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한시:여류시편 - 제3권
김달진 / 민음사 / 198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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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구입한지는 꽤 오래 되었다. 구입 당시에는 밤이 새는지도 모르고 한시가 주는 매력에 빠졌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 책장에서 우연히도 굵은 제목이 눈에 띄어 다시 집어들게 되었다. <한국漢詩> 3권은 여류시인의 작품을 묶은 책인데,  이 책의 譯者인 故김달진 선생은 오랜 동안을 동국역경원에서 한문으로된 불경의 한국어 번역을 위해 노력해오신 시인으로 바로 이 책의 출간을 앞두고 세상을 떠나셨다.

  한글은 다양한 표현기법에 있어 프랑스어보다 훨씬 사물의 표현을 위한 수식어가 많은 우수한 글자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한문으로 된 詩를 우리 말로 번역한 것인데 순수 한글로 이루어진 싯귀보다 훨씬 속에 담긴 깊은 내용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뜻글인 한문이 같는 하나의 장점이 될것이지만 그런 한문을 우리 글로 譯解함에 있어 얼마나 감미롭고 다양하게 풀 수 있는지...새삼 우리 한글의 다양한 표현 가능성에 감탄을 할 따름이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의 저자는 신사임당 처럼 잘 알려진 여류 시인이 있는가 하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규방 작가의 작품이 다수 소개되고 있는데 당시의 여인네들이 같은 정서는 물론이고 그네들이 가졌던 사랑과 이별의 애절함을 어떻게 표현하였나를 알 수 있음은 물론이고 그네들의 시를 통하여 현대의 여성과는 어떤 사고의 차이가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羅 衫 (비단 적삼)

醉客挽羅衫   술 취한 손님이 비단 적삼을 잡아 당겨

羅衫隨手裂   그바람에 그 손길 따라 비단적삼 찢어졌네

不惜一羅衫   비단적삼 한 벌이야 아까울것 없지만은

但恐思情絶   그 사람과의 은정이 끊어질까 두려워할 뿐....

위의 詩에서 말하듯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 은근한 표현으로 사랑의 단절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조선시대의 여인네들이 갖고 있는 사랑과 기다림에 따르는 애절함을 한자라는 뜻글을 빌어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이 책에 실린 한시를 보면서 대부분의 한시가 7언절구로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는데 단 7자의 한자를 사용하여 자신의 가슴속에 담긴 안타까움을 토로할 수 있었던 규방 아낙의 숨은 능력이 놀랍고, 지금처럼 톡톡 튀지는 않더라도 아낙네들은 나름대로 규방문학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개척했던 만큼의 다양한 문학적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고도 볼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책의 내용을 하나 하나 읽어 가면서 오히려 현대의 사랑을 전하는 메시지보다 훨씬 강력하고 은근한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했던 흔적을 엿 볼 수 있다.

 책의 구성은 작가별로 제목을 나열하고 번역을 먼저 싣고 원문을 배열하였으며, 밑에는 註를 달아 읽는이의 이해를 돕고 있다. 그리고 권말 부록으로는 <한국漢詩> 의 3권째 마지막권으로 작가소개를 달고 있다.  7언, 또는 5언으로 이루어진 짧은 漢詩지만 그 시가 담고 있는 속뜻이 참으로 애절하고, 한편으로는 이 시를 쓴 여인네들의 심정을 헤아리며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규방문학의 번역서라 할 것이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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