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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으며 작가는 왜 이런 소재로 작품을 쓸 생각을 했을까 하는 점이 궁금했다. 전작들과는 너무 다른 색깔을 보여줘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냥 쓰인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반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난감한 문제였다.
이 책이 픽션이면서도 그다지 내가 공감할 수 없는 것은 뭐, 소설을 공감하면서 읽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한 번도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백수 15년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 속 내용은 내게 그저 소설일 뿐이고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래서 읽는 중간 중간 직장을 다니는 동생에게 이런 사람이 있느냐, 어떠냐, 이런 일은 일어나느냐를 물어보았다. 와 닿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띠동갑>을 보면 직장 생활을 하는 여자가 아니더라도 나이 많은 여자든, 나이 어린 여자든 또는 여자든 남자든 모두 잘생기고 호감 가는 사람이 나타나고 그와 함께 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있으면 어떤가. 무슨 깨달음을 주려는 것도 아니고 한 여름 시원한 꿈이라도 꾸어본다면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처럼 좋게 끝난다면 말이다.
<히로>는 세상에 이런 남자가 많으면 좋겠지만 이것도 정말 말 그대로 맞는 사람이어야 하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안 맞으면 이것도 문제니까. 맞는 사람과 서로 맞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안 맞는 사람과의 불협화음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 또한 좋은 일이라 생각된다. 세상이 그리 만만하다면 말이지만.
<걸(GIRL)>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까 나는 한 번도 걸이었던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음의 발랄함이 무기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그것으로 우대를 받는다거나 해본 적도 없었고 또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모습이든 자신만만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은 좋다. 눈치 보지 않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언제나 좋아 보인다. 어차피 한번 사는 세상인데 나이에 연연하고 결혼에 연연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생각에 신경 쓰면서 산다는 건 무엇보다 피곤한 일이니까. 그리고 우린 모두 마음속에 자신을 풀어 놓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하고 말이다. 중요한 건 걸(GIRL)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자신이 하느냐 못하느냐다.
<아파트>는 그 안의 여자보다는 그것으로 인해 그들이 그동안 경멸하던 수동적인 남자들을 측은하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이 초점이 아닌가 싶다. 남자들의 편 가르기가 심한 아직도 남성중심의 회사에서 남자들은 그곳에서도 주눅 들어 살아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가 단순히 가정이라던가 하는 일차원적인 문제에 한정된 것은 아니겠지만 산다는 건 모두 그렇게 몸부림치는 것이라는 것, 명품 하나에 안달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에 안달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그런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조금씩 서로 이해하라고 사이를 좁혀주는 작가의 모습에서 언뜻 이라부가 보인다.
<워킹맘>에서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동정은 사양하지만 현실은 인정한다고 말하고 있다. 약간 기대는 것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기댈 수 있는 품을 만들어주는 그 사회가 부럽다. 우린 아마 이런 모습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이 작품이 가장 부러웠다.
생활은 생각과 다를 것이다. 소설은 현실과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드라마 작가가 이런 비현실적인 내용이 어디 있냐고 시청자가 항의하니까 내 주변에 있었던 실제 이야기라고 했다는 생각이 났다. 이런 여자들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 사람들이 많으니 이런 사람들도 분면 존재하겠지. 어쩜 많은 여자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마지막은 언제나 타협하고 화해하고 회복하고 좋게 악수하고 끝낸다.
작가는 그저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나름 이해하고 측은지심으로 산다면 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 저기서 그런 뉘앙스를 팍팍 풍기는 것이 마치 자신이 이라부인 것처럼 쓴 것 같기도 하다. 언뜻언뜻 그런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나도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떻겠는가. 그 여자들 안에서 남자들도 보인다. 모두가 안쓰러운 존재인 것을... 그저 한 세상 좋게 살면 되는 것이고 이 여자들은 알아서 잘 살겠지. 나는 내 삶이나 잘 살아보자. 책을 덮으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어 우울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역시 이 작가 사람 마음의 병을 고칠 줄 아는 이라부 같은 작가다.
우울하고 생활이 심드렁한 사람들에게는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보라고 권해야겠다. 어떤 작품이든 어떻게든 일단 우울함은 날려준다. 이 작가만의 대단한 매력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