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산책 대표 정은숙의 <편집자 분투기>를 읽고, 책 꽤나 읽었다고 자부했던 저자가 편집자의 길에 들어서며, 선배들의 독서 리스트에 좌절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 책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에서 저자 가쿠타 미쓰요는 후기를 빌어. '어릴때 부터 책 읽는 것으로는 따라올 사람이 없었는데, 문학과를 들어가니, 나보다 다들 50배쯤 많이 읽은 선배들이 있었고, 출판사에 가니 500배쯤 많이 읽었더라'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50배, 500배는 당연히 기억에 남는다.
그 이야기를 읽고 나니, 나는 책을 얼마나 읽는 것일까? 책을 많이 읽는 순서로 독서가들을 줄 세워본다면,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궁금해졌다. 이야기를 더 진행시키기 전에, 책을 많이만 읽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는둥, 어떤 책을 읽냐가 중요하다는 둥의 초딩적인 이야기들은 제껴놓자.
내가 한달에 읽는 책이 2-30권 정도 되고, 1년이면 300여권 정도를 읽는다. 책 구매는 그 .. 두배에서 세배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아, 왜 갑자기 속이 쓰리는가;;) 그리고, 읽는 책들중 열에 아홉은 방출한다. 300권을 읽으면, 30권을 남기고, 270권을 방출하는 꼴이다. 내가 진짜 진짜 좋아하는 책들의 엑기스만 모아 모아서 평생 가지고 가야지. 라는 몽상에 빠져, 그 엑기스를 얼마나 찐하게 뽑아 내는지가 내 평생의 책읽기의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것이 진짜인가?' 싶은 책만 읽어도 되지만, 그렇지만은 않은게, 재미로 술술 넘기는 책들을 읽는 것도 주전부리로 즐기고 있으니, 에센스 오브 에센스를 찾아 가는 길은 더디기만 하다. 물론, 더딘것도 나쁘지 않다.
하나의 책을 읽어냄에 있어서,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이 있는만큼, 그 책을 읽을 때 작가가 알았던 것들, 몰랐던 것들을 다 알고 볼 수록 책을 잘 알아볼 수 있으므로, 일단 이런저런 관련도서들은 많이 읽어 놓는 것이 좋다. 거기에 나의 경험치와 감수성치도 더해진다. '책은 독자와 작가가 반반씩 쓰는 것이다' 라고 누가 그랬더라. 보르헤스? 에코? 무튼,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저자의 노고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독서의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고, 스무살 때 읽은 데미안과 서른살 때 읽은 데미안, 그리고 마흔살 때 읽을 데미안은 다르게 다가올 수 밖에 없고, 그런 의미에서 독자의 경험치와 감수성치는 그 책을 받아들이는 독자에게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해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을 새로 읽고 그때마다 감동을 글로 남기면 그것은 사실상 우리 자신들의 자서전을 기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인생 경험이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인생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해석도 그만큼 더 절실하게 와닿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내 인생의 책들의 에센스들을 모아 해마다 읽어나가는 것이 나의 독서생활의 로망인데, 새로 알게 되는 책들, 새로 발간되는 책들, 이미 사 둔 책들을 허겁지겁 읽어나가느라 재독의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나는 나의 독서의 정점이 청년기였으면 하고 바란다. 가장 감수성 예민한 시절에 더 많은 책을 읽었더라면 좋았을걸. 나의 독서 생활의 현재까지의 정점은 항상 '바로 지금'이다. 아주 아주 조금씩, 새 발톱의 때만큼씩 과거와 세상과 이치를 알아나가고, 그것은 그마만큼 나의 독서를 풍부하게 해준다. 청년시절 부지런히 쌓아 왔던 것을 지금쯤은 누리며 책을 읽어도 좋으련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엄청난 착각일까?), 나는 이제야 조금씩 쌓아가고 있으니, 이걸 누리며, 책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을 척하면 척 알아채는 독서가가 되는 날이 언제나 찾아올까.
독서가에게 답이 없는 질문들 중 하나다. 얼마나 책을 맣이 읽으면 많이 읽은 걸까? 라는 멍충한 질문은.
어쩌랴, 그저 앞에 있는, 손에 닿는 책을 하나 뽑을 밖에.
지금 내 앞에는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이 놓여 있다. 열렬히 나를 초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