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 한 자락
밀록 지음 / 청어람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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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은 늘 기대와 설렘을 동반한다. 하지만 처음 보는 작가의 책이어서 망설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게다가 살짝 두꺼운 시대물이라 조심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시대물 로맨스는 자칫하면 폭탄이 될 가능성이 너무 농후해서 말이다. 하지만 처음에 걱정했던 것과 달리 수월하게 넘어가는 책장과 탄탄한 이야기에는 조금 놀랬다.

 

후궁의 그것도 무수리가 낳은 서출 왕자 진양군, 진염. 진염은 왕위 친탈의 수단으로 쓰기 위해 병판대감의 둘째딸 유송우와 혼인하기로 한다. 일말의 죄책감을 느낀 진염에게 책사 건륜은 송우의 마음을 철저히 이용하고 짓밟으라고 조언한다. 우연히 송우를 만나게 된 건륜.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송우와 친구가 되기로 결심하는데 자신이 강요했지만 진염과의 혼인 소식은 씁쓸하기만 하다.

 

이야기의 핵심은 착하고 순했던 송우가 복수를 꿈꾸는 여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인 것 같다. 물론 남자 주인공 찾기는 당연한 거고. 자신을 속이고 가족을 기만한 진염과 다련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송우가 좀 갑작스럽긴 해도 충분히 그럴만한 미움을 샀던 그들이라 송우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조금 매끄러웠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초반에 송우 때문에 좀 답답했는데 송우의 언니인 서나 덕분에 답답한 속이 뻥 뚫리더라. 사납고 화끈한 성격의 서나가 내뱉는 말들이 소화제처럼 막힌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잠깐씩 등장하는 서나의 낭군인 한위가 아껴주는 모습이 참 예쁘던데 괄괄한 성격의 서나가 하는 사랑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송우의 언니로만 등장하기에는 포스가 남다르기도 했고.

 

죄책감으로 송우를 소중하게 대했던 진염과 수어지교水魚之交로 시작된 편안한 건륜과의 사이에서 송우는 과연 누구를 택했을까. 수수께끼 같은 남자 주인공 찾기는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다. 덕분에 빠르게 넘어가는 책장은 덤이고. 바로 전에 읽은 꽃묵만 아니었다면 더 즐겁게 읽었을 텐데 왠지 복습하는 기분이라 재미가 반감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즐기기엔 모자라지 않았으니 차기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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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연애 블루스
한상운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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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을 사귀던 여자 친구에게 차였다. 헤어지자는 여자 친구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우울한 기분을 떨쳐보려고 들어간 극장에서 한 여자를 마주친다. 그녀를 따라 영화를 보고 그녀를 따라 버스 정류장에 멈춰 섰다. 순간 정류장 앞으로 세워진 검은 차에서 내린 남자가 그녀를 사정없이 때린다. 성욱은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그녀가 탄 택시에 같이 올라타게 되는데...

 

성욱은 여자 친구였던 인영과 함께 고시 공부를 했었다. 인영은 합격해서 검사로 탄탄한 미래를 그리고 있었고 성욱은 하던 공부를 때려치우고 작은 출판사에 취직해 평범한 일상을 지내고 있다. 그런 그가 우연히 만난 수정에게 첫 눈에 반했고 소심했던 성욱은 그녀로 인해 변화를 맞이한다.

 

제목과 띠지와 책 소개만 보고 연애소설인줄 알았다. 진작 읽었던 작가의 인플루엔자와는 전혀 다른 글인 것 같아 의외라며 고개가 갸웃했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더라. 솔직히 재미는 모르겠다. 로맨스가 살짝 가미된 액션느와르 소설이라 하기에도 많이 부족해 보이고.

 

수정이 감추고 있는 비밀을 파헤쳐가는 게 전반적인 줄거리인데 첫 눈에 반한 그녀를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는 성욱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좀 불편해 지더라. 차라리 인플루엔자처럼 B급 정서라도 풍부했다면 아쉽지는 않았을 텐데 금사빠성욱에게 실망 아닌 실망을 했더랬다. 그래도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볼만하니 차기작을 기대해 볼만하다. 부디 건필해서 좋은 작품으로 또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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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묵은 가지에서 피네 세트 - 전3권 블랙 라벨 클럽 12
윤민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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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황제에게 공녀로 받혀진 한 이선. 치욕같은 아픔에 이를 악물고 선덕제의 후궁으로 자금성에 입궁한다. 황제의 후궁이라는 가시밭길에서 사랑도 아닌 목숨 하나만을 간절히 원했던 그녀. 피 튀기는 전쟁과도 다를 바 없는 궁중암투 속에서 그녀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주는 우겸을 만난다. '꽃묵'은 한 이선, 그녀의 불꽃같은 일생을 이야기한다.

 

'꽃묵'에서 소재로 쓰인 한계란, 규란 자매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명나라의 속국이라는 치욕적인 역사의 한 편이기도 하고. 몇 년 전 읽었던 역사소설이 '꽃묵'을 읽는데 걸림돌이 될 줄 알았다. 결말을 미리 알고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니까. 하지만 읽는 내내 푹 빠져들었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지만 이선과 우겸의 사랑에 응원을 해주고픈 마음도 생기더라.

 

양헌왕, 주첨선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이선을 친여동생처럼 아꼈고, 그녀의 곁에서 항상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승자도 패자도 없는 치열한 정치 싸움에서 이선을 지켰다. 아련아련 열매를 먹은 것 마냥 짠내 물씬 나는 캐릭터인 첨선. 첨선은 이선의 언니를 사랑했었다. 가슴 속 깊이 묻어둔 사랑에 대한 미안함에서 시작된 이선을 향한 애틋함은 자금성에서 이선을 지킬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되어준다. 그의 최후가 어떠하든 그게 아니었어도 눈물 나게 만드는 남자임은 분명하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하나같이 지독한 사랑을 하고 있다. 사랑과는 거리가 먼 자금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들을 보니 그런 사랑이 없었다면 자금성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다. 생채기만 내는 사랑이라고 해도 그게 전부여서, 그것만을 바라 온 간절한 바램이 있어서 그들은 그 자리에서 빛을 잃지 않았을 거다.

 

개인적으로 읽다 덮은 블랙라벨클럽 시리즈의 책들이 많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에 의해 사랑받지 못한 책들 때문에 편견 아닌 편견이 있었다. 겁부터 집어 먹게 만드는 후덜덜한 두께와 느린 호흡 때문에 꽤나 오랜 시간 붙들고 있었지만  '꽃묵' 덕분에 그 편견이 깨진 것 같다. 나에게는 편견을 깨 준 고마운 책이다. 공녀로 자금성에 들어갔지만 누구보다 찬란하게 살다간 한 이선,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망설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좀 길어도 그만한 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본 서평은 '디앤씨-블랙라벨클럽'이 로사사에서 진행한 <꽃은 묵은 가지에서 피네>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자유롭게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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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9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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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세상을 떠났다. 어릴 때 돌아가신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할 만큼 무한한 사랑을 주던 아빠였는데 아무런 인사 없이 훌쩍 떠나버렸다. 작은 동네에서 쌀집을 운영하던 아빠의 평생 지기였던 떡집아저씨가 홀로 남겨진 태산을 걱정하며 이것저것 챙겨주기에 여념이 없다. 아빠가 떠나고 깊은 상실감에 젖어있는 태산에게 엄마의 오촌지간이라며 친척이 찾아온다.

 

평소 친한 친구인 기형의 강압적인 권유(?)로 집을 새 단장하기로 한 태산은 장판 밑에 깔려있던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어느 시골 동네의 건물을 찍은 사진 뒤에는 꼭 그곳을 찾아가라는 아빠의 유언 아닌 유언이 남겨져 있었다. 태산은 사진 속 해리미용실의 간판 밑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만 보고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간다. 해리미용실의 주인인 남자와 마주한 태산은 아빠와의 관계를 캐묻는데 이 아저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다. 태산을 따라 부산까지 내려 온 대책 없는 기형이 때문에 해리미용실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하는데...

 

누군가는 죽어도 일상은 계속 흘러간다. 그게 아빠의 죽음이라 해도. 해리미용실에서 일하던 아저씨와 아빠와의 관계를 추적해가는 태산이의 이야기다. 알고 보니 해리미용실의 아저씨도 태산이처럼 누군가를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는 사람이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공유하게 된 감정이 치료제가 되어 태산을 위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종국에 밝혀지는 아저씨와 아빠와의 관계는 아빠가 태산이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던 것 같다.

 

청소년문학이라고 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과 상실감을 다룬 이야기라 생각보다 묵직하고 깊은 여운이 남는다.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려면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태산이와 아저씨도 아픈 상처는 잊고 꿋꿋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제목처럼 해리 미용실의 끝나지 않을 이야기가 사뭇 기대되는 것도 태산이와 아저씨가 언젠가 기쁘게 웃을 날이 머지않을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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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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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는 할아버지를 만나려고 길을 나선다. 문단속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할아버지는 문을 늘 열어두곤 하셨는데 문을 열고 들어간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쓰러져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한 리노. 경찰이 강도에 의한 사건임을 경찰은 추정하는데 증거도 없고 범인의 정체도 오리무중이다. 평소 꽃을 키우시던 할아버지의 화단에서 노란꽃이 피어있던 화분이 없어진 걸 깨달은 리노는 경찰에게 신고하지만 경찰은 의미 없는 신고에 집중하지 않는다. 이에 리노는 혼자서라도 범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기 시작하는데...

 

등장인물도 많고 복잡하게 꼬여있는 관계들에 머리가 살짝 아파와 메모장을 꺼내들었다. 관계도를 차근차근 그려가며 읽어가니 조금 수월해지더라. 인터넷서점 올라와있는 인물관계도가 왜 종이책에는 없는 것인지 아쉽다. 사건과 사건의 고리가 너무 꼬여 있어도, 결국엔 범인 찾기에 열중을 다 하는 추리소설의 플롯을 보여주긴 한다. 가독성은 좋았으나 집중하기가 생각만큼 쉽지는 않더라. 지금은 사라진 꽃, 몽환화를 추적해가는 사토와 리노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사토의 집안 대대로 내려왔다던 몽환화를 둘러싼 이야기는 너무 작위적이지 않았나 싶다. 강렬했던 프롤로그는 어느새 훅 사라졌고, 의외의 범인은 놀라웠지만 살인동기가 생각보다 너무 가벼워(?) 더 놀랍더라.

 

10년을 공들여 썼다는 말에 쉽게 납득을 못하겠다. ‘공허한 십자가로 애써 끌어올린 애정이 몽환화로 사그라지는 느낌이다. ‘질풍론도처럼 마냥 가벼운 소설도 아니건만 아무것도 남는 게 없으니 아쉽고 또 아쉽다. 어쩌다 한 달에 한 권씩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고 있는데 근래 읽었던 게이고의 책 중에 무엇 하나 만족스럽지 못한 책이었다. 모든 작품이 좋을 수 없다는 거 안다. 취향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많은 기대를 하려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기대를 하게 만드는 작가였는데 이제는 나도 좀 변할 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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