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VS 사람 - 정혜신의 심리평전 2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새학년이 시작되고 새학기가 시작될 때 나의 업무 리스트 상위랭킹에 반드시 올라가고야 마는 일 중의 하나는 바로 아이들과의 상담이다.

올해는 오랜만에 담임을 하지 않는지라 상담에 대한 부담이 없지만 담임을 맡게 되면 피해 갈 수 없는 관문이기도 한 상담.

우선 처음에는 아이들 번호와 얼굴 익히기를 시도한다. 특히 아이들 이름 중에 지영이나 은영이, 지현이(그리고 요즘에는 보람이, 아람이)같은 이름은 한 반에 두 명씩 있는 경우가 많고 그것고 성까지 같을 경우에는 하루라도 빨리 이름과 얼굴을 매치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일단 담임맡은 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새 반을 맡고서 하루나 이틀지나 일차 얼굴익히기가 끝나면 확인도 할 겸 번호순대로 상담을 시작한다.

그런데 요즘에와서 특히 이 책을 읽는 도중 중간중간, 머리 속을 스치는 상담의 상황상황들을 돌아보며 느끼는 것은 "과연 나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정말로 이해하고자 하였는가"하는 점이다.

"...병든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10대 초반의 소녀 가장에게 '나도 사글세방에 살아 보아서 잘 안다. 그래도 너는 내가 겪은 가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은 이렇게 정부에서 도움이라도 주고 있지 않니. 용기를 잃지 말거라" 라는 식의 위로가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그 소녀 가장이 이명박의 어린 시절보다 덜 가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그 소녀가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허구헌 날 폭력에 시달리며 성장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때는 물리적 궁핍함보다 정서적 황폐함이 더 문제가 된다. 배를 곯지는 않지만 생활보호대상자라는 처지가 부끄러워 친구들과의 관계가 힘겹다면 그 또한 어떤 식으로든 배려할 방법을 찾아야 할 문제다. 가난의 정도라는 하나의 잣대로만 한 사람의 상황을 판단할 수는 없다. '배부른 투정'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무지한 관용구로 넘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자신의 개별적 경험과 단순비교하여 '그래도 니가 나보다 낫다'는 식의 포괄적 인식은 인간의 개별성을 휘발시켜버린다. 동일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로 인한 고통이나 기쁨 같은 감정보타 똑같은 것은 아니다.(본문 28쪽)

아차싶었다.

꼴에 그들보다 몇 살 더 먹었다고, 그들처럼 힘든 고등학교 생활을 했으며,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때문에 가출충동을 매일 느끼고 살았으며 부모님과의 심각한 갈등도 경험해 보았고 입시에 시달리며 죽고 싶었던 기억도 있기에 너희들의 고민 내가 다 안다 - 는 식으로 아이들을 대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의 특수한 상황을, 부모의 이혼과 가출과 가난과 집단따돌림  등등을 선생님이기 때문에 다 안답시고 아는 척하면서 주절대는 내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속으로는 쓴 웃음만 짓다가 교실로 돌아갔던 것은 아닐까.

상담 열심히 하고 아이들 입장에서 이해하고 그래서 아이들과의 관계가 어느 선생님보다도 도탑다고 자부했던 나의 교만함때문에 챙피해 미칠 지경이다. 그런거였구나... 상담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어깨가 그토록 무거워 보였던 것은 그때문이었구나.

다른 이들은 이 책에 실린 여러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평을 두고 호, 불호가 정확히 나뉜다. 그런데 나는 엉뚱하게도 그 여러 인물들에 대한 평가가 재미있다, 없다를 떠나  이 책을 상담 실전서로 읽었다. 그러면서 위와 같은 상황에 대한 고민때문에 더없이 마음이 무거워 졌으니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하나를 뺐다. 하지만 나에게 상담자로서 내가 가져야 할 자세와 '진심으로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라는 고민거리를 던져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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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3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5-23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담 실전서로 정말 굿!이겠어요.
리뷰 재밌게 읽고 갑니다.^^

서연사랑 2005-05-23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 신고접수, 수정완료!
왜 그랬대요...(부끄부끄..졸면서 썼나..으으)
꼼꼼히 봐 주시고 재미있다 해 주셔서 감사해요^^

딸기 2005-05-26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추천.

돌바람 2005-07-05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처럼 좋은 선상님한테 상담 받고 싶어지는걸요. 왜 서른 넘은 아줌마의 이야기는 수다가 될까, 잠깐 생각해보았습니다.

서연사랑 2005-07-06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 중의 하나는, 저는 절.대. 좋은 선생님이 아니라는 것입지요....과찬이세요.
하지만 상담말고 대화는 언제든지 가능해요. 제가 은근히 상대방 얘기를 잘 들어주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