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 문학의 기본개념 3 문학의 기본 개념 3
최기숙 지음 / 연세대학교출판부 / 2003년 2월
품절


[뒤러의 그림] <철갑코뿔소>는 그 자체로 감상자에게 심미적 체험을 선사하였다. 이것은 실재를 재현하려다가 실패한 상상적 활동의 결과물이 독자적인 미적 영역을 구축한 사례이다. 이 경우 상상의 힘은 리얼리티의 재현에만 국한되어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가시화된 리얼리티의 재현을 넘어선 곳에서 작동함으로써 독자적인 미적 세계를 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환상’의 범주에서 이해한다고 할 때 ‘환상’은 실재의 재현을 넘어서, 작가의 상상에 근간한 텍스트 내적 질서에 의해 구축된 이념적 세계로 볼 수 있다. -29쪽

세계에 대한 상상적 이해를 문학적으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비가시적인 원리나 법칙 등이 가시화되거나, 관념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형태는 ‘환상’으로서 호소된다. 환상은 기존의 질서나 인식 체계를 넘어서 세계를 재정의하고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인식론적 형태, 혹은 그 구성물이다. 따라서 문학에서의 환상은 기존의 세계 인식과 표현 방식과는 다른 형태의 방법들을 동원하게 된다. 문학에서의 환상은 리얼리티의 재현 형식으로 현실 세계를 모방하고 재생산하는 문학 형태나 세계와는 달리, 리얼리티의 재현을 넘어서 존재의 영도(零度)에서 새롭게 기호 의미를 완성하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상상력의 한 표현 영역이다. -32쪽

문학에서의 환상은 인식론의 문제와 연계되며, 특히 고대의 신화나 전설들은 이에 대한 표현이 직접적이다. 전설이나 신화, 민담의 서사 세계에서 환상은 현실과 갈라지지 않는다. 환상은 현실의 일부이며, 그 저변에는 민간 신앙이나 민속적 관습 등 세계에 관한 인식론적 이해가 전제되어 있다. 예컨대 사람과 귀신, 사물, 동물 식물 등이 상호 변신할 수 있다는 관념에 근거한 동아시아의 환상적 문학작품들은 기화우주론적(氣化宇宙論的) 인식론과 연계된다. 고대 중국의 신선가들은 부여받은 기(氣)가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라 증감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으로 여겼다. 이는 천지의 실체와 자연계의 만물이 모두 원기(元氣)로 구성되며, 그 취산(取散)의 결과에 따라 만물이 변화하고, 동물정령이나 요괴도 발생할 수 있다는 의식으로 변형되었다.-33쪽

환상은 역사적 계보를 형성하고 있으며 앞선 텍스트와의 대화적 관계를 구성한다. 세계에 대한 인식 행위의 문학적 형상화 방식으로 동원되는 환상의 내역은 역사적으로 재생산되었으며, 때에 따라서는 양식화된 형태가 문학의 하위 장르로 정착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환상의 역사성과 아울러 환상의 양식화 양상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고대의 신화와 전설, 민담을 비롯하여, 여기에 상상력의 뿌리를 대고 있는 각종 동화들, 서양에서의 고딕, 추리, SF, 경이와 기괴의 장르들, 중국의 지괴, 전기, 신마, 한국에서의 신선담과 이인전, 전기, 몽유록, 영웅소설, 판타지 소설 등이 그 예이다.-34-35쪽

고소설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환상성은 문학의 정당한 소재이자 필수적인 구성 요소로서 간주되었다. 소설에서 현실과 환상은 이원화되어 있으면서도 상호 간섭적으로 나타남으로써, 현실적인 시․공간 개념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 공간으로 운용되었다. 환상 세계를 통한 꿈의 형식들은 현실과 비현실적 세계와의 ‘교유(交遊)’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죽은 자와의 교유’, ‘이계(異界) 탐색’, ‘사물과의 대화’ 등이 대표적 양식이다(최기숙, 1996a). 이와 같은 전기적 요소들은 영웅소설에서 도사나 신적 존재와의 만남이나 천인적강(天人謫降)의 화소로 정착함으로써, 하나의 완벽한 구조적 틀로 자리잡는다. 특히 본래 천상계의 일원이었던 인간이 벌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적강 화소는 천상계와 지상계의 단절성을 극복하고 인간 존재를 삶의 무한한 연속선상에서 해석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55쪽

20세기 말에서 21세기로 들어오면서 전 세계적인 밀리언 셀러로 자리잡은 조앤 K. 롤링 Joan K. Rowling의 <해리 포터Harry Potter>시리즈는 환상 문학의 대중적 호응도를 확보한 작품이다. 다양한 마법사들과 진기한 교과목들, 각종 마법의 도구들이 제시된 <해리 포터>는 현실에서는 도저히 잇을 수 없는 것들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해리 포터>는 환상적 마법의 세계를 표방하는 것 못지 않게 현실의 제도권 사회를 모방하고 패러디한다. 이러한 서사 세계는 현재를 구성하는 제반 문화 요소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진지하게 시행하기보다는, 그 자체를 강화하고 그에 편승함으로써 독자들의 기호 속으로 속도감 있게 침투하려는 욕망을 보여준다. <해리 포터>는 현실의 모순을 작품의 정당한 서사 공간으로서 ‘자연화’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사 세계 속에서 독자들은 이제, 왜 해체인가를 의심하지 않고도 해체를 하나의 트랜드로 수용하면서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자유를 인가받고 있다.-72쪽

<현괴록>에 수록된 귀 속에 있는 두현국 이야기는 현실과는 다른 원리에 의해 지배되는 이계의 모습을 구체화했다. 이 이야기는 중첩된 액자 형식으로 구성되는데 이야기 안쪽의 액자들끼리 서로 소통하는 복잡한 구조를 취한다. 현실과 꿈, 가상과 실재는 서로 안팎으로 연결되어 있고, 전생과 현생은 꿈을 매개로 연속된다. 이러한 서사 구성의 복합성과 의미론적 다층성은 당대인들의 현실 인식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77쪽

로즈메리 잭슨은 환상물에서 타자서을 명명하는 것은 저자의 이데올로기적 전제들과 그것들이 기원하는 문화의 이데올로기적 전제들을 드러내는데, 보통 ‘악’의 개념으로 타자화되는 대상들은 ‘차이’를 ‘악’으로 명명하는 이데올로기적 태도를 함축한다고 보았다. 우리가 초자연적 경계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 속에서 타자서은 초월적인 것으로서, 천사, 악마, 천국, 지옥, 약속된 땅 등과 같은 종교적 환상과 꼬마요정, 난쟁이, 요정, 요정의 나라 등과 같은 이교적 환상으로 나타난다. 자연적 질서 혹은 세속적 질서에서는 그 어디에도 타자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인간의 공포와 주관적 지각을 통해 세계를 변형하려는 욕망의 투사로 읽힌다.-93-94쪽

인간의 경험이 사회성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에 개인의 주관성과 내면성은 자기 확신 이상의 사회적 의미에 도달할 수 없다. 작중 인물은 자신의 개인적 체험이나 내적 확신이 사회의 지배적 이념이나 질서에서 이탈되었다고 판단할 때 혼돈을 경험한다.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못하는 개인적 경험은 그에게 사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내적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의식할 때 경험되는 불안과 공포는 그런 점에서 오히려 그 개인의 사회성을 입증하는 단서가 된다.
그러나 불안과 공포마저 없이 개인의 내면 세계로 퇴행하여 스스로 고립되는 것에 만족하는 경우, 인물의 내적 체험이나 확신의 세계는 그 자신을 사회로부터 봉쇄키기고 자폐적 세계로 밀어넣는다. 이는 사회와의 열린 소통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개인과 사회, 감성이나 정서와 이성 간의 양립 불능성을 매개한다.
인물이 타자와 소통할 수 없다고 판단한 개인의 체험 세계는 일상적 언어나 상식선에서의 사고를 위반하는 형태로 표현된다.(아래에 계속)-100쪽

(위에서 계속) 이러한 개인의 세계는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주관적 질서에 따르고 사회화된 경로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환상적 세계로 표현되는 것이다. 예컨대 그것은 꿈이나 공상, 환각처럼 사회화가 불가능한 내면적 체험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 내용도 당대의 지배적 사상이나 제도로부터 일탈되거나 위반한 것이기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이러한 체험은 일상적으로 발설되지 않거나 발설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혼자서 낯선 존재나 초자연적 세계를 목격하는 개인적 체험이나, 개인의 심리적 체험 등을 객관적으로 사회화하는 방법은 묘연하다. 그것은 증명의 체계를 거부하는 믿음의 관계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의 체험은 그를 사회로부터 고립시켜 그 자신이 고독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 개인의 모습은 타인에게 인지되지 않음으로써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스스로를 소외된 자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타인에게 목격될 경우 그는 분열증이나 신경증 환자이거나 광기의 존재로 해석된다.-100쪽

죽음에 대한 사상은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의 한 표현인데, 이같은 상상력은 텍스트를 둘러싼 전통과 문화, 종교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온전히 작가 개인의 주관적 상상물로 창조되기도 한다. 죽음의 영역이 삶과 단절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로서 ‘장례(葬禮) 의식’이 성립한다면, 죽음이 현실과 연계되고 귀신이 출몰하는 환상적 이야기들은 ‘의식(儀式)’으로 봉쇄했던 공포를 개방함으로써 현실의 의식적 경계를 해체한다. 이러한 경계 해체의 모티프 중 죽음과 현실의 단절성을 ‘사랑’의 형식으로 해체한 것은 에로티시즘과 타나토스 충동의 결합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것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초현실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종류의 환상은 영원의 표상이자, 한계 초극의 지표가 된다.-108-109쪽

명혼소설(冥婚小說)의 주인공들은 죽음의 세계와 전혀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거부나 공포, 혐오나 환멸의 감정이 아니라, 열정적인 에로스의 상태에서 합일을 경험하는 것이다. 죽음의 세계는 삶의 세계로부터 선호되며, 매력적이고 편안하며, 다른 어떤 것보다 커다란 만족감을 제공하는 세계로 제시된다. 죽은 사람과의 사랑은 에로스 충동과 타나토스 충동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현실적으로 죽음과 삶은 단절되지만 환상의 공간에서 죽음과 사랑은 서로 충돌없는 만남을 이루고 현실과 환상의 영역 사이에서 제 삼의 공간을 구축한다. 죽음과 삶이 상호적으로 개방되는 이 지점은 환상계와 현실계를 이으면서, 동시에 그들로부터 단절된다. -110쪽

타자가 출몰하는 영역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 혹은 죽음과 현실의 변경 지역이다. 경계의 영역은 타자가 전일한 타자성을 상실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현실과 가상, 혹은 삶과 죽음의 접경 지역에서 생존의 영역을 확보하는 존재는 ‘유령’이다. 그는 삶과 현실 그 자체로부터 완전히 차단되고 격절된 존재가 아니라, 삶과 형실을 너머선 다른 세계의 중간 지점, 어쩌면 공간이 없는 경계의 영역에서 존재를 현시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유령의 출몰로 인해 ‘공간’이 ‘경계’로 변용되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완전한 ‘타자’가 아니다.(중략)
유령 이야기들은 죽음의 ‘비실재성’으로부터 실제 삶을 분리시키는 주요 경계선을 파괴하고, 단일한 의미나 ‘리얼리티’를 구성하는 개별적 단위들을 전복시킨다. ‘유령’의 존재는 ‘부재’와 ‘타자’의 주제를 구성한다(중략)
죽음의 세계로 완전히 귀의하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도는 영혼으로서의 ‘귀신’들은 삶의 영역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현세에서 이루지 못한 소원이나 풀지 못한 원한을 호소하고자 한다. 이들은 결국 현실이 은폐했던 욕망이나 금기를 폭로함으로"써 현세적 모순에 저항하는 역할을 한다.-112-113쪽

문학에서의 ‘환상’은 현실적으로는 부재하지만 심리적으로 실재하는 욕망이 가시화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현실적으로는 망각과 배제의 형식으로 은폐되고 억압되었던 ‘욕망’의 내용이 ‘환상’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심리적으로 억압되었던 욕망들을 ‘충족’, 혹은 ‘도피’의 형태로 허용함으로써, 욕망의 실체를 긍정하고 그에 대한 대리적 해소를 지향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현실이 억압하고 은폐했던 세계, 혹은 그 구성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현실적 질서에 저항하고 그에 대한 전복을 겨냥하는 방식이다. 특히 후자의 방식은 독자들에게 공포와 전율의 심리적 효과를 유발함으로써, 현실적 질서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도한다.
(아래에 계속)-115-116쪽

(위에서 계속)
그러나 현실적 질서나 체계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이에 대한 저항을 회피하거나 포기할 때에 환상은 ‘바장’의 정서를 유발시킨다. 환상이 생산해내는 ‘비장은 억압과 은폐의 현실을 저항할 수 없는 운명으로 수용해야 하는 심리학적 지점들을 반영한다.
한편, 현실이 은폐했던 지점들을 일상적 구조물들과 결합시킬 때, 이들은 질서화된 표상 체계에 상응할 수 없으므로 기괴하고 불안하며 위협적인 형태로 표현된다. 이때 발생되는 ‘그로테스크’의 영역 또한 환상의 심리학적 지평을 구성하는 일부분이다.-115-116쪽

루 샤오펑은 전기를 ‘역사’, ‘알레고리’, ‘환상’의 세 가지로 분류했다. 먼저 ‘역사적 양식’은 서사 내용을 믿을 만한 사실로 수용하는 경우이며, ‘알레고리 양식’은 사실의 차원이 아니라 도덕적, 철학적 관점에서 진실하며 유용하고 교훈적인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에 해당되지 않는 전기 작품들은 ‘환상적인 것’이 되는데,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거싱 혼융되고, 평범한 시공간적 연속이 정지된 가운데 역사적 순리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일반적 현실을 뛰어넘는 또다른 현실에 대한 해석을 드러내는 내용들이 해당된다(루샤오펑, 2001:30-31)
루샤오펑, 조미원 외 역(2001): <역사에서 허구로: 중국의 서사학>, 길-159-160쪽

로즈메리 잭슨은 환상이란 문화적 속박으로부터 야기된 결핍을 보상하려는 특징을 지니며, 욕망에 관해 부재와 상실로 경험되는 것들을 추구한다고 규정한다. 환상이 욕망을 표현하는 데에는 직접적인 명시와 추방이라는 상반되는 방식이 가능한데, 전자를 위해서는 묘사, 재현, 명시, 언어적 발화, 언급, 기술한다는 의미에서의 표현 등이 동원되며, 후자에는 압박과 배제, 제거 등의 기제가 동원된다. 환상을 통해 욕망은 이야기되거나, 작가나 독자의 대리 경험을 통해 추방된다(잭슨, 2001: 12-13).
이러한 환상의 해석은 환상을 욕망 충족의 전이된 혈식으로 이해하는 프로이트적 해석에 근간해 있다. 그러나 라깡은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됨을 지적하면서 욕망(désir), 요구(demand), 욕구(besoin)의 문제를 환상에 결부시켰다.
라깡에 의하면 ‘욕구’란 순수한 육체적 생존을 위해 충족되어야 할 생물학적 필요성으로, 생물학적 본능에 사응하는 개념이다. ‘요구’는 궁극적인 것인데, 예컨대 어린 아이가 어머니에게 요청하는 것은 표면상으로는 욕구의 충족이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어머니가 항상 같이 있어주는 것이며, 완벽한 사랑이다. (아래에 계속)-119-121쪽

(위에서 계속)만일 어머니가 ‘나쁜 어머니’라면 아이가 원하는 것은 어머니의 사라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요구는 현존과 부재에 대한 요구이다.
이에 비해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욕망은 욕구와 요구가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발생하는 결여의 체험에서 생겨난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에 대한 주체적 응답인 무의식적 환상을 통해 형성된다. 무의식적 환상 속에서 타자의 욕망에 응답하는 주체의 소외(aliénation)는 분석을 통해 해방되어야 한다. 라깡은 이를 ‘환상의 가로지르기(la traversée du fantasme)'라고 표현했다.
‘환상의 가로지르기’는 타자의 욕망과 향유에 의해 빼앗긴 나의 고유한 욕망과 향유를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환상은 수수께끼와 같은 타자의 욕망과 향유 앞에서 이 타자의 욕망과 향유의 이미를 파악하고 규정하고자 하는 주체의 반응 혹은 대답이며, 타자의 이해할 수 없는 욕망을 길들여 ‘받아들일만한 것’으로 변화시키려는 방어수단이다. (아래에 계속)-119-121쪽

(위에서 계속) 환상은 주체의 상실감과 결여를 상상적으로 메우려는 ‘불가능한 시선’이며, 주체의 상실, 즉 사라짐(aphanisis)을 막기 위해 주체를 대상으로 변형시키는 은밀한 장소이다.
라깡은 환상은 완전히 상실되어 사라진 전체적(절대적) 대상을 부분 대상으로 메우려는 시도로서, ‘$◇α’로 공식화했다. ◇는 ‘합집합’, ‘교집합’, ‘~보다 크다’, ‘~보다 작다’를 의미한다. 분열된 주체($)는 부분 대상을 갖고 자신의 결여를 메워 전체가 되려고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의 대상 α를 연결시켜주는 ◇의 관계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완전한 합일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상징계 속에서는 모든 것이 조각나고 분열되어 파편으로서만 존재하므로 완전함, 전체, 총체성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체는 부분 대상, 대상 α를 통해 자신의 결여를 메우려고 시도한다(홍준기, 2002:73-74).
(상징적인) 현실은 이미 항상 가상적인 것인데, 환상은 우리의 욕망을 구성하고 그 좌표를 제공해 준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어떻게 욕망할지 그 방법을 가르쳐 준다(지젝, 2002:279, 22). (아래에 계속)-119-121쪽

(위에서 계속) 욕망은 위반을 하면 금지된 것을 얻을 수 있으며,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것에 기초한다. 그러나 상징적 거세를 통해 원래의 전체성이라고 ‘추정되는’ 것을 구성해 내는 것은 환상이다($◇α). 그 이유는 그러한 전체성이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주체가 자신의 결여를 충족시켜 줄 것 같은 대상과 만나는 것은 원래부터 불가능하다. 금지는 그러한 ‘불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고, 위반은 그러한 ‘불가능성’을 ‘금지’라는 알리바이로 바꾸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속임수이므로, 이는 법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법의 그늘 속에서 법을 지탱하는 것이다(맹정현, 2002:188).
홍준기(2002): "자끄 라깡, 프로이트로의 복귀", 김상환 홍준기 편:<라깡의 재탄생>, 창작과 비평사
맹정현(2002): "라깡과 싸드", 김상환 홍준기 편: <라깡의 재탄생>, 창작과 비평사
지젝, 김종주 역(2002): <환상의 돌림병>, 인간사랑-119-121쪽

환상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특수하기보다는 보편적일 필요가 있다. 문학에서의 환상은 그 자체만으로는 가치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환상을 매개하는 문학 정신과 표현 세계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환상은 언어를 통한 문학 행위가 지속되는 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문학 자체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환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문학에서의 환상은 이 세계가 누락시키고 있는 질서의 이면, 기호화 된 존재의 그림자를 찾아주는 숨은 거울과 같다. 환상은 이 세계의 또 다른 현실인 것이다.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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