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진부하고 간단하면서도 낯익은 소재, 그 소재를 가지고 한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그리고 나는 빠져든다. 로렐라이의 노래에 라인강을 건너다 빠져 죽은 뱃사공처럼...

우리나라도 학벌 때문에 부모가 전전긍긍하며 학원이다, 과외다 난리를 치지만 일본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코스가 정해져 있어서, 우리나라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유치원부터 정해진 곳에서 다녀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결국은 도쿄대학까지 이어지고 학연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상위 계급에서 떨어져나갔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부모들은 휴가 때 별장을 빌려 아이들을 그룹 과외를 시킨다. 모두 같은 중학교를 목표로. 초등학생, 일본은 소학생이겠다, 을 벌써부터 이렇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뿐일까? 이것뿐이라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니다. 하지만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원제목이 レイクサイド 다. 영어로는  The Lakeside Murder Case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렇다. 반 다인의 모든 작품이 이런 식의 제목으로 쓰여 졌다. 일본 사람들은 반 다인을 좋아한다.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이 작품이 그런 옛날 풍의 본격 미스터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사회에 대한 비판도 담겨있는 것은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물론 본격 미스터리물도  다 나름의 시대상은 반영한다고 보지만 말이다.

반 다인이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인기가 없다. 그렇다면 이 작품도? 할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독자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모르는 독자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이라는 대작을 생각하고 본다면 <게임의 이름은 유괴>에서처럼 실망하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이 작품을 우리 실정을 상기시키고 우리에게 돌을 던져 생각할 기회를 주는 작품으로 읽었으면 한다.

이 작품은 단지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만 권하고 싶은 작품이 아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이 작품을 꼭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자신들을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이 작품에는 공교롭게도 쇼타라는 이름의 아이가 등장한다. 쇼타... 낯익은 이름이다. 미스터 초밥왕의 주인공 이름도 쇼타였다. 하지만 그들의 처지는 얼마나 다른가. 한 소년은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에 매달려야 하고, 멋진 별장에 놀러 와서도 과외를 받고. 다른 한 소년은 스스로 중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아버지의 대를 이어 초밥집을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두 작품 모두 허구다. 그리고 어쩌면 이 작품이 더 사실적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바라는 인물은 후자의 쇼타다. 이율배반적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자식에게 이 작품에서처럼 아낌없이 베풀고 싶지만 정작 자식에게 바라는 모습은 후자라는 것을...

전자와 후자는 양립될 수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초등학생이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고 사는 게 지겹다는 이유로 자살하는 경우는 없어야 하지 않을까. 어른인 우리들은 적어도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작품은 순스케가 진정한 아버지가 되어 가는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부모가 된다는 건? 아마 섶을 지고 불속을 들어가라고 할 때 들어가는 마음 아닐까... 때론 하기 싫고 벗어 던지고 싶고 아니다 싶어도 결국은 지고 가야 하는... 물속에 들어가면 소금 가마니의 소금은 녹는다. 부모가 자식에게 맹목적이라는 건 이런 것이다. 부질없는...

고등학교땐가, 중학교때 맹목적과 무조건적이라는 단어의 차이에 대해 배운 적이 있었다. 부모의 사랑은 맹목적이어서는 절대로 안 되지만 무조건적이어야 한다고 배웠다. 부모가 아닌 나는 아직 그 차이를 모른다. 하지만 지금 부모인 분들은 아실런지... 그럼 이 책의 부모들이 맹목적인지, 무조건적인지 읽고 판단해보시길... 

참고로 맹목적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사물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된... 이고, 무조건의 사전적 정의는 아무 조건이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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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dai2000 2005-09-05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재미있게 봤습니다. 서양 고전 추리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한 듯 보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사회성도 들어가 있고요. <백야행>같은 대작에는 못 미치지만 즐길만한 여지가 많은 작품이죠. 사실 매 작품마다 <백야행>같은 필생의 대작을 기대할 수는 없잖아요. ^^;; 잘 봐주셔서 감사하고, 폐가 안 된다면 서평 좀 퍼가도 될는지요?

물만두 2005-09-0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서평을 잘 쓰지 못했습니다. 여러 생각이 교차해서,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실력이 딸리잖아요. 에고 매번 죄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야행 후편 환야가 있다던데 그 책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ㅠ.ㅠ;;;

jedai2000 2005-09-05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도 독자 여러분들이 뭘 기대하는 지 잘 알고 있답니당...^^;; <환야>노력해 보겠습니다. 그 작품도 분량이 꽤 되죠. <환야>는 <백야행>의 영광을 재현해보겠다는 작가의 자의식이 강한 작품이라 두 작품이 상당히 유사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작품들이 더 궁금해요. 어쨌든 <환야> 노력해 보겠습니다.

jedai2000 2005-09-05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콘웰 7편 <악마의 경전> 방금 발송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저도 못 본거라 기대가 되네요.

물만두 2005-09-0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군요... 다른 작품들도 많이 출판되면 좋죠^^ 그리고 저는 이 작품도 봤어요^^ 감사합니다^^

비츠로 2005-09-06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임의 이름은 유괴>가 경쾌했다면 이번 작품은 묵직한 것 같군요. <백야행>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인지 이 작가는 이런 분위기가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저도 빨리 읽어봐야겠습니다.

물만두 2005-09-06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그리 무겁지는 않아요...

2005-12-30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5-12-31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음... 아무래도 성적인 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본성인거 같아요. 레몬은 사실 제가 그때 별로 상황이 안 좋아서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읽고 판단하시길... 님께는 어쩜 르 귄의 작품들이 어울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그네 2005-12-31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성적인 면에서는 자유롭기 힘들죠,그래도 히가시노는 재능이대단한작가임에는 틀림없더군요
작가자신은 자기의작품이 덜많이 팔린다구 불평했다지만요
한국영화를좋아하는 일본분에의하면 현재의마야베 미유키나 과거의마츠모토세이치에비하면 조금은 덜 인정받는거에 압박감을 느끼는거같다고하더군요
대신 한국에서의평가는 마야베을 뛰어넘으니 그도 그걸알면 기뻐할거같애요
레몬은 저도 아직 안읽었습니다.
어슐러는 어스시의마법사가 가장 좋았는데 어렵고 요즘은 마야베 미유키에게 빠졌답니다.
지금읽고있는 이유가 걸작예감이니까요
그래도 호숫가도 재미있게읽었습니다.
현재의 평준화정책이 계속되어야하는 이유를 알게해준것만으로도 가치가있었거든요

sayonara 2006-05-26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도 쇼타라는 이름을 듣고 초밥왕을 생각했는데.. 이제 막 읽었는데, 꼭 시드니 셀던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재미있었습니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ㅎㅎㅎ

물만두 2006-05-26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요나라님 초밥왕^^ㅋㅋ 변신도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