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봄바람을 만끽하기엔 세상 공기가 그다지 쾌청하지는 않은 요즘이다. 일본 작가들은 안녕들 하신지. 오랫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플래티나 데이터]를 읽다. 

 

 

 

 

 

 

 

 

조르주 심농도 들쳐보던 터라 이른바 장르소설이 시간을 견디고 오래토록 계속해서 읽히게 되는 조건들이라면 어떤 걸까를 생각해보곤 했다. 심농은 필립말로를 창조한 레이몬드 챈들러도 무척이나 좋아했던 작가라고 하는데 심농과 챈들러의 문체는 극과 극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항상 '물질적인' 단어만을 쓰려고 해왔소. 탁자, 의자, 바람, 비 같은. 만일 비가 온다면, 나는 '비가 온다'고 쓸 뿐이오. 내 책에서는 물이 진주가 되는 일 따위는 눈을 부릅뜨고도 찾지 못할 거요", 라고 심농은 말했다. 나이를 먹어가는 말로는 담배 연기가 '섬유 속을 거쳐 나오는 안개 같은 맛'이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심농의 소설이라곤 고작 중편 두 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문체에서 뿜어내는 매력이 그다지 강렬하지도 않고, 강렬한 캐릭터가 끌어가는 힘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주제나 소재를 장악하여 플롯과 인물 행동 동기에 대한 사회학적 논리를 잘 구사하는 능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플래티나 데이터]는 전 국민의 DNA를 국가가 수집, 데이터하여 시스템화함으로써 범죄를 해결하고 예방효과까지 달성하려는 과학자들의 욕구와 그 시스템에서 자신들의 데이터만은 변형, 삭제함으로써 특권을 고수하려는 이해관계가 관철되는 제도가 정착되는 상황을 가상한 범죄 미스터리물이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는 인물과 순수한 과학자적 호기심과 본능으로 접근하는 '사이언티스트', 여전히 고전적인 발품과 수사적 머리를 써서 범죄를 해결하는 게 진리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형사 아사마 같은 인물을 통해, 끊임없이 관리 시스템을 찾으려는 체제와 그 체제가 지닌 정의롭지도 평등하지도 못한 디스토피아적 미래,  그로부터 탈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게이고의 작가의식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아침에 인터넷에 난 소식 중에 수원검찰 지청이 쌍용자동차공장 점거파업에 참여했다 형을 살았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DNA 시료채취를 위해 출두를 요청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법 근거는 지난 해 제정된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것이라는데, 조두순 사건 등을 계기로 아동대상 성범죄라든지 흉악범죄를 저지른 자들의 DNA를 채취, 관리함으로써 수사를 쉽게 하고 재범 방지를 위해 '국회가 합의해 만든 법'이라고 검찰 측은 전혀 문제될 것 없다는 식이다. 노동자의 파업 행위에 '폭력행위'가 있으므로 폭력범의 DNA를 채취하는 것일 따름이라는 해석이다. 범위가 어디까지 넓혀질 수 있겠는가. 어디까지 가봤냐며 마일리지 찍고 다니는 것 보다 어디까지 탈주해갈 수 있을지 생각해볼 시기가 이미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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