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포스트잇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독서의 역사> 올 1월 1일에 읽기 시작하여, 책 읽는 중간중간 야금야금 한 챕터씩 읽어내, 이제 막 마지막 챕터를 덮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책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이렇게 이상한 표지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것에 전혀 후회는 없지만( 후회라니! 감동이라구!!), 책을 읽기 전에 기대했던 것보다 더 딱딱하고, 역사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있다.(제목이 독서의 '역사'라는 건 뭘로 본건지;)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인 '끝나지 않는 <독서의 역사>' 에 이 책의 컨셉이 잘 나와 있는 말이 있어 옮겨 본다.

'쉽게 접근할듯 하면서도 학구적이고, 정보를 제공하는 듯하면서도 사색적이다.'

이 말이 꼭 맞는 것이, 보르헤스의 말년 보르헤스의 책읽어 주는 아르바이트를 한 것으로도 유명한 망구엘은 자신의 책과 관련된 재미난 일화나 단상들로 챕터를 시작하여, 역사 속의 인물들과 독서에 관한 갖가지 행위들을 끌어내어 분석하고, 고찰하는 것으로 챕터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보르헤스와의 일화들도 나온다.('누군가에게 대신 책을 읽게 하기') 

독서 행위의 '역사'에 관해, 저자는 종이가 생기기 이전의 시대 이야기부터 릴케의 번역에 대한 이야기까지 '독서'라는 광대한 주제 아래, 자유 분방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나간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몇가지는 다음과 같다.

'금지된 책읽기'챕터에서는 농장주들이 극구 막았던 노예들의 책읽기가 나온다. 노예들이 노예로 남아 있지 않게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교육'이고, 그것을 담당하는 것이 '책' 이므로, '읽고', '쓰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리라. 그것은 여자들의 책읽기에도 해당된다. 이 책에서도 여러부분 나오지만,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에서도 책을 몰래 몰래 읽어야 했던 여자 독서가들의 역사가 묘사되고 있다.  처음 책이 나와서 귀족들의 고급문화로만 여겨졌을 당시 - 그도 그럴것이, 당시의 책은 화려한 장정에 필사자들이 일일히 한 글자씩 옮겨야 했으며, 종이 또한 귀했고, 글을 아는 자는 소수였다.- 구텐베르크의 활자가 나오고, 더 많은 대중들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때, 책은 단순히 글자들이 찍힌 종이 모음이 아니라, '지식'을 전달하는 여파를 몰고 오는 혁명의 가장 큰 수단이었다. 당시의 혼란에 관하여 이야기한 챕터도 있다.

'독서가로서의 번역가' 챕터에서는 릴케가 프랑스 시인의 시를 번역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불어와 독어 원문도 등장한다. 프랑스 시인의 그저그런 시를 릴케가 아름다운 독일어의 특성을 백이십분 발휘하여 최고의 시로 거듭나게 했다는 이야기는 재미나면서도 이런저런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혼자만의 은밀한 독서' 챕터에서는 침대 위에서 책읽기. 이야기가 나오고, '책 훔치기'에서는 희대의 책도둑과 책 도둑에 대한 역사적인 사료에 남아 있는 저주문구들이 나온다.(몹시 유용하다. .. 응? )

이와 같은 독서와 관련된 여러가지 주제들이 역사 속의 실존 인물들과 사건들과  어우러지고,  인용되는 이야기들은 물론, 흑백이긴 하지만, 풍부한 관련 도판들은 이 책을 놓칠 수 없는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인 '끝나지 않는 <독서의 역사>' 가 유독 와 닿는 것은, 이 책을 아끼고, 아껴서 다 읽은 다음에도 여전히 허기지기 때문이다.  나의 독서는 계속되고, 그와 함께 나의 '독서의 역사'도 계속되리라. 수많은 독서가들의 역사와 함께 말이다. 침대 머리맡 책장에 얌전히 놓여진 <독서의 역사>는 외로운 독서가의 많은 동지들이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저기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독서의 역사>에는 끝이 없다. 위의 저자는 이 책 말미에 독자 여러분들이 아직 미래에 일어날 독서 행위와 놓쳐 버린 주제, 적절한 인용, 사건과 등장 인물에 대한 더 많은 사색을 덧붙일 수 있도록 백지 여러장을 남겨 두었다. 거기에는 약간의 위안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책을 내 침대 곁에 놓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오늘 밤, 아니면 내일 밤, 그것도 아니면 모레 밤에 그 책을 펼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모습도 그려 본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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