수호전은 어떻게 동양을 지배했는가]. 수호전은 못 읽어봤다. 앞으로 읽을 날이 올까? 권모술수의 백과사전 '삼국지'와 폭력의 지존 '수호전'을 읽는 동안 사람들의 마음엔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이 흥미롭다. 수호전 비판에서 다룬다는 '도살 쾌감의 두 가지 현상'이라는 대목이 특히 더 관심이 간다. 재밌어야 할 텐데. 재밌겠지.

 

 

 

 

 

 

 

 

 

 

 

 

 

 

 

그리고

 

돈윈슬로의 [개의 힘], 미 정부와 중남미 마약 조직 사이의 전쟁과 인물들의 30년 간의 역사를 '장대한 스토리텔링'으로 그린다고 하니, 딱 잡고, 주말에 정신없이 읽으면 된다. 프레시안에서 이미 김용언이 상찬한 바 있고 그가 레퍼런스로 추천한 책들까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관심분야이니 나중에라도 꼭 읽을 생각이다. (잿더미의 유산은 천 페이지다, 갑자기 읽을 자신이 확 떨어진다. 고모라는 꼭 한 번 읽어봐야지. 이탈리아 지하 경제의 제왕 '카모라' 집단에 관한 보고서이니까.)

 

 

 

 

 

 

 

 

 

 

 

 

 

일단 구입해 놓은 책.

 

읽지 않아도 계속 된다. 엘러리 퀸의 [미국 총 미스터리]

 

 

 

 

 

 

 

 

 

 

 

 

 

에프스레소의 작지만 강한 향

 

북스피어의 에스프레소 노벨라 시리즈 004(000부터 시작했으니 다섯권째다. 읽은 건 레이몬드 챈들러의 심플 아트 오브 머더, 딱 한 권이다. 이 시리즈 역시 내게는 읽지 않아도 계속된다. 쩝) H.P.러브크래프트의 [공포문학의 매혹].

 

 

 

 

 

 

 

 

 

 

 

 

 

 

이달에 읽으려고 한 고전은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이다.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이번에 읽으려고 한다. 가스통 르루의 [노란방의 수수께끼]를 올 해 초 잠 안올 때 꺼내들고 읽었는데 예전에 읽으며 놓쳤던 부분이 많아서 새삼스러웠다. 가스통 르루 작가 전기도 한 번 읽어보고 싶은데 이런 책은 그냥 요원하겠지. 미쳐가는 작가.

 

 

 

 

 

 

 

 

 

 

 

 

 

 

아마도, 당장 읽을 수 없을 것 같지만, 눈독 들이는 책.

E.H.카의 [미하일 바쿠닌] 전기. 카의 전기 저술 솜씨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보면서 인정했다. 바쿠닌. 지금 바쿠닌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리고 살아있는 영화 평론계의 전설, 로저 에버트의 자서전. 갑상선암 치료에 따른 합병증으로 먹고 마시고 말하는 능력을 잃었다고 한다. 표지에 실린 얼굴은 수술과 치료를 거치며 견뎌온 최근의 그의 모습이다. 자기 스스로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영화와 글로 평생을 살아온 한 장인의 예술에 대한 자의식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내면과 직업상 비밀이 궁금하기도 하고.

 

 

 

 

 

 

 

 

 

 

 

 

 

 

저작권 유예기간 동안 나온 헤밍웨이 작품들 덕분에 헤밍웨이를 다시 돌아본다. 난 언제나 뒷북치는 사람이니까.

레너드 카수토의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를 읽다가 초기 하드보일드 소설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작가로 헤밍웨이를 소개한 글을 읽게 됐는데, '반감상주의적 감상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헤밍웨이와 데실 해밋이 함께 언급된다.

특히 [큰 두 갈래의 강]이라는 단편은 레너드가 말하는 '가장 유명한 실험'에 속하는데, 바로 '고독'의 실험. '상처입은 닉 애덤스는 낚시라는 제어된 폭력에서 조심스럽고 제한된 쾌락을 얻고 감정적 고통이 남아있는 늪지를 피하려고 애쓴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정영목 번역으로 나온 [킬리만자로의 눈]에 실린 [심장이 둘인 강]을 보면서 이해가 갔다.

(Two-Hearted River 가 '큰 두 갈래의 강'과 '심장이 둘인 강'으로 각 번역됐다.)

어찌나 '하드보일드'한지, 아예 말조차 거부한 인물의 행동만을 읽어내려가는 숨막힘을 경험한 것 같다.

 

 

 

 

 

 

 

 

 

 

 

 

 

 

6월이 벌써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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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페이지 훌쩍 넘는 범죄스릴러 소설들, 게다가 영화화된다는 소설은 이제 그만 읽자. 유혹에 빠지지 말자. 마음먹은지 꽤 됐는데 새소설이 소개되면 궁금해지는거라. 에이, 몹쓸 호기심, 궁금증. 이야기에 빠져서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는 얘기를 공포처럼 간직하자. 어렸을 때 전래동화집에서 봤던가,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늘 협박하셨던 할머니가 해주셨던 얘기였나? 그 얘기가 평생 내 뒤를 캥기게 했었다. 나무꾼이었나, 어느 날(이 '어느 날'이란 얼마나 황홀한 유혹인가, 모든 이야기는 이 '어느 날'부터 생기는 것이다.) 나무하러갔다가 도깨비들이 들려준 얘기를 듣게 되는데, 얘기가 재밌는 나무꾼은 계속 얘기를 해달라고 졸라대고 지칠때까지 얘기를 듣고 집에 돌아왔는데 세월이 엄청나게 흘렀더라던가 어쨌다나. 그런데 도끼자루는 여기서 썩는거였나? 헷갈려.

옆구리, 허리가 결린다. 좀 무리하며 놀았던가? 5월은 설, 추석이 들어있는 달과 같은 제3의 명절이나 마찬가지다. 부담 팍팍. 아직도 하순에 치러야 할 행사가 남아있다. 정신적으로 피곤한 5월에 들어와 읽은 책이 [쓰리 세컨즈]다. 4월에 읽은 책도 좀 정리하고 싶은데 언제나 그렇듯 안된다는 거 알잖아. 마거릿 애트우드의 [그레이스], 존 어빙의 [트위티스트 리버에서의 마지막 밤]을 읽으려고 했다가 도저히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돼 읽기를 포기했다. 왜 그러지? [그레이스]는 고작 50여 페이지, 존 어빙의 책은 그래도 100 페이지 정도 읽은 것 같은데, 두 소설 모두 기대 이하로 흥미롭지 않다, 아직까지는.

 

[쓰리 세컨즈]는 아주 매끄러운 소설이다. 북유럽 느와르라고 소개된 이 소설은 요즘 국내에 소개되는 노르딕 스릴러나 느와르 소설이 그렇듯 딱히 노르딕스러운 걸 찾을 수 없는 그냥 일반화된 범죄스릴러로 보면 된다. 마약거래에 침투한 경찰측 정보원들의 실상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연구하여 극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소개를 자랑처럼 내세우고 있는데 그런 디테일들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는 건 틀림없다(튤립의 사용이 흥미로웠다). 이런 디테일들과 정밀하게 짜인 플롯이 주인공인 피에트 호프만(암호명 파울라)의 신의 경지에 오른 전문성과 결합하면서 이상하게 너무 인공적인 냄새가 난다. MSG 팍팍 들어간 음식처럼. 호프만이 죽었을 거라고 믿으며 읽는 독자는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이 정도는 스포일러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마지막에 호프만은 왜 연락을 하지? 도대체 왜 그러는건데? 아, 속편에도 나오고 싶어서인가? 이 소설의 진짜 미스터리는 그 대목인 것 같다.

호프만이 모든 걸 준비해나가는 과정을 읽으며 영화 <니키타>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뤽 베송 감독의 <니키타>. 처음 볼 때는 재밌게 봤는데 몇 해 전에 우연히 TV에서 다시 볼 때는 짠하게 슬퍼져 울었다. 니키타와 호프만의 차이도 꽤나 흥미롭다. 영화 <무간도> 시리즈는 모두 봤고, 꽤나 잘 만들어진 영화였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첫편에서 양조위의 그 고독하고 비애 가득한 얼굴 표정만이 잔상처럼 남았다고 할까. 

 

호프만이 한두 수 앞을 내다보며 상황과 사태를 철저히 장악하는 인물이라면, 형사 에베트는 호프만이 활용할 카드에 이미 포섭된 인물이지만 정작 자신은 무지하다. 이런 캐릭터는 대충 얼른 떠오르는 것만 해도 <도망자>의 형사 토미 리 존스라든지, <아저씨>의 형사라든지, 뭐 차고 넘칠 것이다. 흥미로운 건, 에베트는 호프만이 이용할 카드이지만 또한 호프만으로 하여금 그런 준비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장본인이 되기도 한다. 뫼비우스띠처럼. 물론 에베트가 깨닫게 된 때는 게임오버된 이후지만. 에베트는 잠시나마 죄의식까지 짊어진다. 걱정마시라, 마지막에 에베트는 교도소 CCTV를 봄으로써 죄의식 또한 깔끔하게 날려버린다. 이런 게 할리우드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니키타>에서 니키타가 떠난 후 남은 두 남자(더불어 관객까지)의 죄의식은 어찌 할 도리없이 간직해야 할 것으로 남고. 우리의 <아저씨>조차도 원빈이 형을 살던 뭐 딴 댓가를 치르던 형사의 죄책감 또한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딴 죄의식 같은 건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만큼 완벽한 일처리 솜씨에다가 다시 연락까지 해대는 저 철저한 능력맨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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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계절도 더 나아가지 않고 딱 이쯤에서 멈춘다면. 여리여리한 연초록 잎들의 나무들을 보노라면 곧 짙어져 탁해질 한여름의 우람한 나무들은 생각하기 싫다.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라서 청춘과 젊음의 싱그러움을 발산하다가, 우렁우렁해지다가 쪼그라들어간다. 그리고 다 내놓고 '나머지는 침묵'이다.

'어쩔 수 없는 건 결국 어쩔 수 없다'고 한 김훈의 문장이 쓸쓸한데, 늙고 죽는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생각 앞에서 깊어지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참혹할 것 같다. 이 어쩔 수 없는 일을 어찌해볼 수 있는 일로 바꾸려는 욕심들이 곧 탐욕으로 바뀔 날들을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을 받았다. 리사 프라이스의 [스타터스]는 돈만 있으면 200세라도 어린 몸을 '렌탈'해서 젊음을 누릴 수 있는 근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단기 임대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영구렌탈'을 노리는 기업과 그와 결탁한 정치인도 있다. 자본과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무한탐욕을 만날 때 벌어질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상을 설정하고 있다.

 

흥미로운 얘기일 것 같아서 냉큼 읽었다. 소재나 작가의 상상력도 높이 사줄만 한데 <트와일라잇> 같은 류로 분류할 수 있겠다. 간혹 허술한 대목들이 나오지만 주인공이 10대이니 치밀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뭐, 그 정도로 이해해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 또한 영화화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염원이 곳곳에 보이는 엔터테이너적 소설이라서 깊은 완성도를 바라지도 않는다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주인공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이 10대인데다 삼각 로맨스는 기본이다.

 

자신의 몸이 누군가에게 렌탈되어 그 기간 동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채 몸을 돌려받는다면 어떨까. 렌탈된 동안 이식된 칩에 문제가 생겨 수시로(정말 편의대로) 원주인 스타터스와 렌탈엔더가 텔레파시로 소통하듯 얘기할 지경까지 이르면 어떤가? 게다가 렌탈한 자가 내 몸을 이용해 누군가를 암살하려(아, 물론 그와 같은 반사회적 행동은 칩에서 제거되어 있지만 세상이 어디 법전에 있는대로만 움직이던가? 칩을 변형하거나 수정하는 '테크니션'도 이미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 않겠는가?) 한다면 어쩔 것인가? 재밌는 상상인데, 흔하디 흔하게 보는 할리우드 영화를 상상하면 전개가 어찌 될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좀 경악한 건 마지막 부분인데, '올드맨'과 관련된 부분이다. 주인공 캘리의 로맨스와도 관련 있는 인물인데, ... 이 무슨 매저키스트적인 판타지라는 말인가. 여자들이 흔히 갖는다는 나쁜남자에 대한 판타지에다가, 또 흔히 여자들이 갖기 쉬운 약점, 악한 남자일지라도 자신이라면 무언가 바꿀 수 있다는 비운의 주인공 코스프레 판타지를 느끼게 한다. 오, 약한 자여 그대는 여자이니.

 

 

 

 

 

 

 

 

 

 

 

 

 

 

 

 

세대간에 착취 수준을 넘어 그야말로 전쟁에 이르는 미래가 진짜로 올까?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은 [스타터스]와 반대로 연고없는 노인들을 체포하여 죽이는, 미래에 있을 법한 일을 생각해 본 것 같다.

엔더들은 젊은이들이 젊음을 '낭비'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자신들이 그 몸을 렌탈할 이유를 찾고, 젊은이들은 노인들이 '일도 안하고 밥만 축내고 재정을 축낸다'고 소거를 생각한다면, 그 세상은 '디 엔드'일 것이다. 아, 이 좋은 봄날, 어쩌다 흉흉한 상상을 하게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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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4-24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되게 궁금했거든요. 나름 생각하기로는 sf 적이며 스릴러이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이..[트와일라잇]과 비슷한 부류라구요? 저는 [트와일라잇]을 좋아했지만, 그런 비슷한 류는 별로인데..
그래서 에잇 읽지말자 했다가 마지막에 포스트잇님께서 경악하셨다는 그 부분이 막 궁금해져서 다시 읽어볼까 싶네요. ㅎㅎ

포스트잇 2012-04-24 12:09   좋아요 0 | URL
저도 '되게 궁금'해서 읽었어요.궁금함을 참지 못해서.. 영화화를 원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악은 그냥 제가 느낀거라서,나이든 사람들은 금방 눈치챌 것 같습니다만... . 점심 전이신가요? 맛있는 점심 드시길.
 

흐린 날은 마음에도 구름이 몰려든다. 그냥 내내 쨍쨍하면 안되나?

어제 눈에 띈 책은 원제가 '카라시니코프 Karashinikofu'인 [역사를 바꾼 총 AK47]이다.

 

 

 

 

 

 

 

 

 

 

 

 

 

 

 

카라시니코프는 이 총을 개발한 구소련의 설계기사였는데 2차대전 당시 참전 독일군의 개인화기에 대항하는 무기를 고민하다 개발한 자동소총의 이름이기도 하다. 잔고장이 적고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며 약간의 연습만 하면 어린아이도 사용할 수 있다하니 내전이나 분쟁지역 곳곳에서 어린이들의 손에 들려 사용되는 무기이기도 하다.

이 총의 역사를 통해 아프리카 내전을 비롯해 지금의 '새로운 전쟁' 양태를 볼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기 전이라 제목에 '역사를 바꾼 총'이라고 덧붙인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얼마전에 관심을 끌었던 책도 있어서 조만간 함께 읽어볼 생각이다.

 

 군사적 폭력의 탈국가화

 

 

 

 

 

 

 

 

 

 

 

 

 

 

....... 총을 들어야했던, 총을 달라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 .......

우리에게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어제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감각.

요 며칠 종이에 살이 베이는 감각에 진저리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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