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 문학의 기본개념 3 문학의 기본 개념 3
최기숙 지음 / 연세대학교출판부 / 2003년 2월
품절


[뒤러의 그림] <철갑코뿔소>는 그 자체로 감상자에게 심미적 체험을 선사하였다. 이것은 실재를 재현하려다가 실패한 상상적 활동의 결과물이 독자적인 미적 영역을 구축한 사례이다. 이 경우 상상의 힘은 리얼리티의 재현에만 국한되어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가시화된 리얼리티의 재현을 넘어선 곳에서 작동함으로써 독자적인 미적 세계를 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환상’의 범주에서 이해한다고 할 때 ‘환상’은 실재의 재현을 넘어서, 작가의 상상에 근간한 텍스트 내적 질서에 의해 구축된 이념적 세계로 볼 수 있다. -29쪽

세계에 대한 상상적 이해를 문학적으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비가시적인 원리나 법칙 등이 가시화되거나, 관념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형태는 ‘환상’으로서 호소된다. 환상은 기존의 질서나 인식 체계를 넘어서 세계를 재정의하고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인식론적 형태, 혹은 그 구성물이다. 따라서 문학에서의 환상은 기존의 세계 인식과 표현 방식과는 다른 형태의 방법들을 동원하게 된다. 문학에서의 환상은 리얼리티의 재현 형식으로 현실 세계를 모방하고 재생산하는 문학 형태나 세계와는 달리, 리얼리티의 재현을 넘어서 존재의 영도(零度)에서 새롭게 기호 의미를 완성하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상상력의 한 표현 영역이다. -32쪽

문학에서의 환상은 인식론의 문제와 연계되며, 특히 고대의 신화나 전설들은 이에 대한 표현이 직접적이다. 전설이나 신화, 민담의 서사 세계에서 환상은 현실과 갈라지지 않는다. 환상은 현실의 일부이며, 그 저변에는 민간 신앙이나 민속적 관습 등 세계에 관한 인식론적 이해가 전제되어 있다. 예컨대 사람과 귀신, 사물, 동물 식물 등이 상호 변신할 수 있다는 관념에 근거한 동아시아의 환상적 문학작품들은 기화우주론적(氣化宇宙論的) 인식론과 연계된다. 고대 중국의 신선가들은 부여받은 기(氣)가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라 증감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으로 여겼다. 이는 천지의 실체와 자연계의 만물이 모두 원기(元氣)로 구성되며, 그 취산(取散)의 결과에 따라 만물이 변화하고, 동물정령이나 요괴도 발생할 수 있다는 의식으로 변형되었다.-33쪽

환상은 역사적 계보를 형성하고 있으며 앞선 텍스트와의 대화적 관계를 구성한다. 세계에 대한 인식 행위의 문학적 형상화 방식으로 동원되는 환상의 내역은 역사적으로 재생산되었으며, 때에 따라서는 양식화된 형태가 문학의 하위 장르로 정착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환상의 역사성과 아울러 환상의 양식화 양상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고대의 신화와 전설, 민담을 비롯하여, 여기에 상상력의 뿌리를 대고 있는 각종 동화들, 서양에서의 고딕, 추리, SF, 경이와 기괴의 장르들, 중국의 지괴, 전기, 신마, 한국에서의 신선담과 이인전, 전기, 몽유록, 영웅소설, 판타지 소설 등이 그 예이다.-34-35쪽

고소설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환상성은 문학의 정당한 소재이자 필수적인 구성 요소로서 간주되었다. 소설에서 현실과 환상은 이원화되어 있으면서도 상호 간섭적으로 나타남으로써, 현실적인 시․공간 개념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 공간으로 운용되었다. 환상 세계를 통한 꿈의 형식들은 현실과 비현실적 세계와의 ‘교유(交遊)’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죽은 자와의 교유’, ‘이계(異界) 탐색’, ‘사물과의 대화’ 등이 대표적 양식이다(최기숙, 1996a). 이와 같은 전기적 요소들은 영웅소설에서 도사나 신적 존재와의 만남이나 천인적강(天人謫降)의 화소로 정착함으로써, 하나의 완벽한 구조적 틀로 자리잡는다. 특히 본래 천상계의 일원이었던 인간이 벌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적강 화소는 천상계와 지상계의 단절성을 극복하고 인간 존재를 삶의 무한한 연속선상에서 해석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55쪽

20세기 말에서 21세기로 들어오면서 전 세계적인 밀리언 셀러로 자리잡은 조앤 K. 롤링 Joan K. Rowling의 <해리 포터Harry Potter>시리즈는 환상 문학의 대중적 호응도를 확보한 작품이다. 다양한 마법사들과 진기한 교과목들, 각종 마법의 도구들이 제시된 <해리 포터>는 현실에서는 도저히 잇을 수 없는 것들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해리 포터>는 환상적 마법의 세계를 표방하는 것 못지 않게 현실의 제도권 사회를 모방하고 패러디한다. 이러한 서사 세계는 현재를 구성하는 제반 문화 요소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진지하게 시행하기보다는, 그 자체를 강화하고 그에 편승함으로써 독자들의 기호 속으로 속도감 있게 침투하려는 욕망을 보여준다. <해리 포터>는 현실의 모순을 작품의 정당한 서사 공간으로서 ‘자연화’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사 세계 속에서 독자들은 이제, 왜 해체인가를 의심하지 않고도 해체를 하나의 트랜드로 수용하면서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자유를 인가받고 있다.-72쪽

<현괴록>에 수록된 귀 속에 있는 두현국 이야기는 현실과는 다른 원리에 의해 지배되는 이계의 모습을 구체화했다. 이 이야기는 중첩된 액자 형식으로 구성되는데 이야기 안쪽의 액자들끼리 서로 소통하는 복잡한 구조를 취한다. 현실과 꿈, 가상과 실재는 서로 안팎으로 연결되어 있고, 전생과 현생은 꿈을 매개로 연속된다. 이러한 서사 구성의 복합성과 의미론적 다층성은 당대인들의 현실 인식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77쪽

로즈메리 잭슨은 환상물에서 타자서을 명명하는 것은 저자의 이데올로기적 전제들과 그것들이 기원하는 문화의 이데올로기적 전제들을 드러내는데, 보통 ‘악’의 개념으로 타자화되는 대상들은 ‘차이’를 ‘악’으로 명명하는 이데올로기적 태도를 함축한다고 보았다. 우리가 초자연적 경계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 속에서 타자서은 초월적인 것으로서, 천사, 악마, 천국, 지옥, 약속된 땅 등과 같은 종교적 환상과 꼬마요정, 난쟁이, 요정, 요정의 나라 등과 같은 이교적 환상으로 나타난다. 자연적 질서 혹은 세속적 질서에서는 그 어디에도 타자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인간의 공포와 주관적 지각을 통해 세계를 변형하려는 욕망의 투사로 읽힌다.-93-94쪽

인간의 경험이 사회성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에 개인의 주관성과 내면성은 자기 확신 이상의 사회적 의미에 도달할 수 없다. 작중 인물은 자신의 개인적 체험이나 내적 확신이 사회의 지배적 이념이나 질서에서 이탈되었다고 판단할 때 혼돈을 경험한다.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못하는 개인적 경험은 그에게 사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내적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의식할 때 경험되는 불안과 공포는 그런 점에서 오히려 그 개인의 사회성을 입증하는 단서가 된다.
그러나 불안과 공포마저 없이 개인의 내면 세계로 퇴행하여 스스로 고립되는 것에 만족하는 경우, 인물의 내적 체험이나 확신의 세계는 그 자신을 사회로부터 봉쇄키기고 자폐적 세계로 밀어넣는다. 이는 사회와의 열린 소통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개인과 사회, 감성이나 정서와 이성 간의 양립 불능성을 매개한다.
인물이 타자와 소통할 수 없다고 판단한 개인의 체험 세계는 일상적 언어나 상식선에서의 사고를 위반하는 형태로 표현된다.(아래에 계속)-100쪽

(위에서 계속) 이러한 개인의 세계는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주관적 질서에 따르고 사회화된 경로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환상적 세계로 표현되는 것이다. 예컨대 그것은 꿈이나 공상, 환각처럼 사회화가 불가능한 내면적 체험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 내용도 당대의 지배적 사상이나 제도로부터 일탈되거나 위반한 것이기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이러한 체험은 일상적으로 발설되지 않거나 발설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혼자서 낯선 존재나 초자연적 세계를 목격하는 개인적 체험이나, 개인의 심리적 체험 등을 객관적으로 사회화하는 방법은 묘연하다. 그것은 증명의 체계를 거부하는 믿음의 관계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의 체험은 그를 사회로부터 고립시켜 그 자신이 고독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 개인의 모습은 타인에게 인지되지 않음으로써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스스로를 소외된 자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타인에게 목격될 경우 그는 분열증이나 신경증 환자이거나 광기의 존재로 해석된다.-100쪽

죽음에 대한 사상은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의 한 표현인데, 이같은 상상력은 텍스트를 둘러싼 전통과 문화, 종교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온전히 작가 개인의 주관적 상상물로 창조되기도 한다. 죽음의 영역이 삶과 단절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로서 ‘장례(葬禮) 의식’이 성립한다면, 죽음이 현실과 연계되고 귀신이 출몰하는 환상적 이야기들은 ‘의식(儀式)’으로 봉쇄했던 공포를 개방함으로써 현실의 의식적 경계를 해체한다. 이러한 경계 해체의 모티프 중 죽음과 현실의 단절성을 ‘사랑’의 형식으로 해체한 것은 에로티시즘과 타나토스 충동의 결합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것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초현실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종류의 환상은 영원의 표상이자, 한계 초극의 지표가 된다.-108-109쪽

명혼소설(冥婚小說)의 주인공들은 죽음의 세계와 전혀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거부나 공포, 혐오나 환멸의 감정이 아니라, 열정적인 에로스의 상태에서 합일을 경험하는 것이다. 죽음의 세계는 삶의 세계로부터 선호되며, 매력적이고 편안하며, 다른 어떤 것보다 커다란 만족감을 제공하는 세계로 제시된다. 죽은 사람과의 사랑은 에로스 충동과 타나토스 충동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현실적으로 죽음과 삶은 단절되지만 환상의 공간에서 죽음과 사랑은 서로 충돌없는 만남을 이루고 현실과 환상의 영역 사이에서 제 삼의 공간을 구축한다. 죽음과 삶이 상호적으로 개방되는 이 지점은 환상계와 현실계를 이으면서, 동시에 그들로부터 단절된다. -110쪽

타자가 출몰하는 영역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 혹은 죽음과 현실의 변경 지역이다. 경계의 영역은 타자가 전일한 타자성을 상실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현실과 가상, 혹은 삶과 죽음의 접경 지역에서 생존의 영역을 확보하는 존재는 ‘유령’이다. 그는 삶과 현실 그 자체로부터 완전히 차단되고 격절된 존재가 아니라, 삶과 형실을 너머선 다른 세계의 중간 지점, 어쩌면 공간이 없는 경계의 영역에서 존재를 현시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유령의 출몰로 인해 ‘공간’이 ‘경계’로 변용되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완전한 ‘타자’가 아니다.(중략)
유령 이야기들은 죽음의 ‘비실재성’으로부터 실제 삶을 분리시키는 주요 경계선을 파괴하고, 단일한 의미나 ‘리얼리티’를 구성하는 개별적 단위들을 전복시킨다. ‘유령’의 존재는 ‘부재’와 ‘타자’의 주제를 구성한다(중략)
죽음의 세계로 완전히 귀의하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도는 영혼으로서의 ‘귀신’들은 삶의 영역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현세에서 이루지 못한 소원이나 풀지 못한 원한을 호소하고자 한다. 이들은 결국 현실이 은폐했던 욕망이나 금기를 폭로함으로"써 현세적 모순에 저항하는 역할을 한다.-112-113쪽

문학에서의 ‘환상’은 현실적으로는 부재하지만 심리적으로 실재하는 욕망이 가시화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현실적으로는 망각과 배제의 형식으로 은폐되고 억압되었던 ‘욕망’의 내용이 ‘환상’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심리적으로 억압되었던 욕망들을 ‘충족’, 혹은 ‘도피’의 형태로 허용함으로써, 욕망의 실체를 긍정하고 그에 대한 대리적 해소를 지향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현실이 억압하고 은폐했던 세계, 혹은 그 구성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현실적 질서에 저항하고 그에 대한 전복을 겨냥하는 방식이다. 특히 후자의 방식은 독자들에게 공포와 전율의 심리적 효과를 유발함으로써, 현실적 질서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도한다.
(아래에 계속)-115-116쪽

(위에서 계속)
그러나 현실적 질서나 체계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이에 대한 저항을 회피하거나 포기할 때에 환상은 ‘바장’의 정서를 유발시킨다. 환상이 생산해내는 ‘비장은 억압과 은폐의 현실을 저항할 수 없는 운명으로 수용해야 하는 심리학적 지점들을 반영한다.
한편, 현실이 은폐했던 지점들을 일상적 구조물들과 결합시킬 때, 이들은 질서화된 표상 체계에 상응할 수 없으므로 기괴하고 불안하며 위협적인 형태로 표현된다. 이때 발생되는 ‘그로테스크’의 영역 또한 환상의 심리학적 지평을 구성하는 일부분이다.-115-116쪽

루 샤오펑은 전기를 ‘역사’, ‘알레고리’, ‘환상’의 세 가지로 분류했다. 먼저 ‘역사적 양식’은 서사 내용을 믿을 만한 사실로 수용하는 경우이며, ‘알레고리 양식’은 사실의 차원이 아니라 도덕적, 철학적 관점에서 진실하며 유용하고 교훈적인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에 해당되지 않는 전기 작품들은 ‘환상적인 것’이 되는데,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거싱 혼융되고, 평범한 시공간적 연속이 정지된 가운데 역사적 순리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일반적 현실을 뛰어넘는 또다른 현실에 대한 해석을 드러내는 내용들이 해당된다(루샤오펑, 2001:30-31)
루샤오펑, 조미원 외 역(2001): <역사에서 허구로: 중국의 서사학>, 길-159-160쪽

로즈메리 잭슨은 환상이란 문화적 속박으로부터 야기된 결핍을 보상하려는 특징을 지니며, 욕망에 관해 부재와 상실로 경험되는 것들을 추구한다고 규정한다. 환상이 욕망을 표현하는 데에는 직접적인 명시와 추방이라는 상반되는 방식이 가능한데, 전자를 위해서는 묘사, 재현, 명시, 언어적 발화, 언급, 기술한다는 의미에서의 표현 등이 동원되며, 후자에는 압박과 배제, 제거 등의 기제가 동원된다. 환상을 통해 욕망은 이야기되거나, 작가나 독자의 대리 경험을 통해 추방된다(잭슨, 2001: 12-13).
이러한 환상의 해석은 환상을 욕망 충족의 전이된 혈식으로 이해하는 프로이트적 해석에 근간해 있다. 그러나 라깡은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됨을 지적하면서 욕망(désir), 요구(demand), 욕구(besoin)의 문제를 환상에 결부시켰다.
라깡에 의하면 ‘욕구’란 순수한 육체적 생존을 위해 충족되어야 할 생물학적 필요성으로, 생물학적 본능에 사응하는 개념이다. ‘요구’는 궁극적인 것인데, 예컨대 어린 아이가 어머니에게 요청하는 것은 표면상으로는 욕구의 충족이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어머니가 항상 같이 있어주는 것이며, 완벽한 사랑이다. (아래에 계속)-119-121쪽

(위에서 계속)만일 어머니가 ‘나쁜 어머니’라면 아이가 원하는 것은 어머니의 사라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요구는 현존과 부재에 대한 요구이다.
이에 비해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욕망은 욕구와 요구가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발생하는 결여의 체험에서 생겨난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에 대한 주체적 응답인 무의식적 환상을 통해 형성된다. 무의식적 환상 속에서 타자의 욕망에 응답하는 주체의 소외(aliénation)는 분석을 통해 해방되어야 한다. 라깡은 이를 ‘환상의 가로지르기(la traversée du fantasme)'라고 표현했다.
‘환상의 가로지르기’는 타자의 욕망과 향유에 의해 빼앗긴 나의 고유한 욕망과 향유를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환상은 수수께끼와 같은 타자의 욕망과 향유 앞에서 이 타자의 욕망과 향유의 이미를 파악하고 규정하고자 하는 주체의 반응 혹은 대답이며, 타자의 이해할 수 없는 욕망을 길들여 ‘받아들일만한 것’으로 변화시키려는 방어수단이다. (아래에 계속)-119-121쪽

(위에서 계속) 환상은 주체의 상실감과 결여를 상상적으로 메우려는 ‘불가능한 시선’이며, 주체의 상실, 즉 사라짐(aphanisis)을 막기 위해 주체를 대상으로 변형시키는 은밀한 장소이다.
라깡은 환상은 완전히 상실되어 사라진 전체적(절대적) 대상을 부분 대상으로 메우려는 시도로서, ‘$◇α’로 공식화했다. ◇는 ‘합집합’, ‘교집합’, ‘~보다 크다’, ‘~보다 작다’를 의미한다. 분열된 주체($)는 부분 대상을 갖고 자신의 결여를 메워 전체가 되려고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의 대상 α를 연결시켜주는 ◇의 관계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완전한 합일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상징계 속에서는 모든 것이 조각나고 분열되어 파편으로서만 존재하므로 완전함, 전체, 총체성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체는 부분 대상, 대상 α를 통해 자신의 결여를 메우려고 시도한다(홍준기, 2002:73-74).
(상징적인) 현실은 이미 항상 가상적인 것인데, 환상은 우리의 욕망을 구성하고 그 좌표를 제공해 준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어떻게 욕망할지 그 방법을 가르쳐 준다(지젝, 2002:279, 22). (아래에 계속)-119-121쪽

(위에서 계속) 욕망은 위반을 하면 금지된 것을 얻을 수 있으며,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것에 기초한다. 그러나 상징적 거세를 통해 원래의 전체성이라고 ‘추정되는’ 것을 구성해 내는 것은 환상이다($◇α). 그 이유는 그러한 전체성이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주체가 자신의 결여를 충족시켜 줄 것 같은 대상과 만나는 것은 원래부터 불가능하다. 금지는 그러한 ‘불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고, 위반은 그러한 ‘불가능성’을 ‘금지’라는 알리바이로 바꾸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속임수이므로, 이는 법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법의 그늘 속에서 법을 지탱하는 것이다(맹정현, 2002:188).
홍준기(2002): "자끄 라깡, 프로이트로의 복귀", 김상환 홍준기 편:<라깡의 재탄생>, 창작과 비평사
맹정현(2002): "라깡과 싸드", 김상환 홍준기 편: <라깡의 재탄생>, 창작과 비평사
지젝, 김종주 역(2002): <환상의 돌림병>, 인간사랑-119-121쪽

환상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특수하기보다는 보편적일 필요가 있다. 문학에서의 환상은 그 자체만으로는 가치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환상을 매개하는 문학 정신과 표현 세계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환상은 언어를 통한 문학 행위가 지속되는 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문학 자체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환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문학에서의 환상은 이 세계가 누락시키고 있는 질서의 이면, 기호화 된 존재의 그림자를 찾아주는 숨은 거울과 같다. 환상은 이 세계의 또 다른 현실인 것이다.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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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수사 미도리의 책장 8
곤노 빈 지음, 이기웅 옮김 / 시작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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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코야마 히데오를 일곱 권 읽고 사사키 조를 거쳐 딱 그런 식의 기대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완전히 예상 외였다. 이쪽은 사회파 미스테리라기보다는 만화 같다. 스토리 텔링도 좋고 개그도 좋고 문장은 상큼 발랄. 사건이 속도감 있게 착착 전개되어 독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쌈박하게 끝난다. 오락소설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다.

게다가 , 46세의 주인공 아저씨가 손끝이 떨릴 정도로 귀엽다. 더구나 무려 소학교 이지메로 시작된 악연의, 그런데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친한 척 하는 경찰청 입청 동기와의 간질간질한 투숏이 연이어 나온다.  작품 전체에 주인공의 외모 묘사가 전혀 없는 것도 수상하기 짝이 없어서, 머릿속의 장면들이 마구마구 꽃배경으로 미화되어 간다. 읽는 내내 실실거리면서, "이거, 뭔가 알고 쓴 거지? 응? 작가, 노리고 쓴 거 맞지?" 라고 혼자 절규했다. "춤추는 대수사선" 시리즈를 좋아했던(...이랄까 조금 과하게 열광했던)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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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 - 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2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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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되면 인물의 이름 붙이는 일이 무척 즐거울 것 같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면 발음뿐 아니라 글자의 의미를 곰곰히 따져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삼대 경관들의 성은 안전을 지키는 성이라는 안조(安城). 이름은 차례로 세이지(淸二),  다미오(民雄), 가즈야(和也)이다. 

전쟁으로 불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1948년, 단 두 달의 훈련을 받고 경시청 순사가 된 세이지(淸二)는 마음이 맑은 청년이다. 그는 상냥한 이웃들과 평화롭게 살고 싶어하는 아내의 바람대로 골목길 주재소에서 가족과 함께 근무하는 순사가 된다.  그 세이지가 '아이의 이름은 아버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해야 한다'는 충고에 따라 지은 아들의 이름은 민주주의의 영웅이라는  뜻의 다미오(民雄)다.  어려서 부친을 잃고 삯바느질하는 어머니의 손에서 어렵게 자란 다미오는  아버지를 닮은 경찰이 되려 하지만,  격렬한 이념 투쟁 시대의 가혹한 공안 업무는 그의 정신을 걷잡을 수 없이 파괴한다.  다시 한 번 아버지가 바랐던 보통 사람들의 영웅이 되기 위해서, 다미오는 괴로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삼세 경관이라는 주위의 기대 속에서 경시청 형사가 된 가즈야(和也)가 찾아낸 조화로운 해답은,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각자 다른 시대를 산 다른 성격의 남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이 세 사람의 영혼에는 공통된 점이 있다. 그것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나 정의를 위한 사명감 같은 거창한 것과는 다르다. 국가와 민족을 앞세우는 권위주의자나 자신의 손익을 계산하는 출세주의자, 아니면 적어도 명령지상주의의 단순한 인물이기라도 했더라면 이들이 겪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조 가의 경관들은 누군가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따라 산다. 냉대받던 남창의 죽음 뒤에 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추적하고, 구타당하는 아이 엄마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수사를 방해하는 상부와 위험한 거래를 벌인다. 그것을 위해 때때로 자신들을 길러준, 그들 자신의 충성과 애정의 대상이기도 한 경찰 조직. 국가 권력과 대립하는 상황에 서는 것을 감수한다.

이 아름답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세상에서, 세 사람의 경관은 각자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려고 싸운다. 결코 쉽지 않은 그 싸움이 그들의 안정과 평화 심지어는 목숨까지 빼앗아가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형태를 바꾸면서, 싸움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 아들에게로 이어진다. 국가가 인간을 파괴할 때, 국가에 속하는 경관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작가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경관의 영혼에, 대를 이어 그의  심장 속을 흐르는 '경관의 피'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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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12-29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보도연맹 관련 뉴스를 보면서 이 리뷰에 썼던 목가적인 감상은 평화로운 나라 일본이니까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경찰 3대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1대는 빨갱이 토벌 와중의 민간인 학살, 2대는 박정희 정권 하의 불법 연행과 고문, 3대는 촛불 시위대에 대한 폭력 진압... 이웃나라인데도 경찰 이미지는 너무 다르다.
 
경관의 피 - 상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1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구판절판


그 사회면 밑에 경시청 경찰관 모집 광고가 실려 있었다.
"알고 있지?" 세이지(淸二)는 그 광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작년 말부터 경시청이 대대적으로 순사를 모지하기 시작했어. 경찰 기구가 바뀐다더군. 순사가 만 명이나 부족하대."
다즈(多律)의 얼굴은 한층 불안해졌다.
"당신이 순사라니, 생각해본 적도 없었어요."
"당신은 제복 입은 남자를 싫어하니까."
"거드름 피우는 사람이 싫은 거예요."
"헌법도 바뀌었고 경찰도 민주 경찰이 되었어. 전쟁 전의 경찰하고는 달라. 내가 순사가 되는 게 싫어?"
"아뇨. 당신이라면 거드름이나 피우는 경찰관은 되지 않겠지만..."
"뭐가 걱정이야?"
"위험한 일이잖아요."
"무슨 일이나 어느 정도는 위험해. 학교 선생님이라면 또 몰라도."
"당신한테 잘 맞아요?"
"난 이런 남자야." 세이지는 말했다.
철이 들 무려부터 의식했다. 군대에 징집된 후에는 확신으로 변했다. 나는 융통성 없는 옹고집이다. 질서정연한 것이 좋다. 남이 나쁜 짓을 할 때 잠자코 지나칠 수가 없다. 성질이 이러니 순사라는 직업에 잘 맞을 것이다. 적어도 포목점 점원이나 시계 직공 같은 일보다는.
"나한테는 순사 일이 잘 맞을 거야."-18-19쪽

"군대에서 하사관 이상의 계급이었던 사람은 앞으로 나오도록."
몇 명의 사내들이 주위의 눈치를 보면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전부 세 명이다.
곤노는 한 사람에게 물었다.
"계급은?"
"제국육군 오장입니다."
"외지에는 가보았나?"
"북부 지부에 갔었습니다."
하사관이었다는 남자는 한 사람 더 있었다.
교관은 세 번째 남자 앞에 섰다.
하야세 유조(早瀨勇三)였다.
교관이 물었다.
"자네, 계급은?"
하야세는 대답했다.
"제국육군 보병 소위입니다."
세이지는 저도 모르게 하야세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느낌은 없는 사내였는데.
곤노가 하야세에게 다시 확인했다.
"간부후보생 출신인가?"
"예."
사관학교 출신은 아니다.
"연대는?"
"사쿠라입니다. 보병57연대."
"제1사단인가. 그렇다면 전지는?"
"필리핀이었습니다. 레이테(Leyte)에서 전역했습니다."
곤노는 조금 기가 눌린 표정이 되었다.
"그런가." 곤노는 다소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수고 많았네."-30-31쪽

소등 전, 세이지가 기숙사에서 그날의 일보를 쓰려는데 젊은 구보타가 하야세에게 말했다.
"하야세 씨, 한자 좀 가르쳐주십시오."
하야세도 일보를 쓰던 참이었다. 고개를 들고 구보타에게 말했다.
"어떤 글자야?"
"질서입니다만, 제가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요."
"보여줘 봐."
구보타가 하야세에게 자기의 일보를 내밀었다.
세이지도 손을 멈추고 하야세와 구보타를 쳐다보았다.
하야세는 구보타의 일보에서 얼굴을 들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보로 사상 경향을 보는 거야. 이런 서류에는 평범한 내용을 쓰면 돼. 민주 일본이니, 정의 사회니 하는 건 자네가 써서 좋을 것 없어."
구보타는 변명하듯 말했다.
"저는 정말로 민주 경찰로 민중을 위한 순사가 되고 싶습니다. 경찰도 바뀌었잖아요?"
"상부에는 아직 좌익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버티고 있어. 훈련소를 졸업할 때까지 이런 내용은 쓰지 마. 순사가 못 된다고."
"그런가요?"
"좀 더 무난한 내용을 써. 순사의 마음가짐에 대한 강연이 인상적이었다든가."
"예."
세이지 옆에서 이 대화를 듣고 있던 가토리가 조심스럽게 하야세에게 말했다.
"하야세 씨, 내 일보도 좀 봐주지 않겠어?"
-34-35쪽

훈련이 2주째로 접어든 어느 날, 체포술 시간의 일이었다. (중략)
하야세 차례가 되었을 때, 하야세가 의외로 격투기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대의 오른팔을 낚아채 순식간에 다다미 위에 깔아 눕힌 것이다. 그 직후에 하야세는 상대의 목에 팔을 둘러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상대는 고통스럽게 발버둥을 쳤다. 몇 초 동안 세이지와 동기들은 눈앞에서 무슨 짓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를 못했다. 하야세의 얼굴도, 목을 졸리고 있는 상대의 얼굴도 새빨겠다.
진심인가?
교관이 간신히 알아차리고 하야세에게 엄하게 말했다.
"그쳐! 이제 됐다. 끝났다."
하야세는 그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전히 상대의 목을 팔로 졸고 있다. 교관이 하야세의 등울 무릎으로 찍어 하야세를 떼어냈다. 하야세는 교관이 건드리자 비로소 제정신으로 돌아온 얼굴이었다. (중략)
"죄송합니다. 조절한다는 걸 그만 깜빡했습니다."
하야세가 뒤로 물러나자 가토리가 하야세에게 물었다.
"당신 유도 했었어?"
하야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장에서 배운 게 다야."
세이지에게는 유도 이상의 기술이다, 라는 말로 들렸다.-37-38쪽

박물관 앞까지 왔을 때 하라다를 보았다. 하라다는 길바닥을 둘러보면서 걷고 있었다. 담배를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선생님이라면.
세이지는 발길을 멈추고 하라다를 불러 아이의 출생을 알렸다. 이름을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이름이 좋을지 떠오르지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라다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아버지가 가진 최대의 권리라고 말했다.
세이지는 말했다.
"고작 고등소학교밖에 못 나와서 글자도 제대로 모르고, 글자가 가진 심오한 뜻도 이해 못합니다. 선생님께서 살짝, 어떻게 지어야할지 방법이라도 가르쳐주시면 크게 도움이 되겠습니다.
하라다는 조금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성이 안조(安城)라고 했지? 사내놈이라면 이름은 세 음절이네."
"세 음절이요?"
"그래. 노보루나 가즈오나. 이게 노부가츠니 테루아키니 하는 네 음절짜리 이름이면 자네 성씨 밑에서는 조화를 못 이뤄."
"세 글자로 지으라는 말씀이군요."
"음이 세 개. 글자는 두 글자지. 읽기 쉬운 글자가 좋아. 아이 이름을 너무 복잡하게 지으면 안 돼. 아이가 고생해."
"세 음절. 두 글자. 읽기 쉬운 글자. 이거죠?"
(아래에 계속)-73-75쪽

(위에서 계속)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나타내는 글자를 얼마 전까지 세상에는 충효니 승리니 하는 것들이 넘쳐났지. 지금은 세상도 변했어. 솔직한 마음으로 이름을 붙이면 되지 않겠나?"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인사를 하고 떠나려 하자 하라다가 손을 내밀었다.
"담배 한 개비만 나눠주지 않겠나?"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보니 세 개비가 남아 있었다. 세이지는 그걸 통째로 하라다에게 건넸다. (중략)

다즈는 웃는 얼굴로 세이지를 쳐다보았다.
"사내아이예요. 한 관에 조금 못 미치는 커다란 아이예요."
산파가 갓난아기를 들어 올려 안겨주었다. 갓난아기는 지금 막 젖을 먹었다고 한다. 자고 있었다. 쪼글쪼글한, 다들 그렇듯이 원숭이같은 핏덩이였다. 자기하고 다즈, 누구를 많이 닮았는지도 알아볼 수 없었다.
산파가 말했다.
"어미를 닮았어. 몸은 바깥 양반을 닮았고. 잘 크겠어."
다즈가 물었다.
"이름, 생각해봤어요?"
"응."
세이지는 갓난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다미오야. 민주주의 할 때의 민(民)에 영웅 웅(雄)."
"좋네요." 다즈가 찬성했다.-73-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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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09-12-25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기 이름을 붙이는 장면에서 왜인지 눈물이 확 솟았다.
멋진 소설. 지금부터 생각을 잘 정리해서 마이리뷰를 써야지...
 
텍스트언어학 개론
Wolfgang Dressler 지음, 이재원 옮김 / 한국문화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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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단순한 의미적 응결성의 수단은 낱말 반복의 형태인 반복이다. 그러나 문장과 같은 큰 구조에서 어느 정도의 반복이 가능한가? (문장의 반복은) 화자가 수다스럽거나 장황스러운 타입의 사람이라면, 또는 화자 생각에 청자가 이해를 못했거나 청자를 믿지 않을 경우, '확인'으로 사용될 수 있다. 또한 '강조'도 가능하다. 미를 추구하는 문학작품에서의 반복은 텍스트 종결 수단이 된다. 더욱이 조롱하기 위해서 반복할 수 있고, 발화를 이해 못했기 때문에, 또는 사람들이 이 발화를 믿지 않기 때문에 반복한다. 선서와 맹세에서 정확하게 반복하는 것은 필수이다. 대답에서는 질문에서 사용된 것이 인용되거나 낱말이 반복된다. -41-43쪽

의미적 응결성에서처럼 다시쓰기에도 어느 정도의 '반복'이 있다. 그러나 의미 내용이 같은 낱말 형식으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고, 문장이나 부분 문장의 형태로 반복된다. 이와는 달리 유의어에 의해서는 낱말이 대치된다. 통사적 변형은 잘 알려진 요약(collectio)이라는 라틴어 부류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주제에서 이탈한 반복이나 생각하고 있는 것을 중심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의미적 다시쓰기와 같은 것이다. 의미적 응결성 수단으로서의 반복과 다시쓰기는 일반적으로 여러 상이한 문장에서 동일한 간위를 서로 관련짓게 한다.-44-46쪽

기능적 문장 관점이라는 술어에서 우선적으로 테마(Thema)는, 대부분의 미국 언어학자들의 초점(topic)에서처럼 문장의 토대 또는 출발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에게 흥미로운 사실은 새로운 정보로서의 레마(Rhema, comment)와는 반대로, 주어진 것이나 알려진 것으로서의 테마는 문맥적 내지는 텍스트적/텍스트 내적 의미이다. 따라서 테마는 상황에서 나온 문맥이나 복사에 의한 지나간 텍스트 단편에서 생겨난 텍스트 내적 차원에서 얻어진다.-87쪽

가장 작은 역동성을 가진 문장의 부분 단위는 테마이고, 가장 큰 역동성을 가진 문장의 부분은 레마로 표현된다. 테마와 레마 내에서 통보적 역동성이 바뀌면, 역동성의 극단적 경우로서 테마 내지는 레마의 핵심이 언급된다. 따라서 레마는 새롭거나 기대치 않았던 정보를 표시하는 반면에, 테마에서는 문장의 출발점으로 선택된 기저 뿐만 아니라 상황이나 이전 텍스트 단편에서 유래한 알려진 것이 이해될 수 있다. 실제적으로 텍스트언어학은 테마의 궁극적인 이해와 관련 있다.-108-109쪽

따라서 모든 문장에서 텍스트나 문맥과 관련지어 보면 새로운 정보(레마)는 여러 가지 수단(억양, 강세, 어순, 관사선택)에 의해서 강조됨을 알 수 있다. 좁은 의미에서 강조는 대부분 대비적 강세나 강조적 강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강조는 텍스트나 문맥과 관련있다. 강조는 텍스트 진행에 대한 청자의 기대 내지는 화자가 청자의 기대를 계산하는 것과 관련 있다.-113쪽

청자는 자신이 들었던 텍스트의 첫 문장을 가지고 화자가 여러가지 강도로 충족시키거나 실망시킬 수 있는 텍스트 진행에 대한 기대를 한다. (중략) 화자의 전략은 청자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화자의 기대에 따라 청자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지 않는가에 대해서도 미친다. 만약 청자가 자신의 긴장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추측하게 되면, 그리고 그 긴장이 해소되지 않거나 청취된 텍스트가 긴장감이 없다고 간주하게 되면, 청자는 그 사이에 질문을 하고, 텍스트의 수용내지는 생산을 중단하거나 중지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텍스트가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그 텍스트는 청자/독자의 기대, 즉 텍스트가 일반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야만 한다는 화용적인 기대에 완전히 어긋나게 된다.-114-115쪽

접속사 삽입은 의미를 명료하게 해주고, 잉여성을 높여주고, 오해의 위험성을 줄여준다. 문어 텍스트에서는 구두법이 이와 유사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접속사와 그 밖의 연결사들은 문장들을 덜 밀착된 관계에서 밀착된 관계로 만들면서 집합적으로 분류한다. 접속사와 다른 연결사들은 의미적 문장 연결 관계의 단지 외적인 표현이다. 이들은 한편으로 잉여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명확하고 수의적인 단위이다.-145쪽

'감탄사'라는 명칭이 암시하듯이 감탄사에게는 텍스트를 분절하기 위한, 또한 텍스트를 경계짓기 위한 권능이 주어진다. 그래서 많은 미국 언어학자들의 강연은 Well로 시작하고 OK로 끝난다.-153쪽

침묵은 완전히 다의적이다. 침묵은 특히 1)텍스트 종결 2)화자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함 3)말하기의 게으름(과묵함) 4)화자가 말을 계속하는 것에대한 흥미 없음 5)대답할 수 없음 6)대답하기 싫음(예를 들어 공개적으로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7)공손함과 전례적 이유 때문ㅇ 의도적으로 침묵함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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