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제은 교수의 자기 사랑 노트 - 2009년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오제은 지음 / 샨티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다 시들어서 죽은 줄 알았던 화분의 나무가 다시 새싹을 돋우는 놀라움을 만난 적이 있다. 다 시들어도 뿌리만 살아있다면 다시 자란다. 다 무너져도 삶의 뿌리만 살아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부모, 형제, 자녀, 친구… 그리고 하나님, 사랑의 근원은 절대 뿌리 뽑히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뿌리와 잘 잇닿은 생명력이다. 그렇게 결국은 사랑 때문이고 결국은 사랑이다.

이해인 수녀도 메마름, 불안, 외로움, 불평 속에서 사랑의 부재를 봤다. “내 마음이 메마를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메마르게 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메마르고 차가운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불안할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내가 불안하고 답답한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이해인 時, 「내 마음이 메마를 때면」)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보이면 사랑의 부재는 허상으로 드러난다. 다만 보지 못할 뿐이다. 어떻게 늘 사랑과 이어져서 사랑으로 숨 쉴 것인가? 기도, 영성, 섬김, 연대와 참여… 수많은 길이 있지만 그 모든 길이 반드시 지켜내야 할 길이 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으니.

오제은 교수의 『자기사랑노트』(샨티, 2009)는 자기와 화해하고 사랑하게 된 삶의 이야기다. 3년 반 동안 자살 충동에 시달린, 대인기피증 환자였던 저자, 너무나 미워서 죽이고 싶었던 자신을 다시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랑으로 다른 이들도 사랑하며 서로를 치유하게 된 여정을 조심스레 고백한다. 사랑이 이끄는 치유의 길을 책에 담긴 한 이야기를 통해 나누고 싶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가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에게만큼은 내 감정이 절제되지 않는다. 아내와는 알 수 없는 대화의 장벽이 있다. 심지어 나의 행동이 항상 아내에게 감시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그런데 그룹의 인도자는 나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그분의 말씀이 ‘내가 믿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내 아버지의 이미지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너무도 억울했고, 마음속에 이는 분노를 이길 수가 없었다. 나는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통곡했다. 일 년 전 어머니의 주검 앞에서도 소리 내어 울어보지 못한 내가…”(140)

그는 다른 이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곤 그녀를 껴안고 통곡한다. 자기 안의 바윗덩이를 치울 방법을 구하자 그로서는 큰 용기가 필요한 방법을 듣는다. 그날 저녁 숙소에서 그 방법대로 아내에게 고백한다. ‘여보, 당신을 사랑합니다. 여보!’ 처음으로 ‘여보’라는 말을 건네자 그 한마디에 바윗덩어리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사랑이 선사한 새 세상을 만난다.

“아내의 얼굴이 달라 보였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아내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내가 그렇게 자랑스럽고 행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밤새도록 ‘여보’라고 불렀다. 17년 동안 못해본 ‘여보’를 그 밤에 다 불러버린 것 같다. 행복한 아내의 모습 속에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도 보였다. 그날 밤 이후로 나의 모습이 확 달라졌다.”(141)

절대로 아빠처럼, 엄마처럼 안살거야! 하지만 어느새 그렇게도 싫었던 그 모습 그대로, 그 표정, 그 성격과 똑같이 살아가는 자신을 만난다. 내가 증오하던 그 누군가를 뛰어넘지 못하면, 누군가를 증오하는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면, 내 마음도 내 삶도, 내가 믿는 하나님도 그 상처 안에 갇히고 만다. 하나님도, 믿음도 상처를 주는 가시가 되기 쉽다. 물과 불이 함께 일 수 없듯, 증오하는 마음 안엔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 수 없고, 독 한 방울이 맑은 물을 독으로 물들이듯, 온전한 사랑과 증오는 함께일 수 없다. 마지막 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 때에야 단 한 사람이라도 마음껏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 이끄는 회복과 치유의 길은 늘 우리 곁에 열려 있다. 이 책에 담긴 치유와 회복의 사연들이 사랑의 손잡고 길 떠날 설렘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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