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러브시의 [마지막 형사]는 [가짜 경감 듀]보다 재미없었다.
호수에서 발견된 벌거벗은 여자 시체 한 구. 물에 버려진 지 2주는 된 듯해서 신원파악도 어려운데 겨우 몽타주를 만들어 TV 등에 알려 공개수사를 하던 중 남편이라는 영문학 교수가 자신의 아내인 듯 하다며 경찰에 나타난다. 여자는 한 때 유명한 배우였고 남편은 2주 전 일 때문에 급히 출장을 떠나던 아침에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돌아왔을 때 아내가 없었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친구집 어딘가로 놀러갔을 거라고만 생각했다고 진술한다. 과학수사가 바야흐로 수사 시스템으로 도입되고 대세가 되는 흐름 속에서 중년의 경정 피터 다이아몬드는 자신과 같은 경찰이 형사질을 하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 남편의 진술을 들으면서 다이아몬드는 남편의 혐의를 직감하는데, 이쯤되면 남편의 진술이 진실일까, 그 진술 속에 반짝이는 허점은 없을까, 남편은 왜 아내를 살해했으며 남편이 갖고 있는 알리바이는 어떻게 무너질 것인가 또는 마지막 반전은 무엇일까 따위로 중반 이후 독서를 자극하기 십상이다. 그걸 잔뜩 기대하기도 하고. 나 같은 독자는 애초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뒤이어 나오는 사건 전개들이 이와 어긋날 때 독자의 추리와 상상 이상의 반전이나 놀라운 트릭, 트릭을 깨는 기막힌 추리, 합당하고도 독자의 회색 뇌세포를 울리며 드러나는 숨겨진 진실 등이 있으면 그 작품에 무릎 꿇게 되는 것 같다. 작가를 숭앙하며. [마지막 형사]는 그 재미를 주지는 못했다.
[가짜 경감 듀](1982)는 역사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역사 추리소설에 장점을 지니는 작가라는 평답게 1920년대 초 시대를 배경으로 실제 인물과 사실, 허구를 교직하며 신선한 아이디어를 잘 살린 유머러스한 작품이었다. 주인공은 지긋지긋한 아내(역시 여배우다. 런던의 연극무대를 떠나 찰리 채플린이 초대한 할리우드를 꿈꾸며 떠나는)를 살해하기 위해 공범이자 아내를 자처할 새로운 연인과 대서양 횡단 호화여객선에 승선한다. 빈틈없이 준비한 마누라 죽이기는, 주인공이 전설이 되어 은퇴한 경감 듀를 자의반 타의반 맡게 되면서 뜻밖의 상황으로 흐른다. 배에서 실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데 주인공은 의외로 도취되어 간다. 소설은 아주 유머러스한 상황과 대사로 시종일관 흥미진진했다.
피터 러브시 작품 몇 편이 후속출간 된다니까, 기대해본다.
반면, 자음과 모음의 제2회(2010) 네오픽션상 수상작인 [살인자의 편지]는 살인자가 누구인지 중반쯤 읽다보면 짐작하게 된다. 점점 확신을 하게 되고 이후는 작가의 수가 짐작되고만다. 결말은 요즘 흔하게 보는 식으로 정리된다. 김훈 작가를 몹시도 좋아하는 작가 유현산의 글에서는 몹시도 좋아하는 작가를 배우려는 자세가 읽힌다. 사람으로 포장된 모든 것들이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다가오는 느낌이다. 작가는 최대한 그런 냄새나는 현실을 다 담으려 애썼다. 사람은 죽어서 썩어가는 살덩이와 육즙의 혼합물일 뿐이며 사체부검은 그 절정이고, 10대 가출청소년들의 적나라한 밑바닥 모습, 노숙, 화재진압하는 소방대원들의 악다구니, 등등. 인간의 품위란 헛것이며 죽음의 길에서 완전히 발가벗겨지는 그 모든 것들을 점점 더 세밀하게 꼬집어 드러내는 요즘 한국 장르소설의 추세를 잘 볼 수 있다.
정유정의 [7년의 밤]을 읽으면서도 느낀 것인데, 문학적 용어로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자의식이 지나치게 개입되면서 각 인물들이 다른 처지, 다른 행동을 하더라도 거기서 거기인 인물들처럼 보인다. 인물들에게 부여되는 작가적 의식을 거쳐 나오는 설명, 묘사가 한결같다는 느낌이다. 대사도 그렇다. 그러다보니 인물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니라 모두 같은 인물들의 분신들일 뿐이다. 소설의 많은 분량이 그런 식으로 채워진다.
[살인자의 편지]는 이런 작가의 초조감이랄까, 인물들을 반드시 설명해줘야 한다는 작가전지적 태도 때문인지 살인자가 누구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작가의 의도인가? 왠일인지 살인자에게만은 그 설명이 없다, 마지막에 드러나야 하기 때문에?
요즘 소설들은 왜 그다지도 두꺼운지. 아주 힘들어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