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가 근무하는 곳은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지점입니다. 맞은편은 서울인데 제가 있는곳도 발을 하나 잘못 디디면 서울이고 이쪽으로 쓰러지면 성남시 땅으로 쓰러지는 곳이랍니다.  양 도시간의 접경지역은 이곳 말고도 여러곳이 있겠지만 만약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다면 그 관할을 놓고 양 도시의 경찰이 서로 미룰수 있는 지역입니다.

2. 그러나 이런 문제를 떠나서 이곳은 바라다 보이는 경치가 가관이랍니다. 바로 사무실 창문앞에 한폭의 거대한 산수화가  펼쳐지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남한 산성의 모습입니다. 더 정확히 이야기 한다면 남한산성의 남서쪽의 모습...서울쪽의 모습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남한산성의 모습은 그 산이 안고 있는 변화의 모습을 저에게 다 보여주고 있답니다. 봄에는 아지랑이속에 보일듯 말듯한 새싹의 움트는 모습과 생동하는 숨소리를 들려주고, 여름내내 산새가 보금자리를 만드는 소리와 힘이 넘치는 모습을...그리고 가을에는 패션쇼를 하며 자태를 뽐내고 정겹게 다가오지요...

3. 그런데...겨울은 참 문제가 많답니다. 모든 생명이 다 잠들어 산도 그저 진회색으로 도배되어 있답니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근육질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도무지 숨쉴 생각조차 하지 않는 벙어리가 되어 버리지요. 다른 때 같으면 소근소근 이야기라도 걸어오면서 아양을 떨텐데 전혀 묵묵부답이라 출근을 하거나, 또는 가끔 바라보아도 전혀 반응이 없답니다. 어쩌면 남한산성은 소생불능의 말기 암환자 같은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보는 사람의 마음마져도 우울하게 만들어버리니까요...

4. 남한산성의 겨울은 눈이 오면 또 다른 모습으로 엄동설한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이 있음을 보여 준답니다. 산의 뚜렷한 윤곽을 볼 수 있는 계절은 바로 눈이 온통 세상을 뒤덮은 겨울뿐일 것입니다. 그 거대함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감격으로 가슴속에 밀려오고는 합니다. 그러나 눈은 아직 오지 않았지요....  남한산성의 그 웅장한 모습을 보려면 눈이 내려야 하는데 말입니다.

5. 하지만, 오늘 아침의 남한산성은 새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밤사이 살짝 뿌리고 간 빗줄기는 천지를 촉촉하게 적셔버렸습니다. 출근길에 물안개 처럼 퍼져 올라오는 빗길의 물방울이 차창을 더럽히고 있었지요...  출근을 조금 일찍 하는 편이라 해가 뜨기전에 사무실에 도착을 합니다. 대충 오늘 할 일을 준비하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창밖을 보는 순간 남한산성은 죽지 않았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습니다. 위대한 탄생이었습니다. 구름 아래에서 남한산성을 걸터앉고 구렁이 담넘듯 슬금 슬금 기어오르는 태양...그 태양은 아침의 새로운 정기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마치도 "내 정기를 다 받아라" 하는 느낌으로 태양은 그 힘찬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6. 남한산성은 아침을 아무렇치도 않게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겨울이라 생동하지 않으리라는 마음에 심통이라도 내듯이 남한산성은 말없이 그 빛나는 태양을 토해내고 있었는데, 이는 마치도 사랑하는 사람의 2세를 오랜기간 잉태하다 산고를 겪는 산모의 입을 앙다문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속에는 커다란 일을 마치고 땀범벅이 된 얼굴로 자랑스러워 하는 남한산성의 속내가 담겨 있었습니다. 결코 겨울이라고 죽은듯 잠자는 것이 아니라는것을 깨우쳐주기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오늘도...또 내일도 남한산성은 산고를 껶을것입니다. 그리고는 자랑스럽게 죽은 산이 아니라고 말할겁니다. 자연이 제게 하는 말...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남한산성을 마주해야 한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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