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로 가는 마음
신영훈 지음 / 책만드는집 / 1994년 6월
평점 :
절판


木壽의 글은 언제나 다정다감하다. 저자의 생김생김도 그렇거니와 말투나 글 솜씨 모두가 한결같다. 어느것 하나 틀어져서 튕겨지는 것이 없이 잘 지은 한옥처럼 매사가 정갈스럽다.

<절로 가는 마음>은 신영훈 선생의 이러한 자상한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할것이다. 22개의 사찰관련 건축물을 논하면서 단순히 그것들만 보게 하지 않고 있다. 부록을 제외한 6꼭지 모두가 사찰과 관련된 내용들이지만 저자는 사찰을 드나들면서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자근자근 몇번을 곱씹듯이 설명하고 있다. 그것도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할머니의 무릅베개 위에 머리를 얹고, 가물거리는 호롱불을 바라보며 졸릴듯 말듯 들려주시는 옛날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다.

비단, 절간뿐이 아니다. 사찰을 드나들며 개울이 흐르다 멈추는곳, 물길이 돌아 바위를 때리고 아우성 치는 산중의 이야기를 귀에 대고 소근거리기에 귓볼이 간지럽다. 혹시라도 지루할까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담겨있는 전설들을 이야기처럼 들려주고 있다.

저자의 다른 저서에서도 이야기의 재미가 솔솔하지만 결코 지루하거나 읽어 내려가며 숨이 차지 않는다. 저자는 읽는 독자의 숨가쁨까지도 고려하여 간단간단하게 문장을 잘라줌으로서 숨을 고르도록 한다. 이 책이 단순히 22개 사찰의 건축물에 대한 설명으로 끝이 났다면, 아마도 독자들은 이 책을 얼굴덮개로 사용하고 잠들어 버렸을 것이지만, 저자는 절간에 대하여 아주 재미있게도 22개 사찰의 건축물들을 조합하여 절간에 들어서서 금당을 거쳐, 부도밭에 이르기까지를 매끄럽게 이어 놓았다. 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책을 보면 절간에 발을 들여 놓는 절차부터 시작하여 예불에 이르기까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에밀레종의 비천상이 왜 하늘을 날아 다니는지, 부처를 모신 금당 앞에는 무엇때문에 사람 키보다 더 큰 석등이 놓여 있는지... 부석사의 부처는 왜? 정면을 보고 있지 않고 동쪽의 3층 석탑을 향하고 있을까? 법당의 문에 살을 박았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절간을 장식하는 단청은 왜 그리고 누가 그리는 것일까?..... 이런 많은 의문을 이 책을 답해주고 있다. 그것도 수학 문제를 푸는 딱딱한 공식이 아니라 남이 들을새라 낮은 목소리로 소근거리는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은 흑백사진으로 칼라사진이 아닌것이 조금 아쉽지만 그 구도나 앵글이 완벽하다. 이는 대목 신영훈과 사진쟁이 김대벽의 완벽한 콤비로 오랜동안 문화재에 대해 교감한 결과일 것이다. 이 야밤에 산사를 찾아 떠나보자.... 새벽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하늘을 날때, 에밀레종의 비천상도 하늘을 날것이다. 새벽안개가 감쌓안은 절간은 밤 동안의 고즈녁함에서 어떤 기지개로 아침을 맞을까? 이 책을 읽으며 불현듯 산사를 찾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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