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즈가 울부짖는 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2
오사카 고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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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 도시 한복판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한다. 테러를 모의하고 주도했던 가즈히코는 조직으로부터 비밀 은폐를 위한 희생양이 되어 절벽에서 떨어진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가즈히코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의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을 할 수가 없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직장상사라는 사람과 여동생이 찾아온다.

 

오랜만에 동창 모임에 나갔던 아내가 폭탄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공안 엘리트 형사인 구라키는 사적인 감정에 휩쓸려 수사에 나서지 말라는 주위의 압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아내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수면위로 드러나는 사건에서 살인청부업자 가즈히코의 존재가 확인되자 그를 쫓으려 동분서주한다.

 

복잡하게 꼬여있는 실타래를 풀기 위해 안달하는 킬러와 형사가 주인공이다. 가즈히코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과 여동생을 찾아 나서면서, 구라키는 아내의 목숨을 앗아간 폭탄테러사건에 집중하면서 흩어져있던 퍼즐 조각은 제자리를 찾아 하나의 그림이 되어간다. 깔려있던 복선들과 모호하기만 하던 단서들이 해결될 때의 짜릿함이란. 더 없이 통쾌하고 시원하다.

 

하드보일드가 이래서 좋다. 거칠고 잔인해도 씁쓸하게 만드는 뒷맛에 여운이 깊고 진하기 때문이다. 범죄사건을 둘러싼 긴박한 추격전은 또 하나의 볼거리이기도 하고. 킬러 가즈히코와 공안형사 구라키의 본격 대결을 예상했지만 뜻밖의 전개로 놀라기도 했다. 그게 더 진한 풍미를 느끼게 해주는 요소였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서스펜스 가득한 거친 남자들의 이야기, 사랑해요, 하드보일드! ㅋㅋㅋ 올해 초 일본에서 드라마로 방영도 했다는데 찾아봐야겠다. 미지의 인물인 모즈가 영상화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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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미묘한 사이
임시우 지음 / 마롱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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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짝사랑의 기억은 있을 것이다. 딱히 짝사랑이라고 할 것도 없이 보면 설레고 자꾸 보고 싶고 얼굴만 봐도 콩닥거리는 심장을 주체하기 힘들었던 그런 기억 말이다. 대학 시절부터 선배를 짝사랑해온 주안이 여기 있다. 꽤나 친하게 지내 붙어 다닐 일도 많았던 선배여서 아직도 편하게 만나고 있다. 꾹꾹 눌러 담았던 마음이 크리스마스이브에 터져 버린다. 술기운을 빌어 선배에게 애정 빠진 담백한 사이를 제의한다.

 

사소한 거에 신경 써주고 눈치 보고 하는 게 귀찮아서 연애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주익. 아버지가 쓰러지신 뒤 얼떨결에 떠안게 된 아버지의 사업일로 바빠 연애에 할애 할 시간도 없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난 대학 동아리의 모임이 끝난 후 술 한잔 더 하자는 주안을 따라온 주익’. 주안의 발칙한 제안에 어안이 벙벙하다. 대학교 선후배 사이였어도 아끼는 동생이어서 살갑게 지내던 사이가 와장창 깨져버릴 텐데, 주안은 정말 진심인 걸까.

 

당당하게 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들의 관계는 아슬아슬 위태롭기만 하다. 주체할 수 없이 서로에게 흘러가는 마음을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사랑 앞에서 자꾸 작아지는 이들이 안타깝다.

 

마음 없이 몸만 나누는 관계라는 설정은 19금이 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어디에 있을법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려냈다. 이렇게 해서라도 선배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주안의 욕심, 여동생 같았던 후배에 대한 마음이 그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주익의 진심이 만나 특별한 이야기가 되었다.

 

주인공들의 스펙(?)은 로맨스 소설치고 굉장히 무난하고 평범하다. 아픈 가정사도 없고, 특별한 상처도 없고, 그저 보통의 사람들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가 누구에게는 흔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더 깊은 공감을 하게 만든다. 내가 그랬고, 내 남자와의 연애시절이 자꾸 생각나게 하는 애틋하고 아련한 이야기에 잔잔했던 여운은 커다란 파동으로 변해 마음을 둥둥 울려대더라.

 

 

사랑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은 마음에서 하나씩 꺼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씩 채워 넣는다는 것을. 내 마음에서 너의 마음으로, 너의 마음에서 나의 마음으로. 뒤섞인 마음들이 꽉 채워져서 하나로 부풀어 오르는 것. 그 마음이 너여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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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3
김이설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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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이게 대체 얼마만의 글인가요. 감동과 감격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홍대 와우북 페스티벌에 놀러 나갔다가 우연히 들어간 은행나무 부스에서 작가님 이름을 보고 눈을 비볐다. 잘못 본 게 아닌가 해서. 내 눈은 정상이었고 폭풍감동을 하며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약간의 사은품들과 함께 품고 나왔더랬다. 아끼고 아끼다 이제야 꺼내보곤 우울의 동굴을 파고 있는걸 보니 역시 그녀의 글답다.

 

존재 자체가 가족들에게 짐이었던 선화. 서른다섯의 선화는 엄마의 안식처였던 꽃집의 사장이다. 물이 마를 틈이 없는 손은 습진 때문에 수시로 껍질이 벗겨지고 진물이 난다. 졸업시즌과 각종 이벤트로 한참 바쁜 날에 엄마의 기일이 다가온다. 서른일곱의 언니는 결혼을 하면서 엄마의 제사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조카가 여덟 살.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다.

 

선화의 얼굴 한 쪽에는 꽃이 활짝 펴 있다. 그걸로 놀림을 당했고, 이렇게 태어나게 만든 부모와 언니를 미워했고, 세상을 외면했다. 바다에 홀로 외로이 떠 있는 섬처럼 그녀는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살고 있다. 얼굴에 피어있는 그 꽃 하나 때문에.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온다. 누구보다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선화에게 불행이 끊이질 않는다. 엄마가 죽었고,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에게는 남아 있는 날들이 별로 없다. 하나뿐인 언니는 형부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다. 자신의 불행을 감싸주지 않던 가족이었지만 선화는 끌어안지도 버려두지도 않는다. 그저 닥친 일을 받아들이고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김이설, 그녀의 글은 언제나 불편하다. 삶의 한 귀퉁이를 덤덤하게 그려나가지만 밑바닥 인생은 결코 담담하지가 못하다. 처음엔 선화도 불편했다. 그녀의 얼굴이 그랬고, 너무 무심한 그녀의 성격에 그랬고, 꽃집 사장답지 않은 그녀의 냉정함이 불편했다. 서른다섯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세상을 마주보기 위해 터득한 그녀의 생존방식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도 계속 찾아 읽을 거다. 가슴 속에 구멍이 뚫린 듯 쓸쓸하고 씁쓸하게 만들어도 그럴 거다. 그녀의 글에서 짙게 맡아지는 삶의 냄새가 너무 진솔해서 저릿하게 만드니까. 다음을 위한 그 기다림이 너무 오래 걸리지만 않기를 바란다.


p.60
내가 싫어하는 계절인 봄이었다. 긴 겨울이 지나면 봄 햇빛처럼 일상이 화사해질 것 같지만,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한 헛된 희망을 품게 되는, 그저 허망하기 짝이 없는 계절이 바로 봄이었다.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꽃을 찾지만, 달콤한 초콜릿과 사탕을 유난하게 주고받으며 사랑을 확인하지만, 그저 매년 반복되는 계절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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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로 바쁜 나날을 지내고 계시다는 작가님 소식을 듣고 선암여고 탐정단후속작을 만나기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드라마 방영 소식이 들리고 캐스팅 기사가 뜨니 짜쟌!하고 나타났다. 감동의 눈물이 철철 날 지경이다. 전작을 너무 재미있게 읽고 이제나 저제나 자라목이 기린목 되도록 기다린 보람이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2학년으로 올라간 채율은 선암학사라고 불리는 학교 기숙사에 들어간다. 때 아닌 귀신소동에 휘말리고 세윤은 존재감이 없다시피 친구들 틈에서 관심 받기 위해 모종의 계획을 세운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는 사건 의뢰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탐정단 아이들. 부푼 꿈을 안고 방송국에 들어섰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하라온과의 재회는 뜻밖의 사건을 불러온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탐정단 아이들이 드디어 강력사건과 마주한다! 실종된 남학생의 책가방이 1년 후 다시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어느 이야기보다 강도 높은 재미를 선사한다.

 

선암여고 탐정단이 전작에서는 주위의 소소하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사건들에 집중했다면 이번 후속작에서는 보다 거대해진 스케일과 전문 탐정 저리가라 할 정도의 추리 실력을 뽐낸다. 게다가 양념처럼 얹어진 탐정단의 로맨스는 핑크빛 설렘을 동반한다. 전작이 20~30분 정도로 방영되는 시트콤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후속작은 에피소드가 꽉꽉 채워진 60분짜리 단막극 같은 느낌이다. 그만큼 탄탄하고 방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는 얘기. 여고생들의 탐정 이야기가 대단해봐야 얼마나 대단하겠냐고 한다면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라고 하고 싶다. 생각보다 쫀쫀하고 쫄깃한 이야기에 당신도 분명 놀랄테니 말이다.

 

제철에 익어가는 과일처럼 탐정단 아이들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욱 성숙해지고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 아직 고2. 찬란하게 반짝반짝 빛이 나는 열여덟의 탐정단 여고생들은 핏속에 흐르는 탐정기질을 아직 모르고 있는가 보다. 누가 봐도 딱 탐정인걸 알겠는데. 어느새 이만큼이나 쑥쑥 커버린 선암여고 탐정단이 아쉽다. 그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나는 아이들인데 3학년 올라간다고 변하진 않겠지?

 

우연한 기회로 리뷰단에 당첨되고(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어요. ^.^) 덩그러니 A4용지 뭉치의 교정지를 받아 들고 보니 책의 민낯을 보는 기분이었다. 열심히 읽었고, 어줍은 깜냥으로 교정이란 것도 보았고, 교정이란 것을 까맣게 잊고 너무 재미있게 읽다가 마지막장이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끝내놓고 나니 허무하고 쓸쓸해진다. 또 보고 싶은데 더 이상 남은 이야기가 없으니까. 육아에 여념이 없는 작가님께는 정말 죄송하고 미안한 말이지만 3편 기대해 봅니다. ^.^ 3학년이 남아있다는 게 다행이다. 기대하지 말라고 해도 절절히 기다리고 싶은 마음이다. 정말.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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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7
나가오카 히로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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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올해 출간될 일본 미스터리 소설 중 가장 기대작이었다. 입소문만 무성했던 작품이라 그 궁금증은 하늘을 찌를 듯 했고. 이제 나오나, 저제 나오나 기린 목이 되도록 애타게 기다렸다. 요코하마 히데오의 경의를 표한다. 항복이다!”라는 독후감이 붙은 책 소개는 불붙은 마음에 기름을 들이부은 격. 생각보다 얇은 두께에 잠시 놀랐지만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에 만사 제쳐두고 교장을 만났다.

 

어느 도시에 위치한 경찰학교. 98기 입학생들의 담임 교관이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교 가자마라는 백발의 남자가 담임으로 부임한다. 묘한 분위기의 남자가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학생들을 쥐락펴락하며 단련시킨다. 어느 때는 맹수처럼 다그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어머니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주기도 하는 정체불명의 교관 가자마’.

 

입학과 동시에 순경이라는 직책이 주어진다. 정의를 수호해야 하는 경찰이기에 그에 따르는 책임감도 만만치 않다. 두 어깨에 지워진 짐의 무게만큼 엄격한 규율이 존재하는데 가지각색의 학생들이 모인 단기교육과정의 학교에서는 사건사고가 끊일 날이 없다.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는 이들.

 

어떤 책을 만나게 되던지, 책에 대한 내용은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뒤표지에 대략적인 줄거리도 웬만하면 보질 않는 편이다. 인터넷 서점에 올라와 있는 책 소개도 그렇고. 그저 입소문이나 소재만으로 책 구매를 하는 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날 때가 더 즐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장도 피할 수 있는 만큼은 피했었다. 경찰학교에서 일어난 범죄사건은 둘러싼 비밀 파헤치기 뭐 그쯤으로 생각했는데 어라?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네? 경찰학교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 미스터리 정도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연작소설처럼 보이기도 하고.

 

처음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많이 당황스러웠다. 기린 목이 되도록 기다렸던 시간이 조금 아까워지기도 하고. 얇은 두께와 가독성이 좋아 앉은 자리에서 뚝딱 읽어 버렸지만 글쎄. 애초에 너무 많은 기대를 했었고 취향 차이에서 오는 아쉬움 같은 건데 아무튼. 묵직한 여운보다는 잔잔한 일상 미스터리로서는 부족한 게 없으니 한 번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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