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 읽기를 통해 21세기를 극복하는 힘에 대해 고민하는 강상중의 이 책의 장점은 나쓰메 소세키와 그의 소설에 대한 강상중 식 읽기의 재미와 마지막 9장의 제2의 인생에 대한 계획을 소개받으며 웃을 수 있다는 점이다.

     

 

 

 

 

 

 

   

소세키의 소설을 소개받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그의 고민들이 내놓는 결론들이라는 것이 너무 소박하거나 너무 모범생스러워서 답답했을 즈음, 마지막에 제2의 인생의 계획을 터놓고 얘기하는 부분에서 빵터졌다.  

뻔뻔과 그리고 우석훈 식의 '혁명'과 어디쯤 맞닿을 법도 한 '명랑'. 

고민을 거쳐서 그 끝에 뻔뻔해지라는 것, 혹은 그럴 수 있다는 것, '깊게 고민해서 꿰뚫어라'는 것.일본이나 한국이나 '새로운 파괴력'이 필요한 듯한데 그 힘은 어디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것인가? 오지 않을 고도... . 아니,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믿어라, 믿는 자가 구원받는다. ...

며칠 전 어렵게 다시 일을 찾은 지인이 전화를 걸어와 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 생각보다 자신의 견해와 어긋나기 시작하는 계획들.. 등등 불만을 토로하며 하소연하자 내가 그랬다, '의미를 찾지 말라'고. 지금 '일이 필요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만 하라고 충고랍시고 했다. 예민한 그녀는 조직 속에서 일하는 데 늘 어려움을 겪었고 흔히 듣는 '에고가 강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늘 스스로 사퇴하는 일을 반복한 끝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던 그녀는 몇 번의 좋지 않은 일들의 고비를 만나면서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한 사정에 처했다. 그래서 어렵게 구한 일자리인데 또다시 그녀는 너무나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녀의 고민을 들어보면 늘 다른 이들은 '속물'이고 자신만이 형형한 고민이 살아있는 존재로 대립하는 식의 구도를 상정하곤 했다. 지레 지쳐서 혼자 떨어져나오는 일들의 반복. 과도한 의미부여,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실망, 그러한 실망스러운 현실 속에 처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라는 자괴감... 이런 불평들의 반복을 그녀로부터 듣다보니 그만 '의미를 찾으려하지 말라'고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며칠 전의 일이었지만 이 일이 머리속에 맴돈다. 다소 밉살스러운 지인과 관계된 저간의 맥락이 있긴 하지만, '의미를 찾으려하지 말라'고 말했다는 것 자체가 내 스스로 생각해도 다소 당혹스러운 사건이었다. 

[고민하는 힘]의 말들이 강상중식 청춘의 '멘토'로서의 말이라면 적당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뭔가 답답하다.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내지름, 명랑뻔뻔의 길은 불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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