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루 밑 남자
하라 코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한동안 일본 문학을 멀리했던 이유는 많은 작품을 접해보았을 때 느낀 주제 의식의 상투성 때문이었다고나 할까. 장르는 달라도 대체적인 일본 문학은 현대 일본의 사회문제를 주로 다루었고, 그것은 일본 뿐만이 아니라 한국 또한 다르지 않은 문제였다. 내가 좋아하는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도 아주 재미있게 읽지만, 결국은 같은 주제와 교훈으로의 귀결에 이제는 따분함이 느껴져서 자연스레 일본 문학을 멀리하게 되었다.
이런 내가 오랜만에 읽은 <마루 밑 남자>는 '역시 일본문학'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하였다. 그러나 주제의 벗어남이 없는 한계와 실망을 느낀 한편 책장이 술술 넘어갈 수 있는 간략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문체 그리고 묘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힘이 좋았다. 총 다섯 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이지만 이 모든 주제들은 샐러리맨의 비애와 그로 인한 현대 가족의 붕괴를 다루고 있다.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예비 샐러리맨인 내게 사실 이 책에서 그려진 샐러리맨의 실상이 참으로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다. 막연히 월급쟁이의 신분이 힘들 것이라고 느끼기만 했을 뿐, 이 정도로 힘든 줄은 차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득 앞날에 대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가정을 돌아 볼 수 있는 계기 또한 되었다.
전형적인 샐러리맨인 아버지는 이 책의 첫 단편인 <마루 밑 남자>의 주인공처럼 한 때는 주말과 평일 구분 없이 늘 직장에 계셨다. 자연스레 어렸을 적의 기억엔 어쩌다가 한 번씩 함께 있을 수 있는 존재가 아버지이고, 이는 지금까지도 고쳐지지 않는 서먹함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춘기 때는 이런 아버지에게 반항도 해보았지만, 지금은 그런 아버지에 대한 원망 보다는 오히려 감사함이 앞선다. 그 감사함이 이 책을 읽은 후 더욱 견고해졌다고나 할까. 샐러리맨을 아버지로 둔 자녀로서 스스로 깨우치게 된 나도 이젠 철이 든건가 싶다.
무엇보다도 가장 마지막 단편이 아직도 가슴을 울린다. 가장 아름답게 끝을 맺었기에 이 책 한권의 마무리 또한 아름답게 해주었다. 현실은 비정해도 결과는 희망적이어야 문학이지 않을까. 오랜만에 읽어 본 이 책 한 권으로 내게 일본문학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참 괜찮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