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이제 나와는 맞지 않는 세계라는 것, 격리된 공간, 인위적인 설정, 그리고 체스의 말과도 같은 등장인물들......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야." 

 

  

 

 

 

 

 

  

 

 

밀실, 트릭, 기이한 구조의 집, 사라진 시체, 암호트릭, 1인 2역 등 본격추리소설에 이용할 수 있는 온갖 요소들을 정교하게 짜맞추며 완성한 소설임에도 작가는 자신에게 이제 그 세계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아련한 추억을 얘기하듯이 말한다.  

대신 '리얼리티, 현대적 감각, 사회성'이 큰 축을 이룰 것이다, 고. [명탐정의 저주]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신의 소설세계에 일대 회전을 치르며 전환하는 시점에 쓴 자기반영적 소설이다. 생각해보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참으로 어려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 소설을 쓴 것같다. 본격추리소설이라는 형식에 소설의 얘기와 진행을 담아내면서 동시에 그 결점과 한계가 비판적으로 담겨야 하는 이 자해적 글쓰기를 어떻게 봐야 하는건가. 그럼에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절묘하게 성취해 낸 것처럼 보인다. 실망시키지 않는 게이고.    

[명탐정의 규칙]이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규칙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비록 조롱하듯이 다루고 있지만 쾌활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면, [명탐정의 저주]는 본격추리소설의 인위적 설정들과 논리(그리고 역시 그것들로 이뤄진 소설'책')를 [장미의 이름]이 다루는 방식처럼 차용하여 다소 비극적이고 애잔한 느낌을 낳게 한다. 앞에서 인용한 말이 작가의 심정을 함축하고 있다. 동시에 본격추리소설에 염증을 느낀 독자들이 할 말이기도 하겠다. 역시 게이고. 

 

 

 

 

 

 

 

 

이구용의 [소설파는 남자]를 읽고 발견한 작가 이은. [수상한 미술관]을 먼저 읽었다. 이 작품 말고 [미술관의 쥐]가 일본 고단샤의 아시아 본격 미스터리 선집에 한국대표작으로 선정되어 번역 수록되었다고 한다. 또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가 추진되고 있어 개발중인 모양이다. 좋겠다. 며칠 내로 [미술관의 쥐]를 읽어봐야겠다.  

[수상한 미술관]은 ....... 표절을 둘러싼 개념들을 가르치기 위한 학습서인가?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기대 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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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명절쇠야 하는 달같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하여 석가탄신일까지... 지금 예정대로라면 꼼짝없이... . 며칠 전부터 스트레스 받고 있고 당장 내일부터 해치워야 할 일들 걱정으로 모처럼 좋은 날씨에도 기분이 우울하다.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고 만성병처럼 안고 사는 나의 기질이다.  

꼭 시험이나 숙제 앞두면 하고 싶은 일들 생각이 몽글몽글나듯이 이구용의 [소설파는 남자]를 휘리릭 떠들어보다가 아, 한국소설 좀 관심갖고 읽어보자라는 의욕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출판저작권 에이전트인 이구용은 책이 나온 작년 12월까지는 임프리마코리아에 있었으나 지금은 케이엘매니지먼트를 설립하여 대표를 맡고 있는 모양이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잘 나가는 덕분에 얼마전 이구용 대표도 주목받으며 인터뷰가 실렸다. 세계가 신경숙의 소설을 읽어도 나는 좀, 선뜻, .... . 신경숙의 소설은 [깊은 슬픔]인가를 마지막으로 읽었던 것 같다. 인터넷에 연재될 때 [어딘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몇 번 읽어보려 애썼지만 역시 그녀와 나의 거리는 지금 이대로로 족하다, 고 확인했다. 

    

 

  

 

 

 

  

  

내가 지지리도 한국소설을 안 읽는다는 건 인정. 아는 작가도 별로 없다. 24명의 작가가 언급되고 있는데, 내가 단편이라도 한 작품 읽어본 적이 있는 작가는 7명이다. 김영하, 신경숙, 편혜영, 하일지, 이기호, 김훈, 황선미. 해외에 번역출간되도록 도모하는 일을 하는 저자라서 확실한 세일즈포인트를 가지고 선별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 저자가 소개한 24명의 작가와 작품 모두를 읽지는 못할 것 같다. 저자가 소개하는 작가의 문학세계와 세일즈포인트가 딱히 구미를 당기지 못하는 작가들도 있어서 잘 모르겠다.  

김영하야 원래 재미있게 보는 작가인데 [퀴즈쇼]와 [호출] 정도는 못 본 것 같다. 나머지도 이젠 가물가물하다.

   

 

  

  

 

 

  

 

 

 

   

조경란 작가의 경우 [혀]가 블룸즈버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는데, 이 작품 표절시비가 붙었던 작품 아닌가.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한국추리문학의 기대주, 이은'은 누구보다 먼저 찾아 읽어볼 작가이다. [수상한 미술관]에 대한 호평을 예전에 접했지만 선뜻 손에 들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작가에 대한 두려움이 나름 상당히 큰 편이라 어지간한 호평과 입소문에 노출되지 않고서는 잘 읽게 되지 않는다. 우리 소설에 좀 데인 적이 많아서 그렇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그 상처가 커서인지 지금도 한국작가와 소설을 읽으려면 나 나름으로는 용기가 몹시도 필요하다.   

 

 

 

 

 

 

 

한국문학의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가로 한강을 소개하고 있는데, [바람이 분다, 가라]에 도전했다가 포기한 바 있어서 또다시 도전해봐야할지는 잘 모르겠다. 우선 이구용 대표가 관심 둔 [채식주의자]는 손을 대볼 생각이다.  

 

 

 

 

 

 

 

 

이구용 대표가 논문까지 쓴 조지프 콘래드를 떠올리게 한다는 편혜영 작가의 소설은 [재와 빨강] 한편을 읽었는데, 애석하게도 에이전트의 감식안과 전혀 다른 인상을 받았을 뿐이다. [사육장쪽으로]와 [토끼의 묘]를 리스트에 둔다.  

 

 

 

 

 

 

 

 

2부는 '에이전트의 고민'에 해당하는 작가와 작품들로 묶인 글들인데, 해외진출에 성공시켰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 리스트이다.  

하일지의 소설은 이번에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 [우주피스 공화국]은 환상소설스러운 스타일을 지닌 소설같아서 더 흥미가 간다.  

 

 

 

 

 

 

 

  

 

 그리고 주영선. 캐나다 원로작가 앨리스 먼로와 비교해서 소개한 작가인데, 화려하지 않은 세계, 고도의 문학적 장치나 도구를 동원하지도 않으며, 화려한 문체나 현란한 수사도 활용하지 않으면서 은근하게 울려 나오는 깊은 공명과 긴 여운을 남긴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의 보편적 가치와 진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일깨운단다. 특히 캐릭터의 생동감이 장점이라고 하는데, [아웃]에 대한 소개글 일부를 인용해 보면 이렇다.   

   
 

별다른 일이 벌어질 것 같지 않은 조용하고 소박하게만 보이는 농촌 시골마을이 배경.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의과대학에서 반년 동안 공부한 후 무의촌 보건소에 새로 부임한 여자 보건소장과 위현리 마을의 부녀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그린 소설. 보건소장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변인들의 선망과 질투와 시기의 시선이 교차되어 하나로 꽈진 단단한 줄에 포박되는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 정직과 신뢰와 최선이라는 가치를 부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또 그렇게 살아가려고 애쓴다. 그러나 주변 인물들은 딸린 직원 하나 없이 혼자 부임하여 근무하고 있는 소장이라는 직책까지 권력으로 보고, 자신의 이익이나 영달을 위해서라면 아부와 아첨을, 때로는 시기와 질투를, 또 맘에 들지 않거나 수가 틀리면 뒤에서 음해하길 밥 먹듯 한다.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끼리도 뜻이 어울리면 '형님, 아우'이고,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이년, 저년'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만의 진실을 기반으로 살아가려는 보건소장은 어느 순간 노회한 마을 사람들에게 눈엣가시로 전락한다. 거짓과 악과 부정이 결집되어 기승을 부리자 참과 선과 긍정이 무력하게 꺾여가는 것이다. "왠지 나도 모르게 미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싫증이 났다. 적게는 나보다 열 살 이상, 많게는 내 부모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을 상대로 때로는 윽박지르고 때로는 비위를 맞춰야 하는 이 일에, 소리 없는 비명이 나왔다. 왜 내 삶은 소통이 안 되는 것 투성인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않는 아이와 정상적으로 나를 대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웃음을, 관계를 잃어갔다. " 

 
   

흥미로운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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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러브시의 [마지막 형사]는 [가짜 경감 듀]보다 재미없었다.   

 

 

 

 

 

  

 

 

호수에서 발견된 벌거벗은 여자 시체 한 구. 물에 버려진 지 2주는 된 듯해서 신원파악도 어려운데 겨우 몽타주를 만들어 TV 등에 알려 공개수사를 하던 중 남편이라는 영문학 교수가 자신의 아내인 듯 하다며 경찰에 나타난다. 여자는 한 때 유명한 배우였고 남편은 2주 전 일 때문에 급히 출장을 떠나던 아침에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돌아왔을 때 아내가 없었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친구집 어딘가로 놀러갔을 거라고만 생각했다고 진술한다. 과학수사가 바야흐로 수사 시스템으로 도입되고 대세가 되는 흐름 속에서 중년의 경정 피터 다이아몬드는 자신과 같은 경찰이 형사질을 하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 남편의 진술을 들으면서 다이아몬드는 남편의 혐의를 직감하는데, 이쯤되면 남편의 진술이 진실일까, 그 진술 속에 반짝이는 허점은 없을까, 남편은 왜 아내를 살해했으며 남편이 갖고 있는 알리바이는 어떻게 무너질 것인가 또는 마지막 반전은 무엇일까 따위로 중반 이후 독서를 자극하기 십상이다. 그걸 잔뜩 기대하기도 하고. 나 같은 독자는 애초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뒤이어 나오는 사건 전개들이 이와 어긋날 때 독자의 추리와 상상 이상의 반전이나 놀라운 트릭, 트릭을 깨는 기막힌 추리, 합당하고도 독자의 회색 뇌세포를 울리며 드러나는 숨겨진 진실 등이 있으면 그 작품에 무릎 꿇게 되는 것 같다. 작가를 숭앙하며. [마지막 형사]는 그 재미를 주지는 못했다.  

[가짜 경감 듀](1982)는 역사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역사 추리소설에 장점을 지니는 작가라는 평답게 1920년대 초 시대를 배경으로 실제 인물과 사실, 허구를 교직하며 신선한 아이디어를 잘 살린 유머러스한 작품이었다. 주인공은 지긋지긋한 아내(역시 여배우다. 런던의 연극무대를 떠나 찰리 채플린이 초대한 할리우드를 꿈꾸며 떠나는)를 살해하기 위해 공범이자 아내를 자처할 새로운 연인과 대서양 횡단 호화여객선에 승선한다. 빈틈없이 준비한 마누라 죽이기는, 주인공이 전설이 되어 은퇴한 경감 듀를 자의반 타의반 맡게 되면서 뜻밖의 상황으로 흐른다. 배에서 실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데 주인공은 의외로 도취되어 간다. 소설은 아주 유머러스한 상황과 대사로 시종일관 흥미진진했다.  

피터 러브시 작품 몇 편이 후속출간 된다니까, 기대해본다.   

반면, 자음과 모음의 제2회(2010) 네오픽션상 수상작인 [살인자의 편지]는 살인자가 누구인지 중반쯤 읽다보면 짐작하게 된다. 점점 확신을 하게 되고 이후는 작가의 수가 짐작되고만다. 결말은 요즘 흔하게 보는 식으로 정리된다. 김훈 작가를 몹시도 좋아하는 작가 유현산의 글에서는 몹시도 좋아하는 작가를 배우려는 자세가 읽힌다. 사람으로 포장된 모든 것들이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다가오는 느낌이다. 작가는 최대한 그런 냄새나는 현실을 다 담으려 애썼다. 사람은 죽어서 썩어가는 살덩이와 육즙의 혼합물일 뿐이며 사체부검은 그 절정이고, 10대 가출청소년들의 적나라한 밑바닥 모습, 노숙, 화재진압하는 소방대원들의 악다구니, 등등. 인간의 품위란 헛것이며 죽음의 길에서 완전히 발가벗겨지는 그 모든 것들을 점점 더 세밀하게 꼬집어 드러내는 요즘 한국 장르소설의 추세를 잘 볼 수 있다.   

 

 

 

 

 

 

 

 

정유정의 [7년의 밤]을 읽으면서도 느낀 것인데, 문학적 용어로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자의식이 지나치게 개입되면서 각 인물들이 다른 처지, 다른 행동을 하더라도 거기서 거기인 인물들처럼 보인다. 인물들에게 부여되는 작가적 의식을 거쳐 나오는 설명, 묘사가 한결같다는 느낌이다. 대사도 그렇다. 그러다보니 인물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니라 모두 같은 인물들의 분신들일 뿐이다. 소설의 많은 분량이 그런 식으로 채워진다.   

 

 

 

 

 

 

  

 

[살인자의 편지]는 이런 작가의 초조감이랄까, 인물들을 반드시 설명해줘야 한다는 작가전지적 태도 때문인지 살인자가 누구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작가의 의도인가? 왠일인지 살인자에게만은 그 설명이 없다, 마지막에 드러나야 하기 때문에?   

요즘 소설들은 왜 그다지도 두꺼운지. 아주 힘들어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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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4-28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은책 하나있네요~ 빈틈없이 준비한 마누라죽이기인데 허당되는거죠^^;
오늘 주워들은 말에 포스티잇님이 등장합니다~
'사랑은 포스트잇인가? 아무데나 잘 붙지만 결정적순간에 팔랑~~거리면서 떨어진다'
결혼한 사람들은 그게 집구석 어딘가에 있겠지만 눈에 보이게 붙어있지는 않다고 하네요 ㅋㅋㅋ

포스트잇 2011-04-28 17:25   좋아요 0 | URL
'팔랑~~거리면서 떨어진다'...굽쇼? ㅎㅎ
워낙 포스트잇을 좋아해서 서재 이름 지을 때 별 고민 없이 떡 붙였답니다.
책 읽을 때도 떡,떡... 포스트잇 도배인생이라 할까요^^
어쨌든 주워들으신 말 속에서마저 저를 떠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여자 작가에 대한 편견이 좀 있는 편이다. 종종거리며 맴도는 좁은 반경에 질려하는 편이다.  

마거릿 애트우드라는 일흔 두살 먹은 캐나다 작가의 [눈먼 암살자]를 읽으며 반성했다.  

 

 

 

 

 

 

 

 

 

거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남자들은 주인공 아이리스를 이해할 수 있을지, 공감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런 류의 인물이 남자라면 다른 상황, 다른 행동들로 구축되겠지.  

안나 카레니나는 사랑 때문에 남편과 아들을 떠났고, 결국 기차에 몸을 던졌다면, 아이리스는 저 아래로 흐르는 어둠을 그대로 둔 채 기품을 가장한 채 위태롭게 얼음장 위를 지치는 암살자 같은 여자다. 눈 멈을 가장한 채. 소설 속 소설인 <눈 먼 암살자>는 정말 멋진 이야기다, 멋진 장치이기도 하고.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이다.  

민음사는 교정에 지금보다 더 신경써 주길. 민음사, 작지 않은 출판사인데 책 만듦새가 늘 실망스럽다. 언제부터 그랬지?  

이 세상에 내가 읽어보지 못한 소설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 못하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소설을 등한시 했던 잃어버린 십 여년이 이제와 너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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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12-04-24 0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검색으로 찾았습니다. 눈 먼 암살자 정말 좋은 소설이지요. 한 문장 한 문장 공감하고 민음사의 교정, 번역 문제에도 공감하고 갑니다. 돼, 되 와같은 기본적인 맞춤법부터 비문, 꼬인문장 ㅠㅠ실망했어요 ㅠㅠ

포스트잇 2012-04-24 10:51   좋아요 0 | URL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소설, 읽은지 1년이 넘었네요. 시간을 이겨낼수있을지...다시 읽을 땐 또 어떨지 궁금합니다. 이 작가의 새소설 [그레이스]도 읽을 예정인데,어떤 얘기를 품고 있을지 설레요.
 

살랑살랑 봄바람을 만끽하기엔 세상 공기가 그다지 쾌청하지는 않은 요즘이다. 일본 작가들은 안녕들 하신지. 오랫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플래티나 데이터]를 읽다. 

 

 

 

 

 

 

 

 

조르주 심농도 들쳐보던 터라 이른바 장르소설이 시간을 견디고 오래토록 계속해서 읽히게 되는 조건들이라면 어떤 걸까를 생각해보곤 했다. 심농은 필립말로를 창조한 레이몬드 챈들러도 무척이나 좋아했던 작가라고 하는데 심농과 챈들러의 문체는 극과 극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항상 '물질적인' 단어만을 쓰려고 해왔소. 탁자, 의자, 바람, 비 같은. 만일 비가 온다면, 나는 '비가 온다'고 쓸 뿐이오. 내 책에서는 물이 진주가 되는 일 따위는 눈을 부릅뜨고도 찾지 못할 거요", 라고 심농은 말했다. 나이를 먹어가는 말로는 담배 연기가 '섬유 속을 거쳐 나오는 안개 같은 맛'이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심농의 소설이라곤 고작 중편 두 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문체에서 뿜어내는 매력이 그다지 강렬하지도 않고, 강렬한 캐릭터가 끌어가는 힘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주제나 소재를 장악하여 플롯과 인물 행동 동기에 대한 사회학적 논리를 잘 구사하는 능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플래티나 데이터]는 전 국민의 DNA를 국가가 수집, 데이터하여 시스템화함으로써 범죄를 해결하고 예방효과까지 달성하려는 과학자들의 욕구와 그 시스템에서 자신들의 데이터만은 변형, 삭제함으로써 특권을 고수하려는 이해관계가 관철되는 제도가 정착되는 상황을 가상한 범죄 미스터리물이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는 인물과 순수한 과학자적 호기심과 본능으로 접근하는 '사이언티스트', 여전히 고전적인 발품과 수사적 머리를 써서 범죄를 해결하는 게 진리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형사 아사마 같은 인물을 통해, 끊임없이 관리 시스템을 찾으려는 체제와 그 체제가 지닌 정의롭지도 평등하지도 못한 디스토피아적 미래,  그로부터 탈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게이고의 작가의식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아침에 인터넷에 난 소식 중에 수원검찰 지청이 쌍용자동차공장 점거파업에 참여했다 형을 살았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DNA 시료채취를 위해 출두를 요청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법 근거는 지난 해 제정된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것이라는데, 조두순 사건 등을 계기로 아동대상 성범죄라든지 흉악범죄를 저지른 자들의 DNA를 채취, 관리함으로써 수사를 쉽게 하고 재범 방지를 위해 '국회가 합의해 만든 법'이라고 검찰 측은 전혀 문제될 것 없다는 식이다. 노동자의 파업 행위에 '폭력행위'가 있으므로 폭력범의 DNA를 채취하는 것일 따름이라는 해석이다. 범위가 어디까지 넓혀질 수 있겠는가. 어디까지 가봤냐며 마일리지 찍고 다니는 것 보다 어디까지 탈주해갈 수 있을지 생각해볼 시기가 이미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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