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사
김윤식, 김현 지음 / 민음사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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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과거의 문학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지만, 이 책이 충격하기를 요망하는 것은 오히려 오늘날의 문학이다. 문학에 대한 경멸과 白手에 대한 조소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어져 가고 있어 보이는 지금, 인간 정신의 가장 치열한 작업장인 문학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귀중한 각성의 몸부림이다. 문학이 없는 시대는 정신이 죽은 시대이다. 문학은 한 민족이 그곳을 통해 그들의 아픔을 재확인하는, 언제나 터져 있는 상처와도 같은 것이다.-8쪽

도대체 문학사란 무엇일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낮은 차원의 기반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주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문학사란 과거의 집적물에 대한 사적 기록이다. 물론 이때의 집적물이란 문학적 집적물을 의미한다. 과거의 문학적 집적물의 사적 기록이라는 문학사의 정의는, 그렇지만 몇 항목의 유보 사항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맨 처음 주의해야 할 것은 문학사는 역사와는 엄연히 다른 감정적 차원에서 서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역사는 감동의 세계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을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그러나 문학적 집적물은 반드시 감동과 향유라는 정서적 반응을 요구한다. 정서적 차원이 배제된 문학사란 문서 기록이나 고증의 차원으로 떨어져 버린다. 그것은 박사 학위 취득자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 줄 수는 있지만 문학사가의 흥미를 끌 수는 없다. 문학적 집적물은 그것이 나타나는 순간부터 타인에게 행하는 담론의 형태를 띠며, 그것은 반드시 상대방의 정서적 반응을 요구한다. (아래에 계속)-14-15쪽

(위에서 계속) 물론 역사적 사실도 기호론적인 입장에서 이해한다면 정서적 반응이 요구되는 기호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지만 담론의 형태로 주어지는 역사적 사실이란 집단적 행위의 소산이다. 헤겔에게서 절대 정신의 구현이라는 정서적 반응을 얻은 프랑스 대혁명도 일종의 집단적 행위이다.
문학적 집적물이 정서적 반응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진술은 동시에 그것이 개인적 산물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다. 문학 작품에 개인의 서명이 붙게 된 이후의 문학과 그 이전의 문학의 차이는 그 개인성에 있다. 그러나 그 개인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한 시대의 의미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드러내고 있는 대표자로서의 개인un individu comme le représentant d'un époque이다. 문학사가 역사와 다르게 예외적 개인l'individu exceptionnel에 많은 관심을 쏟는 것도 이 이유에서이다.
-김현-14-15쪽

조선 사회를 급진적인 이념에 의해서이든, 주자주의적 이념에 의해서이든, 어떠한 형태로든지 개혁하려고 한 노력이 외세, 특히 일본의 개입에 의해 무참하게 실패해 버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갑오경장(1894) 이후 사회적 개혁은 꾸준히 계속된다. 정치적 경제적 개혁이 일본 군국주의의 침투를 더욱 평이하게 하기 위해서 조직적으로 행해진 것 때문에 사회적 개혁 역시 대중의 광범위한 반발을 사게 되는 것이지만, 1894년의 신분 제도 철폐와 사회적 악습 혁파는 제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띤다. 제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띤다는 진술은 그것이 정치, 군사적 개혁과는 다르게 일제 치하에서도 계속되었고, 그것이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개혁 중에서 중요한 것은 인신 매매를 금한 것, 고문이나 연좌법을 폐지한 것, 남녀의 조혼을 금한 것, 과부의 재가를 개인 의사에 맡긴 것 등이다. 그것들은 조선조 후기에서 그 흔적을 드러낸 가족 제도의 모순점들이 1894년에 제도적으로 극복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아래에 계속)-116-117쪽

(위에서 계속) 그 가족 제도의 붕괴를 과부의 재가와 조혼 금지 외에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단발령(1895)이다. 단발령에 대한 유림의 완고한 항거는 일제에 대한 항거 이상의 의미를 띠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존립을 가능케 한 이념, 즉 주자주의에 대한 결정적인 타격으로 유림들에게 이해된 것이다.
-김현-116-117쪽

개화기 문체는 결국 국한문체로 확립되어 갔는데, 그 중요한 이유가 일본 문체의 영향이다.
-김윤식-143쪽

다만 형식의 특색은 영어를 많이 섞고 서양 유명한 사람의 이름과 말을 이용하여 무슨 뜻인지 잘 알지도 못할 말을 길게 함이었다. 형식의 연설이나 글은 서양 것을 직역한 것 같았다. 형식의 말을 덛건대 이러한 말이나 글이 아니고는 깊고 자세한 사상을 발표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을 쫓지 아니함은 그네가 자기의 사상을 깨달을 힘이 없음이라 하여 혼자 분개하여 한다.

이 부분은 초기 이광수의 언어관을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그는 여기에서 언어란 그것이 표현하려고 하는 것과 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진술한다. 그의 새 생각은 새 표현을 요규한다. 그 표현은 구투로 행해질 수 없다. 그러므로 그의 문장은 단순한 언문주종이 아니라, 서양 언어의 직역투의 문장이다. 그 직역투의 생경한 문장은 그의 개화 의식의 생경함에 적절하게 대응한다. 그의 직역투의 문장과 반주자주의적 이념은 표리의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아래에 계속)-206-207쪽

(위에서 계속) 그의 직역투의 문장에서 얻어진 문장상의 효과는 무엇일까. 제일 두드러진 것은 사고하는 주체의 객관화이다. 주체가 객관화된다는 것은 반성적 사고가 행해진다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문을 가능케 하며 추론을 가능케 한다. 「무정」중에서 독자들에게 가장 박진력 있게 제시되는 대목은 물론 이러한 반성이 행해지는 대목들이다. 그 외에 사건만을 제시하거나, 작가가 개입하거나, 공상을 할 때에는 예의 구투 문장이 그대로 드러난다.
-김윤식-206-207쪽

그(인용자주-염상섭)에 대한 또 하나의 비판은 주제의 빈곤인데, 그것은 그가 지나치게 평범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소위 드라마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피상적 단견이다. 그의 작품 속에 그가 아무런 해석도 가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평범하게 내보여 주고 있는 일상적 인물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인물들이 평범하고 지루한 인물들이 아니라 한국 당대의 상황을 가장 실감 있게 살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그의 인물들의 드라마는 초기의 몇 개의 작품을 빼면 대부분 돈과의 격투라는 가장 근대적인 드라마이다. 돈을 에워싼 여러 종류의 인물들의 애환을 그림으로써 그는 식민지 치하에서부터 한국 전쟁에 이르는 기간의 한국 사회를 그 누구보다도 탁월하게 묘사하여 형상화해 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아래에 계속)-251-252쪽

(위에서 계속) 그의 소설은 주제의 빈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작가의 어떤 소설들보다도 강렬하게 일관된 하나의 주제, 돈과 인간과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어 그것을 통해 독자들이 인간 속에 감추어져 있는 욕망이라는 괴물과 그 괴물의 분장을 돕는 상황을 감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의 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부르주아지의 문학이라고 지칭될 수 있다.
-김윤식-251-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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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0-09-18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72, 1973년에 문학과 지성에 연재. 조선후기를 근대의 기점으로 잡음으로써 커다란 방향을 불러일으켰던 저작. 그러나 이렇게나 지적인 저자들이 도대체 왜 민족을 절대화하는 이상한 사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