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의 주파수
오츠 이치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당신은 지금 어느 주파수로 누구와 얘기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혼자 라디오 주파수에 맞추고 일방 통행중이신가요?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제목만으로도 왠지 끌리는 책이다. 쓸쓸함이란 주파수는 어떤 것일까...


이 단편집에는 모두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맘에 드는 단편은 물론 <필름 속 소녀>다. 환상적이면서 미스테릭한 이 작품은 한 남자의 일방적인 얘기다. 남자는 말을 한다. 상대방에게. 우리는 그가 누구와 대화하는지 마지막에 가서야 알 수 있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게 만든다. 궁금하게 만든다. 누구에게 얘기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진다. 필름 속 소녀와 더불어. 단편추리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독특한 것은 이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군가에게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다. 그 주파수는 과연 어떤 식으로 맞추게 되는 걸까...


첫 번째 작품 <미래 예보>에서 소통은 예보가 아닌 생각임을 각인시킨다. 아무런 일도 없이 친구의 말 한마디 때문에 더 소원해진 초등학교 동창인 남녀가 그 뒤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만남 한번 갖지 않았으면서도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슴속에 담고 있었다는 것은 마치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의 풋내처럼 읽는 내내 다가왔다. 그 소통은 단절이 아닌 그런 소통, 그런 주파수도 엄연히 존재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두 번째 작품 <손을 잡은 도둑>은 손을 맞잡은 도둑과 벽을 사이에 둔 도둑질 당할 사람의 소통을 담고 있다. 재미있는, 그러면서 아이러니한 작품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밝은 주파수를 내뿜고 있다.


네 번째 작품인 <잃어버린 이야기>는 매일 다투고 소원해진, 그래서 어쩌면 사랑이 식어가고 있는 한 부부가 남자의 교통사고로 인해 신경이 살아 있는 오른팔과 손가락 하나만으로 소통하는 이야기다. 아내는 그 남편의 팔에 피아노를 연주한다. 하지만 남편은 의식만 있을 뿐 자신이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통을 단절한다. 그것은 그에게 자살과도 같은 일이었지만 때론 소통의 단절이 다른 소통을 여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소통에서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세상에는 참 많은 주파수가 있다. 쓸쓸함의 주파수, 기쁨의 주파수, 불쾌의 주파수, 즐거움의 주파수... 매일 매일 우리는 어떤 주파수에 자신을 맞추고 살아가고 있다. 다행한 것은 우리가 그 주파수를 맞출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매일 주파수를 맞추고 있었다. 이 작품을 읽고 더 좋은 주파수에 맞춰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쓸쓸함의 주파수는 근사해보이지만 매일 맞출 수는 없을 것 같아 가끔 그리울 때 한 번씩 맞추고 싶다.


작가와의 주파수라는 것이 있어 내가 맞추기만 하면 작가들이 우루루 나와 주면 얼마나 좋을까. 모르고 지나갔을 지도 모르는 책을 알게 해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소통은 이렇게 여기에서도 맞추어져 있다 생각하니 더 많은 전파를 쏘아 올리고 싶은 기분이다. 내 전파를 받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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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dai2000 2006-04-11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얇아서 가볍게 볼 수 있지만, 그렇게 녹녹치만은 않은 단편집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굉장히 재미있죠. 오츠 이치 귀엽고 재능있어요. 팬 됐어요..^^;;

물만두 2006-04-1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 맞아요. 이 작가를 어떻게 추리소설 쪽으로 끌어들이고 싶답니다. 그런데 글을 안쓴다니 일본가서 방에 가두고 글을 쓰게 할까봐요^^;;;

비연 2006-04-11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만두님. 미저리 생각나요...^^

물만두 2006-04-1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으헉~ 비연님 흐흐흐 좋은 생각이 났어요~ 일루와요=3=3=3

한솔로 2006-04-1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킹이 짜투리 시간에 심심풀이로 단편을 썼다고 하는데, 오츠 이치도 왠지 그런 식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겨우 단편집 두 개를 봤을 따름이지만 예측불허의 재능이라고 할까요

물만두 2006-04-11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 그러니까 붙잡으러 가자구요. 이 작가는 글을 써야 한다니까요~^^

비연 2006-04-12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왜 이러심까...허걱! 달아나야징~ 헐레벌떡~~~

물만두 2006-04-1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을 잡아서 감금하고 작가 대신 글쓰기 시킬라고요^^ㅋㅋㅋ

부리 2006-04-1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릴 적에 감전된 적이 있어서 님의 전파를 받아들이기 무섭네요...

물만두 2006-04-12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무쓴쏘리~ 제 전파는 감전없는 전파에욧.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