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구미의 C병원에 입원해 투병중이던 B의 죽음을 알리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직 마흔이 채 안된 그녀는 위암으로 오랜기간 고생을 하였고, 위를 제거했음에도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일반인과 똑 같이 자신의 일에 메달리다가 길지 않은 삶을 마감하고야 말았습니다. 최근까지 서울의 원자력병원에서 치료중이었는데 아마도 가망이 없다는 판정으로 고향 인근의 병원으로 옮겼던 모양입니다.
2. 그녀는 알게된 기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5년전인가.... 단청 기술자 자격을 획득하고 단청일을 하다보니 학문적 궁금증과 미술사학적 호기심으로 석사과정에 입학하였을 때 그녀를 처음 보았었습니다. 마치 대리석 같은 얼굴의 야무진 그녀는 눈빛만 살아 있는 느낌이었고, 수업시간에도 자신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는 하였었던 그녀 였습니다. 그녀가 위암으로 투병중인것을 알게 된것은 그 후였습니다. 그녀가 투병중임을 알고나서부터는 식당에서나 평시에도 그녀의 행동을 눈여겨보는 습관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3. 위를 잘라낸지라 식사에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많이 좋아진 것으로 판단을 하였지만 감히 상태가 어떤가를 물어보는 일은 주변의 모두들 금기시하고 피하는 일이었는데 저녁모임 등에서도 그녀는 한번도 빠지는 일이 없이 끝까지 함게 자리하였고, 늦었으니 먼저 들어가라고해도 그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모임이 종료되는 순간까지 늘 함께 하였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그녀의 증세는 많이 호전된 것으로 알 정도였습니다.
4. 그러던 그녀가 원자력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것은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이제 완쾌되는줄만 알고 있었는데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을때는 다소 의아했지만 원래 암이라는 증상이 인간을 끈질기게 괴롭힌다고 알고있는지라 잠시 치료를 마치면 퇴원을 하게 될줄 알았었습니다. 저의 게으름으로 병문안을 갈 수 없었기에 지난 설에는 전화로라도 새해인사를 하려고 전화를 했었는데 그녀 대신 보호자가 전화를 받았고, 방금전 쿠토를 했기에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말에 그럼 안부를 전해줄것을 당부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5. 비단 그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일로 인해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게 됩니다만, 제가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위암으로 인하여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열정을 쏟았던 단청에 대하여는 마치 단청을 자신이 꼭 지켜가야할 과제로 알고 메달릴 정도로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 퍼부었다는 것입니다. 단청일은 지붕부분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기에 공사장의 주변에 얼기설기 얽어 놓은것 같은 보조물을 타고 올라가서 작업을 해야하며, 또 몸을 뒤집고 서까래나 천장에 각종 문양을 그려야하는 매우 고단한 작업임에도 그녀는 그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인냥 애착을 가지고 작업에 임했던것이며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단청의 미술사학적 측면을 연구하기 위해 학문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6. 답사때의 식사시에도 그녀는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식사선택에 지장을 주지 않기위해 별도의 식단을 주문하지 않는등 메뉴선택에 애써 태연했고 단체로 주문한 식사매뉴에 단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았으며, 산길을 오를때도 자신으로 인해 일행의 전진이 늦을까봐 늘 앞장을 섰던 그녀도 암이라는 병마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제 그 악착같던 그녀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는데 그녀가 운명했다는 전화 한통을 받고 나서 그녀의 평시 모습이 눈에 떠오르며 자신의 생애에 그래도 무엇인가 남기고자 최선을 다하며 정상인과 같은 행동으로 노력하던 그녀의 모습이 안타깝게 떠오릅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언젠가는 세상과 이별을 해야만 하는데 과연 세상을 떠나며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라는 명제를 다시한번 떠올리게 하는 안타까운 전화였습니다. 그녀의 명복을 진정으로 빕니다.
< 如 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