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
대니얼 L. 샥터 지음, 박미자 옮김 / 한승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하버드 대학 심리학 교수가 쓴 기억의 상실, 왜곡, 날조에 대한 이해하기 쉬운 설명.

풍부한 사례를 들면서 흥미롭게 설명하고, 친절하게 정리해 주는 아주 멋진 책이다.

특히 각 장의 서두에서 문학 작품을 인용하는 것이 굉장히 세련되고 멋있어 보였다.


필자는 개인의 기억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만,

나의 평소의 관심사였던 집단 기억의 상실, 왜곡, 날조와 관련해서도 생각할 거리가 있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는 오귀인, 피암시성, 편향의 쓰레기 더미이다ㅋ. 

소멸(transience)이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이 흐려지거나 손실되는 것을 뜻한다. (중략) 정신없음(absent-mindedness)은 주의와 기억 간의 접촉에 이상이 생기기 때문에 일어난다. 열쇠나 안경을 찾지 못하는 것, 점심 약속을 잊는 것과 같이 깜빡 잊는 기억 오류는 보통 다른 쟁점이나 관심에 몰두해서, 기억해야 하지만 주의를 집중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세 번째 죄악인 막힘(blocking)은 어떤 정보를 필사적으로 인출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를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낯익은 사람의 이름을 생각해 내지 못한 적이 있다. 이러한 좌절스러운 경험은 우리가 그 과제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에도 일어나며, 원하는 이름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을 때도 일어난다.
- P10

오귀인(misattribution)은 잘못된 출처에 기억을 할당하는 것을 말한다. 환상을 사실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나, 실제로 신문에서 읽었던 사소한 것들을 친구가 말했다고 잘못 기억하는 것 등이다. (중략) 피암시성(suggestibility)은 어떤 사람이 과거 경험을 상기하려고 할 때 유도 질문이나 추가 설명, 암시를 한 결과 새롭게 생겨난 기억들을 말한다. 오귀인도 피암시성도 조사, 증언, 진술 등 법적인 분야와 특히 관련이 많다. 편향(bias)은 현재의 지식과 믿음이 과거를 어떻게 이거하는지에 강력하게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종종 무심코 과거 경험을 지금 알고 있거나 믿고 있는 것에 비추어 수정하거나 완전히 다시 쓴다.
- P10

일곱 번째 죄인 지속성(persistence)은 마음에서 모두 사라져 버리기를 원하는 고통스러운 정보나 사건들이 반복해서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 P11

얼마나 많은 다른 사건들이 무고한 사람을 유죄 판결로 이끌면서 부정확한 목격자 증언을 만들었겠는가? 어느 누구도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두 가지 사실을 고려해 보자. 첫째, 1980년대 말에 내놓은 추정에 따르면, 미국에서 해마다 7만5000 건이 넘는 형사 재판이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둘째, 잘못 투옥되었다가 DNA 증거로 무죄가 선언되었던 40건을 최근 분석한 결과 그들 중 36건이 잘못된 목격자 확인 절차를 거쳤다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아직 바로잡지 못한 같은 유형의 실수들이 있을 것이다. 이 무서운 숫자들은 목격자 오귀인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하고 오귀인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음을 절박하게 느끼도록 해 준다.
- P133

기억에서의 피암시성(suggestibility)은 외적인 출처(다른 사람들, 재료들이나 그림, 심지어 미디어)에서 나온, 잘못 유도하는 정보를 사적인 기억으로 합치려는 개인의 성향을 의미한다. 피암시성은 암시를 부정확한 기억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오귀인(misattribution)을 포함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오귀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오귀인은 외부로부터의 암시가 없을 때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피암시성이 하나의 독립적인 기억의 죄가 된다.
- P163

암시된 기억들은 원래 기억만큼 사실같이 느껴질 수 있다. 2000년 5월 31일, "뉴욕타임스" 1면에 한국 전쟁 참전 용사인 에드워드 달리(Edward Daly)의 당혹스러운 사례가 실렸다. 그는 실제로는 참가한 적이 없는 대학살에 참여했다는 것을 비롯하여, 자신의 전투 공적에 대해 상세하게 설며했는데, 이 모든 이야기가 그의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망상을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동안, 달리는 그 대학살에 참가했던 참전 용사들과 이야기하면서 그들에게 자신의 영웅적인 행동을 ‘상기시켰다’. 달리의 암시들은 그들의 기억에 스며들었다. "나는 달 리가 거기에 있었던 것을 기억해요." 한 참전 용사가 탄원했다. "맞아요. 기억해요."
- P163

피암시성은 여러 이유들 때문에 걱정스럽다. 질문을 유도하는 것은 용의자 오확인을 일으킬 수 있다. 유도적인 심리 치료 절차들은 오기억을 만들고 발전시킬 수 있다. 그리고 학령 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조사는 선생이나 다른 사람들이 저질렀다고 신고된 아동 학대에 대해 왜곡된 기억을 낳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개인들이 영향을 받을 위험이 높기 때문에, 피암시성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것은 심리학적 이론을 발전시키는 것만큼이나 사회적, 법적 관심을 기울이는 데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 P164

1908년에 나온 그의 고전 "증언대(On the Witness Stand)"에서 먼스터버그(Hugo Munsterberg)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사회적 압력과 암시에 결합되어 자기들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잘못 믿을 정도로 기억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정치범들의 허위 자백은 전체주의 지배의 절정기 동안 구소련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죄수들로부터 정보를 추출해 내고, 죄수들이 명령을 따르도록 만드는 데 노련하다." 공산주의 심문 기술에 대한 1956년 논문의 저자들은 관찰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자백한 다음, 공공연히 자백의 진실성을 믿고 자신을 감옥에 넣은 사람들을 향해 동정과 감사를 표현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 P172

점점 많아지는 실험실 연구들의 결과에 따르면, 어린이들이 출처 정보를 기억하는 데 특별히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행동이 일어났는지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특별한 사건에 대해 반복해서 질문을 받을 때, 그 사건들은 단순히 실험자가 그들에게 여러 번 말했기 때문에 친숙하게 느껴지기 시작할 수 있다. 학령전 아동들은 친숙한 느낌의 출처에 대한 상세한 기억이 부족하므로 여러 조각의 서로 다른 과거의 일화들을 함께 섞거나 심지어 공상과 상상의 요소들을 집어넣을 수도 있다.
- P192

편향(bias)의 다섯 가지 주요 유형은 기억이 자기 주인을 섬기는 방식을 나타내 준다. 일관성(consistency) 편향과 변화(change) 편향은 우리 자신에 대한 이론이 어떻게 과거를 현재와 지나치게 비슷하거나 또는 지나치게 다른 것으로 재구성하게 만드는지 보여 준다. 사후 과잉 확신(hindsight) 편향은 과거 사건들의 기억이 현재의 지식으로 걸러진다는 것을 알려 준다. 자기중심적(egocentric) 편향은 현실의 지각과 기억들을 조화시키는 데 있어 자기(self)의 강력한 역할을 예증한다. 그리고 전형성(stereotypical) 편향은 어떻게 일반적인 기억들이, 심지어 그것들의 존재나 영향을 알지 못할 때조차 세상에 대한 해석을 조형하는지를 입증한다.
- P198

기억에서 자기중심적 편향은 ‘자기(the self)‘가 심적 생활을 조직하고 규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반영한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자기를 풍부하게 상호 연결된 지식 구조(개인적인 속성들과 경험들에 대해 저장된 정보의 전체 합)로 여긴다. 새로운 정보를 자기와 관련시켜 부호화할 때, 그 정보에 대한 이후 기억은 다른 유형의 부호화와 비교해 증진된다는 것을 수많은 실험들이 보여 주었다. (중략) 그러나 자기는 세상을 중립적으로 관찰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들은 자기 자신을 더 높이 생각하고, 종종 자기의 능력과 성취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아첨하는 의견을 갖도록 동기 부여된다.
- P215

현재의 질서에 맞추기 위해 과거의 역사를 수정한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진실부처럼, 일반 지식은 기억이 예상에 잘 들어맞도록 이야기의 회상을 편향시킨다.
- P224

다양한 형태의 편향들이 인간의 인지에 매우 깊이 심어져 있어서 그것들을 모두 함께 극복하거나 피할 수 있는 좋은 구제책은 아직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현재의 지식, 신념, 감정이 과거에 대한 우리의 기억에 영향을 줄 수 있고, 현재의 사람들과 사물들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충분히 조심하고, 과거와 현재 모두에 대한 확신의 가능한 출처를 확인함으로써 우리는 기억이 그 주인을 위한 담보로 작용할 때 일어나는 왜곡을 줄일 수 있다.
- P228

안전한 상황에서 외상 기억을 반복해서 재경험하는 것은 그 외상에 대한 초기 생리 반응을 둔화시킬 수 있다. 괴로운 경험에 대한 기억을 억압하려는 시도는 이처럼 자연스러운 과정인 습관화를 막는다. 그러므로 억압된 기억은 결국 지속성을 증대시키는 여분의 충동을 갖게 된다.
- P252

자기에 대한 아주 낙천적인 견해는 정신 건강을 해치기보다 증진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인 착각을 아주 잘하는 사람들은 손상되거나 부적합한 방식으로 기능하는 대신, 보통 그들 인생의 많은 면에서 잘 지낸다. (중략) 매우 왜곡된 낙천적 편견은 결국 문제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효과가 제한적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테일러가 지적한 것처럼 긍정적인 착각은 우리를 가볍고 평안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다. 따라서 기억 편향이 우리의 인생에 만족감을 증진시키는 한도 내에서 그것을 인지 체계의 적응 요소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 P277

일곱 가지 죄악은 축소시키고 회피해야 할 귀찮은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기억이 어떻게 과거를 끌어와서 현재에게 알려 주는지, 그리고 미래에 참고할 수 있도록 현재 경험의 요소들을 어떻게 보존하는지를 드러내 주며, 또한 뜻하는 대로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해 준다. 기억의 악덕은 또한 기억의 미덕이며 우리의 마음을 세상과 연결시키기 위해 시간을 가로지르는 다리 같은 요소인 것이다.
- P29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미지와 환상
대니얼 J. 부어스틴 지음, 정태철 옮김 / 사계절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196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가 잘 느껴진다.

낡았다 싶은 곳도 있지만 그 점이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만들어낸 이야기가 현실을 지배한다는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부어스틴 이후의 역사학자들도 많이 고민한 듯하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는 이 점을 인류의 특징으로까지 보고 있더라.

이 책에서 묘사된 미디어 환경이 인터넷 시대에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핵심적인 메시지는 지금에 와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가짜의 범람에 대한 우려와

불편한 현실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찾아 보아야 한다는 주장에 크게 공감한다.


내가 이 책에서 소개한 ‘pseudo-event’라는 단어는 ‘ㅈwell-knownness’라는 단어와 함께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되었고, 이 어휘들은 서부 유럽에서 자국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celebritiy’ 란 단어를 "널리 이름이 알려짐으로써 유명한 사람"으로 이 책에서 내린 정의는 여기저기서 친근하게 단골로 인용되고 있다. - P14

우리는 어떤 것이라도 원하며 모든 것을 원한다. 우리는 위에서 열거된 것처럼 상반된 것들을 원하고 불가능한 것을 원한다. (중략) 우리는 이런 거대한 기대를 지니고, 키우고, 확대하면서 우리를 속이는 환상을 끊임없이 만들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속인 사람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있다. - P22

가짜 사건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ㄷ가.
(1) 가짜 사건은 자연발생적이 아니며 누군가가 계획하고 실행에 옮겨야 일어난다. (중략)
(2) 가짜 사건은 주로 언론에 보도되거나 반복 시행되어야 할 다급한 목적을 위해 실행된다. (중략)
(3) 가짜 사건과 연결되어 있는 진짜 현실은 대개 모호하다. (중략)
(4) 통상적으로 가짜 사건은 자기만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 P33

언론 자유는 이제 인위적으로 만든 뉴스라는 상품을 팔기 위해 기자들이 갖는 특권을 점잖게 표현한 말에 불과하다. - P55

유명인이 창조될 때, 그곳에는 누군가의 이익이 항상 걸려 있다. 그 누군가는 기사를 원하는 기자일 수도 있고, 대가를 원하는 언론관계 매니저일 수도 있으며, 아니면 유명인이 되려는 당사자일 수도 있다. 고인이 된 영웅은 남들에게 이름을 알리는 데 관심을 쏟을 수도 없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매니저를 고용할 수도 없다. 반면에, 유명인은 주문한 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우리들을 즐겁게 하고, 편안하게 하고, 황홀하게 하고, 그리고 우리 마음에 쏙 들게 행동한다. 유명인들은 만들어지자마자 다른 유명인으로 대체되고 또다시 만들어지기를 빠르게 반복한다. - P113

오늘날 관광객들이 보는 것은 살아 있는 문화가 아니라 인공적인 것들, 즉 관광객을 위해서 방부제로 처리되어 한데 모아 놓은 박제품이거나 관광객을 위해서 일부러 공연되는 이벤트들이다.
- P151

1922년 2월에 De Witt Wallace가 "The Reader’s Digest"를 창간하자, 다이제스트 세계에 새 변화가 일어났다. (중략) 그들은 작가도 필요없고 편집자도 필요없었기 때문에 소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뉴욕 공공 도서관에 가서 여러 잡지로부터 독자들이 흥미 있어 할 기사들을 골라서 용약하는 일이 전부였다. 원본 잡지 편집자들은 자기들 잡지 요약본이 팔리면 자기들 잡지를 공짜로 광고하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몇몇 극소수 예외를 제외한 대부분 원본 잡지사 편집자들은 월리스가 잡지 요약본을 인쇄하는 것을 기꺼이 무료로 허락하였다. 나중에도 거의 바뀌지 않은 패턴이 된 첫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표지를 제외하고 62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31개의 기사가 요약되어 있었다. 초기 간행본의 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전설적인 글이 실렸다. (아래에 계속) - P190

(위에서 계속)
"하루에 한 기사씩 유명 잡지의 기사를 읽으세요. 각각의 기사들은 영원한 가치와 흥미를 지니고 있으며 아주 얇고 단단하게 제본된 책 속에 들어 있습니다." - P192

여론(Public Opinion)은 이전 시대와는 달리 인공적이고, 믿을 만하고, 생생하고 구체적이고, 간단하고, 모호하다. 만약에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다면 간단히 신문을 집어들기만 하면 된다. 여론의 변화는 하루에 한 번 내지는 두 번씩 기록되었다. 여론은 언론에서만 쓰는 독특한 표현방식과 사진 등의 보조자료로 생생하게 포장되었다. 여론은 뉴스를 만들려고 애쓰는 기자들에 의해서 억지로 세상에 등장했다. 여론과 여론을 기사화하는 기자들은 서로를 이용하고 있다. - P318

우리는 이미지의 감옥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로부터, 신으로부터, 우리가 싫어하거나 우리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세계로부터 메시지가 오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낯설은 외부 아이디어를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나 공산주의자들이 꿈꾸지 못한 참신한 생각과 우리 이미지 거울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 - P3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리 감옥 - 생각을 통제하는 거대한 힘
니콜라스 카 지음, 이진원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이게 하버드 식 글쓰기인가? 

여기저기서 긁어다가 붙인 느낌. 

열심히 쓴 건 알겠고 나도 열심히 읽었는데 마음에 남는 게 적다. 

지금부터 60년 전에는 비행기 조종석에 종종 다섯 명의 숙련된 고임금 전문가들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항공사, 무선통신사, 항공 기관사, 그리고 조종사 두 명의 자리였다. 1950년대에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신뢰성이 높아지고 사용법이 쉬워지자, 가장 먼저 조종실에서 무선통신사의 자리가 사라졌다. 1960년대에 관성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발달하자, 항공사가 조종실에서 쫓겨났다. 비행기의 기기 배열을 감시하고, 중요한 정보를 조종사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주로 맡았던 항공 기관사는 1970년대 말에 자동화된 비행기 조종석이 등장할 때까지만 자리를 지켰다. (중략) 2011년에 열린 항공 컨퍼런스에 참석한 보잉의 고위 임원인 James Albaugh는 "조종사가 없는 비행기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라면서 "그건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 P98

칼턴 대학의 교수이자 인류학자인 Caludio Apota는 다년간 이누이트 족 사냥꾼들을 연구해왔다. 그는 위성 내비게이션의 이점이 매력적이지만, 이누이트 족들이 그 기기를 사용하면서 길 찾기 능력이 퇴보했고, 일반적으로 봤을 때는 땅에 대한 감각이 약화됐다고 주장했다. GPS 장비를 갖춘 설상차를 모는 사냥꾼은 컴퓨터 지시에만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에 주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아포타가 말한 대로 그럴 경우 그는 "눈을 가리고" 사냥을 하는 것과 같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한 부족이 갖고 있던 뛰어나고 특별한 재능이 앞으로 불과 1-2 세대 만에 사라질 것이라고 말해도 감히 무리가 아니다.
- P190

LAR(Lethal Autonomous Robot)의 배치를 막는 것을 더 어렵게 하는 이유는 그것의 전략적 효율성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LAR의 배치로 인해 기계 자체의 도덕적 성격을 떠나서 몇 가지 윤리적인 이점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크리스토프 헤인즈는 "일반적으로 로봇은 복수나 공포나 분노나 악의나 편견이나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울러 특별히 그렇게 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는 한, 로봇은 고문 같은 방법을 통해 민간인들에게 의도적 고통을 안겨주지 않을 것이다. 로봇은 또 강간도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중략)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국가는 전쟁을 하기 위해 LAR을 사용함으로써 인간 병사들의 죽음이나 부상을 피할 수 있다.
- P282

소셜 네트워크들은 그들이 운영하는 회사들의 이해관계에 편견에 맞게 우리 자신을 드러내 보이게 만든다. (중략) 페이스북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죽어야 끝날 것 같은 일관된 서사 형식에 따라 전개되며, 한평생 지속되는 하나의 ‘자아’ 속에 회원들을 가둬놓고 싶어 한다. 이런 의도는 자아와 그 가능성들에 대해 페이스북 창업자가 가진 편협한 관점과 부합한다. 마크 저커버그는 "당신은 한 가지 신원만을 갖고 있다. 당신이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그 밖의 지인에게 각기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던 시절은 아주 빨리 마감될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당신이 두 개의 신원을 가졌다면 당신은 진실하지 않다는 뜻이다"라고도 주장했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이런 관점은 광고주들을 위해 회원들을 깔끔하고 일관된 데이터 세트로 포장하고자 하는 페이스북의 욕구와 정확히 일치한다.
- P302

미국 국립안전위원회National Safety Council가 분석한 결과, 2011년 미국의 도로에서 일어난 전체 사고들 중 4분의 1이 운전자가 휴대폰을 사용하다가 일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구글과 다른 일류 기술 기업들은 사람들이 운전 도중 전화 통화를 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하거나,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사실상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분명 그런 일들은 자율형 자동차를 만드는 것에 비해서 훨씬 더 쉬운 일임에 분명하다. 우리는 컴퓨터 기업들이 사회의 안녀을 위해 노력하려는 중요한 기여를 반겨야 한다. 하지만 그런 기업들의 관심 사항을 우리의 관심 사항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 P3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가오는 말들 -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
은유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 내내 불쾌하고 불편한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필자는 상처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알리는 일과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글로 표현하도록 돕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필요한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만난 남들의 상처에 필자 자신의 상처까지 더해서 끝없이 늘어놓고 이해와 공감을 끝없이 요구하는 글들을 읽고 있자니 피로감이 쌓인다. 가족의 죽음이나 성폭력 피해 같은 상처 앞에서는 이쪽도 긴장하게 되지만, 필자에게는 가난도 상처고 채무도 상처고 직장 노동 가사 노동도 상처고 학교 공부도 가족 관계도 전부 상처다. 도대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고 피해자 아닌 사람이 없다.


이해와 공감은 중요하다. 내가 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가 나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때 이해와 공감은 발전적인 것이 된다. 그렇지만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고객도 아닌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내가 힘들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자기 힘들다는 얘기를 끝도 없이 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그만 좀 징징대라.”하는 생각이 슬며시 올라온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사는 것이 힘들지 않은 사람도 없다. 저마다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필사적으로 삶이라는 고해를 헤쳐 나간다. “이 정도는 괜찮아.”, “힘든 일도 있지만 좋은 일도 많아.”, “나는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야.” 라고 자기를 격려하면서, 다들 힘들지만 참고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산다는 자기 긍정은 자존감의 원천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참고 열심히 사는’ 것의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불쾌해지고 불편해진다.


물론 살다 보면 도저히 자기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질 때가 있다. 그 때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도와준 사람에게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 마음은 가져야 한다. 그런 것을 염치라고 부르지 않나? 특히 어린이, 청소년과 관련된 부분을 읽으면서, 필자가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이 부디 파렴치를 정당화하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게 되었다.


한 젊은 여성은 이런 글을 썼다. (좋은 엄마가 아닌) 엄마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만 연구되고, 자식이 엄마에게 미치는 영향은 왜 연구되지 않는 거죠?
- P60

인간 사회는 민폐 사슬이다. 인간은 나약하기에 사회성을 갖는다. 살자면 기대지 않을 수도 기댐을 안 받을 수도 없다. 아기를 안고 공부에 나선 엄마처럼 폐 끼치는 상황을 두려워 말아야 하고 공동체는 아이들을 군말 없이 품어야 한다. 배제를 당하면서 자란 ‘키즈’들이 타자를 배제하는 어른이 되리란 건 자명하다. 건강한 의존성을 확장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관계에 눈뜨고 삶을 배우는 어른이 될 수 있다.
- P100

일단 쓸 수 있는 걸 쓸 수 있는 데에 썼다. 블로그에 에세이를 쓰고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 등록해 활동했다. (중략) 돈벌이는 별도로 충당했다. 자유기고가를 주업으로 일감이 없을 땐 자서전을 대필하고, 공공기관 백서를 쓰고, 게스트하우스 주인을 인터뷰해 납품했다. 이 세상에 나쁜 언어를 유포하는 일이 아니면 닥치는 대로 썼고, 원고료를 받아 책과 커피와 쌀을 사먹고 그렇게 살아남아서 ‘쓰고 싶은 글’을 썼다.
작가를 꿈꾸는 학생에게 말했다. "쓰고 싶으면 빨리 쓰세요. 작가는 쓰는 사람이지 쓰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문창과 간다고 작가의 길이 보증되고 경영학과 간다고 그 길이 봉쇄되진 않는다. 가장 큰 장벽은 부모의 반대가 아니라 자기 생각의 빈곤이다. 자꾸 몸에 들러붙는 생각, 솟아나는 얘기, 복받치는 불행이 아니라면 무엇을 쓸까.
- P144

"딸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니." 우리 엄마도 자주 말했다. 속 하나 안 썩이고 없는 것처럼 자란 속 깊은 딸, 엄마의 자랑, 엄마의 보험, 엄마의 친구. 이 모든 명예 훈장은 실은 집안의 일손이자 엄마의 보조 노동력이자 감정 해우소로 딸을 승인하는 몹쓸 언어다. 그 딸들은 며느리가 되어서도 "집안의 사노비" 신세를 면치 못한다.
- P173

A는 인턴십형이다. 청소, 빨래, 설거지, 요리 등 애인의 총체적인 살림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6개월간 자취하게 한 후 결혼했다. 인턴십처럼 예비 심사 기간을 두고 판단한 것. B는 단체협약형이다. 일상 업무 분담은 물론 명절 및 양가 부모 생신 때의 역할과 책임까지 치밀한 세부 규정을 마련하고 조인식 후 결혼했다. C는 일상돌파형이다. 어느 날 남편에게 아이스크림을 좀 만들어달라고 했단다. 남편이 깜짝 놀라서 "나 그런 거 못 해. 한 번도 안 해봤어"라고 말하길래 "이때까지 내가 했던 음식들 나도 결혼 전엔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다 배워서 하는 거야. 당신도 배워서 만들어줘" 라고 요구했다고. 지혜가 샘물처럼 넘치고 용기가 화산처럼 솟구치는 현대 여성들의 처신에 나는 매번 탄복한다.
- P231

호출형 노동자는 시간 관리가 생명이다. ‘시간은 돈’이므로. 돈이 되는 시간 창출을 위해 주도적으로 머리를 싸매야 한다. 나는 취재를 위한 왕복 이동 시간, 원고 집필 시간을 측정해 일을 수주받았고 조금의 오차도 없이 진행했다. 마감 기계로 일하다 보니 나를 호출하는 곳이 불어났고 그럴수록 내 속도에 발맞추지 않는 동료를 견디지 못했다.
프리랜서 생활 5년. 나는 "정확성, 효율성, 생산성을 모토로 삼"는 시간 노예가 되었다. 그 사실을 몰랐고 힘들지도 않았다. 몸에 밴 자기 착취의 습성으로 ‘쪼는 사람’ 없어도 스스로 일하는 근면함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경쟁력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내 부지런한 노동자 성향, 즉 강박적 시간관념에 충돌이 일어났다. ‘게으름뱅이들’을 만난 것이다.
- P268

부모나 교사가 시키는 무리한 것들을 ‘싫어도’ 해낸다면 훗날 자기보다 힘이 센 사람이 시키는 별의별 일도 ‘싫은데’ 꾸역꾸역 감당할 여지가 있다. 복종은 습관이다. 성찰 없는 순종이 몸에 배면 자기의 좋음과 싫음의 감각은 퇴화한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를 지키기 어렵다.
- P289

전쟁으로 군수산업이 돈을 벌고 힘없는 병사들이 죽어가듯 입시 전쟁에서는 학원산업이 득을 보고 평범한 아이들은 조용히 스러져간다.
- P295

올해 고등학생이 된 딸은 5월에 수학여행을 가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수련회였다며 가지 않겠다고 했다. 놀 시간도 안 주고 극기훈련이랑 교육만 시키는 수련회는 딱 질색이라며 다른 애들도 그러기로 했단다. 나는 무조건 지지한다고 했다.
- P303

추천자의 삶의 조건과 목적은 특수하다. 평생 활자와 친했고, 책 보는 게 직업이거나 일과 중 독서 시간 확보가 가능한, 읽는 훈련이 된 일부 계층의 관점이 반영된 목록이다. 그런 책들이, 책을 거의 안 봤거나 볼 시간이 없고 고된 노동과 학습에 지친 이들의 일상에 지적 정서적 쾌락을 주는 ‘좋은 책’으로 스밀 수 있을가. 추천자와 독자 사이에 ‘공감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 P327

저마다 누려야 할 고요와 기분을 방해하는 집단의 출입을 금지해야 한다면 노키즈존보다 ‘노아재존’이 시급하다. 그러나 생기지 않았고 생기지 않을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버지는 곧 법이고 돈이다. 생산력과 구매력을 가진 집단이기에 은행에서도 음식점에서도 그들을 함부로 금지하거나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역사상 흑인 전용 화장실은 있었지만 백인 전용 화장실은 없었던 이유와 같다.
- P3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겨울에 한국에 번역된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전부 다 읽었다.

아주 즐겁게 읽은 것도 있고 (<밤의 나라 쿠파>!!!)

지루한 것도 있지만, (<사막>이랑 <골든 슬럼버>)

대체로 다 편안하게 술술 읽혔고 그런 대로 재미있었다.

오웰의 <1984>를 읽는 도중에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가 생각나서 빌려다가 다시 읽었는데,

평화로운 시대에 평화로운 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작가라서

전쟁을 경험한 오웰과는 위기감의 수준이 비교가 되지 않지만,

(<마왕>과 <모던 타임즈>에 나오는디스토피아란 게 남자가 군대에 가는 나라이다ㅋ.)

역시 술술 읽혔고 그런 대로 재미있었다. ^^

인간이 인간답게 활동하는 것은 무리를 짓지 않을 때뿐이다. - P4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