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시간 - 김근태, 남영동 22일간의 기록 평화 발자국 12
박건웅 만화 / 보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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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근태 님이 198594일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서 22일동안 고문을 받았다. ‘짐승의 시간은 그 22일간 고문을 받았던 기록이다. 책장을 펴고 얼마 되지 않아 하얀색 표지에 그려져 있던 십자가처럼 보이는 빨간색의 그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위에 강제로 묶여 숱한 고문을 당하면서 고문자들에 의해 짐승으로 지냈던 시간이 낱낱이 드러난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어떠한 악한 행동들보다 더 그악스럽고 사악하기 그지없는 고문이라는 이름의 고통 말이다. 잔인한 파괴의 시간이었던 22일은 그를 나약하고 병들게 만들었다.

 

 

책 속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그에게 고문을 했던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들이다. 먹여 살려야 할 아이와 아내가 있고, 당장 점심엔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는 아주 평범하고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 그런 사람이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을 정도의 고문을 한다는 게 믿겨지나? 모르겠다. 고문으로 심신이 약해진 그는 나중에 고문자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그 때문에 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순전히 짐승의 시간이라는 제목과 벽돌 같은 두께에 솔깃해서 읽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요즘, 두꺼워도 만화니까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꼼수도 있었다. 대충 누구에 대한 이야기인지만 훑었다. 만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벼워 보이고, 그래픽노블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다. 흑백대비와 굵은 선으로 표현 된 그림은 강렬하다. 그만큼 생생하게 전달되는 고통의 크기에 숨이 턱 막혀온다.

 

 

책 한 권으로 그가 겪었던 고통의 깊이를 얼마나 짐작하겠냐만 그래도 이런 책이 있다는 게 다행으로 느껴진다. 세상에 묻힐 이야기는 절대 아니지만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어질 기억이기에 이렇게 다시 환기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겪었던 짐승의 시간을 지우개로 지우듯 말끔하게 지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바래본다. 그 곳에서는 평화롭고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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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숙청의 문을
구로타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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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있어도 없는 것처럼 지내던 40대 여교사 곤도 아야코가 자신이 담임을 맡았던 3학년 D반 스물아홉 명의 학생들을 인질로 삼는다. ‘처형의 방식을 띤 살인으로 학생들은 하나둘씩 목숨을 잃어 가는데 현장에 급파된 특경반은 주도면밀한 아야코의 범행 계획에 혀를 내두른다. 전대미문의 인질극에서 특경반은 학생들을 구출하고 피의자 아야코를 체포할 수 있을까.

 

솔직히 설정이 과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아니 많다. 엄청난 전투력의 여교사나 극악무도한 악행을 저질렀던 학생이나, 그 학생들이 한 반을 이루고 있는 설정 등. 소설을 완성하기 위한 설정들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과한 설정들이 전혀 과하게 느껴지지 않고 이상하게 흥미와 재미를 배가 시켜주는 요소로 작용 된다. 납치범이자 교사인 아야코의 예상을 뛰어넘는 행동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잔인한 방식으로 살인을 저지른 그녀, 아야코의 편을 무조건 들어주기는 힘들다. 섬뜩한 광기에 휘말려 끔찍한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의 마음을 전부는 아니어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새벽 1시 즈음에 마지막 책장을 덮고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를 괴물로 만든 건 우리 모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답답해져서 말이다.

 

나는 왜 이 책을 이제야 보았을까. 과한 설정이 작품의 재미를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고, 앉은 자리에서 뚝딱 해치우게 만드는 뛰어난 몰입은 최고라 할 만하다. ‘엄지 척은 이런데 쓰는 말인 것 같다. ^.^ 늦장마로 찝찝함과 불쾌함에 짜증게이지가 경고등을 울리며 최고치를 넘어서고 있었는데 덕분에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이 맛에 장르소설을 본다. 깊고 진한 짜릿함이 선사하는 시원한 맛에 찾게 되는 장르소설 말이다. 재미있다는 한마디로 모든 게 설명이 되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소설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얘기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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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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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묘묘한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 월간 풍문. 어느 날 대호선배와 나는 일 년에 한 번, 목련흉가에서 모임을 갖는 밤의 이야기꾼들에 초대 되었다. 흉가에서 벌이는 정체불명의 모임이 오싹하기만 하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전부 6. 어느 노인의 사회로 시작된 모임은 참석한 사람 차례대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대대로(?) 남편이 실종되는 아내의 이상한 집안 이야기인 과부들’, 자신과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를 피하려고 성형을 하는 어느 여자의 이야기인 도플갱어’, 내 집을 지키고자 했던 마음이 집착으로 변해 섬뜩한 광기에 휩싸이게 된 한 남자 이야기인 , 스위트 홈’, 항상 웃을 수밖에 없는 여자의 이야기인 웃는 여자’, 눈귀신의 저주에 걸린 여자와 사랑에 빠진 남자 수의 이야기인 눈의 여왕까지. 책 속에 담겨 있는 다섯 편의 이야기는 옴니버스 형식을 띄고 있다. 단편인 듯 단편 아닌 단편 같은 너~♬ 아무튼 등골 서늘하게 하는 이야기들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밤의 이야기꾼들모임에는 지켜야할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꼭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이야기해야 한다. 믿기에는 너무 거짓말 같고 거짓말이라 하기에는 너무 진실 같은, 일요일 아침 무심코 채널 돌리다 호기심에 보게 되는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같은 이야기다. ‘는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밤의 이야기꾼들의 대단한 활약에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뭔가 터질 듯이 내내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를 만드는 장치가 주인공이 아니었나 싶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어느새 손에는 땀이 흥건하게 베일지도 모른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책을 읽다 괜찮은 글귀 표시해 놓은 빨간색 태그에 식겁해서 육성으로 소리를 꺄악! 질러 버렸다. 진짜, 정말로, 리얼. 비 오는 밤에 방에 혼자 앉아 읽으려니 누군가 내 뒤통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고. , 정말이지. 이런 기분으로 책을 읽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슬며시 벌리는 익살스러운 뒤표지도 마음에 쏙 든다. 밤에 보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이런 이야기는 밤에 읽어야 제 맛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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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키스 매드 픽션 클럽
존 렉터 지음, 최필원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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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두툼한 볼륨의 영미 스릴러들만 접하다 보니 얇은 두께가 새삼 놀랍더라. 이 정도의 두께로 얼마만큼의 만족을 줄지도 내심 궁금했고. 떠오르는 신예작가의 데뷔작이라 하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지!

 

결혼을 위해 네이트와 사라는 다른 도시로 떠난다. 낯선 곳에서 씰이라는 낯선 남자와 만나게 되는데 씰은 목적지까지 차를 태워달라고 요구한다. 계속 기침을 해대는 씰이 걱정되어 병원에 갈 것을 권유하지만 씰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폭설 속에 여행은 더 이상 무리였고 모텔에 머무르기로 하는데 뒷좌석에 앉아 있던 씰의 맥박이 뛰질 않는다. 네이트와 사라는 씰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폭설로 고립된 모텔에서 씰의 가방을 들여다 본 네이트는 200만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거금을 발견하게 되는데...

 

네이트와 사라는 풍족하게 자라지 못했다. 뜻밖의 횡재에 눈이 뒤집힐 만도 한데 사라는 씰에 대한 죄책감에 마냥 기뻐하기 힘들다. 자신의 미래와 행복을 위해서는 분명 필요한 돈임을 아는데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본의 아니게 폭설 때문에 모텔에 갇힌 다른 사람들과도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는데 이 사람들 몰래 거액의 돈을 가지고 고립된 모텔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갑자기 생긴 거액의 돈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가끔 등장하는 소재다. 숨겨져 있는 탐욕스런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기에 아주 좋은 소재니까 말이다. 익숙한 소재여서 얼마나 다른 이야기를 보여줄지 기대했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담백하다. 증언부언 설명 없이 딱딱 떨어지는 문장들도 그렇고. 덕분에 쉽고 빠르게 한 번에 읽힌다.

 

가끔 기대가 독이 되는 책들이 있다. 비교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무조건 재미에만 치중하지 않는 이쪽 나라의 스릴러 소설들에 비해 솔직히 묵직한 여운은 덜 하다. 짧고 깔끔한 문장으로 빠른 스피드와 깊은 몰입은 좋은데 그것뿐이라서 조금 아쉽긴 하다. 처음의 기대만큼은 아니었을지라도 이건 작가의 데뷔작에 불과하다. 데뷔작이 이 정도면 나중에 나올 작품에 대한 기대감 상승은 당연한 거다. 익숙한 소재로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더라도 느낌은 느낌일뿐, 여태 보아왔던 것들과 달리 몰입감은 상당하니 한 번 즐겨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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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사랑 -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
베르벨 레츠 지음, 김이섭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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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진 학창 시절 읽었던 헤르만 헤세가 쓴 책들. 뜻도 모르고 읽었고 읽고 나서도 어려웠던 기억만 남아서 다시 찾아 읽기에도 힘들었던 책들. 그렇게 안 좋은 기억들만 가득한 작가 헤르만 헤세여서 처음부터 겁을 집어먹고 시작했다. 즐거운 취미생활이 되고자 일부러 이런 어려운 책들을 피하기도 했었고. 우선 반성부터 깊이 해야겠다.

 

항간에선 천재라고도 하는 헤르만 헤세. 그의 문학적 깊이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그의 이름, 그의 작품, 어느 것 하나 유명하지 않은 헤르만 헤세인데 그의 사랑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었다. 아내라는 이름으로 헤르만 헤세의 곁을 지켜주었던 여인은 세 명이었다. 평생 여자와 사랑을 나눴지만 누구 하나 그의 외로움을 충족시켜주진 못한 것 같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문학적인 열정은 불태웠지만 곁에 있는 여인에게는 나쁜 남자가 되었던 헤르만 헤세.

 

아마도 헤르만 헤세는 결혼이라는 방식에 적응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결혼 후 둘만의 온전한 시간을 견디지 못했던 헤르만 헤세의 방황은 계속되었고 곁은 지키던 아내는 그런 그에게 지쳐만 갔다. 아내를 지치게 하는 그가 결혼을 세 번이나 했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유명했던 그의 주위에는 항상 여자가 있었으니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겠지. ^.^ 헤르만 헤세가 세 번의 결혼을 하기까지의 과정과 주고받았던 편지, 헤세와 관계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다소 지루하게 이어지는 그에 대한 이야기다.

 

헤르만 헤세는 이성과의 사랑에는 소홀했다. 문학에 대한 사랑과 열망은 대단했겠지만 번번히 실패한 결혼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열렬하게 사랑하는 문학이 있어서 이성과의 사랑은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양다리가 힘든 것처럼 말이다. 이성과의 사랑과 결혼에는 무참히 실패했어도 문학적으로 이뤄낸 성과는 후세에도 길이 남고 있으니 그렇게 봐도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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