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페이지 훌쩍 넘는 범죄스릴러 소설들, 게다가 영화화된다는 소설은 이제 그만 읽자. 유혹에 빠지지 말자. 마음먹은지 꽤 됐는데 새소설이 소개되면 궁금해지는거라. 에이, 몹쓸 호기심, 궁금증. 이야기에 빠져서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는 얘기를 공포처럼 간직하자. 어렸을 때 전래동화집에서 봤던가,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늘 협박하셨던 할머니가 해주셨던 얘기였나? 그 얘기가 평생 내 뒤를 캥기게 했었다. 나무꾼이었나, 어느 날(이 '어느 날'이란 얼마나 황홀한 유혹인가, 모든 이야기는 이 '어느 날'부터 생기는 것이다.) 나무하러갔다가 도깨비들이 들려준 얘기를 듣게 되는데, 얘기가 재밌는 나무꾼은 계속 얘기를 해달라고 졸라대고 지칠때까지 얘기를 듣고 집에 돌아왔는데 세월이 엄청나게 흘렀더라던가 어쨌다나. 그런데 도끼자루는 여기서 썩는거였나? 헷갈려.

옆구리, 허리가 결린다. 좀 무리하며 놀았던가? 5월은 설, 추석이 들어있는 달과 같은 제3의 명절이나 마찬가지다. 부담 팍팍. 아직도 하순에 치러야 할 행사가 남아있다. 정신적으로 피곤한 5월에 들어와 읽은 책이 [쓰리 세컨즈]다. 4월에 읽은 책도 좀 정리하고 싶은데 언제나 그렇듯 안된다는 거 알잖아. 마거릿 애트우드의 [그레이스], 존 어빙의 [트위티스트 리버에서의 마지막 밤]을 읽으려고 했다가 도저히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돼 읽기를 포기했다. 왜 그러지? [그레이스]는 고작 50여 페이지, 존 어빙의 책은 그래도 100 페이지 정도 읽은 것 같은데, 두 소설 모두 기대 이하로 흥미롭지 않다, 아직까지는.

 

[쓰리 세컨즈]는 아주 매끄러운 소설이다. 북유럽 느와르라고 소개된 이 소설은 요즘 국내에 소개되는 노르딕 스릴러나 느와르 소설이 그렇듯 딱히 노르딕스러운 걸 찾을 수 없는 그냥 일반화된 범죄스릴러로 보면 된다. 마약거래에 침투한 경찰측 정보원들의 실상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연구하여 극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소개를 자랑처럼 내세우고 있는데 그런 디테일들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는 건 틀림없다(튤립의 사용이 흥미로웠다). 이런 디테일들과 정밀하게 짜인 플롯이 주인공인 피에트 호프만(암호명 파울라)의 신의 경지에 오른 전문성과 결합하면서 이상하게 너무 인공적인 냄새가 난다. MSG 팍팍 들어간 음식처럼. 호프만이 죽었을 거라고 믿으며 읽는 독자는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이 정도는 스포일러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마지막에 호프만은 왜 연락을 하지? 도대체 왜 그러는건데? 아, 속편에도 나오고 싶어서인가? 이 소설의 진짜 미스터리는 그 대목인 것 같다.

호프만이 모든 걸 준비해나가는 과정을 읽으며 영화 <니키타>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뤽 베송 감독의 <니키타>. 처음 볼 때는 재밌게 봤는데 몇 해 전에 우연히 TV에서 다시 볼 때는 짠하게 슬퍼져 울었다. 니키타와 호프만의 차이도 꽤나 흥미롭다. 영화 <무간도> 시리즈는 모두 봤고, 꽤나 잘 만들어진 영화였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첫편에서 양조위의 그 고독하고 비애 가득한 얼굴 표정만이 잔상처럼 남았다고 할까. 

 

호프만이 한두 수 앞을 내다보며 상황과 사태를 철저히 장악하는 인물이라면, 형사 에베트는 호프만이 활용할 카드에 이미 포섭된 인물이지만 정작 자신은 무지하다. 이런 캐릭터는 대충 얼른 떠오르는 것만 해도 <도망자>의 형사 토미 리 존스라든지, <아저씨>의 형사라든지, 뭐 차고 넘칠 것이다. 흥미로운 건, 에베트는 호프만이 이용할 카드이지만 또한 호프만으로 하여금 그런 준비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장본인이 되기도 한다. 뫼비우스띠처럼. 물론 에베트가 깨닫게 된 때는 게임오버된 이후지만. 에베트는 잠시나마 죄의식까지 짊어진다. 걱정마시라, 마지막에 에베트는 교도소 CCTV를 봄으로써 죄의식 또한 깔끔하게 날려버린다. 이런 게 할리우드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니키타>에서 니키타가 떠난 후 남은 두 남자(더불어 관객까지)의 죄의식은 어찌 할 도리없이 간직해야 할 것으로 남고. 우리의 <아저씨>조차도 원빈이 형을 살던 뭐 딴 댓가를 치르던 형사의 죄책감 또한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딴 죄의식 같은 건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만큼 완벽한 일처리 솜씨에다가 다시 연락까지 해대는 저 철저한 능력맨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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