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 프로이스의 <일본사>를 통해 다시 보는
국립진주박물관 지음, 장원철.오만 옮김 / 부키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임진왜란은 동아시아의 전체 판도를 바꾸어놓은 세계 전쟁이자 7년간 한반도 전역을 황폐화시켰던 초유의 비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을 말하는 국사 교과서의 기술은 충무공과 의병들의 충성심을 찬양하며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편협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애 대부분을 일본 선교에 바친 포르투갈인 사제 프로이스가 집필한 이 책은 교과서와는 다른 시점에 전쟁을 관찰한다.  참전 신자 및 성직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전투의 상세한 모습, 중국인들의 교묘한 외교술, 본국 정부에 의해 원치 않는 외국땅으로 내몰린 현지 지휘관들의 고민,  북경과 오사카를 오가며 전개된 정전협상 등 이제까지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던 전쟁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다.

저자의 침착하고 성실한 태도는 '선교사란 서구우월주의에 물든 배타적이고 편협한 인물들'이라는 나의 선입견과 도요토미에 의해 가혹하게 탄압받은 기독교인이 도요토미를 공정하게 묘사할 리가 없다는 편견을 깨끗이 뒤엎었다. 당시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열린 마음으로 현지의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합당한 예절과 존경을 다 해 일본 사회에 섞여들어갔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저자의 적극적이고 열린 태도는 전쟁 당사자들의 무지와 극히 대조적이다. 명을 정복하여 그 영토를 제후들에게 분배하겠다는 도요토미의 계획은 일본의 특수한 영토 개념(전투를 통해 빼앗거나 빼앗길 수도 있고, 상급자에 의해 교환당할 수도 있는 임시적인 통치 지역)을 무리하게 확대 적용한 것이다.  도요토미를 일본 왕으로 책봉하고, 조선왕과 일본왕이 함께 화해의 청원을 올리게 한 후 천자가 이를 허가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해결한다는 명의 계획 역시 자신들의 통치 관념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계에 적용한 것이었다. 결국 양측의 지배자들이 우왕좌왕 하고 있는 사이에,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언어도 풍습도 기후도 수질도 전혀 다른 외국으로 파견된그들의 백성은 대부분 전투가 아닌 기아와 전염병으로 죽었다. 물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두 외국 군대가 점령하고 있는 땅의 원주인인 조선인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대전쟁의 재앙을 부르고, 그 재앙이 타인 뿐 아니라 자신까지도 파괴했던 임진왜란의 교훈은 오늘날에도 되새겨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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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 - 당대비평 특별호
슬라보예 지젝.도정일 외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2004년 6월 김선일 씨가 살해당했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직장일이 바빴을 거다.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일들도 있어서 뉴스에는 관심이 없었다. 관심 가질 만큼 김선일 뉴스가 많이 나오지도 않았다. 납치 보도 나오고 이틀도 안 되어 후다닥 살해 보도 나오고 촛불시위 얘기가 나오는둥마는둥 하다가 끝났다. 파병 반대라는 입장이 확고했기에 더 관심이 없었던 듯도 하다. 죽은 이가 선교사가 되려던 기독교인이라는 말 때문에 동정심이 들지도 않았다.

지금 내가 가슴 아픈 것은 그 때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집안도 좋지 않고 돈도 없고 좋은 학교도 못 나오고 영어도 잘 못하는, 그래서 미군PX 납품업체 직원이 되는 것 외에는 중동에 갈 기회가 없었던 소심한 34세남자가 사막 가운데서 "나는 살고 싶다"고 절규하고 있는데, 나는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 멀티미디어 시대의 무서운 신종 전염병에 나 역시도 감염되어 있는 것이다.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는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죽음과 고통에 대한 책이다. 타인의 고통을 미디어가 보여주는 이미지로 소비해 오던 사람들에게 잠시만 그 소비 행위를 멈추고 곰곰히 생각해 보기를 요구한다. 저자들의 면면도 화려하고 실린 글들은 깔끔하고 설득력 있게 잘 읽힌다. 그러나, 내가 소리 높혀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유는 그 죽음과 고통에 대한 책임이  우리 한국인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정부와 언론에 의해 철저히 은폐된 이라크 사태의 본질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파병을 통해 가해자측에 <가담되어> 버린 한국인들의 의무가 아닐까? 사건 발생 후 2년 반, 김선일도 이라크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우리들의 일상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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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9-13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선일씨 피살은 2004년 3월이 아니라 6월에 일어난 일입니다...

mizuaki 2006-09-13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치겠습니다. ^^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ㅣ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구판절판


그는 무엇보다 "고정된 하나의 틀로 천만 편의 똑같은 글을 찍어내는" 바로 그 과문(科文)을 참을 수 없었다. "사마천과 반고가 다시 살아난대도/ 사마천과 반고를 배우지 않으리라"고 하여 고문(古文)을 답습하는 문풍을 격렬히 조롱했던 그가 까다롭기 그지없는, 게다가 다만 격률의 완성도만 테스트하는 과문의 구속을 어찌 참을 수 있었으랴. 아니, 더 나아가 관료로서의 진부한 코스를 어찌 선택할 수 있었으랴. 어떻게든 과거에 입문시키려는 주최측의 그물망을 피해 끊임없이 탈주를 시도했던 근본적인 잉가 여기에 있었던 게 아닐까?
포획과 탈주, 이후에도 이런 '시소 게임'은 계속된다. 뒤늦게 음관으로 진출했을 때, 음관들을 위한 특별 시험을 실시하면서 한 사람도 빠지지 말라는 왕명이 있었음에도 그는 근무지인 경기도 제릉으로 '날쎄게' 달아난다. 과거를 포기한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든 시험을 치르게 하여 관료로 진출시키려는 포섭의 기획을 계속 와해시켰던 것이다. 말하자면 연암은 흔히 떠올리듯, 원대한 뜻을 품었으나 제도권으로부터 축출당한 '불운한 천재'가 아니라, 체제 내부로 끌어들이려는 국가장치로부터 끊임없이 '클리나멘'을 그으며 미끄러져 간 '유쾌한 분열자'였던 것.-46-47쪽

살아 있는 석치(정철조)라면, 만나서 곡을 할 수도 있고, 만나서 조문을 할 수도 있고, 만나서 꾸짖을 수도 있고, 만나서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고, 여러 섬의 술을 들이킬 수도 있어서, 벌거벗은 서로의 몸을 치고박고 하면서 꼭지가 돌도록 크게 취하여 너니 내니 하는 것도 잊어버리다가, 마구 토하고 머리가 짜개지며 속이 뒤집어지고 어지러워, 거의 다 죽게 되어서 그만둘 터인데, 지금 석치는 정말로 죽었구나 ...석치 자네는 정말 죽었는가? 귓바퀴는 이미 썩어 문드러지고, 눈알도 이미 썩었는가?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단 말인가? 술을 쳐서 제주(祭酒)로 드려도 정말 마시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는구나.
- 박지원,<제정석치문>-82쪽

유인의 이름은 아무이니, 반남 박씨이다. 그 동생 지원 중미는 묘지명을 쓴다. 유인은 열여섯에 덕수 이택모 백규에게 시집가서 딸 하나 아들 둘이 있는데, 신묘년 9월 1일에 세상을 뜨니 얻은 해가 마흔셋이었다.(중략)
아아 누님이 시집가던 날 새벽 화장하던 것이 어제 일만 같구나. 나는 그때 갓 여덟살이었다. 장난치며 누워 발을 동동 구르며 새신랑의 말투를 흉내내어 말을 더듬거리며 점잖을 빼니, 누님은 그만 부끄러워 빗을 떨구어 내 이마를 맞추었다. 나는 성나 울면서 먹으로 분을 뒤섞고, 침으로 거울을 더럽혔다. 그러자 누님은 옥오리 금벌 따위의 패물을 꺼내 뇌물로 주면서 울음을 그치게 했었다. 지금에 스물여덟 해 전의 일이다.
- 박지원, <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83-85쪽

측근 관료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문체반정의 바람은 마침내 그 진앙지로 <열하일기>를 찾아낸다. 정조는 당시 규장각 관료였던 남공철에게 이렇게 분부했다. "근자에 문풍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박지원의 죄다. <열하일기>가 세상에 유행된 후로 문체가 이같이 되었거늘 본시 결자해지인 법이니 속히 순수하고 바른 글을 한 부 지어 올려 <열하일기>로 인한 죄를 씻는다면 음직으로 문임 벼슬을 준들 무엇이 아깝겠느냐?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무거운 벌을 내릴 것이다. 너는 즉시 편지를 써서 나의 이런 뜻을 전하도록 해라" (중략)
그들이 보기에도 정조는 연암에게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휘둘렀다. 그러나 이 노회한 조치에 대해 연암은 어떻게 반응했던가? "보잘것없는 책이 위로 임금님의 맑으신 눈을 더럽힐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느냐, (중략) "견책을 받은 몸이 새로 글을 지어 이전의 잘못을 덮으려 해서야 쓰겠느"냐며 결국 반성문 하나 제출하지 않는다. 당근도 채찍도 모두 비껴간 것이다. 문체반정 이후 대부분의 문인들이 견책을 면하기 위해 혹은 영달을 위해 철저한 고문주의자로 변모해 갔지만, 연암은 이후에도 정조의 견제, 아니 집요한 '구애의 손길'을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뱀처럼 유연하고, 두꺼비처럼 의뭉스럽게.-129-131쪽

이용이 있은 연후에야 후생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후에야 정덕이 될 것이다. 대체 이용이 되지 않고서 후생할 수 있는 이는 드물지니, 생활이 이미 넉넉하지 못하다면, 어찌 그 마음을 바로 지닐 수 있으리요.
박지원 <도강록>-197쪽

<일신수필>에서 그는 우리나라 선비들의 북경 유람을 이렇게 분류한다. 상사(上士:상등으로 인정받는 선비)는 황제 이하 모두 머리를 깎았기 때문에 되놈이고 되놈은 곧 짐승이라 볼 것이 없다고 하고, 중사(中士)는 장성의 시설 및 무장상태를 눈여겨 보고서는 "진실로 10만의 군사를 얻을 수 있다면 급히 달려 산해관을 쳐들어가서, 중원을 소탕한 다음에야 비로소 장관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라고 한다. (중략) 나와 같은 사람은 하사(下士)이지마는 이제 한 말을 한다면, '그들의 장관은 기왓조각에 있고, 또 똥부스러기에 있다'고 하련다" (중략)
기왓조각은 천하에 버리는 물건이지만 이를 둘씩 포개면 물결무늬가 되고, 넷씩 포개면 둥근 고리모양이 되니 천하의 아름다운 무늬가 이에서 나온다. 똥은 지극히 더러운 물건이지만 이를 밭에 내기 위해서는 아끼기를 금싸라기처럼 여기어 말똥을 줍는 자가 삼태기를 들고 말 뒤를 따라다닌다. -288-290쪽

참으로 과격한 논법 아닌가? 패관잡서를 천지간에 비할 데 없는 재앙이라 규정지으며 책자를 모두 모아 불사르고 북경에서 사들여 오는 자를 중벌로 다스리자니. 마치 불순분자를 뿌리뽑겠다는 '공안검사'의 선전포고가 연상될 정도로 그(정약용-인용자주)의 태도는 단호하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문체반정을 진두지휘한 국왕 정조의 입장과 그대로 '오버랩'된다.
연암협 골짜기에 은거하면서 배후조종자로 낙인찍힌 연암과 최선봉에서 발본색원을 외치는 다산. 한 사람이 부도 권세도 없는 50대 문장가라면, 또 한 사람은 생의 하이라이트를 맞이하고 있는 젊은 관료였다.
흥미롭게도 이런 대칭적 배치는 그들의 출신성분의 관점에서 보면 정확히 전도되어 있다. 연암이 집권당파인 노론벌열층의 일원인 반면, 다산은 집권에서 배제된 남인의 일원이었다. 그럼에도 연암은 애초부터 과거를 거부하고 권력 외부에서 떠돌며 문체적 실험을 통해 새로운 담론의 장을 열어젖혔고, 그에 반해 다산은 정조의 탕평책에 힘입어 일찌감치 정계에 진출하여 국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으며 화려한 경력을 쌓는 도중이었다. 한쪽이 권력의 중심부로부터 계속 미끄러져 나간 '분열자'의 행보를 걸었다면, 다산은 주변부에서 계속 중심부를 향해 진입한 '정착민'의 길을 갔던 셈이다. 중략) 정치 또는 국가권력과 맺는 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둘은 상호 역방향을 취한다. 연암은 권력으로부터 계속 비껴나간 데 비해, 다산은 정조의 사후 유배생활 기간에도 중앙권력을 향한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361-3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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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7-08-12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지원처럼 생각하고 고미숙처럼 살고 싶다.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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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벽돌이 아니오.

-이게 벽돌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라는 거죠?

-그건 사기요. 그것도 내가 본 것 중에서 제일 악랄한.

그제야 금복은 벽돌을 집어들고 살펴보았다. 그것은 시멘트로 찍어낸 벽돌이었다.

-이건 시멘트 벽돌인데 왜 사기라는 거죠?

-그건 집을 지을 수가 없기 때문에 사기라는 거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게 싸다는 이유로 모두 그걸로 집을 짓고 있소.

-다들 멀쩡하게 이걸로 집을 짓는데 왜 당신만 문제라는 거죠?

-남이야 벽돌로 집을 짓든 나무로 집을 짓든 상관할 바 아니지만 문제는 바로 그 벽돌 때문에 우리가   만든 벽돌이 안 팔리고 있다는 거요.

-그렇다면 우리도 앞으론 시멘트 벽돌을 만들어서 팔면 되겠군요.

  금복이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文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 나보고 사기꾼이 되란 말이오? (pp 280-281)


  최고의 벽돌에 주어야 할 상을 시멘트 블록에 주어 놓고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문학동네 출판사에 애도를 표한다. <시멘트 블록 사기 사건>에 멋지게 걸려든 심사위원들 - 왜 이 소설엔 인간 현실과 삶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 없는지를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그런 성찰만 추가하면 <백 년 동안의 고독>이나 <양철북>이 되겠다는 황당한 썰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풀어놓은 소설가 임철우, 사기의 냄새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그 본질까지 알아냈음에도 우물쭈물하다가 때를 놓쳐, 소설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비난의 뜻으로 한 "전통적인 소설의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에 별로 빚진 게 없는"이라는 말이 자극적인 광고 카피로 변해 버린 꼴을 우두커니 보고만 있어야 하는 소설가 은희경, 무능한 남성들을 압도하는 여성성의 구현이라는 자신만의 생각에 스스로 도취되어 짐짓 심각하게 이름붙인 “소설, 그 너머”에  TV드라마나 블록버스터 영화가 있다는 상식조차 간과하고 만 평론가 신수정 - 에게는 분노를 느낀다. 그들은 자신들을 사랑으로 길러주고 직업과 사회적 지위와 돈과 명예를 안겨준 소설이라는 어머니의 등에 작살을 꽂았다.


  그러나 저자에 대해서는, 암상이셨던 할머니의 현현이자 대학 대신 군대에서 글쓰기를 배운 야전군에 영화라는 인기 있는 미녀를 따르는 구애자인 동시에 소박데기 계집애 소설이 짝사랑하는 상대이며, 예술가들의 카페에 섞여든 입심 좋은 약장수에 주제도 구성도 없는 인쇄형 구비문학으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거머쥔 사기꾼인 저자에 대해서는, 아, 나는 도저히 그를 원망하거나 미워할 수가 없다.

  그의 시멘트 블록이 내가 사랑하는 소설의 세계(그것은 근대의 산물로서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에 대한 탐구의 성과이며 치열한 윤리적 고민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쌓아올려진 기념탑이다. 그것은 마치 춘희가 만든 최고의 벽돌과도 같은 세계이다. “한 눈에 봐도 단단한 품격이 엿보이고 밝음의 정도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며 위엄이 있어 보이되 결코 겁주지 않는 무게감을 유지하고 있고 무질서하지도 정형적이지도 않은, 흙으로 만든 보석과도 같은(p396)” 벽돌 말이다.)를 위협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의 매력 앞에서 나는 저항할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도 말솜씨가 좋았지만 이즈음해서는 그 솜씨가 더욱 늘어 어찌나 조리 있고 구변이 좋던지 이야기 자락마다 한숨이요, 눈물이요, 박장대소였다.(p140)”는 약장수의 묘사는 그대로 저자 자신에게 되돌려진다.

  저자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친절하게도 그 사기 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기까지 한다. 금복을 배신하고 떠난 약장수가 낯선 도시의 지식인 집단에게 인정을 받아가는 과정을 보자.


  약장수는 한 카페에서 주워들은 얘기를 다른 카페에서 써먹는 식으로 대화에 끼어들었고, 그 효과는 놀랄만큼 좋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멘트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형식주의는 모방론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죠.

-보르헤스는 프랑스 영화에 대해 지리함에 대한 열광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할리우드 영화는 무엇에 대한 열광일까요?

-요즘 소설은 점점 더 미니멀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진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런 식의 짧은 말 한마디면 사람들은 대개 그의 통찰력에 놀라며 의심 없이 그를 자신들과 같은 부족으로 인정해주었다. (중략) 그 정도면 언제나 충분했다. 그가 한마디 던져놓으면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다 알아서 떠들어주었기 때문에 그는 적당히 미소를 머금고 앉아 듣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은 토론의 법칙이었다.  (pp 342-343)


  저자가 영화 카페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소설 카페에 풀어놓았을 때 그 바닥의 인물들이 보인 반응에 대해 이보다 더 멋진 설명은 없다. 평론가 류보선이 쓴 수상작가 인터뷰는 우습다 못해 불쌍할 지경이다. 저자의 소박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평론가가 일일이 흥분하며 덧붙이는 장황한 해설이라니!

  그러나, 과연 내게 인터뷰를 쓴 평론가의 <오버>를 비웃을 자격이 있을까? 욕망을 좇는 인간들의 그로테스크한 파멸에서 내가 읽어낸 문명비판적 메시지는 “등장인물이 모두 참혹하게 죽는다는 것은 저도 심사에 참여한 임철우 선생님이 처음 지적을 하셔서 알게 된 사실인데.”하는 저자의 순진한 웃음 앞에서 방향을 잃어버렸고, 마고할미와 선문대할망의 거신족 여신 전설과 춘희를 연결지은 모처럼의 신화적 해석은 어느 겨울날 저자에게 길을 물은 뚱뚱하고 지저분한 가출여고생 얘기에 그냥 코미디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므로, 알라딘 리뷰를 쓰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주는 별 한 개는 동시에 나 자신을 향한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헛간 속의 코끼리처럼 쓸쓸하게 죽어가는 소설의 무덤에 놓는 개망초 꽃이기도 하다. 한 영화감독 지망생이 소설계에서 일으킨 이 소동은 더 이상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된 소설이 영화에게 당한 확인사살이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존재하되 플롯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시대, 불타버린 양피지와 책의 폐허 위로 영상으로 재무장한 구비문학이 육중한 행진을 시작하는 시대에, 진흙벽돌과 함께 죽어간 사내의 이름이 등장 인물 중 유일하게 한자로 쓰여진 文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금복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때마침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文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그는 사람들 앞에서 文에 대해 한마디 인물평을 했다.

-그는 정말이지, 까다로운 사람이었어.

  文의 시신은 가마 안에서 화장되었고 뼛가루는 남발안의 계곡에 뿌려졌다. 금복을 도와 공장을 세웠으며 벽돌을 만드는 일에 모든 것을 바쳤으나 그의 마지막 길은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한편, 생전에 금복의 앞에서 시멘트 벽돌로 지은 집은 일 년도 못 가서 무너질 거라고 한 그의 예언은 들어맞지 않았다. 그는 장차 세상이 시멘트 벽돌로 지은 건물로 가득 들어차게 될 거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혹, 그가 저 높은 곳에서 빌딩이 가득 들어찬 도시를 내려다본다면 틀림없이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이건 내가 본 것 중에서 제일 거대하고 악랄한 사기야.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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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9-03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사실은 사기.가 아니였지요. 시멘트. 벽돌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남지 않았나요? ^^

mizuaki 2006-09-03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기억에는 남지만 사기... 라고 생각하는데요. ^^;; 구비문학 쪽이 원래 기억에는 잘 남기도 하구요.
리뷰 쓰기 전에 이전 리뷰들을 쭉 읽었는데, 그 때 하이드님 글을 읽은 기억이 나서 다시 확인하고 왔습니다. 개망초 사진을 올렸다가 지우게 한 그 글이군요.이 책이 재미있다는 데는 저도 동의하고, 환상적이라는 데도 이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제도 플롯도 없는 이야기를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아요. 시멘트를 부어 마당에 널어 말린 블록을 벽돌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처럼요.
본의 아니게 좋아하시는 책을 험담한 것이 될까 걱정스럽습니다. 님의 보물창고같은 서재는 저도 때때로 놀러 가는 곳이랍니다.

도서관장 2006-09-2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어려워요...^^;
근데 쓰신 글 중에서 이부분은 실제상황인가요 아님 시나리오 작가였음에 대한 은유인가요..
- "저자가 영화 카페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소설 카페에 풀어놓았을 때 그 바닥의 인물들이 보인 반응에 대해 이보다 더 멋진 설명은 없다. " -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의심이 든다는 소리로 보이기도 해서요..^^;
아무래도 직접 책을 읽어 봐야 할듯해요...

mizuaki 2006-09-27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문하신 표현은 은유입니다. 특정한 영화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닙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서 이해하기 쉽게 잘 쓰지를 못합니다. 그럼에도 관심 있게 읽어 주시고 답글 달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주 재미있는(내용 면에서나, 문단과 독자들의 반응 면에서나) 책이니까 직접 읽어보셔도 후회는 안 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장 2006-09-28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땡스 투 날렸어요 ^^

efee 2007-02-2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 독자의 힘을 보여준, 정말 멋진 리뷰군요. 작가가 보면 가슴이 뜨끔하지 않을까 싶네요.

mizuaki 2007-02-23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1
타니가와 나가루 지음, 이덕주 옮김, 이토 노이지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주인공 소년을 보자. 처음부터 끝까지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고등학교 1학년. 그런 그가 우연히 반에서 제일 가는 괴짜 소녀와 가까워지면서  정신 없는 판타지 세계와 엮이게 된다는 것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타이틀 롤인 괴짜 소녀를 포함한 주요 여성 캐릭터가 모두 세일러복 미소녀라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사고 회로에 폭주하는 행동력을 가졌지만  내면은 순수한 히로인 미소녀, 무뚝뚝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몸을 던져 주인공 소년을 지키는 여전사 미소녀, 어린애 얼굴에 커다란 가슴을 한, 울음을 참고 시키는대로 야한 포즈도 취해 주는 천사표 미소녀. 세 사람의 미소녀는 모두 주인공 소년과 미묘한 거리를 유지하며 유혹하는 듯 아닌듯 좋아할듯 말듯 새콤달콤한 연애놀이의 분위기를 만든다.

표현 자체는 건전하지만 생각할수록  야한 소설이다.  미소녀와의 썸씽을 꿈꾸는 평범한 남자애의 성적 판타지라는 느낌이 풀풀 풍겨서,  실수로 남자 탈의실에 들어간 것 같은, 사춘기 소년이 방에 숨겨둔 포르노 잡지를 본 것 같은 낯뜨거운 기분이 되었다.   통통 튀는 발랄한 문체로 매끄럽게 잘 쓴 글이기는 한데,아무래도 내 취향하고는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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