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조금 벗어난 북쪽에 장흥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아주아주 오래전에는 길도 변변치 않아 이곳이나 송추, 일영에 가려면 전동차로 구성된 교외선을 타고 가거나 하루에 두 세차례뿐인 시외버스를 불광동에 있던 시외버스 정류장을 이용하여 가야만 했었는데 지금은 이곳이 서울의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환락의 도시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대학때만 해도 친구들과 베낭을 짊어지고 이곳에서 텐트를 치며 하룻밤을 보내고는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이곳과 관심을 끊고 살다가 불현듯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수년전에 이곳을 찾았을때는 장흥은 이미 제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던 낭만 가득한 그런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장흥을 다시 찾은 이유는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가 봐야지...'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신문에는 오랜 외교관 생활을 하셨던 분이 외교관을 은퇴하고 이곳에 그동안 외교관 생활을 하며 모아왔던 남미 지방의 특산물과 전통문물을 전시할 공간으로 "중남미 문화원"이라는 개인 박물관을 개관한다는 기사가 났었고, 중남미의 문화적 산물이 무엇인가가 알고 싶어 이곳을 찾았던 것인데, 박물관에 들어가는 골목길의 초엽부터 예전의 장흥이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차문을 벗어나자마자 제 귀에 들려오는 음악이 있었는데, 영화음악으로도 잘 알려졌던 'El Condor Pasa'였는데 이상하게도 이 음악이 그렇게 애조를 띈 슬픈 음악으로 제 귀에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제가 박물관을 처음 찾던 날은 개관전의 마지막 손질을 하던 때였는데, 전직 외교관이셨던 박물관의 주인장과 사모님께서는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시며 아직 개관도 안했음에도 전시 유물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거의 2시간 가까이 그곳에 머물렀었는데 'El Condor Pasa' 이외에는 잘 모르는 음악들이 차분하게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남미의 전통적인 상품들은 조금은 과장된 인간의 모습을 조각하거나 또는 흙을 이용하여 굽거나, 쇠붙이를 이용하여 표현하는 등 지극히 토속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이 포함된 토템적인 성격이 강한 매우 특이한 문화라고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설명을 마치고 뒷뜰의 다원에서 함께 차를 마시다가 그분은 제게 두 장의 음반을 주셨습니다. 남미음악이 담긴 음반이었는데 그 중 한장에는 다양한 악기의 연주형태로 여러가지 악기로 'El Condor Pasa'를 연주한 음반이 있었습니다. 전통 악기를 이용한 음악은 물론 대편성의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El Condor Pasa도 있었습니다.
키타로 뜯는것 같은 연주...일본의 악기인 '오카리나'로 불어제끼는 El Condor Pasa....북으로 두드리며 음율을 따라가는 음악....등등 .... 한동안은 거의 매일 듣다시피 했던 음반이었는데 어느날 이 음반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El Condor Pasa'가 주는 애잔함을 느낄수 없는 긴 시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집사람과 함께 그곳을 찾은적이 있었는데 전시 유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 주고 기념품 판매대에 가서 그 음반을 찾으니 다른 음반은 판매를 하는데 그 음반은 발견할수 없었습니다. 기념품을 판매하는 아가씨에게 자켓의 형태와 색상을 이야기 해 주고는 그 음반이 들어오면 제게 연락을 해 줄것을 부탁하였더니....거의 1년이 흘러 그 음반은 아니지만 'El Condor Pasa'가 몇 가지의 연주형태로 담겨있는 음반이 들어왔으며 택배로 보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음반을 받아보고는 많이 실망을 했었습니다. 제가 찾던 그 음반이 아니기도 했지만 음악도 처음 들었을때 처럼 애잔하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음반은 한동안 제 손길을 떠나 묵묵히 다른 음반속에서 무관심하게 잠자고 있었는데, 어제 노트북을 새로 장만하면서 내장되어 있는 JBL스피커의 성능도 점검할겸 음반을 뒤지다가 이 음반을 찾아낸 것입니다. 음반을 넣고 구동을 하자 왜 나를 그동안 구박했냐고 반발이라도 하듯 제가 처음 느꼈던 그 애잔함을 가슴속으로 스멀 스멀 던져오는 것이었습니다. 반복연주 기능으로 하여 수도 없이 들어보지만 전혀 싫증이 나지 않는 음악인것 같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은 통상 들어왔던 고전음악이지만 이런 고전음악을 떠나서 정말로 가슴속에 와 닿는 전율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이 몇 개 있었습니다. 그 몇가지는 예전에 KBS와 NHK가 공동으로 취재를 해서 방영했던 'Silkroad'의 배경음악으로 연주되었던 오카리나의 음색입니다. 제한된 공간이 아니라 툭 터진 공간을 이리 너울~ 저리 너울~ 날아다니던 오카리나의 음색은 정말로 사람의 마음속에 그 음악이 끊어질까봐 조바심하는 마음을 남기고 말았었습니다.
두 번째는 네덜란드의 필립스 기술진에 의하여 集音된 음악과 합창단의 음성으로 꾸며진 'Africa Sangtus'라는 음반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원시림에서 부족원이 모여서 기원하는 음악인데 이 음반은 현장에서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피라미드의 저주를 받아 차례로 죽어가듯이 한 사람씩 죽어가기 시작해서 마이너 레이블에서 만든 음반임에도 상당히 알려졌던 음반이었습니다. 안단테에서 파르테시모에 이르는 음악을 사람의 음성으로만 그렇게 다양하게 연주할 수 있다는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세 번째는 김영동의 국악가요입니다. 그의 음악은 어울림이나 슬기둥을 통하여 다양하게 연주되어 일반적인 음악이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동일음의 반복적 연주인 '상여'라는 곡은 그 빠르기만 달리하여 반복적 음정을 사람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는데 이승을 떠나는 인간의 죽음에 유달리 슬퍼하는 우리 민족에게 죽음은 또 다른 세계와의 만남이라는 의미로 슬픔의 忘歌가 아닌 새로운 탄생을 기원하는 밝은 음정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El Condor Pasa'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거론한 4가지의 음악은 일반 고전음악이나 유행가와는 상당히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는 다소 특이한 음악입니다만, 이 음악의 내용은 모르더라도(실제 저는 내용은 모르고 음악을 듣는 편입니다) 그 음정과 음색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한없이 자유로운 유영을 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아무리 잡으려해도 잡히지 않고 어떤때는 기분이 좋아 들떠있는 마음을 더 들뜨게도 하고, 어느날은 무거워진 마음보다 더욱 무겁게 마음속에 침잠하려는듯 마음을 저 깊은 심연의 세계로 끌고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유야 어떻하든 음악은 귀를 통하여 우리와 교감을 할 때 즐겨듣는다고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 음악이 경쾌하든 애잔하든.....지금 내게 필요한 음악이라면 어떤 음악이라도 마음속에 와 닿을것이니까 말입니다.
< 如 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