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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 ㅣ 에세이 작가총서 96
정민호 지음 / 에세이퍼블리싱 / 2007년 1월
평점 :
한 젊은이가 길을 간다. 그 젊은이를 따라 나도 모르는 길을 걷는다. 대학교 때 제주도에 갔었다. 한라산 오르느라 죽는 줄 알았다. 조금만 걸어도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는 체질이고 조금만 밖에 나가 있어도 금방 햇볕에 타는 체질이라 나는 걷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아주 밖에 나가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뭐, 상관없다. 내게 걷는다는 건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
누군가 길을 걸으며 벅찬 감동에 젖을 때 같이 감동할 수 있다면, 그가 웃을 때 함께 웃고, 그가 아프고 외로울 때 또한 그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걸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길이 눈에 보이겠지만 걸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길은 눈에 보이지 않아 더 많고 풍요롭다.
저자가 산티아고에 갔다고 해서 갔나보다 했다. 왔다고 해서 잘 다녀왔냐고 했다. 그랬더니 떡 하니 에세이집을 냈네. 참 배짱 두둑한 젊은이라 마음에 든다.
젊다는 건 무엇이든 일단 해볼 수 있다는 거다. 나이가 들어 이제야 나는 그것을 깨닫는다. 내 젊은 날, 나도 한다고 했다. 나를 위해서. 그러므로 젊다는 건 자기를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은 적어도 하나쯤은 하고 넘겨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어느 날 분명 무언가 하지 못한 일을 생각하고 아쉬움에 젖을 것이다.
산티아고에 성지 순례를 하러 갔나 했더니 자신과의 싸움을 하러 간 것이었다. 내가 그곳에 갔다면 오만상을 찌푸리고 발가락의 물집에 구시렁대며 옆 사람 짜증나게 했을 것이고 낯선 사람과 말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텐데 지팡이 하나 들고 커다란 배낭 메고 수많은 외국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길보다 더 힘든 길이 있음을 그는 알 것이다. 몇 키로라는 숫자로 걷는 길은 그다지 힘든 길이 아니다. 숫자 없는 길, 가도 가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이정표도, 마침표도 없는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야 한다. 그 길에서도 부디 당당하고 웃으며 내가 읽고 즐거웠듯이 즐거운 삶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