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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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미국적인 소설이라고나 할까.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인물을 축으로 미국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묶은 단편집이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들의 어머니로서의 그녀는 흔히 독자들이 예상해볼만한 성격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 흥미롭다. 거대한 체구의 그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는 저도 모르게 상처를 주고, 남편에게 더없이 무뚝뚝한 그녀는 책장을 넘길수록 더욱 알고 싶고 재미있는 인물로 다가온다.  

재작년 영국에 머물고 있을 때 올리브 키터리지와 무척이나 닮은 패트리샤라는 이름의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었다. 패트리샤 역시 거구에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여인이었다. 따뜻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녀 내면의 본성이 마치 그걸 방해라도 하듯 가끔씩은 냉정하고 퉁명스럽고 다가가기 힘들었기에 책을 처음 읽으면서 덮을 때까지 내 머릿속의 올리브 키트리지는 패트리샤였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이 소설을 더욱 재미있게 읽은 이유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퓰리처상 수상작으로서의 명예가 아니더라도 이런 사람 냄새 나는 소설이 좋다. 포장 되어 있지 않기에 더럽고 끔찍한 현실과 흡사하기에 이런 소설들이 나를 더 위로해주는 느낌이랄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서로 부대끼며 악착같이 살아가야 하며 그 재미없음 속에서도 소소한 재미와 낭만을 느끼는 게 인생이라고 스스로 정의내리고 산다면 비단 나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님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고 더 나아가 위안 받을 수도 있다. 20대로서의 내게 올리브 키터리지가 말한 결혼 따위의 인생 중대사를 아직은 겪어보지 못했기에 극도의 공감은 아니지만 공감이기 전에 노년의 삶을 미리 내다보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예상했듯 늙는 다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님을 알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혼자 살아가는 삶이 어쩌면 악몽같을 수도 있음을 알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의 목마름은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사그라들지 않기에 어쩌면 인생은 참 어렵고, 비참하고, 외로울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모든 것을 구멍 숭숭 뚫린 치즈와 같다고 비유했고 빨리 세상을 뜨길 바란다는 말을 매일 같이 해도 정작 그렇지 않다고 했을 때의 희망을 보았다. 아, 정말 삶이란 이리도 현기증 나는 무엇인 것 같다.  

모든 이들은 저마다의 인생이 있고, 고민과 걱정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을 소설이라는 허구적인 스토리에서까지 들여다보게 되니 참담했다. 그러나 올리브 키터리지가 그랬듯 원래 인생이란 구멍 숭숭 뚫린 스위스 치즈같다지 않은가. 이처럼 멋있는 표현이 어디있을까. 그리고 이처럼 참담하고 어렵기에 멋있는 인생이 어디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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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진리 - 말레이시아 원주민 세노이족과 함께 한 10년
로버트 울프 지음, 김정한 옮김 / 홍익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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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의 세노이족에 관한 체험 보고서라고나 할까. 문화인류학자가 아닌 심리학자로서 저자가 오랜 기간 그들과 함께 머물면서 집필한 책인데, 서구인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지 않은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다. 미개하다는 것은 문화적 가치를 무시한 채, 철저히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고 문화인류학에서 이를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지체험을 하게 되면 서구인의 오랜 사고방식이 알게 모르게 이런 벽을 만든다. 비단 서구와 동양의 개념이 아니더라도 모든 분야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세노이족은 온화한 미소로 낯선 사람을 대하고 수줍음이 없으며 물질문명을 조금씩 흡수하지만 그들만의 문화를 간직하며 물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나와있다. 그러나 저자가 당시 그들과 함께 생활했을 때가 꽤 오래 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지금의 세노이족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미지수이다. 지구상의 많은 부족들은 그들의 전통과 현대사회의 문명을 혼합한 채로 살아가고 있고 이를 '오염'이라고 칭한다면 오염되지 않은 부족이 드물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선택해야 할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할 폭이 좁은 세노이족이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점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내가 느끼는 불행은 선택의 무게에 짓눌려 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또 부유하지 않지만 가난하지 않고 소유의 개념이 없는 그들의 삶이 황금만능주의에 찌들린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정말 행복과 부는 비례하는 것일까.  

책이 점점 뒤로 갈수록 이해하기 모호한 '영적체험'위주로 무게가 실려서 혼란스러웠다. 저자가 체험한 현상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오래된 진리의 하나라면 세노이족은 정말 신비의 부족이 아닐까. 나는 가끔 진리가 무엇인지를 잊고 산다. 환경적인 요인에 휘말려 신념을 잃는 그릇되고 나약한 나 자신을 굳건히 지켜줄 진리는 바로 책에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한 사람의 오랜 체험 속에서 찾게 된 진리를 엮은 이런 책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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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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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서울의 강남이 부흥하기까지의 변천사를 담았다. 그리고 그 중간엔 삼풍백화점이 있다. 무너지는 강남의 백화점, 그리고 소설의 끝은 어쩐지 현실에 반기를 든 느낌이다. 일제시대부터 박정희 정권에 이르러 강남 개발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부호들의 투자는 투기에 기반을 두었고, 서민은 그때에도 강남 특권을 누릴만큼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은 결국 재력과 권력이 돈 놓고 땅먹기를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강남에 살고 있지만 강남의 개발과 부흥에 관한 역사는 접해본 적이 없었다. 이에 관련한 문학은 커녕 영화나 드라마 마저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재미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황석영의 필체는 독자로서 다시 접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다소 마초적인 필력 때문이라고나 할까.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축으로 각기 다른 인물들의 연결 형식과 거슬러 올라가는 서사가 흥미로웠다. 과거형보다는 붕괴 후의 서사가 더욱 흥미로웠을 것 같아서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고, 일제시대 부분에서는 지나치리만큼 많은 분량으로 호흡이 길다고 느껴진 아쉬움도 있다.  

강남의 개발 이후 발전사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좁은 땅덩어리에 이만큼의 부흥은 또 다시 생길 것 같지가 않다. 지금의 땅 투기는 허허벌판에 미래를 보는 통찰력 하나로 투자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고 더욱 발전이 이루어지기엔 이 나라가 그만큼 넓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강남몽은 이제 한 때의 꿈 같던 시대의 한 켠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게 된 황금시대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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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남자
하라 코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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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일본 문학을 멀리했던 이유는 많은 작품을 접해보았을 때 느낀 주제 의식의 상투성 때문이었다고나 할까. 장르는 달라도 대체적인 일본 문학은 현대 일본의 사회문제를 주로 다루었고, 그것은 일본 뿐만이 아니라 한국 또한 다르지 않은 문제였다. 내가 좋아하는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도 아주 재미있게 읽지만, 결국은 같은 주제와 교훈으로의 귀결에 이제는 따분함이 느껴져서 자연스레 일본 문학을 멀리하게 되었다.

이런 내가 오랜만에 읽은 <마루 밑 남자>는 '역시 일본문학'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하였다. 그러나 주제의 벗어남이 없는 한계와 실망을 느낀 한편 책장이 술술 넘어갈 수 있는 간략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문체 그리고 묘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힘이 좋았다. 총 다섯 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이지만 이 모든 주제들은 샐러리맨의 비애와 그로 인한 현대 가족의 붕괴를 다루고 있다.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예비 샐러리맨인 내게 사실 이 책에서 그려진 샐러리맨의 실상이 참으로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다. 막연히 월급쟁이의 신분이 힘들 것이라고 느끼기만 했을 뿐, 이 정도로 힘든 줄은 차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득 앞날에 대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가정을 돌아 볼 수 있는 계기 또한 되었다.

전형적인 샐러리맨인 아버지는 이 책의 첫 단편인 <마루 밑 남자>의 주인공처럼 한 때는 주말과 평일 구분 없이 늘 직장에 계셨다. 자연스레 어렸을 적의 기억엔 어쩌다가 한 번씩 함께 있을 수 있는 존재가 아버지이고, 이는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는 서먹함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춘기 때는 이런 아버지에게 반항도 해보았지만, 지금은 그런 아버지에 대한 원망 보다는 오히려 감사함이 앞선다. 그 감사함이 이 책을 읽은 후 더욱 견고해졌다고나 할까. 샐러리맨을 아버지로 둔 자녀로서 스스로 깨우치게 된 나도 이젠 철이 든건가 싶다.

무엇보다도 가장 마지막 단편이 아직도 가슴을 울린다. 가장 아름답게 끝을 맺었기에 이 책 한권의 마무리 또한 아름답게 해주었다. 현실은 비정해도 결과는 희망적이어야 문학이지 않을까. 오랜만에 읽어 본 이 책 한 권으로 내게 일본문학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참 괜찮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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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샷 ㅣ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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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금요일 오후, 도심에서 총성이 울린다. 그리고 무고한 사람 다섯이 죽게 된다. 이 사건이 재미있어지는건 곳곳에 자명한 흔적이 남았고 이 증거들은 공통적으로 단 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인은 곧 연행되고 구치소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중, 스스로가 범인임을 부인한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을 찾는 그의 한 마디로 인해 잭 리처는 바로 사건 현장으로 달려온다. 잭 리처의 등장 이후 범인의 과거 행적과 그 뒤로 끝없이 뿌리 내린 나무처럼 이어진 음모와 진실들이 사건의 배후를 밝혀준다. 

오랜만에 읽은 잭 리처 시리즈이다. '추적자'를 매우 재미있게 읽은 터라 망설임 없이 오랜만에 잭 리처를 다시 만났는데 황당하게도 원작의 시리즈 아홉번째 책이다. 첫번째 책을 읽고 바로 아홉 번째 책을 읽으니 그 사이에 그는 어딘지 모르게 다른 인물처럼 느껴진다. 아쉬움은 차치하고 왜 순서대로 번역을 하지 않았는지 독자로서 불만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조차 언급하지 않으니 더 불만이다. 

미국의 장르문학은 다른 나라의 그것과 달리 '총'을 소재로 많이 다룬다. 국가 정서상 총을 접해보지도 않았고 잘 알지도 않은터라 총에 대한 내용이 길어지면 지루함이 더해진다. 이 책 또한 핵심 사건이 총살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총'에 대한 하드보일드 액션이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 지루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테지만, 잭 리처라는 캐릭터가 그것을 상쇄시켜 줄 만큼 매력적이었기에 다행으로 느껴진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시리즈물에서 당당하고 능글맞지만 실수 없이 일처리를 하는 역마살 캐릭터는 그닥 독창적이지 못하다. 그럼에도 한 시리즈를 책임지는 캐릭터이기에 다음 시리즈에서의 변천사가 궁금해지고 자연스레 그 매력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스릴러물의 시리즈가 좋다.  

한 편의 영화같은 이야기에 영화 같은 해피엔딩이 통속적이고 비현실적이지만, 흡인력과 통쾌함이 없다면 아마 책을 읽는다는 것이 시간낭비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것은 역시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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