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임진왜란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 프로이스의 <일본사>를 통해 다시 보는
국립진주박물관 지음, 장원철.오만 옮김 / 부키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임진왜란은 동아시아의 전체 판도를 바꾸어놓은 세계 전쟁이자 7년간 한반도 전역을 황폐화시켰던 초유의 비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을 말하는 국사 교과서의 기술은 충무공과 의병들의 충성심을 찬양하며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편협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애 대부분을 일본 선교에 바친 포르투갈인 사제 프로이스가 집필한 이 책은 교과서와는 다른 시점에 전쟁을 관찰한다. 참전 신자 및 성직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전투의 상세한 모습, 중국인들의 교묘한 외교술, 본국 정부에 의해 원치 않는 외국땅으로 내몰린 현지 지휘관들의 고민, 북경과 오사카를 오가며 전개된 정전협상 등 이제까지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던 전쟁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다.
저자의 침착하고 성실한 태도는 '선교사란 서구우월주의에 물든 배타적이고 편협한 인물들'이라는 나의 선입견과 도요토미에 의해 가혹하게 탄압받은 기독교인이 도요토미를 공정하게 묘사할 리가 없다는 편견을 깨끗이 뒤엎었다. 당시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열린 마음으로 현지의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합당한 예절과 존경을 다 해 일본 사회에 섞여들어갔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저자의 적극적이고 열린 태도는 전쟁 당사자들의 무지와 극히 대조적이다. 명을 정복하여 그 영토를 제후들에게 분배하겠다는 도요토미의 계획은 일본의 특수한 영토 개념(전투를 통해 빼앗거나 빼앗길 수도 있고, 상급자에 의해 교환당할 수도 있는 임시적인 통치 지역)을 무리하게 확대 적용한 것이다. 도요토미를 일본 왕으로 책봉하고, 조선왕과 일본왕이 함께 화해의 청원을 올리게 한 후 천자가 이를 허가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해결한다는 명의 계획 역시 자신들의 통치 관념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계에 적용한 것이었다. 결국 양측의 지배자들이 우왕좌왕 하고 있는 사이에,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언어도 풍습도 기후도 수질도 전혀 다른 외국으로 파견된그들의 백성은 대부분 전투가 아닌 기아와 전염병으로 죽었다. 물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두 외국 군대가 점령하고 있는 땅의 원주인인 조선인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대전쟁의 재앙을 부르고, 그 재앙이 타인 뿐 아니라 자신까지도 파괴했던 임진왜란의 교훈은 오늘날에도 되새겨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