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은 참으로 대단했다.

십 수년 만의 혹서. 그래도 난 여름에 강한 여자.

베란다 창에 테이프를 붙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면서 생전 처음 태풍에 무서워 떨었다. 살아본 중 제일 높은 곳에서 살다보니..., 후폭풍이 뭔지를 확실히 느낀 태풍이었던 것 같다. 겁이 많아졌나. 아, 무서웠다니까.

그러고 문득 한밤중에 깨어나 밖을 내려다보면 너무 청명해서 쓸쓸해질 지경이다. 밤에 깨는 게 점점 두려워지는 계절로 넘어가고 있다. 베란다에서 멀리 바라보면 큰 길가 신호등이 보이는데 한밤중에 그저 빨강과 녹색등이 번갈아 켜지기만 할뿐, 아무도 건너지 않는 횡단보도를 보고 있노라면 텅빈 거리만큼이나 머리 속도 마음도 훵해진다. 그런게 두려워.

 

알라딘 서재를 하면서 느는 거라곤 책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 뿐인 것 같다. 물론 지식이나 정보도 얻지만 그 보다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책 바라기를 하는 것 같다. 좋지 않아.

 

어제는 정민 교수의 '삼국유사 깊이 읽기' [불국토를 꿈꾼 그들]과 엘러리 퀸의 [스페인 곶 미스터리]가 왔다. 더불어 <프레시안 북 리뷰>신문판과 <추리신문 Vol.1>이 함께 왔다.

 

 

 

 

 

 

 

 

 

 

 

 

 

 

 

 

오랫만에 정민 교수의 책을 읽는다. 한때 정민 교수의 책을 열심히 읽었고 좋아했는데, 그 동안 격조했다.

사실 [삼국유사]를 읽을 때 글자야 아는 글자라서 읽을 수는 있으나 이게 도대체 뭔 얘긴진 모르는 해독 불가한 이야기들이 많지 않은가. 정민 교수는 그 이유가 '해석할 수 있는 코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잃어버린 코드, 숨겨진 비밀의 코드를 찾아주는 정민 교수는 탐험가이면서 이야기꾼이기도 하겠다. 늘 이런 책이 나와주길 바래왔다.

정말 오랫만에 삼국시대로 간다. 책은 사진 때문인지 무거운 종이를 써서 전체적으로 무겁다. 정좌한 채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는 뭐 그렇게 대단한건가 그러면서도 한권 한권 사다보니 이건 뭐 빠뜨리면 안될것 같은 은근한 집착증이 생겨버렸다. 정작 읽은 건 로마, 프랑스, 네덜란드, 중국 4권 뿐이다. 그리스관은 뒷부분을 채 읽지 못했고, 샴 쌍둥이도 절반 정도 읽다가 뒀고, 이집트, 미국, 프랑스는 제대로 펴보지도 못했다. 엘러리 퀸 뿐이랴, 사놓고 머리말도 읽어보지 못한 책도 많다. 그런데도 오늘 당일배송이 가능한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도 올 예정이다. 이건 주말에 읽어볼 생각이다.

 

 

 

 

 

 

 

 

 

 

 

 

 

 

 

야심차게 기획한 계획도 있다. 하고 싶었던 공부이기도 하다. 9월에 어느 정도까지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도 갈 길이 먼 한국 근현대사 관련 책읽기도 책만 쌓아두고 있고, ......... 9월에 부디 많이 읽을 수 있길 바란다.

 

그런데 어제 받은 두 가지 신문을 읽으며 또 다시 보고 싶은 책들을 체크하고 있는 나는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사는 걸까.

먼저,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들과 논픽션. 미야베 미유키의 미처 읽지 못한 책들.

권혁태 성공회대학교 교수가 소개한 마쓰모토 세이초의 [일본의 검은 안개]는 사회파 추리 소설가로서 마쓰모토 세이초가 1945년 이후 1960년대 말까지 미국과 일본의 관계로 풀 수 있다고 '추리'한 사건들을 선보인다고 한다.

 

 

 

 

 

 

 

 

 

 

 

 

 

 

 

한국 근대사를 보면서 일본을 함께 생각하는 중인데, 마침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로

존 다우어의 [패배를 껴안고] 권혁태의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 도요시타 나라히코의 [히로히토와 맥아더] 야마구치 지로의 [일본 전후 정치사]까지 소개했다.

보관함에 담겨 있던 책들인데 구입까지해서 소장해야 하나 망설였던 책들이기도 하나 이제는 우리 근현대사와 함께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되기도 했다. 뭐,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

또한 최근에 나온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도 언젠가 때가 되면 읽어볼만 하겠다.

 

 

 

 

 

 

 

 

 

 

 

 

 

우시다 타츠로의 [일본변경론]은 100여 페이지 정도 읽다 뒀는데 ........'교묘한 무지' 전략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는 좀 어려운 것 같았다. 끝까지 읽어봐야겠지만 생각보다 교묘하게 변명조가 많은 듯하여 기분이 나빠지는 대목이 있었다. 진정 무지한 건지 교묘하게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저자의 진정성을 잘 모르겠더라. 이 백여 페이지도 읽은지가 좀 되다보니 가물가물하다. 흑.

 

 

 

 

 

 

 

 

 

 

 

 

김기원의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노무현 정권의 정치력'을 돌아본다는 1부가 궁금하다.

 

 

 

 

 

 

 

 

 

 

 

 

 

기타 등등.

 

제목 땜에 궁금해서 순전히 혹시나 하고 산 책이 [철학은 어떻게 정리정돈을 돕는가]다.

절대로 구입하지 않는 책들 중 하나가 이런 책인데 철학과 정리정돈이 어떻게 서술되어 있을지 그게 또 무척 궁금하더란 말이지. 독일 대학에서 문화학을 전공, 하이데거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철학상담실'(우리에게는 철학상담소가 있지 않나? 허긴 요새는 타로가 대센가?, '실'과 '소'의 다른듯 같은 맛, 훗)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나 슈미트라는 여자의 철학적 실용서 정도 되는 듯하다. 물론, 사놓고 몇 페이지 읽다 뒀다.

책상을 정리하고 버릴 걸 버리는 것을 넘어서 머리 속을 정리하는 데 철학을 동원했다는 건데 얼마나 쓸만한 건지 읽어볼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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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 같은 사람은 조선왕조 말 세도정치 60년과 흡사한 느낌을 받을 것 같다. 흐흐흐.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지면서 파편화되는 백성. 뭐 그쯤되지 않을까.

강준만 교수의 [한국 근대사 산책] 5권-교육구국론에서 경술국치까지- 의 맺는 말 '조선왕조 500년의 신화를 넘어'를 읽다가 기시감같은 느낌이 들어 생각해본 것이다. 나의 근대사 산책은 여기까지 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 호텔] 때문에 발자크(1816~1850)가 끌려나왔고(알라딘 최원호MD의 통찰 덕분에) 발자크의 작품이라곤 [고리오 영감] 딱 하나 가지고 있는데 그나마 1/3 정도 읽고 던져둔 게 언제였는지 모른다. 책더미에서 찾아다 책상 가까운 곳에 꽂아뒀는데 ... 그대로 있다. 대신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다.  

 

660페이지가 넘는 '평전'을 읽으며 어쩐지 기진맥진했다.

가끔 진공상태에 빠진 것처럼 중력감을 느끼지 못한 채 뭉실뭉실 움직이는 때가 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랬던 것 같다.

단테의 [신의 희곡 : La Divina Commedia]에 대응하여 [인간 희극 : La Comedie Humaine]이라는 건축물을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 발자크의 야심이었음을 이제야 알았고([인간희극]은 그의 전집을 일컫는 말이다), 그의 죽음과 맞바꾼 무지막지한 작업량에 그저 놀라워하면서 그의 생애를 매일매일 조금씩 읽어나갔다. 소설의 영역이 아닌 다른 삶에서는 실패하고 또 실패해가는 발자크의 삶을 만나게 된 츠바이크의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츠바이크는 30여 년 동안 발자크를 읽고 또 읽으며 발자크에 대한 경탄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1942년 브라질에서 자살했을 때 [발자크 평전]은 최후의 손길을 거치지 못한 채 남겨져 있었던 것이라 한다. 남겨진 원고들을 남겨진 자들이 검토보완한 후 1945년에 출간했다.  

 

"문학에서는 사회의 변화를 아주 분명하게 예견하고 그 기초를 다졌으면서도, 현실 정치에서는 사업의 경우처럼 언제나 잘못된 편에 섰다." (632쪽)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새시대의 변화를 직접 목도하면서도 왕당파로서 정치쪽도 기웃거렸던 발자크를 말한 거지만 '사업의 경우처럼 언제나 잘못된 편에 섰다'는 말에는 츠바이크의 발자크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도가 모두 담겨있는 말처럼 느껴진다.

사업 말아먹는 데 탁월한 재주와 운을 지닌 발자크(과도한 상상력이 현실적 치밀한 계산을 언제나 넘어선 자업자득의 결과라지만), 평생을 빚쟁이들과 집달이들이 앞문을 두드릴 때 뒷문으로 달아나야 했던 발자크, 두터운 커튼을 드리운 채 밤 12에 깨어 커피를 들이부으며(5만여 잔의 커피), 깃털 펜들을 닳아 없애가면서 밤 8시까지 12시간 혹은 15시간씩 작업에 몰두한 노동자, 작업기계.

 

'인간심정의 역사'를 기록하고 싶었던 발자크, 인간본성의 무한한 다양성을 그리고자 했던 발자크의 구상은 140여 편의 작품, 약 3,4천명의 인물들의 얘기를 할 계획이었으나 죽음이 가로막아 74편의 장편, 2천명의 인물로만 남는 '토르소'가 되었다고 츠바이크는 정리했다.

 

츠바이크가 안내한 대로 번역된 것만을 대상으로 삼아 발자크를 읽어볼만 하겠다.

츠바이크에 따르면 발자크의 평생의 모티프는 "삶의 마지막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다가 광증으로 끝나는 철학자의 이야기"다.

발자크의 [인간희극]은 '절반은 경탄을 품고 절반은 유감스러운 작품'으로 이뤄져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번역된 것은 대표작이라 할만하고 '경탄을 품'을만한 것이라 대충 이해해도 될 것 같다. 대충.

 

[루이 랑베르]. 자전적 소설.

 

  

 

 

 

 

 

 

 

 

 

[나귀가죽]. 평전에서는 [마법가죽]이라 제목을 번역했다. 도대체 '나귀'와 '마법'사이는 어떻게 되는건가. 프로이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선택한 책이라는데 뭔 사연일까? 츠바이크는 발자크의 '최초의 진정한 소설'이라고 평했다.

[루이 랑베르]도 그렇고 [나귀가죽]도 "지적인 정열에서 병리학의 경계선"까지, 천재와 광기의 결합을 조명하는 작품일 수도 있겠다. '불가능한 것을 갈구하고 과도한 인식욕으로 인해 몰락한 주인공'을 다룬 작품들이라면, 그 경쟁작이 괴테의 '파우스트' 정도가 된다면, 프로이트가 충분히 흥미로워하지 않았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게다가 채 다 읽지 못한) [고리오영감]은 츠바이크에 의해 딱 한 번 언급된다.

 

"[고리오 영감]과 [잃어버린 환상]에 리어왕의 실망의 요소가 들어있다면, 마지막 소설들([사촌 퐁스]와 [사촌 베트])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자르는 듯한 날카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발자크의 걸작들. [사촌 베트]와 [사촌 퐁스 Le Cousin Pons]

 

 

[사촌 퐁스]는 번역되지 않았다. 이 소설들은 "초기작들에서 오늘날 우리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따라서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잘못된 이상주의, 달콤한 낭만주의가 없다." 앞에서 말했듯이 셰익스피어 작품들만큼이나 '자르는 듯한 날카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츠바이크에 의하면 '가장 위대한 업적'이란다.

"그의 눈길이 이보다 더 명확한 적은 없었으며, 인물을 형상화하는 그의 손길이 이보다 더 확고하고 냉정한 적이 없었다."

 

여기에 덧붙일 수 있는 작품이 [잃어버린 환상]

 

예상한 바대로 절판된 상태다. 800페이지라니. 아!

 

 

 

 

 

 

 

 

 

 

발자크의 동료들이라할만한 빅토르 위고, 라마르틴, 알프레드 드뷔세, 이들과 발자크가 다른 점은, "그들이 낭만적인 것, 고귀한 것, 위대한 것을 추구했던 것과 달리 발자크는 인간 속에 감추어진 작지만 잔인한 것, 천박하게 추악한 것, 감추어진 폭력을 보았고 묘사할 수 있었다"고 평한다. 발자크는 당시 까마득한 후배이자 신예로 떠오르는 스탕달을 알아봤고 칭찬했다.

(책에 스탕달의 [빨강과 검정]이라고 나와서 순간 멈칫했다. [적과 흑]을 [빨강과 검정]으로도 말할 수 있다는 걸 누가 부정하겠는가.) 또 괴테는 저 멀리서 에커만과 '발자크, 그 녀석 좀 괜찮네...'라고 대화를 나누었다나 어쨌다나.

발자크의 소설들은 '리얼리즘과 상상력의 가장 완벽한 혼합체'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도 읽을 날이 언제일지 모르는데 발자크는 또 언제 읽겠나.   

 

이 외에도 [골짜기의 백합] [시골의사]('도덕적인 천재'가 나오는, '천재만이 다른 천재를 묘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천재를 이해했고 묘사했다.")

 

 

 

 

 

 

 

 

 

 

 

[외제니 그랑데] 는 지만지에서 소설의 절반 정도의 분량을 발췌해서 낸 것만이 있는 모양이다.

 

 

 

 

 

 

 

 

 

 

 

 

[인생의 첫출발] [사라진느](단편집)도 번역되어 있다. ........ 있긴 있는데.... ..... .

 

 

 

 

 

 

 

 

 

 

 

 

번역되지 않는 작품이고 츠바이크도 크게 평가한 바는 없지만 정치소설인 [올빼미 당 The chouans]은 한 번 보고 싶다.

 

 

 

 

프랑스 혁명기에 일어난 '반혁명적 반란'을 다룬 실제 사건에서 시작된 '올빼미', '올빼미 당'을 제목으로 하여 브르따뉴 지방의 한 귀족 가정을 배경으로 대혁명을 둘러싼 위태로운 정치사를 담았다고 하는데 '사업만큼이나 정치적으로도 언제나 실패했던' 왕당파 발자크가 어떻게 프랑스 혁명을 생각하는지 볼만하지 않겠는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과는 또 어떻게 다를까. ..... 뭐, 이런 궁금증까지 가지면 인생에 대책이 없어지는 것이다.

지난 여름에 읽은 헤닝 만켈의 [이탈리아 구두]에 나오는 한 구절, "더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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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의 [한국 근대사 산책]을 조선멸망 시기까지만 읽으려 했는데 아무래도 전권을 다 읽어봐야할 것 같다. 일제강점기 얘기도 봐야할 것만 같다. 처음에는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를 깊이 읽어보려는 계획이었는데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1권(1940년대편)과 김기협의 [해방일기] 1권을 따라 읽다가 이참에 근대사부터 훑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듯 생각보다 커져버린 판이라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자꾸 곁가지들이 뻗어나가는 바람에 감당키 힘든 욕심을 부여잡고 한숨 푹푹 쉬고 있다.

아, 이거 조짐이 좋지 않아.

 

내가 부여잡고 가는 건 '인간 미스터리'에 대한 호기심이다.

숱한 인간들이 움직였다. 그 인간들을 이해 해보기 위해 또 숱한 연구자들이 뒤쫓았다. 강준만의 책은 그 숱한 연구자들의 연구들의 단면들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판단. 수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면서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 격동의 시대를 통해 밝혀보고 싶었다는 의도에 따르면 독자들도 주의깊게 판단의 옳고 그름, 혹은 적절성을 판단해야 하는 것 같다. 아주 현기증나는 독서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그리고 고종과 수구파 세력 간의 협력과 대립, 파탄까지를 읽다가 이 대목이 아주 중요한 시기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재필을 비롯해 이승만, 이완용, 윤치호 등등 이후 현대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조선의 정체를 놓고 치열한 싸움을 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결국 파탄났다. 파탄의 원인들은 무엇일까.

 

이태진 교수는 '만민공동회는 일본이 사주해 일으킨 소요'라는 주장을 했다. 이태진은 고종에 대한 평가에 후한 경우다.

일본에 나라를 뺏기기 전까지 왕으로 있었으니 고종의 처세와 명민함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왕권과 왕실을 지키기 위해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싸웠는지도 모른다. 당연하다. 그의 처지로 당연한 싸움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왕정시대는 시대 뒷편으로 갔어야 했다. 왕 스스로 물러나겠는가. 그럴리 있겠는가. 무대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걸 조선은 하지 못했다.

윤치호는 조선백성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민중에 대한 증오심'이라고까지 강준만은 이해했다. 그럼에도 그는 조선이 망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대한자강회와 신민회 등에 참여하며 애국계몽운동에 합류했고 1911년 '105인 사건'의 최고 주모자로 지목되어 체포, 잔혹한 고문을 받았고 3년간 수감되었다. 출감 후 그는 '일선동화'위해 노력할 것을 천명했다.

강준만은 윤치호를 '최초의 진정한 개인주의자로 출발'한 자로 평가한다. 윤치호는 개화파의 일대기를 축약해 보여주는 모델과 같다. '선각적인 애국지사가 친일파로 영락해가는 과정과 논리'를 아마도 '산책'이 이어지는 내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완용. 그의 독립협회 활동은 일제시대에 그의 후손들이 펴낸 평전에서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시대가 일제강점하에 있던 때니 독립협회에서 주요한 직위를 맡아 활동했던 사실을 애써 드러낼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평판이 나빠질까봐.

그와 관련된 일화. '도시락 등청'. 점심 식사 후 조각이 열렸던 조선시대의 시간에 변화가 생겨 아침부터 등청하여 집무

를 보고 궐내에서 점심을 먹어야 했던 고관대작들은 집에서 하인들이 점심 식사를 날라왔는데, 가히 '점심 행차'가 되었다.

행차가 대충 이렇다. '하인 대여섯 명이 운반하는데 그 앞에는 무관이 앞장을 서서 '대감 밥상'하고 소리 높여 외쳐 행인들이 길을 비키게' 했다. 교자상 행렬 끝에는 술병과 물 주전자를 든 여종이 뒤를 따랐다. '큰 소동이요, 장관이었다'. 

학부대신 이완용은 '달걀이나 빵 등으로 도시락을 싸와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점심때가 되면 꺼내어 먹었다고 한다'. '행차'를 할 정도로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나 행동을 할 정도의 뚝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비방과 비난을 일삼던 이들도 점차 하나둘씩 뒤를 따르고 점차 '점심행차'는 사라지게 되었단다. 매국노 이완용은 '어쨌든 한국 최로로 도시락을 들고 등청한 관리'였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이완용에 대한 전말을 알지 못한다.

 

 

 

 

 

 

 

 

 

 

 

 

 

 

이태진의 [고종시대의 재조명], 오인환의 [고종시대의 리더십]. 뭔 리더십? 여기서도 리더십을 배워야 하나? 어이 빠개진다.

 

 

 

 

 

 

 

 

 

 

 

 

 

윤덕한의 [이완용 평전]은 1999년의 개정판이다. 김윤희의 [이완용 평전]은 리뷰들을 훑어보니 문제적 저작인 것 같다.

 

 

 

 

 

 

 

 

 

 

 

 

 

 

 

유영렬의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정용화의 [문명의 정치사상 : 유길준과 근대한국]

윤치호와 유길준을 통해 개화파의 문명 발전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수용 모습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나온 우치다 타츠루의 [일본 변경론]도 함께 읽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용화의 [문명의 정치사상]은 서남동양학술총서 중 하나인데 이 총서의 가장 최근 저작이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 한국 헌정사,만국공동회에서 제헌까지]이다. '법학, 정치학, 역사학을 종합한 학제간 연구'의 결과물이라 하니 한번 읽어볼만 하겠다. 이 총서 시리즈 중 몇 권은 꽤나 흥미로운 주제를 담은 것 같다. 학술서라 쫌 부담스럽긴 하지만.

 

 

 

 

 

 

 

 

 

 

 

 

 

 

사람들이 이 시대와 이 시대 사람들에 대해 지독히도 관심없어 하는 것 같다.

책들마다 올려진 리뷰나 페이퍼가 가련한 정도이다(더 재밌고 잘 정리된 다른 책들이 있나? 리스트를 보강하기 위해선 더 찾아봐야할 것 같다).

돌아보고도 싶지 않은 것인지, 돌아보지 않아도 이미 저마다 판단을 내리고 확신하고 있어서인지, 혹은 너무 복잡하고 어지러워 판단의 무능을 맛볼까봐 지레 겁내는 것인지 그 어느쯤에 있지 않을까.

'식민사관'을 극복하자는 말이 무덤에 회칠하자 로 쓰였는지 살펴봐야 한다.

 

해방공간에서 좌와 우가 아닌 '중도'에 선 이들의 힘을 애써 찾아보려는 김기협의 역사에세이 [해방일기]는 어느새 4편이 나왔다. 김기협은 '마음이 가난한' 보수주의자로 자신을 규정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과거를 돌아보며 그 안에서 인간의 분수를 찾'으려 한다. 김규식과 여운형 같은 중간파는 극좌우파와 외세, 중립에 있던 민중의 구도하에서

"중간파가 갖지 못한 '힘'을 극좌와 극우는 외세로부터 얻었고 중간파가 민심의 지지로부터 얻은 '힘'은 외세에 의지한 극단파의 '힘'에 압도당했다"

고 이미 김기협은 어느 정도 당시 전말을 생각하고 있지만

"아무리 막강한 외세 앞에서라도 양심적 민족주의자가 노력할 여지는 있었다" 고 자신이 해방일기에서 써내려 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에 다 읽은 정욱식의 [핵의 세계사], 이 정도는 꼭 읽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읽어보면 북한이 우선적으로 무조건 핵을 포기해야 한다(여론조사에서 늘 1위를 차지하는)는 말을 쉽게 할 수는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또 그 동안 북핵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을 정리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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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mohs 2012-08-17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근대사에 관련된 책만을 다각도로 읽고 있습니다. 강준만교수의 근대사산책10권, 일본인이 쓴 책,외국인이 쓴책, 윤치호 관련, 김구, 고종 관련 등등 친일인명사전을 참고로 찾아보며 읽고 있습니다. 읽어도 읽어도 일제를 이해할 수 없어서 근대사 읽기 작업은 끝날 것 같지가 않습니다...

포스트잇 2012-08-17 18:40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찾아보면 읽어야할 책들만 해도 넘 많더라구요,그래도 좀더 정확하고 풍부한 사료나 자료들이 담긴 좋은 책들이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한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해야 하나 만지작거리고 있는 중이기도 하구요(곧 스마트폰앱이 나올 예정이라네요) ...

그런거 있잖아요,조선말 상황에서 그래도 누구 정도의 생각과 행동이 바람직했다,뭐 이런 생각 정도를 가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요,아직까지는 판단을 잘못하겠어요.가능하지 않은 기대를 하고 있는걸까요?
모두가 실패한 시기였던거죠?
 

책 읽다 웃어본지가 백만년은 된듯하다. 어제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읽다가 그런 일이 발생했다.

어찌나 웃기든지. 실실 웃음이 나온 대목은 어디선가 본듯한 중년의 남자 구리하라 겐지가 연쇄살인사건 해결을 위해 호텔 프런트 직원으로 위장잠입해 있는 닛타에게 사사건건 딴지를 걸면서 두 사람 사이의 유치찬란하고 퐝당한 일들이 벌어지는 부분이다. 나는 무쟈게 웃기던데.

 

[신참자]도 그렇지만 히가시노 게이고 이 사람, 앞으로 뭐가 되려고 하는지, 어떤 소설들을 쓰고 싶어하는 건지, 작가 생활 25년이라는데 많이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는 중이다. [신참자]나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공통적으로 소설을 관통하는 하나의 사건, 즉 살인사건이라든지 연쇄살인형태의 사건이 중심에 자리잡으면서 이 사건 해결을 해나가는 와중에 중심 사건과는 관계가 없으나 수사 과정 때문에 발생하는 인간관계와 소소한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며 거기에 얽혀 있은 인간의 모습들, 이면에 감춰진 진심 혹은 진실 혹은 악의 등을 드러내는 구성과 주제에 천착하고 있다. 이런 구성과 얘기에 재미들여 있는 것이 요즘의 게이고인 것 같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호텔 각 층 각 방마다 각각 다른 얘기들을 품고 있는 각각의 방들이 있는 것처럼 인간세상의 축소판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호텔이라는 적절한 장소를 선택한 것 같다. 호텔에 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가면을 쓰고 오고 호텔리어들은 고객의 가면을 지켜주고자 하며, 사건 땜에 위장잠입한 형사 닛타는 바로 그 가면을 벗기는 일을 하는 사람이니 여자와 남자, 나오미와 닛타의 전문가로서의 서로의 역할이 처음에 충돌하다가 점차 직업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끔 전개되는 것은 이 소설이 주는 재미이면서 동시에 다소 상투적이기도 하다.

알라딘 소설 MD 최원호는 (게이고가)'마치 발자크처럼, 대중소설의 스타일을 흡수한 채로 세계라거나 인간 같은 것들을 말하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라고 추측한다. 발자크? 발자크라면 [인간희극]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가동한 작가 아닌가.

그러나 최근의 게이고는 다소 어정쩡한 것 같다. 인간들의 모습이라고 하나 다소 밋밋한 차카니즘에 빠져있는 것도 같고. 인물들도 강력한 한 방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없는 것 같다. 솔직히 닛타나 가가 교이치로나 또는 유가와를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특징들을 설명할 수 있는가? 잘 모르겠다. 의도적으로 영웅적 캐릭터를 만들지 않는 건지도 모르나 그 인물들의 미세한 차이들이 사건해결이나 얘기에 큰 균열을 내는 지 언뜻 잘 떠오르지 않는다. 솔직히, 지금쯤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냥 좋다. 뭔 짓을 해도(?) 좋은 걸 어떡하냐. 더위 잊고 스트레스 해소, 게이고는 내게 그런 작가다. 보고 싶은 배우들이 너무 오래 잠수하지 말고 일정 수준정도의 영화로 자주 좀 나와주길 바라는 마음과 같다. 히히.

 

"어떤 일로 인간이 상처를 입는지, 타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게이고가 주목하는 인간의 어둡고 불행한 면이다. 잊어버리지 못하고 고단한 일, 복수. 아, 지독한 사람들이다.

 

발자크 좀 읽어봐야겠다. 최원호 MD 생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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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예술MD 2012-08-08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편집장의 선택 카피를 읽어주시는 분이 정말로 계시네요(웃음). 감사합니다.

발자크를 언급했을 때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미야베 미유키의 변화상에 더 가깝지 않나 싶었습니다만(특히 차카니즘이라거나..), 그들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들이 추구하는 세계가 궁극적으로는 발자크의 인간 희극이나 졸라의 루공 마카르와 같은 이상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로 그 이상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마도 (아직은) 마쓰모토 세이초 뿐이겠지만 말이죠.

고전 걸작을 읽는 것과 달리 현재 진행형의 작가를 읽는 즐거움은 그런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이상에 다다르지 못했고 거기에 다다를 수 있을지조차 아무도 모르는 작가의 신간을 받아들었을 때의 두근거림 말이죠. 물론 실망스러운 경우도 많지만요. ㅎㅎ

계속될 독서에 행운이 따르시길 바랍니다.

포스트잇 2012-08-09 11:19   좋아요 0 | URL
미야베 미유키나 마쓰모토 세이초를 읽어본지가 백만년쯤 된것 같습니다.점점 장황해져 간다고 느껴지면서 관심이 끊어진 셈인데요,편집장님의 견해를 등불삼아 미야베나 마쓰모토도 다시 살펴봐야겠습니다.현재 진행형의 작가와 함께 한다는 건 모험을 함께 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지 싶습니다.그가 보여줄 다음 작품은 미지의 세계잖아요.두근거림과 두려움(혹 실망할까봐요,소심X3ㅠㅠ)으로 보는 거니까,편집장님께서 늘 고견을 주셔야 합니다용~ 보는 눈이 많다는 거!

외국소설/예술MD 2012-08-09 15:36   좋아요 0 | URL
미야베 미유키의 최근 행보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행보는 닮은 면이 있는데, 사회파의 부흥기에 두각을 드러낸 두 작가의 진행 상황이 비슷하다는 게 재미있어요. 시스템의 부조리를 캐릭터의 선함으로 상대할 수밖에 없는 건가, 사회파 미스터리의 후계자들은 더 절망적인 상황에 망연자실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 마쓰모토 세이초는 그 단계를 겪지 않거나 넘어섰고.. 누가 그 뒤를 이을지 저도 기대반 걱정반입니다. ㅎ

포스트잇 2012-08-10 15:55   좋아요 0 | URL
시스템의 부조리를 캐릭터의 선함으로 상대한다...라, 소박해보입니다요^^
제가 한동안 멀어져 있는 사이 미야베와 마쓰모토의 책들이 많이도 나왔네요, 이건 또 언제 한번 읽어보나,에쿠.
전 누가 일본판 [즐거운 살인]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나 [블러디 머더] 같은 책을 내줬으면 좋겠어요.저같이 게으른 사람들을 위해 기냥 한번에 쫙 훑어볼 수 있게시리 해주면 존경할텐데요,흐흐.
 

폭염속에서도 날이 밝고 해가 진다. 모처럼 긴 휴가(안식년도 있음 좋겠네, 년까진 아니더라도 달이라도)였지만 1초도 멈추지 않고 가는 시간인지라 어느덧 정리할 시간이 오고 있다. 원래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읽을 계획이었는데 전권 구입해 열맞춰 꽂아놓았을 뿐, 정작 읽고 있는 건 강준만 교수의 한국 근현대사 시리즈이다. 

근현대사를 통독하는 건 대학 이후 아마도 처음이지 싶은데 역시나 다시 봐도 화딱지나고 절망스러울 뿐이다.

또다시 19세기 말이나 전후 세계정세와 같은 격동의 상황에 처한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을까? 조선의 멸망도, 해방도, 해방 후 전선도 우리 힘으로 결정한 바 없다. 뼈아픈 것이다. 우리는 늘 잊고 산다. 외세와 편먹기만 따지다보니 무시당하기 마련이다. '도둑같이 온 해방'이라느니, 씨바, 얼마나 근본을 세우지 못했으면 친일파들이 지들 재산 돌려달라고 소송따위를 할 수 있냐? 올림픽이 한창이다. 개막식 장면에서였던가 언뜻 문대성 '의원'의 얼굴이 잡혔다. 내 참. 한국 스포츠외교의 현주소도 그 모양이다. 경제사범이든 뭐든 별 하나 정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사면받아 외교 현장에 가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데 묻지마 투표로 대통령이라고 뽑아놨다. 이분과 이분들의 측근들이란 어찌나 꼼꼼하고 성실하신지(얼마나 적절한 말인가) 자신은 물론 옆에 있는 이들도 살뜰히도 보살펴주신다. 컨텍터스라는 용역경비업체 소식에 모골이 송골해질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시위와 노조분쟁의 해결사'를 자처한다는데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되는 사안이다. 대테러나 국제분쟁사태에 민간군사용역업체가 투입되는 문제의 심각함을 잘 알고 있거니와 자국내에 공권력 영역까지 민간업체를 허용하는 틈을 준다면 이는 곧 백색테러가 난무하게 되는 꼴을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 절대로 안된다. 정말이지 저들의 꼼꼼함과 성실함에는 늘 놀랄 수밖에 없다.

 

휴, 우울한 책들만 보다보니 마음이 어둡다. 한동안 빠져있다 눈을 떠 돌아보니 새 책들이 또 유혹한다. 가지고 있는 책들도 읽지 못하고 있는 판에 또 다시 곁눈질을 하는 게 어리석지만 일단 보관함에 챙겨놓고 보자.

 

우치다 다츠루의 [일본 변경론]. 소개된 몇 구절들만 보아도 하, 이상하고도 이상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변경성'이 '숙명'이고 '불행'이라는 관점에 선 저자가 '변경성이라는 숙명을 이겨낼 수 없다고 해도 팽팽한 승부를 벌일 수는 있'다고 썼다는데(15페이지) 이건 또 어쩌면 이다지도 우리가 흔히 하는 생각과 닮았는지. 몇 페이지 인용된 문장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느낌은, 같은 생각 다른 역사라는 것이다. 이쯤되면 '같은 생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의심해가면서 읽어야할 것이다. 일본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한다는데 우리로서는 일본은 때만 맞춰지면 포문 하나라도 걸치려 한다는 것, 이것 하나만 이해하면 된다. 일본의 지식인들, 국민들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냐? 딴나라 사람들일 뿐. 새길만한 게 있을지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한동안 소설도 뜸했는데, 신간들은 참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꾸준히 나와주신다.

 

일본작가들, 또 일본이네 ....... .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가생활 25주년을 기념하는 작품들 중 하나라는데 새로운 캐릭터도 런칭한 모양이다. 몇 주년 기념 사은품이나 기념품도 아니고 작가생활 몇 주년 기념하는 의미로 작품이 나온다는게 탐탁치 않지만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이고의 깔끔한 신공을 구경하는 맛이 있으니까 피해갈 수는 없겠다. 가장 최근작은 [나미야잡화점의 기적]이라는데 이 역시 곧 번역되겠지? 호텔과 잡화점, 이 두 가지 장소, 키워드로 어떤 얘기와 사람들을 만들어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지난번 [신참자]도 아주 재밌게 읽었다. 구성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본격추리물과 작별한지 오랜지라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맛은 없지만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식 가이드]에 의하면 독자들의 인기투표 결과 발표작품 77편 중 [신참자]가 4위이군.  

 

하루키의 에세이집들이 나온다는데 다 구입해볼 수는 없을 것 같고, 아직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도 읽지 못했지만 이번에 나온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은 읽어보고 싶다. '챈들러방식'이 궁금하니까. 올 봄이었나, [양을 쫓는 모험]을 다시 읽었는데 심하게 언짢아졌었다. '어쩔 수 없음'이라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무력해보였고 비겁해보이기까지 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그리고 [양을 쫓는 모험] 3부작을 완성했지만 [양을 쫓는 모험]([양을 둘러싼 모험])이 미흡하게 느껴져 속편으로 쓴 게 [댄스댄스댄스]라고 한다. 그러니까 [댄스댄스댄스]에서는 저항했던 거 같다. 댄스댄스댄스이지만. [댄스댄스댄스]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은 [양을 쫓는 모험]부터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시기의 에세이들이라고 하니 시기적으로도 맞네.

 

 

 

 

 

 

 

 

 

 

 

 

 

 

헤밍웨이의 소설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까지 나온 모양이다. 문학동네는 헤밍웨이 작품을 더이상 내지 않는다하고, 민음사(김욱동)와 열린책들(이종인)에서 나란히 나왔는데 두 권 분권된 책이라 두 출판사꺼 모두를 살 수도 없고 난감하다.

[무기여 잘 있거라]를 열린책들판으로 샀는데 좋았다. 하드보일드한 문체로 감성을 자극하는 짠한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민음사판을 사야할까?

 

 

 

 

 

 

 

 

 

 

 

 

 

 

아니 열린책들이 좋겠다.

 

열린책들 얘기가 나와서, 얼마전 문화사회학자 김정운 교수가 이 책을 읽고 사표를 던졌다는 광고문구를 보고 도대체 '이 책'이 뭔지를 따라가봤더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책은 열린책들이 아니라 더클래식 세계문학컬렉션으로 나온 거였지만 예전부터 이윤기 번역의 열린책들판을 보관함에 담아두고 있던 터였다. 마치 자유인의 표상처럼 얘기되는 조르바를 나는 어렸을 적 앤소니 퀸이 주연한 영화 <희랍인 조르바>로 만났을 뿐이다.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자유'란 도대체 뭔지, 이제 늙고 좀더 늙고 아주 늙을 날만 남겨둔 나이에 자유란 어떤 것일 수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 좀 정리가 될까? 그것이 궁금해서라도 좀 읽어봐야겠다.

 

 

 

 

 

 

 

 

 

 

 

 

 

 

 

 

그밖에 '회사 3부작'을 완성한 임성순의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모아두긴 하는데 아직 한권도 읽어보지 못한 필립 K 딕 전집의 최근 번역작들. 

 

 

 

 

 

 

 

 

 

 

 

 

 

 

 

 

'카뮈와 사르트르의 정치사상' [폭력에서 전체주의로]도 궁금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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