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15명이 전역을 하는 날입니다. 그간 2년 동안 고생했던 전역자들은 전역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평소와는 달리 웃음띤 얼굴로 차 한잔 나눔의 시간에도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간이 가는줄도 몰랐습니다. 경기종목으로는 역도, 펜싱, 육상, 태권도등 4개 종목의 선수들인데 이들이 전역을 하고 나가서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하여 피같은 땀방울을 흘릴것입니다. 다행히 그동안 제가 데리고 있으면서도 저와는 많이 친해져서 떠나는것을 매우 섭섭하게 생각하면서 이제는 지휘관리체계를 벗어나기엔지는 몰라도 평소와는 달리 농담들도 많이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동안에 있었던 재미있던 일들을 상기하면서 저를 놀리기까지 하더군요.....그러나 저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2. 평소 경기중에 발생하는 신체적 부상에 대해  완쾌되기 전까지는 감독들이 출전을 하겠다고 해도 선수생명의 단절을 이유로 출전을 하지 못하도록 했었는데, 선수들은 자신들의 경기종목 감독에게는 아무리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못하는데 제가 그 역할을 대신해 주었더니 그게 고마왔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운동선수들의 행동 연령의 한계선이 30대 중반 이전이니 공부를 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선수들에게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 영어회화, 전산등에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나름대로 공부들을 하였었는데 이제는 해외에 나가서 간단한 생활영어는 어렵지 않게 구사할수 있다고들 자랑하였습니다.

3. 그런 선수들이 전역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작은 돈을 모아서 제게 조그만 선물을 하였습니다. 전역을 하는 선수들이 전역선물을 받아야 하는데 거꾸로 제게 선물을 주다니....실은 저도 어제 저녁까지 어떤것을 선물로 줄까로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퇴근할 때 연감속에 넣어두었던 것들을 가지고 나갔었지요....선수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말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네잎 클로버였습니다. 지난 여름내내 잔디를 괴롭혔던 클로버였는데 저는 잔디밭을 지날때는 가끔 쪼그리고 앉아서 네잎클로버를 찾아서는 두툼한 연감속에 넣어두고는 했는데 이제는 다 말라서 납작하게 되었고 그 수도 제법 많아졌었습니다.

4. 근처 문구점에 가서는 앞뒤로 조금 두툼한 OHP film으로 코팅을 하고는 클로버잎에 맞게 잘랐습니다. 물론 그 속에는 각 개인에게 맞는 문구도 넣어서 말입니다. 전역자들에게 선물을 받고는 "나도 줄 선물이 있다" 고 하며 주머니에서 잘 코팅된 네잎 클로버를 하나씩 꺼내주니 모두들 좋아했습니다. 아마 이 친구들은 이런 선물을 받으리라는 생각을 못했던지 한편으로는 놀라기도 하는것이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네잎클로버는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운동선수에게 있어서의 행운이란 매우 큰 의미를 담고 있는것입니다. 물론, 열심히 갈고 닦아 최선을 다 했을 때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이들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의미가 큰 징크스나 행운등을 믿는 편이랍니다.

5. 이제 일단의 전역자들은 제 곁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또 다른 경기장에서 늘 그랬듯이 우르르 달려와서는 제게 별도의 지출을 요구하게 될것입니다. 지출이래봤자...커피나 아이스크림 정도이지만 그래도 그런 일들이 참 즐겁습니다. 저야 관리자로서의 역할뿐일지는 몰라도 선수나 저나 같은 인간이기에 인간의 활동 범주속에서 만났다가는 헤어지고...헤어졌다가는 또 만나는 일을 반복하는것이지만 그들과의 연은 전역후에도 늘 마찬가지로 끈끈한것 같습니다.  이제 날이 풀리고 새 싹들이 움트면 그것들이 커서 싱그러울 때..저는 또 다시 네잎 클로버를 찾을겁니다. 점심식사후에 잔디밭에서 열심히 찾으면 제법 찾을 수 있는 일이니까 말입니다. 더불어 금년에는 아주 이쁘게 물들은 단풍잎도 조금 모아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단풍잎을 모으지 않은것은 단풍은 싱싱하던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이기에 그 색감이 아무리 고와도 승리를 위해 달리는 선수들에게는 줄 수 없다는 생각이어서였는데 이제는 네잎클로버와 함께 잘 코팅을 해서 주려고 합니다. 그들이 그 선물을 받아서 돌아서며 바로 버리기야 하겠습니까? 바라건데...  그들의 삶 동안 제가 마련한 작은 선물을 보며 "이런 사람이 나를 스쳐갔다" 고만 기억해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행복할것 같습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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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기 2004-02-14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역한지 얼마 않되서 수수께끼님의 말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크로바를 모을 생각을 하셨는지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