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이 단행본으로 출판됐다. 지난호에서 작가상 선정과 관련한 과정 및 심사평들을 읽고, 작가 인터뷰도 읽었는데, '잘 빚어진'이야기라는 데 심사위원들은 동의한 모양이다. 작가 김유철과 관련된 키워드가 풍성한 편인데, 방사선과 중퇴, 가난한 삶, 불우한 가족사, 부산작가원, 이문열, 권투스파링 알바, 보일러기사, 낚시도구 만드는 공장 공원 등 여러 직업 전전. 인터뷰하러 간 이는 김유철을 "글쓰기를 아주 행복해하는 덩치 큰 고독한 사나이"라고 묘사했다. 

소설은 '한 청년의 성장담을 담백하고 산뜻한 필치로' 그렸다고. 그러나 '이야기 전체의 혁신성, 세상의 현상을 전혀 다른 맥락에서 통일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의지가 철저하지는 않'다고. 또 어떤 심사위원은 소설에 드리운 일본 작가의 영향을 보기도 했다고. 여러모로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평집 [책을 읽을 자유]에 대한 적절한 응답은 로쟈님이 소개해 준 책들을 나 또한 관심 갖고 읽어보는 일일 것이다. 매일 로쟈님의 서재를 들어가보지만 그저 출근부 도장찍고 나오는 정도밖에 못하는데 이렇게 책으로 묶여 나오면 오며가며 테마별로 다뤄진 책들을 자세히 보게 된다. '지의 항해사'라는 말은 절묘하게 들어맞는 듯하다. <책읽기와 글쓰기> 테마에 나오는 나루케 마코토의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에 대한 글에서, 저자의 '초병렬 독서법'은 로쟈 자신 또한 잘하는 분야라서 특별히 건질 게 많지 않았다는데도, 마지막 괄호안의 말 "(나도 일단은 자동차 부품 회사에 들어갔어야 했던 것일까?)" 같은 개그를 낳게 했다. 로쟈님이 매일같이 부지런을 떨었던 작업들이 두 권의 책으로 결실을 맺었고, 바야흐로 손안의 컴퓨터, 손안의 전자책이 도래한 시점에는 더욱 유의미한 일이 될 듯하니 운명의 항해는 계속 되어야만 한다.  

10여 년 동안 해온 작업의 일부를 정리하는 한편으로, 앞으로 계획한 일의 결실을 기다리는 입장인데, 먼저 전공분야이기도 한 러시아문학 관련 입문서를 쓸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된다.  

최근에 읽은 김언수의 [설계자들]에는 주인공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재미있냐고 묻는 질문에, "굉장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는 책이야. 바르바라 배뜨로브나 스다브로기나가 주인공의 어머니이고, 스쩨빤 뜨로피모비치 베르호벤스키는 주인공의 가정교사고 뭐 그런 식이지. 어쨌든 이런 인물들이 만나면 이름만 가지고도 한 줄이 훌적 넘어가버리는거야. 그러니 이렇게 긴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잔뜩 나오는 책은 기본적으로 재미있을 수가 없지."  아무튼 이런 이름들을 가진 작가들이 이런 이름들을 지닌 인물들을 내세워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책들이 상당수일 러시아문학과 좋아하는 작가들에 대한 본격 문학서를 구상 중이라니 어떤 묘책(혹은 정면돌파)이 담긴 책이될지 몹시도 기다려진다.   

좋아하는 러시아 작가 중 하나라는 다닐 하름스는 또 내가 전혀 안면식이 없는 작가라서 이 사람 책도 한 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부조리극과 유클리드기하학'이라는 페이퍼를 보면,,, 아,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길이다. 

 

 

 

 

 

 

 

도스토예프스키와 그에 관해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던 감독 타르코프스키 관련 책이나 논문을 쓰는 것도 목표 중 하나인데, 이 역시 궁금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계획했던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타르코프스키는 사망했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안타깝고 아깝다.  

로쟈님이 쓰고 싶은 책 중 하나는 이미 제목이 있다. "너 자신을 세라".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자기 반영적인 지식의 문제를 다루"는 책이라는데, 뇌과학, 인지주의에 관한 책들을 통과해야 하는 모양이다. 아, 또 내가 이 분야 역시 약해서... 원제목인 [프루스트와 오징어]가 아닌 [책 읽는 뇌]라는 한국어판 제목이 일단 발걸음을 떼기 두렵게하는 이 책도 무슨 책인지 한 번 보고 싶다.  

 

 

 

 

 

 

 

 그밖에 로쟈님이 관심을 갖는 주제들이 몇 개 더 있지만, 지금 나의 관심과는 조금 거리가 있기에 일단 '은행'처럼 리스트로 보관해놓는 정도로 마감하고 싶다.  

 

 책의 열두번째 향연인 <발터 벤야민-도시의 천사>라는 글에서 벤야민과 루카치의 자살에 대한 관점을 비교한 내용이 있는 모양인데, '매우 시사적'이라고 평하는 로쟈는, 마샬 버먼이 "더 나은 글을 쓰지 않았다면 그런 관점에서 루카치와 벤야민을 비교하는 글"을 구상중이라고 한다. (벤야민...앞으로 다시 읽을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로쟈님이 특별히 관심갖고 있고 좋아하는 철학자인 레비나스는 내게 너무 먼 사람이다. 그럼에도 '어렵지 않'고 '레비나스 (윤리학으로서의) 철학에 대한 수준높은 개관'인데다, '영감의 폭탄'이라 할만큼 '감동적'이라는데 그래도 한 번 보고 싶기는 하다.   

 

  

 

   

 

 

 

  

 

대리언 리더의 [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는 대충 훑어보긴 했으나, 나는 라캉주의자들의 여자에 대한 관심이 더 궁극적으로 궁금하다. 도대체 왜 그렇게 여자를 알려고 난리일까. 뭐 별다른 게 있다고. 이 책에서 딱 하나 기억에 남는 건 남자들은 수집광이 되기 쉽지만 여자수집광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것. 물건에 대한 콜렉터 뿐 아니라 다른 일에 있어서도 남자들의 공격적이라고 할만한 집착과 열정이 여자들에게 주어지기 쉽지 않은 듯해서 그게 늘 아쉬웠는데, '원래 여자는 그래~'라는 건 ... 좀 안타깝지 않은가. 대신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과 [십이야],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 자크 카조트의 [사랑에 빠진 악마]는 원츄다. 꼭 읽어보고 싶다. 

  

칠레 출신 생물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윤리적 노하우]. "인지과학에서 말하는 무아 혹은 가상적 인격으로서의 자아에 대해서 좀더 공부해 보고 싶다"는 로쟈님과 달리 나는 '윤리'라는 개념을 좀더 잘 알고 싶다. 요새 나를 자극하는 개념이 이 윤리인데, 쉬운듯하면서도 좀처럼 잘 잡히지 않는 개념이다.지젝의 [시차적 관점]의 4장 <자유의 고리> 또한 참고 글이라고 한다. 

 

 

이 밖에 나중에라도 읽어보고 싶은 책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언젠가 정독할 기회가 있을까. 야심차게 구입했던 [니코마코스 윤리학]도 손 한번 대지 않은 채 고이 모셔져 있다.  

 

 

   

 

서평도서로서 '발군의 저작'이라고 평한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16세기 문화혁명]. 이 책은 도저히 내가 읽을 수 없겠다. 940페이지의 책이다. 지금은 그냥 책 제목과 저자를 기억해두는 일 뿐.  

 

 

 

 다윈좌파에 대한 흥미진진한 글과 주제의식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책.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 얼마나 시의적절한 주제인가. 번역문제와 윤곽만을 다루는데 머문 책의 볼륨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데, 사실, 이 책을 굳이 읽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들 정도로 로쟈님의 글은 명확한 전달력을 보여준다. 

 

  

 

이 밖에 최근 나쓰메 소세키 책들을 본 관계로 언젠가 로쟈님이 나쓰메 소세키 관련해서, "국민문학" 에 대해서 다뤄보고 싶다 했는데, 그 글도 읽어보고 싶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아직 읽어본 적이 없어서 꼭 한 번 읽어보고 싶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고등학생 시절 때 읽었는데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그 때와 다른 독서가 가능할까?

책에 실린 글들과 소개되는 책들은 로쟈님의 서재-은행에 보관된 것들에서 고작해야 얼마되지 않은 부분에 불과하다. 무시무시한 책들이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비닛]을 재밌게 봤는데, [설계자들] 또한 무난히 읽힌다. 장정일이 신랄하게 본 것에 비하면 나는 푹 빠져 읽었다고 할 수 있으니 장정일 식으로 말하면, 나는 "한 번도 문학의 진수를 맛보지 못한 사람" 축에 속한 모양이다. 뭐, 내가 생각해도 문학에 대해 할 말이 없다. 굳이 덧붙이자면, [설계자들]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는 동의한다는 정도.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오리지널리티라고 할만한 게 없다는 거. 하루키의 그늘이 짙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특히 도서관과 도서관장 너구리영감이나 사팔뜨기 사서의 세계는 영락없이 [해변의 카프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엉뚱하게 펴져가는 이야기의 세계도 그렇고, "의아한 북극곰" 같은 얘기는 하루키가 즐겨 구사하는 허구의 인용 혹은 패러프레이즈의 환영이 어른거린다. 후반으로 갈수록 초반의 집중력이 흩어져서 그저그런 범죄영화를 보는듯하다.   

그럼에도, 이 작가는 절망을 흠씬 느끼게 하는데 절묘한 재주가 있었다. 나의 센티멘탈이 이입된 것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읽는 내내 물젖은 솜처럼 기분이 무거웠으니.   

작가는 주인공을 비롯한 '푸주'세계의 살수들을 '킬러' 보다는 '자객'이라고 부르고 싶은 듯하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어마어마한 호칭이지 않는가. 자객이라 호명함으로써 때아닌 낭만적 품격을 이들에게 부여하고 싶은 듯했다. 차마 낯간지러운 시대에 말이다. 주인공 래생을 비롯한 자객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있는 것들의 치사한 짓거리 뒤치닥하는 정도의 하수의 일 뿐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하수의 똘마니가 아니라 그래도 뭔가 의지를 지닌 듯한 '자객'으로 죽고자 하는 인물들을 애써 그린다. 죽음의 환대라고나 할까.

그리는 세계가 그렇다보니 소설에는 죽음, 문 앞을 서성이고 있는 죽음을 생각하게 하며 묵직해진다. 언제 들이닥칠지는 모르지만 분명 문 밖에 있는. 살인이나 죽음과 관련된 조사도 정성스러워서 정보를 많이 알게 된다. 요즘은 이런 디테일을 제법 잘 활용하는 듯하다. 독일제 헨켈이라는 칼을 다루는 거라든지, 털보의 소각장, 화장에 대해서. 이런 디테일들의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임성순의 [컨설턴트]에 이어 김언수의 [설계자들]까지, 폭발적으로 발전한 범죄스릴러 장르소설의 활황이 본격적으로 한국소설에도 기꺼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건가. 

   
 

 왜 도서관이었을까. 도서관은 이렇게 조용하고 이곳에 가득 쌓인 책들은 저토록 무책임한데. (p.1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평론가이자 문학동네 편집위원인 신형철의 언급. 못견디게 보고 싶어지는 책 발생. 

 

 

 

 

 

 

 

   
  윤리적 난제를 서사 구성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솜씨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윤리학적 상상력'의 작가라고 부를 만한 이언 메큐언... 예컨대 그의 대표작인 [속죄]의 서사구조가 위 언급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터다. 이 작품은 '자신을 타인의 생각과 감정 속에 상상해 넣는 능력'이 결핍돼 있어 비극을 유발한 한 소녀가 뒤늦게 그 능력을 배우기 위해 평생을 한 권의 소설을 완성해나가는 데 바치면서 속죄하는 이야기였다  
   

 이 간결한 작품 요약이 어찌나 구미를 당기는지 ...  

이언 매큐언의 작품으로는 [이런 사랑]을 읽은 적이 있다. 과연 신형철의 평대로 이언 매큐언의 작품에는 그런 윤리적 난제를 떠안게 된 사람들의 딜레마에 독자 또한 공감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보도록 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사랑]은 우연이 돌풍에 휩싸인 풍선기구의 사고를 목격하고 돕다가 힘에 부치자 결국 잡고 있던 줄을 놓아버린 주인공의 이후 변화하는 삶을 이야기한다. 주인공과 달리 끝까지 공중으로 올라가는 풍선기구의 줄을 잡고 있던 한 남자는 떨어져 사망하고 말았던 것. 당시 읽을 때 나는 충분히 공감하며 읽진 못했었는데... . 이언 매큐언의 세계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포스트잇 :  

인용문에서 이언 매큐언이 했다는 '위 언급'이란 9.11테러와 관련해 한 말이라는데, 인용해보면, "만일 비행기 납치범들이 그들 자신을 승객들의 생각과 감정 속에 상상해 넣을 수 있었다면, 아마 계획을 진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희생자의 마음 속에 일단 들어가면 잔혹해지기란 어렵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는 것은 우리 인간성의 핵에 자리한다. 그것이 공감의 본질이고 윤리의 시작이다". 

오늘 반값 도서 중 눈에 띄인 책이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였는데, 주문했다. SF는 정말 잘 읽고 싶은데 좀처럼 읽기가 쉽지 않다. 이해력이 현저히 떨어져가는 상황. 곁에 두고 묵혀두기라도 하다가 어느 날 소슬하게 읽으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 읽기를 통해 21세기를 극복하는 힘에 대해 고민하는 강상중의 이 책의 장점은 나쓰메 소세키와 그의 소설에 대한 강상중 식 읽기의 재미와 마지막 9장의 제2의 인생에 대한 계획을 소개받으며 웃을 수 있다는 점이다.

     

 

 

 

 

 

 

   

소세키의 소설을 소개받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그의 고민들이 내놓는 결론들이라는 것이 너무 소박하거나 너무 모범생스러워서 답답했을 즈음, 마지막에 제2의 인생의 계획을 터놓고 얘기하는 부분에서 빵터졌다.  

뻔뻔과 그리고 우석훈 식의 '혁명'과 어디쯤 맞닿을 법도 한 '명랑'. 

고민을 거쳐서 그 끝에 뻔뻔해지라는 것, 혹은 그럴 수 있다는 것, '깊게 고민해서 꿰뚫어라'는 것.일본이나 한국이나 '새로운 파괴력'이 필요한 듯한데 그 힘은 어디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것인가? 오지 않을 고도... . 아니,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믿어라, 믿는 자가 구원받는다. ...

며칠 전 어렵게 다시 일을 찾은 지인이 전화를 걸어와 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 생각보다 자신의 견해와 어긋나기 시작하는 계획들.. 등등 불만을 토로하며 하소연하자 내가 그랬다, '의미를 찾지 말라'고. 지금 '일이 필요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만 하라고 충고랍시고 했다. 예민한 그녀는 조직 속에서 일하는 데 늘 어려움을 겪었고 흔히 듣는 '에고가 강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늘 스스로 사퇴하는 일을 반복한 끝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던 그녀는 몇 번의 좋지 않은 일들의 고비를 만나면서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한 사정에 처했다. 그래서 어렵게 구한 일자리인데 또다시 그녀는 너무나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녀의 고민을 들어보면 늘 다른 이들은 '속물'이고 자신만이 형형한 고민이 살아있는 존재로 대립하는 식의 구도를 상정하곤 했다. 지레 지쳐서 혼자 떨어져나오는 일들의 반복. 과도한 의미부여,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실망, 그러한 실망스러운 현실 속에 처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라는 자괴감... 이런 불평들의 반복을 그녀로부터 듣다보니 그만 '의미를 찾으려하지 말라'고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며칠 전의 일이었지만 이 일이 머리속에 맴돈다. 다소 밉살스러운 지인과 관계된 저간의 맥락이 있긴 하지만, '의미를 찾으려하지 말라'고 말했다는 것 자체가 내 스스로 생각해도 다소 당혹스러운 사건이었다. 

[고민하는 힘]의 말들이 강상중식 청춘의 '멘토'로서의 말이라면 적당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뭔가 답답하다.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내지름, 명랑뻔뻔의 길은 불가능한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