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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ㅣ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와 온다 리쿠를 열광적으로 맞이했던 독자들 중에 하나고, 적극적으로 마음 돌리고 욕한 독자들 중 하나다.
안 읽으면 그만이지, 욕은 왜 하나. 라고 한다면, 좋아했던 마음이 기대 이하의 범작들로 인한 실망으로 지속적으로 무너져갈 때 겪게 되는 배신감 때문일 것이다. 플러스, 정말 많은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고, 그 중에는 진짜 시간 아깝고, 돈 아까운 책들도 많기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건 정말 괜찮아라고 해도 돈 주고 사기 싫어지는 지경까지 와 버렸으며, 내가 열번 속지, 열한번 속냐. 하는 심정으로 기대치를 확 낮추어 놓은 상태이다.
잡설은 그만하고, 꽤나 평이 좋은 작품인 <악의>를 읽게 되었다.
꼬인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좋은 이야기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치고는 지루하고, 히가시노 게이고 치고는 진중했다. 고 평하고 싶다.
이야기는 노노구치의 수기로 시작한다.
학교 선생이다 그만두고 동화작가의 길로 들어선 노노구치와 손에 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에 문학성까지 인정 받은 히다카는 어린시절의 죽마고우다. 부인이 죽고 5년이 지나 재혼한지 한달이 된 히다카는 이제 곧 캐나다로 떠나 휴식기를 가지려 한다. 노노구치는 그를 방문해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돌아오는데, 그 날 밤 히다카의 전화를 받는다. 의논할 일이 있으니 와달라는. 마침 출판사 직원이 방문중이라 8시경에 찾아가기로 하는데, 막상 찾아가자 집안에 불이 모두 꺼져 있고, 집에는 아무도 없는듯하다. 부인에게 전화를 하고, 근처 찻집에서 기다렸다가 부인을 만나 집으로 들어가자, 히다카가 교살된채 죽어 있는데...
노노구치는 사건을 조사하는 과거에 같은 학교에서 교사를 했던 가가형사를 만나게 되고, 자신이 평생 겪기 힘들 사건에 대한 수기를 쓴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가가형사는 그 수기를 보여달라고 한다. 사건의 진행에 따른 노노구치의 수기와 가가형사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밝혀지는 진실, 아니 똘똘뭉친 인간의 악의惡意
이 책에는 정도가 각각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음기인 악의가 등장한다. '악의'는 아주 어릴적의 학교 왕따 문제부터 시작한다. 왕따를 하던 대장겪의 못된놈은 '아무튼 그애가 싫었어요' '아무튼 그애가 싫었어요' 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유 없이 치솟는 나쁜 감정 '악의' 못된놈이 무리를 모아 그 악의들을 한 아이에게 쏟아 붓고, 그 악의는 또 다른 곳으로 더욱 증폭되어 전달된다.
도대체 이 이유없는 나쁜 감정 '악의'는 어디에서부터 생기는 것일까? 질투, 시기, 열등감, 등등의 밭에서 자라난 '악의'라는 재료를 히가시노 게이고는 훌륭하게 요리했다. 개인적으로 마침내 사건이 해결되고 나서, 탐정역의 인물이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사건 해결을 설명하는 것에 지루해하는 편인데,(이미 독자는 다 아는 얘기라구.) 이 책은 결말까지 나같이 성급한 독자의 눈을 놓치 않는다. 사건을 해결함에 있어서 who done it? why done it? how done it? 을 다루게 된다면, 이 책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why done it?이다. 범인은 진작에 밝혀졌는데, 왜? 범죄를 저질렀는가, 즉. 범죄의 동기는 무엇인가? 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과정에서 사건의 진정한 전말을 파악하게 된다.
'세상에 시시한 책은 없다. 시시하고 편협한 마음의 독자만 있을 뿐이다' 라는 어느 일본 작가의 저자 후기를 본 적이 있다. 그런 얘기를 '저자'가 해봤자.. 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 시시한 책은 열라 많고, 쓰레기 같은 책도 열라 많다고 생각하지만, 편협한 마음의 독자는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나도 가끔 '편협한 마음'의 독자가 된다는 것도 인정해야겠다. 이름만으로 사는 작가가 있는 반면, 이름만으로 절대 안 사. 했던 작가들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온다 리쿠가 그 둘. 이제 그 둘에 대한 편협한 마음을 버리고, '좋은 작품'을 엄선해서 읽어봐야 겠다고 반성했다.
*리뷰 제목은 <닥터 노먼 베쑨>중 닥터 노먼 베쑨의 연설문 중 따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