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교수의 [한국 근대사 산책]을 조선멸망 시기까지만 읽으려 했는데 아무래도 전권을 다 읽어봐야할 것 같다. 일제강점기 얘기도 봐야할 것만 같다. 처음에는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를 깊이 읽어보려는 계획이었는데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1권(1940년대편)과 김기협의 [해방일기] 1권을 따라 읽다가 이참에 근대사부터 훑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듯 생각보다 커져버린 판이라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자꾸 곁가지들이 뻗어나가는 바람에 감당키 힘든 욕심을 부여잡고 한숨 푹푹 쉬고 있다.

아, 이거 조짐이 좋지 않아.

 

내가 부여잡고 가는 건 '인간 미스터리'에 대한 호기심이다.

숱한 인간들이 움직였다. 그 인간들을 이해 해보기 위해 또 숱한 연구자들이 뒤쫓았다. 강준만의 책은 그 숱한 연구자들의 연구들의 단면들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판단. 수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면서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 격동의 시대를 통해 밝혀보고 싶었다는 의도에 따르면 독자들도 주의깊게 판단의 옳고 그름, 혹은 적절성을 판단해야 하는 것 같다. 아주 현기증나는 독서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그리고 고종과 수구파 세력 간의 협력과 대립, 파탄까지를 읽다가 이 대목이 아주 중요한 시기였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재필을 비롯해 이승만, 이완용, 윤치호 등등 이후 현대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조선의 정체를 놓고 치열한 싸움을 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결국 파탄났다. 파탄의 원인들은 무엇일까.

 

이태진 교수는 '만민공동회는 일본이 사주해 일으킨 소요'라는 주장을 했다. 이태진은 고종에 대한 평가에 후한 경우다.

일본에 나라를 뺏기기 전까지 왕으로 있었으니 고종의 처세와 명민함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왕권과 왕실을 지키기 위해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싸웠는지도 모른다. 당연하다. 그의 처지로 당연한 싸움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왕정시대는 시대 뒷편으로 갔어야 했다. 왕 스스로 물러나겠는가. 그럴리 있겠는가. 무대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걸 조선은 하지 못했다.

윤치호는 조선백성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민중에 대한 증오심'이라고까지 강준만은 이해했다. 그럼에도 그는 조선이 망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대한자강회와 신민회 등에 참여하며 애국계몽운동에 합류했고 1911년 '105인 사건'의 최고 주모자로 지목되어 체포, 잔혹한 고문을 받았고 3년간 수감되었다. 출감 후 그는 '일선동화'위해 노력할 것을 천명했다.

강준만은 윤치호를 '최초의 진정한 개인주의자로 출발'한 자로 평가한다. 윤치호는 개화파의 일대기를 축약해 보여주는 모델과 같다. '선각적인 애국지사가 친일파로 영락해가는 과정과 논리'를 아마도 '산책'이 이어지는 내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완용. 그의 독립협회 활동은 일제시대에 그의 후손들이 펴낸 평전에서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시대가 일제강점하에 있던 때니 독립협회에서 주요한 직위를 맡아 활동했던 사실을 애써 드러낼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평판이 나빠질까봐.

그와 관련된 일화. '도시락 등청'. 점심 식사 후 조각이 열렸던 조선시대의 시간에 변화가 생겨 아침부터 등청하여 집무

를 보고 궐내에서 점심을 먹어야 했던 고관대작들은 집에서 하인들이 점심 식사를 날라왔는데, 가히 '점심 행차'가 되었다.

행차가 대충 이렇다. '하인 대여섯 명이 운반하는데 그 앞에는 무관이 앞장을 서서 '대감 밥상'하고 소리 높여 외쳐 행인들이 길을 비키게' 했다. 교자상 행렬 끝에는 술병과 물 주전자를 든 여종이 뒤를 따랐다. '큰 소동이요, 장관이었다'. 

학부대신 이완용은 '달걀이나 빵 등으로 도시락을 싸와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점심때가 되면 꺼내어 먹었다고 한다'. '행차'를 할 정도로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나 행동을 할 정도의 뚝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비방과 비난을 일삼던 이들도 점차 하나둘씩 뒤를 따르고 점차 '점심행차'는 사라지게 되었단다. 매국노 이완용은 '어쨌든 한국 최로로 도시락을 들고 등청한 관리'였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이완용에 대한 전말을 알지 못한다.

 

 

 

 

 

 

 

 

 

 

 

 

 

 

이태진의 [고종시대의 재조명], 오인환의 [고종시대의 리더십]. 뭔 리더십? 여기서도 리더십을 배워야 하나? 어이 빠개진다.

 

 

 

 

 

 

 

 

 

 

 

 

 

윤덕한의 [이완용 평전]은 1999년의 개정판이다. 김윤희의 [이완용 평전]은 리뷰들을 훑어보니 문제적 저작인 것 같다.

 

 

 

 

 

 

 

 

 

 

 

 

 

 

 

유영렬의 [개화기의 윤치호 연구], 정용화의 [문명의 정치사상 : 유길준과 근대한국]

윤치호와 유길준을 통해 개화파의 문명 발전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수용 모습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나온 우치다 타츠루의 [일본 변경론]도 함께 읽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용화의 [문명의 정치사상]은 서남동양학술총서 중 하나인데 이 총서의 가장 최근 저작이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 한국 헌정사,만국공동회에서 제헌까지]이다. '법학, 정치학, 역사학을 종합한 학제간 연구'의 결과물이라 하니 한번 읽어볼만 하겠다. 이 총서 시리즈 중 몇 권은 꽤나 흥미로운 주제를 담은 것 같다. 학술서라 쫌 부담스럽긴 하지만.

 

 

 

 

 

 

 

 

 

 

 

 

 

 

사람들이 이 시대와 이 시대 사람들에 대해 지독히도 관심없어 하는 것 같다.

책들마다 올려진 리뷰나 페이퍼가 가련한 정도이다(더 재밌고 잘 정리된 다른 책들이 있나? 리스트를 보강하기 위해선 더 찾아봐야할 것 같다).

돌아보고도 싶지 않은 것인지, 돌아보지 않아도 이미 저마다 판단을 내리고 확신하고 있어서인지, 혹은 너무 복잡하고 어지러워 판단의 무능을 맛볼까봐 지레 겁내는 것인지 그 어느쯤에 있지 않을까.

'식민사관'을 극복하자는 말이 무덤에 회칠하자 로 쓰였는지 살펴봐야 한다.

 

해방공간에서 좌와 우가 아닌 '중도'에 선 이들의 힘을 애써 찾아보려는 김기협의 역사에세이 [해방일기]는 어느새 4편이 나왔다. 김기협은 '마음이 가난한' 보수주의자로 자신을 규정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과거를 돌아보며 그 안에서 인간의 분수를 찾'으려 한다. 김규식과 여운형 같은 중간파는 극좌우파와 외세, 중립에 있던 민중의 구도하에서

"중간파가 갖지 못한 '힘'을 극좌와 극우는 외세로부터 얻었고 중간파가 민심의 지지로부터 얻은 '힘'은 외세에 의지한 극단파의 '힘'에 압도당했다"

고 이미 김기협은 어느 정도 당시 전말을 생각하고 있지만

"아무리 막강한 외세 앞에서라도 양심적 민족주의자가 노력할 여지는 있었다" 고 자신이 해방일기에서 써내려 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에 다 읽은 정욱식의 [핵의 세계사], 이 정도는 꼭 읽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읽어보면 북한이 우선적으로 무조건 핵을 포기해야 한다(여론조사에서 늘 1위를 차지하는)는 말을 쉽게 할 수는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또 그 동안 북핵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을 정리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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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mohs 2012-08-17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근대사에 관련된 책만을 다각도로 읽고 있습니다. 강준만교수의 근대사산책10권, 일본인이 쓴 책,외국인이 쓴책, 윤치호 관련, 김구, 고종 관련 등등 친일인명사전을 참고로 찾아보며 읽고 있습니다. 읽어도 읽어도 일제를 이해할 수 없어서 근대사 읽기 작업은 끝날 것 같지가 않습니다...

포스트잇 2012-08-17 18:40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찾아보면 읽어야할 책들만 해도 넘 많더라구요,그래도 좀더 정확하고 풍부한 사료나 자료들이 담긴 좋은 책들이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한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친일인명사전을 구입해야 하나 만지작거리고 있는 중이기도 하구요(곧 스마트폰앱이 나올 예정이라네요) ...

그런거 있잖아요,조선말 상황에서 그래도 누구 정도의 생각과 행동이 바람직했다,뭐 이런 생각 정도를 가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요,아직까지는 판단을 잘못하겠어요.가능하지 않은 기대를 하고 있는걸까요?
모두가 실패한 시기였던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