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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 - 한국인의 종교경험
차옥숭 / 서광사 / 1997년 11월
평점 :
개신교인으로 자라나 타종교에 대해서 배타적인 관점을 지니고 자라났습니다. 특히 무교 보통 무당이라고 하는 무속에 대해서는 더욱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게 되었죠. 그러던 제가 무속을 무교로 보게 하고 무당을 새롭게 보게 된 것은 이 책을 쓰신 차옥숭 교수님을 만나 배우고 이 책을 읽으면서부터 입니다. 물론 그 교수님도 기독교인이셨죠.
이 책은 무교에 대해서 종교학자로서의 분석과 함께 무당과 굿에 참가한 사람들의 고백을 전해줌으로써 무교의 생생한 모습을 전해줍니다. 단순히 학문적 분석을 통해 전해지는 경우에는 대부분 서구 종교학의 기준과 신학적 범주를 통해서 무교를 분석하기 때문에 객관적이라 해도 무교의 진면목이 은폐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무교인의 고백을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에 그런 한계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다른 무교관련 서적과의 차별성이죠.
특히,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강신무가 되기 위해 내림굿을 받을 때 앞으로 무당이 되어서 살아가야 할 길을 일러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무당들은 애초에는 무당일을 너무나 하기 싫어합니다. 사람들의 경멸하는 눈초리, 온갖 사람들의 고통과 한을 나누고 치료해줘야하는 힘겨움.... 그 길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니까요. 어쩔 수 없이 무당의 길을 받아들이게 되고 신을 모시는 내림굿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 그 길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알려주는 공수의 전통적 내용에는 원수된 자를 사랑하고 모든 백성의 아픔을 치료해줘야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미신이고 이 사회의 병패라고 알고 있던 무당의 길이 그런 것을 지향할 줄이야....기독교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이 기독교만의 독특한 종교성이라고들 합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알고 있던 제게는 충격적이었죠.
또 다른 내용에 보면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좌우익 이념 투쟁 중에 섬전체에 엄청난 인명피해가 있었죠. 공식적으로 거론할 수 없었던 4.3사태에 대한 비판은 우환굿이 벌어지는 굿장에서 울려퍼졌었죠. 굿장이 바로 사회 정치적 불의에 대한 비판의 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민중의 아픔이 연관된 것이라면 정치적 위협 앞에서도 폭로하고 비판하며 치유해주는 것이 무당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정치와 사회가 불의로 가득하고 약자들이 억압당하고 고통에 울부짖었던 시절 교회의 침묵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그 모습이었죠.
"무교는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며 현세의 복에 집착한다", "무교는 비윤리적이고 사회적 관심이 결여되어있다", "미신일 따름이다." 등의 편견이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씩 하나씩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무교가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 동안 힘없고 가난하고 억압당한 민중의 아픔을, 그 한을 함께 풀어주고 복을 함께 나눠왔던 아름다운 종교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종교 전통을 만나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