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us All 예수로 충분합니다
튤리안 차비진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1. 최근 1, 2년 사이에 신앙의 기초와 본질에 대한 책들이 개신교계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래디컬"이나 "펜인가 제자인가"... 그와 맥을 같이 한다고 알리고 싶었는지 검은 바탕에 제목만 흰 글씨, 펜인가 제자인가라는 책과 동일한 디자인이다. 사실 그래서 시선이 갔고 펼쳐 보게 되었다.

2. 한국의 개신교회가 기복적인 신앙과 교회의 외적 성장에 치우친 문제점은 오래도록 지적 받아왔다. '그건 아니다!'라는 목소리들이 들끓었고 끊임없는 추문이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알았기 때문에 그럼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 필요했던 것일까. 개신교 서점가에서는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책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뿌리를 튼튼히 하고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거대한 물음일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그 대답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을 수 있다. 바로 나 자신이 그 대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JESUS ALL, 원제 Jesus+Nothing=Everything 이 책도 믿음과 신앙의 본질을 묻고 있다. 정말 예수님이면 충분한가?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참 신앙인가? 목회로 승승장구하던 저자 튤리안 차비진 목사가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믿음의 본질을 새롭게 깨닫는다. 실패의 위기, 사람들의 비난 등 일생일대의 난관을 속에서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고백한다. 예수님이면 그것으로 족하고 충분하다고, 그리고 예수님+something은 은밀하고 교묘한 우상숭배일 뿐이라고.

4. 차비진 목사는 그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예수님만으로 충분한 믿음을 나타낸다. Jesus+0=Everything이라고. 예수님+부흥, 예수님+성과, 예수님+성공, 예수님+평안... 이 모든 것은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정의롭고 가치 있어 보여도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율법주의 역시 예수님+도덕주의, 예수님+성과주의일 뿐이라고 본다. 이런 신선한 표현은 믿음의 본질을 다시 곱씹어 보게 한다. 자신의 믿음이 혹시 + 뒤에 붙은 무엇인가를 위해 + 앞에 있는 예수님을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지. 또한 우상숭배라는 것이 지극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모습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교묘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5. 예수님이면 그것으로 충분한 믿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신앙인이라면 적어도 귀에는 낯설지 않은 믿음일 수 있다. 하지만 삶에는 너무나 낯선, 삶과는 아찔한 괴리가 있는 믿음이다. 감동적인 찬양으로 고백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찬양은 찬양일 뿐 삶에서도 가능하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 삶에서 가능하지 묻기 전에 삶에서 가능하기를 기대하기는 하는 것일까? 어쩌면 삶과의 그 아찔한 괴리는 불가능하기 때문이기 보다는 가능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6. 펜인가 제자인가 처럼 재치 있고 번뜩이는 비유나 예화 등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는 않는다. 정말 예수님이면 충분하다는 주장처럼 주로 성경말씀을 찬찬히 풀어간다. 그래서 좀 읽어나가는 과정이 퍽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난 예수님으로 충분한 믿음 안에 있는가? 왜 그런 믿음이어야 하는가? 어떻게 예수님이면 충분할 수 있는가? 물론 차비진이 이런 물음들에 대해 대답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정직하게 이 질문 앞에서 서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자신만의 정직한 대답과 삶의 열매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책은 적어도 내겐 성공적이다. 그 물음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7. 기억해두고 싶은 화두가 있다. 저자의 관점이 그런지는 모르겠다. 다만 책을 읽어나가다가 떠오른 화두다. 우선 예수님으로 충분한 믿음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나 하나만을 바라보면 충분하다고 자족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부조리한 세상에 착취당하며 고통 당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도 예수님이면 족하다고, 그러니 그들도 족하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8. 또 한 가지는 예수님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자칫 더 교묘하고 은밀한 자아집착은 아닐까 하는 물음이다. 예수님 안에 온 우주의 충만함이 깃들어 있으니 다른 것을 다 포기하고 예수님만 선택하면 결국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처럼 읽힌 부분들이 있다. 만일 이것이 예수님으로 족한 믿음이라면 결국 모든 것을 소유하기 위해 예수님을 택하는 자아의 욕망은 그대로가 아닐까? 아니 더욱 강력해지고 견고해지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을 택할 때, 모든 것을 잃어도, 예수님을 통해 충만함을 누릴 수 없다 해도 충분할 때, 정녕 자신은 죽는 참 믿음이 깨어나는 것이 아닌가. 결국 그 대답은 내 신앙의 현실 속에서 드러나고 확인되어야할 것이다. 예수님이면 충분한 그 사랑이 내 안에 두근거릴 때 진실은 분명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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