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구판절판


모든 도덕적 행위의 가치를 하나의 도량형으로 고스란히 환산할 수 있다는 주장을 딱 부러지게 찬성하거나 반박할 근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 의문을 제기할 사례가 있다.
내가 옥스퍼드 대학원에 다니던 1970년대에는 남자대학과 여자대학이 따로 있었다. 여자대학에는 여학생 방에서 남자 방문객이 자고 갈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던 탓에 곧잘 깨지곤 했다. 적어도 내가 듣기로는 그랬다. 대학 관계자들 중에도 성도덕이라는 전통적 사고를 강조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이 규정을 완화하라는 압력이 점점 높아졌고, 여자대학이던 세인트 앤스 칼리지에서도 이 주제가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일부 나이 든 여교수들은 전통적인 도덕률을 내세워 남자 방문객 숙박에 반대했다. 이들은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이 남자와 함께 밤을 보내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전통주의자는 자신의 반박을 뒷받침할 현실적인 근거를 찾느라 쩔쩔맸다. 그러다 자기 주장을 공리주이 용어로 바꿔 말했다. "남자가 자고 가면 대학의 비용이 증가할 것이다." 왜 그럴까? "그들은 목욕을 하려 할 테고, 그러면 온수 소비량이 늘 것이다." 또 있다. "매트리스도 더 자주 갈아야 할 것이다."
개혁주의자들은 전통주의자들을 만나 타협안을 제시했다. 여학생 한 명당 자고 갈 수 있는 방문객을 한 주에 최대 세 명까지 허용하되, 각 방문객은 하룻밤에 50펜스를 대학에 비용으로 지불한다. 다음날 <가디언>에 "세인트 앤스 여학생들, 하룻밤에 50펜스"라는 머리기사가 실렸다. 미덕의 언어가 공리주의 언어로 썩 훌륭하게 번역되지 못한 셈이었다. 뒤이어 방문객 제한 조치가 전면 중단되었고, 비용 지불안 또한 철회되었다.-71쪽

벤담은 사람들의 선호도를 가치를 따지지 않은 채 모두 더해서 어떤 법이 필요한가를 결정하려 했다. 그런데 렘브란트 그림을 감상하기보다는 투견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 많다면, 사회는 미술관보다는 투견장에 보조금을 지급해야 할까? 저급하고 천박한 쾌락이 따로 있다면, 어떤 법을 도입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그런 쾌락이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밀은 이런 반박에서 공리주의를 구하려 한다. 그는 벤담과 달리 욕구의 양이나 강도만이 아니라 질을 평가해 고급 쾌락과 저급 쾌락을 구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다른 도덕적 이상이 아니라 공리만으로 그 구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중략)
밀은 쾌락과 고통이 전부라고 주장하면서도, "더 바람직하고 더 가치 있는 쾌락이 있다"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어떤 쾌락이 질적으로 더 우수한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밀은 간단한 시험을 제안한다. "두 가지 쾌락이 있을 때, 그 둘을 모두 경험한 사람들 전부 또는 거의 전부가 어느 하나를 절대적으로 좋아한다면, 그것을 좋아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 따위와는 상관없이, 그것이 더 바람직한 쾌락이다.
이 시험에는 한 가지 분명한 이점이 있다. 도덕은 전적으로 우리의 실제 욕구에 달렸다는 단순한 공리주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밀은 "(어떤 행위가) 바람직한 무언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실제로 사람들이 그것을 바란다는 사실뿐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쾌락을 질적으로 구분하는 그의 시험은 한 가지 분명한 반박의 여지가 있다. 우리는 대개 고급 쾌락보다 저급 쾌락을 좋아하지 않던가? 우리는 더러 플라톤을 읽거나 오페라를 보러 가기 보다는 소파에 누워 시트콤을 보고 싶어 하지 않던가? 이처럼 어떤 행위가 특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저 즐기기 쉽기 때문에 더 좋아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79쪽

공리주의를 주창한 위대한 두 인물을 비교하자면, 밀은 좀더 인간다운 철학자였고, 벤담은 좀더 일관된 철학자였다. 벤담은 1832년에 여든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런던에 가면, 지금도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시신을 방부 처리해서 보존, 전시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에 따라 그는 현재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생전 옷차림 그대로 유리 안에서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앉아 있다.
벤담은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철학과 관계된 문제를 자문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산 사람에게 쓸모가 있을까? 그가 생각한 결론 하나는 시체를 해부학 연구에 사용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대한 철학자라면 육체를 그대로 보존해 장차 사상가가 될 후손에게 자극을 주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벤담은 후자를 택했다.
사실 잘 알려진 벤담의 성격에 겸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시신 보존과 전시에 관해 엄격한 지시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모임일 열어 "도덕과 입법에서 최대 행복 체계를 만든 사람을 기릴 것"을 친구와 제자들에게 제안했다. 그 모임에서는 벤담을 부각시켜야 했다.
추종자들은 그의 뜻에 따랐다. 벤담 스스로 ‘자기 성상’이라 이름 붙인 성상이 1980년대에 국제벤담학회 창설 모임에 참석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운영위원으로 구성된 이 모임에 박제된 벤담이 휠체어를 타고 참석했다고 전해지는데, 회의 의사록에는 그가 "참석은 했지만 의사결정권은 없는"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벤담의 세심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머리 부분의 방부 처리 상태가 안 좋아, 그는 진짜 머리 대신 밀랍으로 만든 머리를 얹고 불침번을 선다. 진짜 머리는 한동안 접시 위에 놓인 채 그의 두 발 사이에 놓여 있었지만 학생들이 그 머리를 훔쳐 갔다가 자선기금을 내놓겠다는 대학 측의 약속을 받고 다시 내놓은 일이 있은 뒤로 지금까지 지하에 보관되어 있다.
제러미 벤담은 죽어서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기여한 셈이다.-82쪽

이마누엘 칸트는 의무와 권리에 대해 다른 어떤 철학자보다 분명하고 영향력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그의 설명은 우리는 자신을 소유한다거나 우리 목숨과 자유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주장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는 존중받아야 하는 존엄성을 지닌 이성적 존재라는 생각에 기초한다.
칸트는 1724년에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80여 년 뒤에 그곳에서 사망했다. 그의 집안은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구를 만드는 사람이었고, 부모님 모두 개신교 경건주의자들이어서, 종교적인 내면의 수행과 선행을 강조했다.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열여섯 살 때 입학했으며 성적도 우수했다. 한때 가정교사를 하다가 서른한 살에 처음 강단에 섰다. 기본급 없이 수강 신청한 학생 수에 따라 보수를 받는 강사였다. 그는 인기가 좋은 데다 부지런해서 일주일에 강의를 스무 개나 소화했는데,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 지리학, 인류학 등 주제도 다양했다.
그의 나이 쉰일곱이던 1781년에는 첫 번째 주요 저서인 "순수이성비판"이 출간되었다. 데이비드 흄과 존 로크의 경험론에 도전한 책이다. 그리고 4년 뒤에는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를 출간했는데, 도덕철학에 관한 그의 여러 저서 중 첫 번째 책이다. 제러미 벤담의 "도덕과 입법의 원리"(1780)가 출간된 지 5년 뒤에 나온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에서 칸트는 공리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는 도덕이란 행복 극대화를 비롯한 어떤 목적과도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도덕은 인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고 존중하는 것이다.-148쪽

우리는 이제 칸트가 생각한, 도덕과 자유의 연관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도덕법을 생각해, 의무감에 따라 행동한다는 뜻이다. 도덕법은 정언명령인 인간 자체를 목적으로 여겨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이루어진다. 정언명령에 따른 행동만이 자유로운 행동이다. 가언명령에 따른 행동은 외부에 주어진 이익이나 목적을 의식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나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내 의지는 내가 아닌 외부 힘에 의해, 내가 놓인 환경의 필요에 의해, 어쩌다 생긴 내 바람과 욕구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자율적으로 행동할 때,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할 때만이 본성과 환경의 명령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한 법칙은 특정한 바람이나 욕구에 구애받지 않는다. 따라서 칸트가 말하는 자유와 도덕의 까다로운 개념은 서로 연결된다. 자유롭게 행동하기, 즉 자율적으로 행동하기란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즉 정언명령에 따라 행동하기와 똑같은 하나의 개념이다.-173쪽

칸트는 선의의 거짓말을 거부할 것이다. 결과론자의 주장을 근거로 도덕법에 예외를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배려한다는 의도는 존경받을 만하지만, 그것을 추구할 때는 정언명령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 행동의 바탕이 되는 원칙을 얼마든지 보편화할 수 있어야 한다. 목적을 따져보고 예외를 인정해도 좋다 싶을 때마다 예외를 인정한다면 도덕법의 정언적 성격, 즉 절대성이 무너지고 만다. 이와 반대로, 맞는 말이지만 오해를 일으키는 발언은 정언명령을 위협하지 않는다. 실제로 칸트 자신이 딜레마에 빠졌을 때 이 차이에 의존한 적도 있다.
칸트는 콩스탕과 교류하기 몇 년 전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와 껄끄러운 관계에 놓였다. 왕과 검열관은 종교에 관한 칸트의 글을 읽고 그가 그리스도교를 우습게 본다고 판단해, 그 주제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요구했다. 칸트는 말을 고르고 골라 이렇게 대답했다. "소인은 폐하의 충직한 백성으로서, 앞으로 종교에 관해 공개 강의를 일절 삼가고 논문도 절대 쓰지 않겠습니다."
칸트는 이 말을 지어낼 즈음 왕이 그다지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 년 뒤 왕이 죽자, 칸트는 이 약속에서 풀려났다고 생각했다. "폐하의 충직한 백성"일 때만 해당되는 약속이었으니까. 뒷날 칸트는 "영원히가 아니라 폐하가 살아 있는 동안만 (......) 자유를 빼앗기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프로이센의 정직함을 대표하는 이 인물은 상황을 영악하게 피해간 덕에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검열관을 속이는 데 성공했다.-186쪽

롤스는 강제로 평등을 달성하는 일을 능력 위주 시장사회를 대체할 유일한 대안으로 보지 않는다. 롤스가 내놓은 대안은 차등원칙이라 부르는 것으로, 재능 있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으면서 재능과 소질의 불공정한 분배를 바로잡는다. 어떻게? 재능 있는 사람을 격려해 그 재능을 개발하고 이용하게 하되, 그 재능으로 시장에서 거둬들인 대가는 공동체 전체에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가장 빠른 주자에게 족쇄를 채우지 말고 최선을 다해 달리게 하라. 단, 우승은 그만의 것이 아니라 재능이 부족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점을 미리 알려 준다.
차등원칙은 소득과 부를 똑같이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기본 사고는 평등에 대한 단호할 뿐 아니라 고무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차등원칙은 사람들의 타고난 재능을 공동 자산으로 여기고, 그 재능을 활용해 어떤 이익이 생기든 그것을 공유하자는 데 사실상 동의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태어나면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은 그들이 누구든,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상황을 개선한다는 전제에서만 자신의 행운을 이용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태어나면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단지 재능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이득을 읻어서는 안 되며, 그들을 훈련하고 교육하는 데 들어간 비용을 갚고,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그러한 행운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애초에 뛰어난 능력을 타고날 자격이 있거나 사회에서 다른 사람보다 유리한 출발선에 설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그러한 차이를 없애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 차이를 이용할 또다른 방법이 있다. 사회의 기본 구조를 조정해, 우연한 차이가 행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쓰이도록 하는 것이다."-218쪽

1. 정의는 목적론에 근거한다. 권리를 정의하려면 문제가 되는 행위의 ‘텔로스(telos:목적, 목표, 본질)’를 이해해야 한다.
2. 정의는 영광을 안겨주는 것이다. 어떤 행위의 텔로스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거나 논한다는 것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그 행위가 어떤 미덕에 영광과 포상을 안겨줄 것인가를 추론하거나 논의하는 것이다.
(중략)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가 중립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의에 관한 논쟁은 영광, 미덕, 그리고 좋은 삶의 본질에 관한 논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262쪽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정치 참여를 좋은 삶의 필수 요소라고 생각할까? 왜 우리는 정치 없이는 더없이 훌륭하고 미덕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없을까?
그 답은 우리 본성에 있다. 우리는 폴리스에 살면서 정치에 참여할 때만이 인간의 본성을 아낌없이 실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를 "굴벌이나 기타 무리지어 사는 동물보다 훨씬 더 정치적인" 존재로 본다. 그 이유는 이렇다. 자연은 어느 것 하나 헛되이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에겐 다른 동물과 달리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있다. 다른 동물은 소리를 내고, 소리는 쾌락과 고통을 나타낼 수 있다. 다른 동물은 소리를 내고, 소리는 쾌락과 고통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인간 고유의 특징인 언어는 단지 쾌락과 고통을 기록하는 수단은 아니다. 언어는 무엇이 공정하고 무엇이 불공정한지 선언하고, 옳고 그름을 구별한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소리 없이 파악하지 않고, 말로 표현한다. 언어는 선을 식별하고 고민하는 매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따르면, 오직 정치 연합에서만 우리는 언어라는 인간 고유의 특성을 발휘하는데, 그 까닭은 폴리스에 있을 때만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정의와 부정을 고민하고 좋은 삶의 본질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는 폴리스에 살면서 비로소 본성을 실현한다. 고립된 상태에서는 언어 능력과 도덕을 고민하는 능력을 개발할 수 없기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274쪽

매킨타이어는 인간을 자발적 존재로 보는 시각의 대안으로 서사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다. 우리는 서사적 탐색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려면 그전에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삶이란 특정한 통합이나 일관성을 갈망하는 서사적 탐색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갈림길에 마주쳤을 때, 우리는 완전한 삶, 내가 관심을 갖는 삶으로 이끄는 길을 찾아내려 애쓴다. 도덕적 고민은 내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 내 삶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에 가깝다. 여기에는 선택이 끼어들지만, 그것은 해석에서 나오는 선택일 뿐, 의지에서 나오는 절대적 행위가 아니다. -310쪽

연대와 소속 의무는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로도 향한다. 내가 사는 공동체에서 나오는 특별한 의무 가운데 일부는 같은 공동체 사람에 대한 의무다. 그러나 나머지는 내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무다. 이를테면 독일인이 유대인과의 관계에서, 미국 백인이 미국 흑인과의 관계에서 부담해야 하는 책임이다. 역사적 부당 행위에 대한 집단적 사죄와 보상은 연대 의식이 내 공동체가 아닌 다른 공동체에도 도덕적 책임을 지게 하는 좋은 예다. 내 나라가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보상하는 일은 내 나라에 충성을 맹세하는 한 방법이다. 더러는 연대 의식으로 정부의 조치나 같은 국민을 비판하기로 한다. 애국심은 정부 정책 반대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중략) 자부심과 수치심은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도덕 감정이다. (중략) 가족이나 동료 시민의 행동에서 자부심과 수치심을 느끼는 감수성은 집단적 책임감을 느끼는 감수성과 연관된다.-326쪽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탐색했다. 어떤 이는 정의란 공리나 행복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선택은 자유시장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행하는 선택일 수도 있고(자유지상주의의 견해),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행할 법한’ 가언적 선택일 수도 있다(자유주의적 평등주의의 견해). 마지막으로 어떤 이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독자들도 눈치챘겠지만, 나는 세 번째 방식을 좋아한다. (중략) 정의에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이 끼어든다. (중략)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360쪽

소득과 부의 공정한 분배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정치철학 논쟁의 중심이었다. (중략)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자를 도우려는 일부 철학자들은 공리라는 이름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부자에게 100달러를 가져다 가난한 사람에게 주면 부자의 행복은 조금 줄지만 가난한 자의 행복은 훨씬 더 커진다고. 존 롤스도 재분배를 옹호하지만, 그 근거는 가언합의다.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가언적 사회계약을 생각해 본다면 누구라도 재분배 원칙에 동의라리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인의 삶에서 불평등 심화를 걱정하는 더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빈부 격차가 지나치면 민주 시민에게 요구되는 연대 의식을 약화시킨다는 사실이다. (중략)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의 서로 만날 수 있는 곳에 학교, 공원, 운동장, 시민회관 같은 (중략) 공공시설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공적 영역이 비어버리면 민주 시민 의식의 토대가 되는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키우기가 어려워진다.-3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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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1-04-18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긴 논의가 돌아가는 곳이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이고, 그것이 이익이 아니라 의로움을 생각하라는 논어, 맹자의 가르침과 통한다는 것이 재미있다.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이태준 전집 6 - 사상의 월야, 법은 그렇지만 - 장편, 깊은샘 신서 15 이태준 문학전집 18
이태준 지음 / 깊은샘 / 1988년 10월
구판절판


"할머니, 여기 정서방은 왜 없수?"
할머니는 얼른 대답하지 않으셨다. 상전이라기보다는 무슨 上官처럼 떠받들던 이감리의 한많은 백골을 자기 등으로 져다가 그의 선영에 봉안해 놓고 돌아설 때 우둔한 가슴에나마 감개의 불길이 가시지 않았다. 전날 이감리의 말씀을 들으면
"의병 그들이야 욕하지 말라. 그들이 끓는 피야 얼마나 귀한 거냐. 다만 그들을 거느린 사람들이 시세를 분별하지 못하니....."
한이라는 것이었다. 나리님이 생병이 들어 돌아간 생각만 하면, 원수 같은 그들이지만, 나리님 자신으로도 그들을 의로운 사람들이긴 피차가 마찬가지라 일컬었고, 이제와 불둑거리는 심사를 휩쓸려볼 데가 따로는 없는 것이라, 의병대에 뛰어들고 말은 것이다. ‘돌다리’가 어딘지 돌다리 접전에 죽었다는 말도 있고, 거기서는 살았으나 행방을 모른다는 말도 있는 것이다.-44쪽

특히 송빈이에게 깊이 가슴에 새겨진 것은 伊藤博文 작이라는 漢詩 구절이었다.

男兒立志出鄕關 사나이 뜻이 서서 향관을 떠난 바에
學若無成死不還 배워 이룸이 없이야 죽은들 돌아올 것가.
埋骨豈期墳墓地 뼈 묻기를 어찌 분묘지에 기약하리요
人間到處有靑山 인간 이르는 곳마다 푸른 산은 있도다.


-70쪽

이들도 시험이 끝난 날 저녁이다. 은주 어머니는 송빈이와 은주더러 활동사진 구경이나 갔다오라 하였다. 송빈이는 우미관으로 갈까 단성사로 갈까 하는 은주를 데리고 조선호텔로 온 것이다. 전에 윤수아저씨를 따라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로오즈 가아든으로였다. 호텔 후원에는 여러 가지 장미가 밭으로 피었는데, 오십 전만 내고 들어오면 꽃구경은 물론이요 이왕직 악대의 음악 연주도 있고, 아이스크림도 주고 나중에는 활동사진으로 금강산 구경까지 하는 것이었다.
송빈이는, 장미꽃과 장미꽃 사이를 은주와 가지런히 앉으며, 노서와 소설에 흔히 나오는 리라꽃 그늘을 걷는 애인과 애인의 환상을 그려볼 때, 금시 살이 찌듯 소담한 행복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같이 의자에 앉았고, 같이 음악을 듣고,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같이 금강산의 절경을 바라보고, 폭포가 나오면 같이 손뼉을 치고, 그러다가 송빈이 손은 은주의 손을 덥석 잡아보았다. 보드라운 은주의 손도 잡히지만 않고 꼭 잡아 주기도 하는 것이었다.-129쪽

아침 여섯시면 鍾峴 천주교당에서 으레 종소리가 울려왔다. 뎅- 뎅.... 단조한 금속의 소리나, 고통과 원망과 고독과 피곤으로 찬 송빈이의 귀에는 그냥 최고 최대의 음악이었다.
"여기 인생의 진리와 위안이 있으니 오라." 부르는 것 같고 "참아라, 믿어라, 오직 사랑해라"하고, 인종의 신념을 돋아주는 것도 같았다. 송빈이는 종소리가 나면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종교란 인류가 불행하기 때문에 생겼을 거다! 그러면, 종교란 인류이 불행을 구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종교!"
송빈이의 외로운 마음은 무엇에나 의지부터 하고 싶었다.(아래에 계속)-162-163쪽

(위에서 계속)송빈이는 하루 아침 다섯시에 일어났다. 아침 미사종이 울리기 전에 천주교당으로 올라왔다. 처음 와 보는 데다, 거의 남산의 중턱 만큼이나 높은 지대여서 장안이 눈 아래 즐비하게 깔린다. 교당은 가까이 와 보니 높다는 것보다는 장엄스러운 편이었다. 서울의 여명은 먼저 이 교당 첨탑에 비치는 것이며 좌우 낭하의 홍예문들은 거기가 곧 천국에 들어가는 문처럼 위엄스러웠다. 새벽 하늘의 이슬이나 받아 먹고 사는 듯한 눈 맑인 神父들이 검은 법의자락을 끌며 깊은 사색에 쌓여 거닐었고 한두 사람씩 모여드는 평신도들도 아직 먹고 자기는 항간에서 하되 언제든지 우리의 돌아올 데는 여기라는 듯이 뒤 한번 돌아다들 보지 않고 극히 평화스럽고 담박한 얼굴들이었다. 송빈이는 그네들이 다 회당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먼 발치서 바라보았다. 종이 울렸다. 각일 각 어둠이 물러가는 장안은 돋아오르는 해로 인해서가 아니라, 여기서 울리는 종소리 때문에 광명에 차지는 것 같았다. 장안은 내려다볼수록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연기가 일어나고 갖은 수레가 달리고 즐비한 기와집들, 거만스럽게 울둑불둑 솟은 고층 건축들.
(아래에 계속)-162-163쪽

(위에서 계속)
"모두 사람들은 사는 거다! 현실적으로 굳세게 사는 거다! 유팔진이와 장은주도 저아래서 현실적으로 행복을 경영하며 있다! 사람은 물론 너 나 할 것 없이 죽고 만다. 죽을 바엔 애써 무엇하랴? 하는 것 그것 역시 厭世가 아닌가? 자살은 패배다! 패배자다!"
송빈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웅성거리는 장안은 웅성거리는 군중의 얼굴들로 보였다.
"지금은 차서 넘치는 이 서울 장안도 고려 땐 한낱 보잘것없는 산촌에 불과했을 것이다! 사람의 힘이란 얼마나 큰 거냐. 이 무한한 가능성에 찬 것이 사람의 힘이요, 그 중에도 사내의 힘이요, 그 중에도 청년의 힘일 것이다! 한낱 계집애를 원망함으로써 입맛을 잃고 학문을 게을리하고 청운의 뜻을 저버리고, 아! 내 아버지의 망명고혼을 생각해선들!"
송빈이는, 한 폭의 지도처럼 서울을 짓밟는 기세로 종현을 뚜벅뚜벅 내려왔다.
"지금은 첫째도 공부요, 둘째도, 세째 네째도 공부다!"-162-163쪽

송빈이는 또 한편 학교(인용자주-휘문고보. 민비의 조카이며 구한말의 세도가인 민영휘가 설립)에도 불평이 커가기 시작했다. 말이 중학생이지 나이 삼십이 넘은 사람까지 있어 평균 이십대의 청년들이었고, 이들의 정신적 요구가 중학교 학과에나 만족할 리 없는데, 그나마 학과에 충실한 선생보다는 밤낮 시간에 들어오면 학교자랑과 교주의 예찬과 운동선수의 자랑으로 흐지부지였다.
송빈이는 첫째 교주에게 존경보다는 그와 반대였다. 그가 전날 평안감사로 가서 어떤 치적을 남기고 왔다는 것은 전에 順川에서도 들었거니와, 그런 어른으로 가끔 신문에 보면 효자나 열녀가 나면 으레 상급을 내리는 것이었다. 아직도 자기는 한 城主인 양 남의 아들 남의 아내에게 금시계니 금반지니를 내리는 것이었다. 송빈이 또래 몇은
"우리 같음 그까짓 것 받지 않겠다!"
하고 비웃은 일이 있다.
"오늘날에야 자기가 하상 무언데? 자기가 상을 준다면 고작 자기가 경영하는 교직원이나 학생에게지 민중이나 백성들에게 무슨 권한이 있을 것인가?"
송빈이는 자기한테 그처럼 고마우신 교장선생께까지 불평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168-171쪽

(위에서 계속)
이런 일이 있었다. 여름 방학이 머지 않았는데 갑자기 평양으로 수학여행을 간다하였다. 시기로 보나, 처소로 보나, 전례가 없는 행사라 단순한 수학여행이 아니었다. 중앙에서 배재에서 부랴부랴 축구선수를 끌어다가 교표와 교복단추를 바꿔 달아 놓더니, 이 벼락 축구팀을 평양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여행단에게 교장의 훈시는 근래에 드문 열변으로 이런 구절이 튀어나오기까지 하였다.
"학교팀이든 사회팀이든 모주리 이겨야 한다! 아뭏든 평양을 꺾어 놓구 와야 한다! 평양을 못 꺾구 오면 우린 교주 선생을 대할 면목이 없는 거다! 그야 반대루 평양만 휩쓸구 올라오면 우리 학교는 장래에 큰 서광이 비칠 것이다."
이 서광이란 재단법인을 의미하는 줄은 또 교주가 평양과 격진 감정을 일학년생들도 다 직각하였다. (아래에 계속)-168-171쪽

(위에서 계속) 물론 학교 하나를 영구한 반석 위에 세워 놓기 위해서는 수단의 여하를 가리지 않는 늙은 교장의 눈물겨운 노력에는 차라리 감격할 이유도 한편에는 없지 않으나 그러나 수단이 교육가로서는 최선의 것이 아니었고, 그의 밑에 있는 교직원과 팔백 명 학생이 너무나 이용당하는 것이었다.
무슨 운동시합을 이기면 전교학생이 학교에보다 교주댁 마당으로 먼저 들어갔고, 가서는 그 여러 마님들과 아씨들까지 치장을 차리고 나타나도록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뜰 아래 서 있어야 했고, 이윽고 가족사진이나 찍는 것처럼 의자가 정된이 된 두에 교주를 중심으로 전 가족이 앉을 자리에 앉고 설 자리에 서야, 그제야 교장이 나서서 시합 경과를 보고하였고 "교주만세"를 세 번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운동부에 금일봉을 내리라는 분부를 받고, 최경례를 하고 나오는 것이었다. 원족을 갔다가도 교주댁 산소 앞이면 그냥 지나지 않았고 교주의 생일날에도 학생들은 몇 주일동안 창가를 연습해 가지고 가 불러야 하였다. (아래에 계속)-168-171쪽

(위에서 계속) 한 번은 오후 첫시간인데 갑자기 집합종이 울렸다. 선생들도 눈이 뚱그래 사무실로들 달려갔다. 장난은 종을 치는 소사가 아니라 좀더 높은 데 있었다. 교주께서 바람을 쏘이시려 장충단 공원으로 가셨다가 넓은 마당을 보니 팔백 명 학생을 한 번 한 뜰에 세워놓고 보시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는 것이었다.
학교는 소사 하나만 남고 장충단으로 쓸어나왔다. 두 체조선생은 이번에 교주께서 흡족히 보신다면 말만 있어 내려오던 운동장 늘리는 것은 실현될 것이라고 학생들이 발을 하나 잘못 맞추어도 서슬이 시퍼래 눈을 부르떴다. 장충단에 이르자 교주께 경례를 하고, 교가를 부르고 곧 합동 체조가 시작되는데 교주께서 학생들을 웃저고리는 벗기라는 분부가 내렸다. 체조선생은 곧 분부대로 호령을 내렸다. 팔백 명 학생이 일시에 웃저고리를 벗어 한 걸음 앞에 내려 놓는데 오직 한 학생만이 꼼짝않고 웃저고리채 서 있는 것이었다. 그는 송빈이었다.
(아래에 계속)-168-171쪽

(위에서 계속)
체조선생은 대뜸 송빈이에게로 달려왔다. 뺨부터 철썩 붙였다.
"귓구멍 맥혔어? 누깔두 없니?"할수없이 송빈이는 단추를 끌렀다. 샤쓰가 아니라 그냥 맨살의 가슴이 나왔다.
"뭐냐 이건?"
"가슴이올시다."
"이놈아 학교서 지정해 준 내읠 어째 안 입었니?"
"사지 못했습니다.""교줏댁 부인네들도 계신데 이게 무슨 추태냐?"
"그래 못 벗었습니다."
"내의라도 학교서 지정한 게 있는 이상 교복이다. 교측이다. 넌 교측을 위반한 놈이야."
"어떡허랍니까?"
"빨리 단추를 다시 채지 못해? 냉큼 저리 나가!"
"네."
"저 산속에 가 있다 끝나거든 나헌테 와."
송빈이는 단체에서 빠져나와 교주께서 여러 남녀 부하들과 앉아 있는 반대쪽 산으로 올라왔다.
"공부허다 말구 나와 이건 다 뭔가? 제 돈 갖다 제 밥 먹구 공부하는 학생들을 저희 치렛거리 무슨 儀仗兵으로 아는 셈인가?"
교주의 일종 관병식은 한 시간 뒤에 끝이 났다.
-168-171쪽

송빈이는 돈이라고 모두 오 원이 달지 말지 한 것을 주머니 속에 더듬어 만져보는데, 누가 어깨를 툭 친다.
"이리 나와."
양복쟁이다. 형산인 줄은 이내 알았다. 뒤를 돌아보니 승객들이 까맣게 연대었다. 나서면 모처럼 중간에 끼인 위치는 잃어 버리고 말 것이다.
"왜요?"
"나서기 싫다 말이지? 그럼 그냥 서 있어 봐."
하더니, 잠자코 가 버린다. 송빈이는 속으로 형사치고는 꽤 순하다 생각하였다.
이내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송빈이도 옆에 놓았던 빠스켙을 들고 움짓움짓 나섰다. 배에 걸친 사닥다리에 올라가려 할 때다 옆에서 아까와는 다른 양복쟁이가 소매를 잡아다린다.
"도향 증명."
"도항 증명요?"
송빈이는 놀랄 수밖에 없다.
"도항 증명두 없이 배를 탈랴구 그래?"
"어디서 맡습니까?"
"저어기 수상서루 가 맡아 와."
하고 정거장 쪽을 가리킨다.보니까 그쪽으로 두리번거리며 뛰어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송빈이도 그쪽으로 뛰는 수밖에 없다. 긴 부두를 다 나와서도 이백미터 경주는 되게 뛰어야 했다. 형사들은 조선사람의 얼굴은 그처럼 잘 집어내면서 왜 미리 알려 주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웠다. (아래에 계속)-184-187쪽

(위에서 계속) 하기는 아까 그 행렬에서, 나서라던 형사가 도항증 이야기를 하려고 그랬는지 모른다.
송빈이는 그 종이쪽에 渡航證이라는 도장을 찍어 주는 데로 와서는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자들, 옷주제 망칙한 그의 아내들, 그의 어머니들, 갓을 쓴 노인도 있는 그의 아버지들, 그리고 양복쟁이들, 한마당 욱실거리며 저마다 도항증을 얻으려고 애쓰는 정경이다. 이런 현실이 따로 기다리고 있는 것을 송빈이는 전혀 몰랐다. 배가 떠날 시간은 가까워 오는데 줄지어 늘어선 것만 해도 오십 명은 된다. 게다가 이내 도장만 찍어 주는 것이 아니라 원적이 어디냐? 이름이 무어냐? 무엇하러 가느냐? 시시콜콜이 캔다. 제 원적, 제 성명 하나 얼른 써 놓는 사람도 몇이 안된다. 급하기만 한 여러 가지 사투리들은 무슨 메누리가 아일 나러 왔다간다느니, 아들이 무슨 공장에서 병들어 죽어간다고 편지가 왔다고 꾸겨진 하도롱 봉투를 꺼내드는 늙은이, 몇 사람의 학생들을 내놓고는 모두 그들의 차림과 같이 궁상들이다. (아래에 계속)-184-187쪽

(위에서 계속) 무엇을 표준으로 가리는 것인지 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밀어내는 사람도 여럿인데 송빈이도 그만 이 밀어내는 축에 끼어졌다. 왜 서울서 학교를 마치지 않고 가느냐는 것이다.
"옳지! 휘문이 이번에 동맹휴학을 했지? 거기 주모자루 퇴학을 당헌 게지?"
하고 형사는 송빈이의 눈 속을 찌르듯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왜 대답을 못해? 이번 맹휴에 주모자지? 경성 종로 경찰서루 전보 한 장이면 대뜸 알 수 있는 거야. 그따위 불온분잔 더구나 진재 직후라 절대루 도항 안시켜."
하고, 다시는 말대꾸도 안하는 것이다. 송빈이는 눈앞이 캄캄하다. 부두에서는 배 떠나는 징소리가 울려온다. 도항증을 받아쥔 사람들은 미친 듯이 뛴다. 신짝이 벗어져 달아났으나 집기는커녕 돌아볼 새도 없이 버선 바닥으로 뛴다. 내 아들 나 보러 가는데 왜 안 보내주냐고 악을 쓰는 노파도 있다. 저녁배나 타게 해 달라고 "나으리 나으리" 하고 조르는 사람도 있다.(아래에 계속)-184-187쪽

(위에서 계속) 양복을 입고 금테안경을 쓰고 꽤 신사로 차린 사람인데
"이거 적선허시는 일레루...... 나리께서 도장 한 번 찍어 주심 만사가 핍니다그려. 살려 주수!"
하고 인사 체면 없이 쩔쩔매는 사람도 있다. 사실 빌어서 되는 일이라면 송빈이도 빌어 보고도 싶다. 주위에 보는 사람이라고는 다 남이다. 누구 앞에 구구스럽게 애결했다는 무슨 표적이 붙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도항증만 얻어 가지고 이 자리만 떠나면 고만이다.
"빌어 봐? 누구헌테 어떻게 빌어야 허나? 무엇을 잘못했다구 빌어야 허나?"
뱃시간이 지나자 형사들은 하나도 곁을 안 주고 어디론지 뿔뿔이 흩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송빈이는 낯선 부산의 거리거리를 우울히 헤맸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 도항증을 얻을 무슨 길이 생길까 하는 일루의 희망도 품어 사람의 얼굴마다 자세히 살폈으나, 낯익은 얼굴은 만날 수 없었다.
점심때가 지나서는 정거장 대합실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이 어쩌다 한 사람의 낯익은 얼굴이란 아침에 배를 타려고 행렬에 끼어섰을 때 송빈이더러 "이리 나와" 하던 형사였다.
(아래에 계속)-184-187쪽

(위에서 계속)
송빈이는 그의 앞으로 가 모자를 벗었다.
"오 오마에까! 왜 아침배에 못 떠났어?"
하고,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샛노란 윗수염을 찡긋해 조소를 보인다.
"저어......"
"무엇하러 가는 거야?"
"공부 갑니다."
"공부?"
"제가 아침엔 누군지 몰라뵙구..... 잘못했습니다."
"동경 유학 가는 사람들은 대개가 건방지단 말야!"
"잘못했습니다."
"돈나 에라이 히도데모 이찌도와 민나 보꾸나 데니 가까루까라나!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한번은 모두 내 손에 걸리는 거니까!)"
송빈이는 모기소리 만큼
"나리님!"
해 보았다. 그는 또 씽긋 웃었다.
"이담 동경서 사각몰 쓰구 나올 때두 날더러 나리님 그럴까?"
"......"
송빈이는 차마 "그러믄요" 소리까지는 나와지지 않았다.
"흥 저거 보지! 당장 궁허니까 나리님이지 도항증만 손에 받어 쥐어 보지! 그 자리서 속으룬 욕을 헐 걸? 아니 지금두 속으론 내가 밉지?"
하고, 눈알까지 노란 것이 쏘아볼 뿐 아니라 단장 끝으로 송빈이의 배를 꾹 찌르는 것이었다. 송빈이는 침없는 목을 꿀꺽 삼키고 돌아서고 말았다.
(아래에 계속)-184-187쪽

(위에서 계속)
저녁때야 송빈이는 白山商會를 생각해냈었다. 부산에 있는 큰 물산객주로 전에 송빈이가 있던 원산의 그 물산객주와 빈번한 거래가 있어 송빈이는 그 주인을 안다. 기억에 떠오르는 ‘草梁;이란 이름의 동네를 찾아가니 과연 백산상회가 그저 있을 뿐 아니라 주인도 송빈이를 알아보았다. 주인은 이내 경찰서에 전화를 걸더니 사환애를 보내어 고등계 주임의 명함을 얻어다 주는 것이었다.
이 명함은 도항증을 맡을 것도 없었다. 도항증을 보여야 할 목에서마다 도항증보다도 오히려 묻는 말이 없이 통과되었다.
배에 올라 삼등실로 내려가려는 모퉁이에서였다. 그 노란 수염의 ‘나리님 형사’와 부딪쳤다. 그는 잡담 제하고 소매를 끌었다. 송빈이도 아무말 없이 명함을 내밀었다. 분명한 도장까지 찍힌 저희 상관의 것이라 멀쑥해지며 다른 데로 가 버렸다.
-184-187쪽

불탄 자리 벽돌집이 문허진 자리, 진재의 자취는 처참한 채 그냥 버려져 잇섰다. 이런 초토의 거리거리가 한 시간쯤 지나 모수리는 떠러지고 벽은 금이 낫스나마 우뚝우뚝한 고층 건축의 밀집지구가 닥치더니 동경역이엿
다. 신문에서 사진을 본 기억이 잇는 굉장히 긴 동경역이엿다.
송빈이는 정거장을 나서니 막연하엿다. 주머니 돈이라고는 톡톡 털어 일원 육십전이엿다. 마조 보히는 제일 큰 건물의 층수를 한번세여보고는 다시 대합실로 드러와 우선 세면소를 차저 세수를 하엿다. 식당에 가 미소시루의 조반을 사먹고 고리짝은 찻는대야 짐만 될 것이니까, 그냥 정거장을 나와버렷다. 날씨는 아침부터 몹시 무더웟다. 송빈이는 日比谷公園(인용자주-히비야공원)에서 이틀밤을 잣다. 그러고 사흘만에 "가구라사끼(인용자주-神樂坂 카구라자카)" 근처에 있는 어떤 新聞店 에 들엇다. 지나다가 요행히 배달부 한 명을 급히 쓴다는 광고를 발견햇던 것이다.
(아래에 계속)-194-197쪽

(위에서 계속)
여기 신문은 서울처럼 신문사에서 직접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문이든지 한데 마터다 파는 신문판매점이 따로 잇섯다. 그래서 배달부는 여러 가지 신문을 한거번에 돌라야 되는데 송빈이가 마튼 삼백 부 가량 나가는 구역에도 동경조일(東京朝日), 시사신문(時事新聞), 미야꼬(都), 야마도(やまと), 니로꾸(二六) 등 다섯 가지의 신문이엿다. 한 구역 안에서 어떤 집은 조일, 어떤 집은 야마도, 또 어떤 집은 어느것의 夕刊만, 어떤 집은 어느 것의 朝刊만, 그리고 또 어떤 집은 어느것과 어느것 두 가지씩 이러케 복잡하니까 배달부가 갈릴 때마다 여간 두통거리가 아니엿다 송빈이는 조석으로 사흘 여섯 차레를 쪼차다니고야 겨우 혼자 도를 수가 잇섯다. 월급은 십팔원, 밥과 잠은 신문점에서 마터주고 한달에 십이원씩을 제한다고 하니 잘해야 오륙원이 떠러지는 버리엿다.
(아래에 계속)-194-197쪽

(위에서 계속)
밥이 적고 간이 안 마젓지만 먹는 것보다는 잠이 더 걱정이엿다. 이층 팔조방에서 여섯 배달부가 몰려 자는데 어떤 사람은 이부자리도 업슬 뿐 아니라 제마다 잇다처도 따로 잘 자리가 업섯다. 송빈이의 새 이부자리는 공동이부자리가 되여버렷다. 아모튼 눕기만 하면 잠은 쏘다지는데 겨우 굿잠이 될 만하면 발길에 채이는 것이다 벌떡 고개를 들어보면 으레 박갓테선 조간을 날러온 신문사 화물자동차나 자동자전차의 투드럭소리가 요란하고 잇섯다. 시계는 누가 금새 서너시간이나 돌려 노흔 것처럼 어느듯 두점 반에서 세시 사이에 가 잇는 것이였다. 눈까풀이 찰덕인 것을 억지로 부비면 눈알은 모래가튼것 가텃다. 보히지 안는 신문을 기게적으로 접다가 끄덕 졸아버리면 그만 첫장부터 수효를 다시 세봐야 한다. 꾸물거리면 주인이 "빠가!" 소리를 지른다.
‘핫비’를 입고 신문을 메고 비는 자조 와 마를 새가 별로 업는 ‘지까다비’에 발을 너코 골목에 나서면 그제야 아침바람에 이마가 식으며 정신이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래에 계속)-194-197쪽

(위에서 계속)
처음 골목에 드러서면 신문과 우유배달부뿐이다가 한 시간쯤 지나 다섯시가 가까워 오면 벌써 ‘낭아야’에서 들은 멀리 잇는 공장에 일갈 남편을 위해 안해들은 나와 조반을 짓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네들은 쌀을 씻다 말고, 불을 피다 말고, 신문을 바드려 으레 "오하요" 아니면 "고꾸로사마" 하고 인사를 해 주엇다. 여기 여자들은 퍽 친절한 것, 구차한 노동자들도 신문 한 가지씩은 으레 보는 것, 호화롭기만 한 것 가튼 동경도 그 근처에는 수만흔 근로대중이 날이 밝기 전부터 동원되여 잇는 것, 송빈이는 신문을 돌라보기 때문에 실지로 보고 깨다른 것이엿다.
(아래에 계속)-194-197쪽

(위에서 계속)
저녁신문을 도를 때는 또 한가지 다른 세계가 눈에 띄엿다. 남자들이 공장에 가 버리를 한다고 여자들은 집에서 남편이나 아들의 월급봉지만 바라고 그냥 안젓지 안엇다. 무슨 인쇄물을 마터다 접기 무슨 종이갑을 마터다 부치기, 부자이기 전에는 內職업는 집이 별로 업섯다. 송빈이가 놀란 것은 서울서 아니 철원서와 원산와 평안도 순천에서까지 보고 저 자신까지 쓰고 하던 그 비누갑과 그 치약갑과 약봉지들이 바로 여기서 부처지는 것이엿다.
"아 생산이란 이처럼 중대한 거로구나!"
"상품이란 이처럼 중대한 거로구나!"
하고 기피 생각하지 안흘 수 업섯다.
송빈이는 저녁을 먹으면 틈 잇는 대로 가까운 ‘간다’로 나려가서 책사 구경을 하엿다. 진재에 대부분이 타버렷다고는 하나 책사라기보다 책곡간 가튼 집들로만 한 동네를 이루어 잇섯다. 뽑아들면 모다 읽고 시푼 것 뿐이엿다. 그러나 책을 살 돈도 업거니와 책은 한두 권 산다 치더라도 읽을 처소가 업는 것이다.-194-197쪽

뻬닝호프씨는 그 여러 고핵생 중에 송빈이를 특히 자기 갓까히 잇게 하며 귀애하는 것 가텃다.
"저는 사각모에의 허영은 업습니다. 나 읽고 시푼 책을 읽을 수 잇스면 고만입니다."
하는 송빈이에게
"아니 나는 이군에게 꼭 와세다의 제복을 입혀보고 시푼데!"
하고 제복과 수업료와 교과서 갑슬 사십여원이나 월급 이외에 그냥 물어 주엇고 송빈이가 전문부일망정 조대의 제복을 입는 날 그는 자기 아들이나처럼 기뻐했다. 자기 사진긔로 사진을 찍어 주엇고, 자기 부인과 함?께 자기 집에서 송빈이의 장래를 축복하는 저녁까지 내엿다. 그는 또 송빈이와 틈만 잇스면 이야기하기를 조와하엿다. 그는 조선에 와본 적도 업거니와 들은 이야기도 금강산 박게는 업섯다. 심지여 조선에도 글자가 잇스냐고까지 뭇는 정도엿다 더욱
"나는 이군만은 첫인상부터 조흐나 조선청년들에겐 대체로 호감을 못 갓는다."
하엿다.
(아래에 계속)-205-208쪽

(위에서 계속)
"조선청년을 어듸서 만히 보섯습니까? 또 무엇 때문입니까?"
"조선청년들이 우리 스코트 홀 강당이 세가 싼 바람에 가끔 그들의 집회를 여기서 열엇섯는데 보면 대체로 평화적이 아니다. 조선학생들은 연단에 올라가면 공연히 싸우듯 큰소리를 내고 연단을 부시듯 차고 발로 구르기까지 하다가 결국은 싸홈도 버러진다. 그뿐인가, 으레 걸상이 한둘씩은 부서진다. 구두들은 도모지 털지도 안는지 강당안은 흙투성이가 된다. 마당에 나와서도 담배 피던 것을 불도 끄지 안코 사방에 함부로 던진다. 가래침을 여기저기 뱃는다. 작년 봄부터는 될수잇는대로 강당을 빌리지 안키로 하고 잇다."
송빈이는 몹시 흥분하였다. 대뜸
"선생께서 관찰이 그다지 단순하시 덴 놀랄 박게 업습니다."
하엿다. (중략)
그후 메칠 안 잇서서 스코트 홀 회게가 빼닝호프씨의 방으로 드러오더니
"조선학생들이 또 와서 강당을 빌리라고 합니다. 참 귀찮습니다."
한다. 송빈은 등사를 찍다 말고 귀가 번쩍 띄여 뻬닝호프씨의 입을 초조하게 쳐다보앗다.
(아래에 계속)-205-208쪽

(위에서 계속)
"왜 그들은 우리 스코트 홀만 땃인가?"
"여기 아님 本鄕(인용자주-혼고. 도쿄대학이 있는 지역) 불교청년회관이드랫는데 불교청년회관은 改築中이어서 금년 안엔 쓸 수가 없답니다."
"그래두 다신 그네들헌텐 안 빌리기로 작정한 것이니까."
하고 베닝호프씨는 타이프라이터만 계속하엿다. 회게가 그만 나가 버리는 것을 보고 송빈은 손에 등사잉크를 닥그며 베닝호프씨의 압흐로 갓다.
"선생님?"
"뭐요?"
"강당을 빌려 주십시오."
(중략)
"그것보다두 난...."
하면서 회전의자를 돌려 안즈며 어조를 고친다.
"이군?"
"네?"
"이군이 와세다전문부를 마치며 내 미국에 보내주지."
(아래에 계속)-205-208쪽

(위에서 계속)
"저를요?"
"그럼! 이군은 체격이 조타구 내 안해두 칭찬을 허는데 체육에 취미가 업나?"
"체육요?"
"미국 가 체육을 연구허구 와 여기 체육부를 마터 가지구 우리와 함께 스코트 홀 사업을 해 줬스면 조켓는데."
"동경서요?"
"암!"
"그리구 여기 잇는 동안은 아무런 단체에두 들지 말구 유학생회에두 참가 말구 예수만 진실히 밋구?"
송빈이는 고개를 떨구엇스나 오래 생각할 것도 업는 일이엿다.
"감사합니다. 절 그러케까지 유망히 봐 주시는 덴 감사합니다. 그러나 유감입니다만 지금 말슴하신 모든 게 제 자신에겐 무의미합니다."
"무의미!"
뻬닝호프씨는 불근 눈알이 소스며 두 손을 두 바지 포케트에 찔으며 일어섯다.
"그런 계획으로 절 도와주신 거라면 이미 바든 은혜만 해두 저로선 가풀 길 업는 부채올시다. 더 적당한 사람을 골라 이 자리에 쓰시기 바랍니다."
이리하여 송빈은 다시 압길이 막연하나 이날저녁으로 스코트 홀에서 나와버리고 말앗다.
(아래에 계속)-205-208쪽

(위에서 계속)


근고

이 소설에 나오는 시대가 대단 복잡햇섯고 이야기가 사실을 존중햇던만치 주인공의 이 앞으로의 모든 것은 좀더 신중히 생각할 여유가 필요하게 되엿습니다. 독자와 신문사에 미안합니다만 우선 상편으로 쉬이겟습니다.
작자



-205-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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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0-09-20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민지의 고아 소년이 문학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여정을 다룬 자전적 소설. 20년대 풍물이 흥미진진하다. ^^
제일 놀란 건 오늘날의 신문유학생이 그 때에도 있었다는 사실.

중퇴전문 2010-11-09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태준 잘 읽었습니다.

mizuaki 2010-11-11 00:56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
성북동에 이태준이 살던 옛 집이 있는데 분위기 있는 전통 찻집으로 영업중이랍니다. 한 번 가 봤지만 퍽 괜찮아서, 이태준이 마음에 드셨다면 추천합니다.

중퇴전문 2010-11-1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주아키님의 '퍽 괜찮은' 이유 한두개만 들려주시면 안 될까요.ㅋ

그래도 꼭 가보긴 하겠습니다.

mizuaki 2010-11-19 01:17   좋아요 0 | URL
살림집 느낌이 남아 있어서 좋았어요. 겨울 밤에 갔는데 바닥이 따뜻하고 차와 한과가 맛있는 것도 좋았고, 주인은 출타 중이지만 '작가의 집'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
 
한국문학사
김윤식, 김현 지음 / 민음사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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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과거의 문학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지만, 이 책이 충격하기를 요망하는 것은 오히려 오늘날의 문학이다. 문학에 대한 경멸과 白手에 대한 조소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어져 가고 있어 보이는 지금, 인간 정신의 가장 치열한 작업장인 문학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귀중한 각성의 몸부림이다. 문학이 없는 시대는 정신이 죽은 시대이다. 문학은 한 민족이 그곳을 통해 그들의 아픔을 재확인하는, 언제나 터져 있는 상처와도 같은 것이다.-8쪽

도대체 문학사란 무엇일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낮은 차원의 기반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주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문학사란 과거의 집적물에 대한 사적 기록이다. 물론 이때의 집적물이란 문학적 집적물을 의미한다. 과거의 문학적 집적물의 사적 기록이라는 문학사의 정의는, 그렇지만 몇 항목의 유보 사항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맨 처음 주의해야 할 것은 문학사는 역사와는 엄연히 다른 감정적 차원에서 서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역사는 감동의 세계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을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그러나 문학적 집적물은 반드시 감동과 향유라는 정서적 반응을 요구한다. 정서적 차원이 배제된 문학사란 문서 기록이나 고증의 차원으로 떨어져 버린다. 그것은 박사 학위 취득자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 줄 수는 있지만 문학사가의 흥미를 끌 수는 없다. 문학적 집적물은 그것이 나타나는 순간부터 타인에게 행하는 담론의 형태를 띠며, 그것은 반드시 상대방의 정서적 반응을 요구한다. (아래에 계속)-14-15쪽

(위에서 계속) 물론 역사적 사실도 기호론적인 입장에서 이해한다면 정서적 반응이 요구되는 기호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지만 담론의 형태로 주어지는 역사적 사실이란 집단적 행위의 소산이다. 헤겔에게서 절대 정신의 구현이라는 정서적 반응을 얻은 프랑스 대혁명도 일종의 집단적 행위이다.
문학적 집적물이 정서적 반응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진술은 동시에 그것이 개인적 산물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다. 문학 작품에 개인의 서명이 붙게 된 이후의 문학과 그 이전의 문학의 차이는 그 개인성에 있다. 그러나 그 개인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한 시대의 의미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드러내고 있는 대표자로서의 개인un individu comme le représentant d'un époque이다. 문학사가 역사와 다르게 예외적 개인l'individu exceptionnel에 많은 관심을 쏟는 것도 이 이유에서이다.
-김현-14-15쪽

조선 사회를 급진적인 이념에 의해서이든, 주자주의적 이념에 의해서이든, 어떠한 형태로든지 개혁하려고 한 노력이 외세, 특히 일본의 개입에 의해 무참하게 실패해 버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갑오경장(1894) 이후 사회적 개혁은 꾸준히 계속된다. 정치적 경제적 개혁이 일본 군국주의의 침투를 더욱 평이하게 하기 위해서 조직적으로 행해진 것 때문에 사회적 개혁 역시 대중의 광범위한 반발을 사게 되는 것이지만, 1894년의 신분 제도 철폐와 사회적 악습 혁파는 제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띤다. 제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띤다는 진술은 그것이 정치, 군사적 개혁과는 다르게 일제 치하에서도 계속되었고, 그것이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개혁 중에서 중요한 것은 인신 매매를 금한 것, 고문이나 연좌법을 폐지한 것, 남녀의 조혼을 금한 것, 과부의 재가를 개인 의사에 맡긴 것 등이다. 그것들은 조선조 후기에서 그 흔적을 드러낸 가족 제도의 모순점들이 1894년에 제도적으로 극복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아래에 계속)-116-117쪽

(위에서 계속) 그 가족 제도의 붕괴를 과부의 재가와 조혼 금지 외에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단발령(1895)이다. 단발령에 대한 유림의 완고한 항거는 일제에 대한 항거 이상의 의미를 띠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존립을 가능케 한 이념, 즉 주자주의에 대한 결정적인 타격으로 유림들에게 이해된 것이다.
-김현-116-117쪽

개화기 문체는 결국 국한문체로 확립되어 갔는데, 그 중요한 이유가 일본 문체의 영향이다.
-김윤식-143쪽

다만 형식의 특색은 영어를 많이 섞고 서양 유명한 사람의 이름과 말을 이용하여 무슨 뜻인지 잘 알지도 못할 말을 길게 함이었다. 형식의 연설이나 글은 서양 것을 직역한 것 같았다. 형식의 말을 덛건대 이러한 말이나 글이 아니고는 깊고 자세한 사상을 발표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을 쫓지 아니함은 그네가 자기의 사상을 깨달을 힘이 없음이라 하여 혼자 분개하여 한다.

이 부분은 초기 이광수의 언어관을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그는 여기에서 언어란 그것이 표현하려고 하는 것과 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진술한다. 그의 새 생각은 새 표현을 요규한다. 그 표현은 구투로 행해질 수 없다. 그러므로 그의 문장은 단순한 언문주종이 아니라, 서양 언어의 직역투의 문장이다. 그 직역투의 생경한 문장은 그의 개화 의식의 생경함에 적절하게 대응한다. 그의 직역투의 문장과 반주자주의적 이념은 표리의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아래에 계속)-206-207쪽

(위에서 계속) 그의 직역투의 문장에서 얻어진 문장상의 효과는 무엇일까. 제일 두드러진 것은 사고하는 주체의 객관화이다. 주체가 객관화된다는 것은 반성적 사고가 행해진다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문을 가능케 하며 추론을 가능케 한다. 「무정」중에서 독자들에게 가장 박진력 있게 제시되는 대목은 물론 이러한 반성이 행해지는 대목들이다. 그 외에 사건만을 제시하거나, 작가가 개입하거나, 공상을 할 때에는 예의 구투 문장이 그대로 드러난다.
-김윤식-206-207쪽

그(인용자주-염상섭)에 대한 또 하나의 비판은 주제의 빈곤인데, 그것은 그가 지나치게 평범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소위 드라마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피상적 단견이다. 그의 작품 속에 그가 아무런 해석도 가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평범하게 내보여 주고 있는 일상적 인물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인물들이 평범하고 지루한 인물들이 아니라 한국 당대의 상황을 가장 실감 있게 살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그의 인물들의 드라마는 초기의 몇 개의 작품을 빼면 대부분 돈과의 격투라는 가장 근대적인 드라마이다. 돈을 에워싼 여러 종류의 인물들의 애환을 그림으로써 그는 식민지 치하에서부터 한국 전쟁에 이르는 기간의 한국 사회를 그 누구보다도 탁월하게 묘사하여 형상화해 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아래에 계속)-251-252쪽

(위에서 계속) 그의 소설은 주제의 빈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작가의 어떤 소설들보다도 강렬하게 일관된 하나의 주제, 돈과 인간과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어 그것을 통해 독자들이 인간 속에 감추어져 있는 욕망이라는 괴물과 그 괴물의 분장을 돕는 상황을 감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의 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부르주아지의 문학이라고 지칭될 수 있다.
-김윤식-251-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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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0-09-18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72, 1973년에 문학과 지성에 연재. 조선후기를 근대의 기점으로 잡음으로써 커다란 방향을 불러일으켰던 저작. 그러나 이렇게나 지적인 저자들이 도대체 왜 민족을 절대화하는 이상한 사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60대부모와 사는 30대독자에게는 너무 리얼한, 감동하기에는 머리가 아픈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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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 문학의 기본개념 3 문학의 기본 개념 3
최기숙 지음 / 연세대학교출판부 / 2003년 2월
품절


[뒤러의 그림] <철갑코뿔소>는 그 자체로 감상자에게 심미적 체험을 선사하였다. 이것은 실재를 재현하려다가 실패한 상상적 활동의 결과물이 독자적인 미적 영역을 구축한 사례이다. 이 경우 상상의 힘은 리얼리티의 재현에만 국한되어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가시화된 리얼리티의 재현을 넘어선 곳에서 작동함으로써 독자적인 미적 세계를 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환상’의 범주에서 이해한다고 할 때 ‘환상’은 실재의 재현을 넘어서, 작가의 상상에 근간한 텍스트 내적 질서에 의해 구축된 이념적 세계로 볼 수 있다. -29쪽

세계에 대한 상상적 이해를 문학적으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비가시적인 원리나 법칙 등이 가시화되거나, 관념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형태는 ‘환상’으로서 호소된다. 환상은 기존의 질서나 인식 체계를 넘어서 세계를 재정의하고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인식론적 형태, 혹은 그 구성물이다. 따라서 문학에서의 환상은 기존의 세계 인식과 표현 방식과는 다른 형태의 방법들을 동원하게 된다. 문학에서의 환상은 리얼리티의 재현 형식으로 현실 세계를 모방하고 재생산하는 문학 형태나 세계와는 달리, 리얼리티의 재현을 넘어서 존재의 영도(零度)에서 새롭게 기호 의미를 완성하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상상력의 한 표현 영역이다. -32쪽

문학에서의 환상은 인식론의 문제와 연계되며, 특히 고대의 신화나 전설들은 이에 대한 표현이 직접적이다. 전설이나 신화, 민담의 서사 세계에서 환상은 현실과 갈라지지 않는다. 환상은 현실의 일부이며, 그 저변에는 민간 신앙이나 민속적 관습 등 세계에 관한 인식론적 이해가 전제되어 있다. 예컨대 사람과 귀신, 사물, 동물 식물 등이 상호 변신할 수 있다는 관념에 근거한 동아시아의 환상적 문학작품들은 기화우주론적(氣化宇宙論的) 인식론과 연계된다. 고대 중국의 신선가들은 부여받은 기(氣)가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라 증감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으로 여겼다. 이는 천지의 실체와 자연계의 만물이 모두 원기(元氣)로 구성되며, 그 취산(取散)의 결과에 따라 만물이 변화하고, 동물정령이나 요괴도 발생할 수 있다는 의식으로 변형되었다.-33쪽

환상은 역사적 계보를 형성하고 있으며 앞선 텍스트와의 대화적 관계를 구성한다. 세계에 대한 인식 행위의 문학적 형상화 방식으로 동원되는 환상의 내역은 역사적으로 재생산되었으며, 때에 따라서는 양식화된 형태가 문학의 하위 장르로 정착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환상의 역사성과 아울러 환상의 양식화 양상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고대의 신화와 전설, 민담을 비롯하여, 여기에 상상력의 뿌리를 대고 있는 각종 동화들, 서양에서의 고딕, 추리, SF, 경이와 기괴의 장르들, 중국의 지괴, 전기, 신마, 한국에서의 신선담과 이인전, 전기, 몽유록, 영웅소설, 판타지 소설 등이 그 예이다.-34-35쪽

고소설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환상성은 문학의 정당한 소재이자 필수적인 구성 요소로서 간주되었다. 소설에서 현실과 환상은 이원화되어 있으면서도 상호 간섭적으로 나타남으로써, 현실적인 시․공간 개념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 공간으로 운용되었다. 환상 세계를 통한 꿈의 형식들은 현실과 비현실적 세계와의 ‘교유(交遊)’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죽은 자와의 교유’, ‘이계(異界) 탐색’, ‘사물과의 대화’ 등이 대표적 양식이다(최기숙, 1996a). 이와 같은 전기적 요소들은 영웅소설에서 도사나 신적 존재와의 만남이나 천인적강(天人謫降)의 화소로 정착함으로써, 하나의 완벽한 구조적 틀로 자리잡는다. 특히 본래 천상계의 일원이었던 인간이 벌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적강 화소는 천상계와 지상계의 단절성을 극복하고 인간 존재를 삶의 무한한 연속선상에서 해석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55쪽

20세기 말에서 21세기로 들어오면서 전 세계적인 밀리언 셀러로 자리잡은 조앤 K. 롤링 Joan K. Rowling의 <해리 포터Harry Potter>시리즈는 환상 문학의 대중적 호응도를 확보한 작품이다. 다양한 마법사들과 진기한 교과목들, 각종 마법의 도구들이 제시된 <해리 포터>는 현실에서는 도저히 잇을 수 없는 것들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해리 포터>는 환상적 마법의 세계를 표방하는 것 못지 않게 현실의 제도권 사회를 모방하고 패러디한다. 이러한 서사 세계는 현재를 구성하는 제반 문화 요소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진지하게 시행하기보다는, 그 자체를 강화하고 그에 편승함으로써 독자들의 기호 속으로 속도감 있게 침투하려는 욕망을 보여준다. <해리 포터>는 현실의 모순을 작품의 정당한 서사 공간으로서 ‘자연화’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사 세계 속에서 독자들은 이제, 왜 해체인가를 의심하지 않고도 해체를 하나의 트랜드로 수용하면서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자유를 인가받고 있다.-72쪽

<현괴록>에 수록된 귀 속에 있는 두현국 이야기는 현실과는 다른 원리에 의해 지배되는 이계의 모습을 구체화했다. 이 이야기는 중첩된 액자 형식으로 구성되는데 이야기 안쪽의 액자들끼리 서로 소통하는 복잡한 구조를 취한다. 현실과 꿈, 가상과 실재는 서로 안팎으로 연결되어 있고, 전생과 현생은 꿈을 매개로 연속된다. 이러한 서사 구성의 복합성과 의미론적 다층성은 당대인들의 현실 인식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77쪽

로즈메리 잭슨은 환상물에서 타자서을 명명하는 것은 저자의 이데올로기적 전제들과 그것들이 기원하는 문화의 이데올로기적 전제들을 드러내는데, 보통 ‘악’의 개념으로 타자화되는 대상들은 ‘차이’를 ‘악’으로 명명하는 이데올로기적 태도를 함축한다고 보았다. 우리가 초자연적 경계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 속에서 타자서은 초월적인 것으로서, 천사, 악마, 천국, 지옥, 약속된 땅 등과 같은 종교적 환상과 꼬마요정, 난쟁이, 요정, 요정의 나라 등과 같은 이교적 환상으로 나타난다. 자연적 질서 혹은 세속적 질서에서는 그 어디에도 타자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인간의 공포와 주관적 지각을 통해 세계를 변형하려는 욕망의 투사로 읽힌다.-93-94쪽

인간의 경험이 사회성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에 개인의 주관성과 내면성은 자기 확신 이상의 사회적 의미에 도달할 수 없다. 작중 인물은 자신의 개인적 체험이나 내적 확신이 사회의 지배적 이념이나 질서에서 이탈되었다고 판단할 때 혼돈을 경험한다.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못하는 개인적 경험은 그에게 사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내적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의식할 때 경험되는 불안과 공포는 그런 점에서 오히려 그 개인의 사회성을 입증하는 단서가 된다.
그러나 불안과 공포마저 없이 개인의 내면 세계로 퇴행하여 스스로 고립되는 것에 만족하는 경우, 인물의 내적 체험이나 확신의 세계는 그 자신을 사회로부터 봉쇄키기고 자폐적 세계로 밀어넣는다. 이는 사회와의 열린 소통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개인과 사회, 감성이나 정서와 이성 간의 양립 불능성을 매개한다.
인물이 타자와 소통할 수 없다고 판단한 개인의 체험 세계는 일상적 언어나 상식선에서의 사고를 위반하는 형태로 표현된다.(아래에 계속)-100쪽

(위에서 계속) 이러한 개인의 세계는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주관적 질서에 따르고 사회화된 경로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환상적 세계로 표현되는 것이다. 예컨대 그것은 꿈이나 공상, 환각처럼 사회화가 불가능한 내면적 체험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 내용도 당대의 지배적 사상이나 제도로부터 일탈되거나 위반한 것이기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이러한 체험은 일상적으로 발설되지 않거나 발설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혼자서 낯선 존재나 초자연적 세계를 목격하는 개인적 체험이나, 개인의 심리적 체험 등을 객관적으로 사회화하는 방법은 묘연하다. 그것은 증명의 체계를 거부하는 믿음의 관계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의 체험은 그를 사회로부터 고립시켜 그 자신이 고독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 개인의 모습은 타인에게 인지되지 않음으로써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스스로를 소외된 자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타인에게 목격될 경우 그는 분열증이나 신경증 환자이거나 광기의 존재로 해석된다.-100쪽

죽음에 대한 사상은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의 한 표현인데, 이같은 상상력은 텍스트를 둘러싼 전통과 문화, 종교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온전히 작가 개인의 주관적 상상물로 창조되기도 한다. 죽음의 영역이 삶과 단절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로서 ‘장례(葬禮) 의식’이 성립한다면, 죽음이 현실과 연계되고 귀신이 출몰하는 환상적 이야기들은 ‘의식(儀式)’으로 봉쇄했던 공포를 개방함으로써 현실의 의식적 경계를 해체한다. 이러한 경계 해체의 모티프 중 죽음과 현실의 단절성을 ‘사랑’의 형식으로 해체한 것은 에로티시즘과 타나토스 충동의 결합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것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초현실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종류의 환상은 영원의 표상이자, 한계 초극의 지표가 된다.-108-109쪽

명혼소설(冥婚小說)의 주인공들은 죽음의 세계와 전혀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거부나 공포, 혐오나 환멸의 감정이 아니라, 열정적인 에로스의 상태에서 합일을 경험하는 것이다. 죽음의 세계는 삶의 세계로부터 선호되며, 매력적이고 편안하며, 다른 어떤 것보다 커다란 만족감을 제공하는 세계로 제시된다. 죽은 사람과의 사랑은 에로스 충동과 타나토스 충동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현실적으로 죽음과 삶은 단절되지만 환상의 공간에서 죽음과 사랑은 서로 충돌없는 만남을 이루고 현실과 환상의 영역 사이에서 제 삼의 공간을 구축한다. 죽음과 삶이 상호적으로 개방되는 이 지점은 환상계와 현실계를 이으면서, 동시에 그들로부터 단절된다. -110쪽

타자가 출몰하는 영역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 혹은 죽음과 현실의 변경 지역이다. 경계의 영역은 타자가 전일한 타자성을 상실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현실과 가상, 혹은 삶과 죽음의 접경 지역에서 생존의 영역을 확보하는 존재는 ‘유령’이다. 그는 삶과 현실 그 자체로부터 완전히 차단되고 격절된 존재가 아니라, 삶과 형실을 너머선 다른 세계의 중간 지점, 어쩌면 공간이 없는 경계의 영역에서 존재를 현시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유령의 출몰로 인해 ‘공간’이 ‘경계’로 변용되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완전한 ‘타자’가 아니다.(중략)
유령 이야기들은 죽음의 ‘비실재성’으로부터 실제 삶을 분리시키는 주요 경계선을 파괴하고, 단일한 의미나 ‘리얼리티’를 구성하는 개별적 단위들을 전복시킨다. ‘유령’의 존재는 ‘부재’와 ‘타자’의 주제를 구성한다(중략)
죽음의 세계로 완전히 귀의하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도는 영혼으로서의 ‘귀신’들은 삶의 영역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현세에서 이루지 못한 소원이나 풀지 못한 원한을 호소하고자 한다. 이들은 결국 현실이 은폐했던 욕망이나 금기를 폭로함으로"써 현세적 모순에 저항하는 역할을 한다.-112-113쪽

문학에서의 ‘환상’은 현실적으로는 부재하지만 심리적으로 실재하는 욕망이 가시화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현실적으로는 망각과 배제의 형식으로 은폐되고 억압되었던 ‘욕망’의 내용이 ‘환상’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심리적으로 억압되었던 욕망들을 ‘충족’, 혹은 ‘도피’의 형태로 허용함으로써, 욕망의 실체를 긍정하고 그에 대한 대리적 해소를 지향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현실이 억압하고 은폐했던 세계, 혹은 그 구성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현실적 질서에 저항하고 그에 대한 전복을 겨냥하는 방식이다. 특히 후자의 방식은 독자들에게 공포와 전율의 심리적 효과를 유발함으로써, 현실적 질서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도한다.
(아래에 계속)-115-116쪽

(위에서 계속)
그러나 현실적 질서나 체계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이에 대한 저항을 회피하거나 포기할 때에 환상은 ‘바장’의 정서를 유발시킨다. 환상이 생산해내는 ‘비장은 억압과 은폐의 현실을 저항할 수 없는 운명으로 수용해야 하는 심리학적 지점들을 반영한다.
한편, 현실이 은폐했던 지점들을 일상적 구조물들과 결합시킬 때, 이들은 질서화된 표상 체계에 상응할 수 없으므로 기괴하고 불안하며 위협적인 형태로 표현된다. 이때 발생되는 ‘그로테스크’의 영역 또한 환상의 심리학적 지평을 구성하는 일부분이다.-115-116쪽

루 샤오펑은 전기를 ‘역사’, ‘알레고리’, ‘환상’의 세 가지로 분류했다. 먼저 ‘역사적 양식’은 서사 내용을 믿을 만한 사실로 수용하는 경우이며, ‘알레고리 양식’은 사실의 차원이 아니라 도덕적, 철학적 관점에서 진실하며 유용하고 교훈적인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에 해당되지 않는 전기 작품들은 ‘환상적인 것’이 되는데,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거싱 혼융되고, 평범한 시공간적 연속이 정지된 가운데 역사적 순리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일반적 현실을 뛰어넘는 또다른 현실에 대한 해석을 드러내는 내용들이 해당된다(루샤오펑, 2001:30-31)
루샤오펑, 조미원 외 역(2001): <역사에서 허구로: 중국의 서사학>, 길-159-160쪽

로즈메리 잭슨은 환상이란 문화적 속박으로부터 야기된 결핍을 보상하려는 특징을 지니며, 욕망에 관해 부재와 상실로 경험되는 것들을 추구한다고 규정한다. 환상이 욕망을 표현하는 데에는 직접적인 명시와 추방이라는 상반되는 방식이 가능한데, 전자를 위해서는 묘사, 재현, 명시, 언어적 발화, 언급, 기술한다는 의미에서의 표현 등이 동원되며, 후자에는 압박과 배제, 제거 등의 기제가 동원된다. 환상을 통해 욕망은 이야기되거나, 작가나 독자의 대리 경험을 통해 추방된다(잭슨, 2001: 12-13).
이러한 환상의 해석은 환상을 욕망 충족의 전이된 혈식으로 이해하는 프로이트적 해석에 근간해 있다. 그러나 라깡은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됨을 지적하면서 욕망(désir), 요구(demand), 욕구(besoin)의 문제를 환상에 결부시켰다.
라깡에 의하면 ‘욕구’란 순수한 육체적 생존을 위해 충족되어야 할 생물학적 필요성으로, 생물학적 본능에 사응하는 개념이다. ‘요구’는 궁극적인 것인데, 예컨대 어린 아이가 어머니에게 요청하는 것은 표면상으로는 욕구의 충족이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어머니가 항상 같이 있어주는 것이며, 완벽한 사랑이다. (아래에 계속)-119-121쪽

(위에서 계속)만일 어머니가 ‘나쁜 어머니’라면 아이가 원하는 것은 어머니의 사라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요구는 현존과 부재에 대한 요구이다.
이에 비해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욕망은 욕구와 요구가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발생하는 결여의 체험에서 생겨난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에 대한 주체적 응답인 무의식적 환상을 통해 형성된다. 무의식적 환상 속에서 타자의 욕망에 응답하는 주체의 소외(aliénation)는 분석을 통해 해방되어야 한다. 라깡은 이를 ‘환상의 가로지르기(la traversée du fantasme)'라고 표현했다.
‘환상의 가로지르기’는 타자의 욕망과 향유에 의해 빼앗긴 나의 고유한 욕망과 향유를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환상은 수수께끼와 같은 타자의 욕망과 향유 앞에서 이 타자의 욕망과 향유의 이미를 파악하고 규정하고자 하는 주체의 반응 혹은 대답이며, 타자의 이해할 수 없는 욕망을 길들여 ‘받아들일만한 것’으로 변화시키려는 방어수단이다. (아래에 계속)-119-121쪽

(위에서 계속) 환상은 주체의 상실감과 결여를 상상적으로 메우려는 ‘불가능한 시선’이며, 주체의 상실, 즉 사라짐(aphanisis)을 막기 위해 주체를 대상으로 변형시키는 은밀한 장소이다.
라깡은 환상은 완전히 상실되어 사라진 전체적(절대적) 대상을 부분 대상으로 메우려는 시도로서, ‘$◇α’로 공식화했다. ◇는 ‘합집합’, ‘교집합’, ‘~보다 크다’, ‘~보다 작다’를 의미한다. 분열된 주체($)는 부분 대상을 갖고 자신의 결여를 메워 전체가 되려고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의 대상 α를 연결시켜주는 ◇의 관계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완전한 합일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상징계 속에서는 모든 것이 조각나고 분열되어 파편으로서만 존재하므로 완전함, 전체, 총체성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체는 부분 대상, 대상 α를 통해 자신의 결여를 메우려고 시도한다(홍준기, 2002:73-74).
(상징적인) 현실은 이미 항상 가상적인 것인데, 환상은 우리의 욕망을 구성하고 그 좌표를 제공해 준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어떻게 욕망할지 그 방법을 가르쳐 준다(지젝, 2002:279, 22). (아래에 계속)-119-121쪽

(위에서 계속) 욕망은 위반을 하면 금지된 것을 얻을 수 있으며,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것에 기초한다. 그러나 상징적 거세를 통해 원래의 전체성이라고 ‘추정되는’ 것을 구성해 내는 것은 환상이다($◇α). 그 이유는 그러한 전체성이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주체가 자신의 결여를 충족시켜 줄 것 같은 대상과 만나는 것은 원래부터 불가능하다. 금지는 그러한 ‘불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해석에 불과하고, 위반은 그러한 ‘불가능성’을 ‘금지’라는 알리바이로 바꾸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속임수이므로, 이는 법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법의 그늘 속에서 법을 지탱하는 것이다(맹정현, 2002:188).
홍준기(2002): "자끄 라깡, 프로이트로의 복귀", 김상환 홍준기 편:<라깡의 재탄생>, 창작과 비평사
맹정현(2002): "라깡과 싸드", 김상환 홍준기 편: <라깡의 재탄생>, 창작과 비평사
지젝, 김종주 역(2002): <환상의 돌림병>, 인간사랑-119-121쪽

환상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특수하기보다는 보편적일 필요가 있다. 문학에서의 환상은 그 자체만으로는 가치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환상을 매개하는 문학 정신과 표현 세계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환상은 언어를 통한 문학 행위가 지속되는 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문학 자체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환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문학에서의 환상은 이 세계가 누락시키고 있는 질서의 이면, 기호화 된 존재의 그림자를 찾아주는 숨은 거울과 같다. 환상은 이 세계의 또 다른 현실인 것이다.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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