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라부가 돌아왔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이라부가 주연이 아닌 조연이 된 것 같다. 하긴 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러 가는 환자가 있다면 그 환자가 주인공이지 신경정신과 의사에게 환자가 없다면 그가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인지했다는 듯 작가는 이제야 이라부를 약간 떨어져서 있게 하고 환자에게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색다르긴 하지만 재미는 반감되었다. 그리고 감동도 별로다.

 

<구단주>는 한 거대 신문사 회장이자 유명 야구 구단의 구단주가 겪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루고 있다. 젊은 사람도 그렇지만 아무 것도 없는 폐허의 땅에 이루고자 하는 열정 하나만으로 오늘날 번듯하게 이루어낸 분들이라면 쉽게 물러나서 나보다 더 잘할 인재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물러나면 이 모든 것이 한순간 옛날처럼 폐허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힐 수 있다. 이룬 사람은 이룬 업적에, 가진 사람은 지닌 것의 무게에 눌리게 마련이고 그것에 묶여 절대 한번 올라간 곳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내려오기 힘든 법이다. 우리는 이런 일을 매일 보고 듣고 한다. 정치인들이 한번 잡은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할 때, 경제인이 제 멋대로 주식차익을 얻거나 심지어는 학계 인사들이 논문조차 위조한 것이 들통 났을 때 그들은 그것이 모두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더 큰 뜻이 있어서인 냥,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고 말을 한다. 원하는 국민은 하나도 없건만. 이라부가 사회에 일침을 놓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이라부란 인물도 아버지의 든든한 후광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인물이니까. 그러니 좀 적당히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는 지점에서 제 발로 내려오는 모습 좀 보여주기를. 꼭 너무 높이 올라가서 추락하고 그때 받아주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려주는 대도 바보도 아니면서 코피 터지고야 사라지니 차라리 이라부는 귀여운 바보로나 보이지 바보가 바보가 아니라고 화를 내면 그것처럼 추한 것이 없다는 걸 얘기해주고 싶다.

 

<안퐁맨>은 딱 보는 순간 라이브도어 사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빨리빨리 후유증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잘하면 청년 알츠하이머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잖아도 나이 들면 받아쓰기 실력 줄어드는데 그거 자체가 비합리적이라고 말하면 나이가 든다는 것도 비합리적이니 얼마 살다 죽을 건가? 뭐든지 적당하지 않으면 화를 부르게 되어 있다. 합리적인 것이나 논리적인 것이 무조건 좋다는 건 좋다는 것일 뿐 옳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좋은 건 자기만 좋은 거지 남도 좋은 건 아니고. 그런데 작가는 라이브도어가 이기길 바란 모양이다. 사실 나도 라이브도어가 이기길 바랐다. 공룡과 도마뱀이 싸우면 도마뱀을 응원하는 게 당연하게 보여서... 그건 변화를 바라는 인간의 내면에 어떤 인자가 있어 끊임없이 전진을 외치게 하는 거 아닌가도 싶다. 변화는 당연하지만 조금만 천천히 하자고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카리스마 직업>은 요즘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난리인 동안 열풍이 소재다. 그런데 적당히 어려보이는 건 괜찮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사실 나이 든 분의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도 없다거나 흰머리 없이 까만 머린데 얼굴은 주름살이 가득하다거나 보여 지는 곳은 젊어 보이는데 우연히 보게 된 숨겨진 곳은 나이를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된다. 뭐, 그렇게 살고 싶다면 할 수 없지만 그런 모습으로 산다는 게 사는 건지 자신들도 아마 회의가 들 것이다. 그래도 성형은 점점 필수가 되어가고 있으니 거기에 운동 중독에 식이장애까지... 현대인에게 가장 위협적인 질병이 우울증이 될 거라는 말이 구체화되고 있다. 이런 얘기 보는 것도 우울하다.

 

<면장 선거>는 작은 섬에서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결국 모든 건 가진 자에게서 나온다. 없는 자는 약게 굴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곧 대통령 선거다. 설마 정치인에게 아직까지 도덕심이나 공명정대, 청빈 같은 허황된 것을 바라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정치 안한다. 이 작품을 보면 극명하게 나타난다. 경로당 노인들을 보고 배워야 한다. 누가 되었든 우리 마을, 우리 사회, 우리 국가가 잘되고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된다. 그 자리에 누가 올라 피 튀기게 싸우든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가위바위보만도 못한 선거판인데... 하지만 읽고 나니 아주 찝찝하다.

 

변한 이라부가 등장한 내용이 사실 마음에 썩 드는 건 아니다. 결국 신경정신과라는 곳도 있는 사람 드나드는 곳이었고 전편만한 속편 영화 없다는 말처럼 <공중그네>나 <인더풀>보다 못한 내용이었다. 재미 면에서도 말하고자 작가가 선택한 소재면에서도 그렇고. 그냥 이라부 한 번 더 만났음에 만족할 그런 작품이었다. 이제 이라부는 그만 나오는 게 낫겠다. 더 이상 신선한 매력이 없다. 떠날 때를 아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이제 이라부는 그만 떠날 때인 것 같다. 작가도 <구단주>에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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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26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단 당첨되어 어제 받았거든요. 전 오쿠다 히데오는 이작품이 처음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ㅎㅎ 오히려 나중에 읽는거니 재밌게 읽을 수 있겠죠?

물만두 2007-06-26 10:53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실 수도 있겠네요^^

홍수맘 2007-06-26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젠 이라부에게 작별을 고해야 할까요?

물만두 2007-06-26 10:53   좋아요 0 | URL
저는 작별의 심정으로 책을 덮었습니다 ㅠ.ㅠ

울보 2007-06-26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전 그래도 아마 또 출간되면 다시 살것같아요,왜 그냥 끌림으로,

물만두 2007-06-26 12:28   좋아요 0 | URL
울보님 그게 시리즈를 읽는 독자의 운명입니다. 저두요 ㅜ.ㅜ

jedai2000 2007-06-26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까진 전 재미있더군요. <면장선거>편에서는 무지 웃었는데, 그 공무원이 좀 불쌍하기도 하더라구요 ^^

물만두 2007-06-26 12:29   좋아요 0 | URL
저도 웃기는 웃었는데 웃고나니 좀 씁쓸한게 뒷맛이 영 개운하지가 않더라구요^^:;;

전호인 2007-06-2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한번 읽어봐야 겠는 데요. 여기에도 하얀 젖가슴을 내놓은 간호사가 나올라나.ㅋㅋ
(마음은 콩밭이라니까...ㅉㅉ)

물만두 2007-06-26 17:16   좋아요 0 | URL
나옵니다. 카리스마가 좀 더 있고 분량도 좀 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