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크레파스 웅진 세계그림책 4
나카야 미와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웅진주니어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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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지금이야 선물이라면 뭐니뭐니해도 머니가 제일 좋긴 하지만(으으..속보여...)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는 색연필이나 크레파스정도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아이들 12색이나 24색 크레파스 쓸 때 왕자표 48색이나 60색 크레파스 하나면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주위를 평정하고도 남았으니까.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도 문방구에 들릴때면 집에 래핑도 뜯지 않는 새 크레파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크레파스를 만지작만지작하면서 애처로운 눈길을 내게 보낸다. "엄마, 집에 있는 크레파스, 다 써버리면 어떡하지?" 하면서...

그러니 크레파스가 주인공인 이 그림책이 우리 아이의 레이다망에 포착되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

처음에는 '색깔 공부하는 그림책인가보다' 하고 무심히 책장을 넘겨보기 시작했다. 노랑 크레파스가 나와서 예쁜 나비를 그리니 빨강과 분홍 크레파스가 튤립과 코스모스를 그리고 초록과 연두가 나와서 줄기와 이파리를 그리고 황토색와 갈색이 나와서 나무와 땅을 그리고....

선명한 색감도 예쁘고 크레파스 고유의 질감이 잘 나타나는 귀여운 그림속에 흠뻑 빠져 있는데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까망이, 친구들에게 묻는다. "나는 뭘 그리지?" 

아차, 까만색이 남아있었구나. 크레파스를 쓰다보면 제일 먼저 노랑색이나 살색(인종편견이 고스란히 살아있는)이 닳아 없어지고 마지막까지 남는 색깔이 하얀색과 검정색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까만색은 도화지 뒷면에 이름을 쓰거나 창문의 창살을 표현할 때 말고는 쓸 일이 없어 쓰다가 부러져도 별로 안 아까와 했었지.

그런데 까망이의 활약은 이제부터다. 다른 색깔 친구들이 잘난 척 하면서 결국에는 그림을 망쳐버리자 이것을 멋진 불꽃놀이 장면으로 바꾸어 놓는 우리의 까망이.

슬며시 아이 얼굴을 보니 다른 색깔들이 까망이를 무시할 때는 입을 삐죽삐죽하더니 까망이가 제대로 자기 역할을 해내자 소리없이 빙그레 웃고 있다. 어린 눈에도 까망이가 쓸모있게 제 역할을 해내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이나 보다.

그래, 아이야. 살다보면 우리가 너무나 쉽게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지나치는 것들이 바로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보석과도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단다.

내가 아니라고 해서, 나와 다르다고 해서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지 말자.

나와 '다름'을 '틀린 것'이라고 하지 않을 때,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릴 때 비로소 나도 타인에게서 인정을 받는 사회가 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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