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구판절판


모든 도덕적 행위의 가치를 하나의 도량형으로 고스란히 환산할 수 있다는 주장을 딱 부러지게 찬성하거나 반박할 근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 의문을 제기할 사례가 있다.
내가 옥스퍼드 대학원에 다니던 1970년대에는 남자대학과 여자대학이 따로 있었다. 여자대학에는 여학생 방에서 남자 방문객이 자고 갈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던 탓에 곧잘 깨지곤 했다. 적어도 내가 듣기로는 그랬다. 대학 관계자들 중에도 성도덕이라는 전통적 사고를 강조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 보니 이 규정을 완화하라는 압력이 점점 높아졌고, 여자대학이던 세인트 앤스 칼리지에서도 이 주제가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일부 나이 든 여교수들은 전통적인 도덕률을 내세워 남자 방문객 숙박에 반대했다. 이들은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이 남자와 함께 밤을 보내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전통주의자는 자신의 반박을 뒷받침할 현실적인 근거를 찾느라 쩔쩔맸다. 그러다 자기 주장을 공리주이 용어로 바꿔 말했다. "남자가 자고 가면 대학의 비용이 증가할 것이다." 왜 그럴까? "그들은 목욕을 하려 할 테고, 그러면 온수 소비량이 늘 것이다." 또 있다. "매트리스도 더 자주 갈아야 할 것이다."
개혁주의자들은 전통주의자들을 만나 타협안을 제시했다. 여학생 한 명당 자고 갈 수 있는 방문객을 한 주에 최대 세 명까지 허용하되, 각 방문객은 하룻밤에 50펜스를 대학에 비용으로 지불한다. 다음날 <가디언>에 "세인트 앤스 여학생들, 하룻밤에 50펜스"라는 머리기사가 실렸다. 미덕의 언어가 공리주의 언어로 썩 훌륭하게 번역되지 못한 셈이었다. 뒤이어 방문객 제한 조치가 전면 중단되었고, 비용 지불안 또한 철회되었다.-71쪽

벤담은 사람들의 선호도를 가치를 따지지 않은 채 모두 더해서 어떤 법이 필요한가를 결정하려 했다. 그런데 렘브란트 그림을 감상하기보다는 투견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 많다면, 사회는 미술관보다는 투견장에 보조금을 지급해야 할까? 저급하고 천박한 쾌락이 따로 있다면, 어떤 법을 도입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그런 쾌락이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밀은 이런 반박에서 공리주의를 구하려 한다. 그는 벤담과 달리 욕구의 양이나 강도만이 아니라 질을 평가해 고급 쾌락과 저급 쾌락을 구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다른 도덕적 이상이 아니라 공리만으로 그 구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중략)
밀은 쾌락과 고통이 전부라고 주장하면서도, "더 바람직하고 더 가치 있는 쾌락이 있다"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어떤 쾌락이 질적으로 더 우수한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밀은 간단한 시험을 제안한다. "두 가지 쾌락이 있을 때, 그 둘을 모두 경험한 사람들 전부 또는 거의 전부가 어느 하나를 절대적으로 좋아한다면, 그것을 좋아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 따위와는 상관없이, 그것이 더 바람직한 쾌락이다.
이 시험에는 한 가지 분명한 이점이 있다. 도덕은 전적으로 우리의 실제 욕구에 달렸다는 단순한 공리주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밀은 "(어떤 행위가) 바람직한 무언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실제로 사람들이 그것을 바란다는 사실뿐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쾌락을 질적으로 구분하는 그의 시험은 한 가지 분명한 반박의 여지가 있다. 우리는 대개 고급 쾌락보다 저급 쾌락을 좋아하지 않던가? 우리는 더러 플라톤을 읽거나 오페라를 보러 가기 보다는 소파에 누워 시트콤을 보고 싶어 하지 않던가? 이처럼 어떤 행위가 특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저 즐기기 쉽기 때문에 더 좋아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79쪽

공리주의를 주창한 위대한 두 인물을 비교하자면, 밀은 좀더 인간다운 철학자였고, 벤담은 좀더 일관된 철학자였다. 벤담은 1832년에 여든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런던에 가면, 지금도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시신을 방부 처리해서 보존, 전시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에 따라 그는 현재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생전 옷차림 그대로 유리 안에서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앉아 있다.
벤담은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철학과 관계된 문제를 자문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산 사람에게 쓸모가 있을까? 그가 생각한 결론 하나는 시체를 해부학 연구에 사용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대한 철학자라면 육체를 그대로 보존해 장차 사상가가 될 후손에게 자극을 주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벤담은 후자를 택했다.
사실 잘 알려진 벤담의 성격에 겸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시신 보존과 전시에 관해 엄격한 지시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모임일 열어 "도덕과 입법에서 최대 행복 체계를 만든 사람을 기릴 것"을 친구와 제자들에게 제안했다. 그 모임에서는 벤담을 부각시켜야 했다.
추종자들은 그의 뜻에 따랐다. 벤담 스스로 ‘자기 성상’이라 이름 붙인 성상이 1980년대에 국제벤담학회 창설 모임에 참석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운영위원으로 구성된 이 모임에 박제된 벤담이 휠체어를 타고 참석했다고 전해지는데, 회의 의사록에는 그가 "참석은 했지만 의사결정권은 없는"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벤담의 세심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머리 부분의 방부 처리 상태가 안 좋아, 그는 진짜 머리 대신 밀랍으로 만든 머리를 얹고 불침번을 선다. 진짜 머리는 한동안 접시 위에 놓인 채 그의 두 발 사이에 놓여 있었지만 학생들이 그 머리를 훔쳐 갔다가 자선기금을 내놓겠다는 대학 측의 약속을 받고 다시 내놓은 일이 있은 뒤로 지금까지 지하에 보관되어 있다.
제러미 벤담은 죽어서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기여한 셈이다.-82쪽

이마누엘 칸트는 의무와 권리에 대해 다른 어떤 철학자보다 분명하고 영향력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그의 설명은 우리는 자신을 소유한다거나 우리 목숨과 자유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주장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는 존중받아야 하는 존엄성을 지닌 이성적 존재라는 생각에 기초한다.
칸트는 1724년에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80여 년 뒤에 그곳에서 사망했다. 그의 집안은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구를 만드는 사람이었고, 부모님 모두 개신교 경건주의자들이어서, 종교적인 내면의 수행과 선행을 강조했다.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열여섯 살 때 입학했으며 성적도 우수했다. 한때 가정교사를 하다가 서른한 살에 처음 강단에 섰다. 기본급 없이 수강 신청한 학생 수에 따라 보수를 받는 강사였다. 그는 인기가 좋은 데다 부지런해서 일주일에 강의를 스무 개나 소화했는데,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 지리학, 인류학 등 주제도 다양했다.
그의 나이 쉰일곱이던 1781년에는 첫 번째 주요 저서인 "순수이성비판"이 출간되었다. 데이비드 흄과 존 로크의 경험론에 도전한 책이다. 그리고 4년 뒤에는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를 출간했는데, 도덕철학에 관한 그의 여러 저서 중 첫 번째 책이다. 제러미 벤담의 "도덕과 입법의 원리"(1780)가 출간된 지 5년 뒤에 나온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에서 칸트는 공리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는 도덕이란 행복 극대화를 비롯한 어떤 목적과도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도덕은 인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고 존중하는 것이다.-148쪽

우리는 이제 칸트가 생각한, 도덕과 자유의 연관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도덕법을 생각해, 의무감에 따라 행동한다는 뜻이다. 도덕법은 정언명령인 인간 자체를 목적으로 여겨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이루어진다. 정언명령에 따른 행동만이 자유로운 행동이다. 가언명령에 따른 행동은 외부에 주어진 이익이나 목적을 의식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나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내 의지는 내가 아닌 외부 힘에 의해, 내가 놓인 환경의 필요에 의해, 어쩌다 생긴 내 바람과 욕구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자율적으로 행동할 때,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할 때만이 본성과 환경의 명령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한 법칙은 특정한 바람이나 욕구에 구애받지 않는다. 따라서 칸트가 말하는 자유와 도덕의 까다로운 개념은 서로 연결된다. 자유롭게 행동하기, 즉 자율적으로 행동하기란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즉 정언명령에 따라 행동하기와 똑같은 하나의 개념이다.-173쪽

칸트는 선의의 거짓말을 거부할 것이다. 결과론자의 주장을 근거로 도덕법에 예외를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배려한다는 의도는 존경받을 만하지만, 그것을 추구할 때는 정언명령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 행동의 바탕이 되는 원칙을 얼마든지 보편화할 수 있어야 한다. 목적을 따져보고 예외를 인정해도 좋다 싶을 때마다 예외를 인정한다면 도덕법의 정언적 성격, 즉 절대성이 무너지고 만다. 이와 반대로, 맞는 말이지만 오해를 일으키는 발언은 정언명령을 위협하지 않는다. 실제로 칸트 자신이 딜레마에 빠졌을 때 이 차이에 의존한 적도 있다.
칸트는 콩스탕과 교류하기 몇 년 전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와 껄끄러운 관계에 놓였다. 왕과 검열관은 종교에 관한 칸트의 글을 읽고 그가 그리스도교를 우습게 본다고 판단해, 그 주제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요구했다. 칸트는 말을 고르고 골라 이렇게 대답했다. "소인은 폐하의 충직한 백성으로서, 앞으로 종교에 관해 공개 강의를 일절 삼가고 논문도 절대 쓰지 않겠습니다."
칸트는 이 말을 지어낼 즈음 왕이 그다지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 년 뒤 왕이 죽자, 칸트는 이 약속에서 풀려났다고 생각했다. "폐하의 충직한 백성"일 때만 해당되는 약속이었으니까. 뒷날 칸트는 "영원히가 아니라 폐하가 살아 있는 동안만 (......) 자유를 빼앗기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프로이센의 정직함을 대표하는 이 인물은 상황을 영악하게 피해간 덕에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검열관을 속이는 데 성공했다.-186쪽

롤스는 강제로 평등을 달성하는 일을 능력 위주 시장사회를 대체할 유일한 대안으로 보지 않는다. 롤스가 내놓은 대안은 차등원칙이라 부르는 것으로, 재능 있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으면서 재능과 소질의 불공정한 분배를 바로잡는다. 어떻게? 재능 있는 사람을 격려해 그 재능을 개발하고 이용하게 하되, 그 재능으로 시장에서 거둬들인 대가는 공동체 전체에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가장 빠른 주자에게 족쇄를 채우지 말고 최선을 다해 달리게 하라. 단, 우승은 그만의 것이 아니라 재능이 부족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점을 미리 알려 준다.
차등원칙은 소득과 부를 똑같이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기본 사고는 평등에 대한 단호할 뿐 아니라 고무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차등원칙은 사람들의 타고난 재능을 공동 자산으로 여기고, 그 재능을 활용해 어떤 이익이 생기든 그것을 공유하자는 데 사실상 동의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태어나면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은 그들이 누구든,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상황을 개선한다는 전제에서만 자신의 행운을 이용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태어나면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단지 재능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이득을 읻어서는 안 되며, 그들을 훈련하고 교육하는 데 들어간 비용을 갚고,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그러한 행운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애초에 뛰어난 능력을 타고날 자격이 있거나 사회에서 다른 사람보다 유리한 출발선에 설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그러한 차이를 없애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 차이를 이용할 또다른 방법이 있다. 사회의 기본 구조를 조정해, 우연한 차이가 행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쓰이도록 하는 것이다."-218쪽

1. 정의는 목적론에 근거한다. 권리를 정의하려면 문제가 되는 행위의 ‘텔로스(telos:목적, 목표, 본질)’를 이해해야 한다.
2. 정의는 영광을 안겨주는 것이다. 어떤 행위의 텔로스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거나 논한다는 것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그 행위가 어떤 미덕에 영광과 포상을 안겨줄 것인가를 추론하거나 논의하는 것이다.
(중략)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가 중립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의에 관한 논쟁은 영광, 미덕, 그리고 좋은 삶의 본질에 관한 논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262쪽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정치 참여를 좋은 삶의 필수 요소라고 생각할까? 왜 우리는 정치 없이는 더없이 훌륭하고 미덕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없을까?
그 답은 우리 본성에 있다. 우리는 폴리스에 살면서 정치에 참여할 때만이 인간의 본성을 아낌없이 실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를 "굴벌이나 기타 무리지어 사는 동물보다 훨씬 더 정치적인" 존재로 본다. 그 이유는 이렇다. 자연은 어느 것 하나 헛되이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에겐 다른 동물과 달리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있다. 다른 동물은 소리를 내고, 소리는 쾌락과 고통을 나타낼 수 있다. 다른 동물은 소리를 내고, 소리는 쾌락과 고통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인간 고유의 특징인 언어는 단지 쾌락과 고통을 기록하는 수단은 아니다. 언어는 무엇이 공정하고 무엇이 불공정한지 선언하고, 옳고 그름을 구별한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소리 없이 파악하지 않고, 말로 표현한다. 언어는 선을 식별하고 고민하는 매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따르면, 오직 정치 연합에서만 우리는 언어라는 인간 고유의 특성을 발휘하는데, 그 까닭은 폴리스에 있을 때만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정의와 부정을 고민하고 좋은 삶의 본질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는 폴리스에 살면서 비로소 본성을 실현한다. 고립된 상태에서는 언어 능력과 도덕을 고민하는 능력을 개발할 수 없기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274쪽

매킨타이어는 인간을 자발적 존재로 보는 시각의 대안으로 서사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다. 우리는 서사적 탐색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려면 그전에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삶이란 특정한 통합이나 일관성을 갈망하는 서사적 탐색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갈림길에 마주쳤을 때, 우리는 완전한 삶, 내가 관심을 갖는 삶으로 이끄는 길을 찾아내려 애쓴다. 도덕적 고민은 내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 내 삶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에 가깝다. 여기에는 선택이 끼어들지만, 그것은 해석에서 나오는 선택일 뿐, 의지에서 나오는 절대적 행위가 아니다. -310쪽

연대와 소속 의무는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로도 향한다. 내가 사는 공동체에서 나오는 특별한 의무 가운데 일부는 같은 공동체 사람에 대한 의무다. 그러나 나머지는 내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무다. 이를테면 독일인이 유대인과의 관계에서, 미국 백인이 미국 흑인과의 관계에서 부담해야 하는 책임이다. 역사적 부당 행위에 대한 집단적 사죄와 보상은 연대 의식이 내 공동체가 아닌 다른 공동체에도 도덕적 책임을 지게 하는 좋은 예다. 내 나라가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보상하는 일은 내 나라에 충성을 맹세하는 한 방법이다. 더러는 연대 의식으로 정부의 조치나 같은 국민을 비판하기로 한다. 애국심은 정부 정책 반대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중략) 자부심과 수치심은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도덕 감정이다. (중략) 가족이나 동료 시민의 행동에서 자부심과 수치심을 느끼는 감수성은 집단적 책임감을 느끼는 감수성과 연관된다.-326쪽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탐색했다. 어떤 이는 정의란 공리나 행복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선택은 자유시장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행하는 선택일 수도 있고(자유지상주의의 견해),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행할 법한’ 가언적 선택일 수도 있다(자유주의적 평등주의의 견해). 마지막으로 어떤 이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독자들도 눈치챘겠지만, 나는 세 번째 방식을 좋아한다. (중략) 정의에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이 끼어든다. (중략)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360쪽

소득과 부의 공정한 분배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정치철학 논쟁의 중심이었다. (중략)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자를 도우려는 일부 철학자들은 공리라는 이름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부자에게 100달러를 가져다 가난한 사람에게 주면 부자의 행복은 조금 줄지만 가난한 자의 행복은 훨씬 더 커진다고. 존 롤스도 재분배를 옹호하지만, 그 근거는 가언합의다.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가언적 사회계약을 생각해 본다면 누구라도 재분배 원칙에 동의라리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인의 삶에서 불평등 심화를 걱정하는 더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빈부 격차가 지나치면 민주 시민에게 요구되는 연대 의식을 약화시킨다는 사실이다. (중략)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의 서로 만날 수 있는 곳에 학교, 공원, 운동장, 시민회관 같은 (중략) 공공시설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공적 영역이 비어버리면 민주 시민 의식의 토대가 되는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키우기가 어려워진다.-3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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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zuaki 2011-04-18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긴 논의가 돌아가는 곳이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이고, 그것이 이익이 아니라 의로움을 생각하라는 논어, 맹자의 가르침과 통한다는 것이 재미있다.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