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사회학
김홍중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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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 흥미로웠던 반면, 읽기에 너무 어려웠다. 또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귀여움으로 똘똘 뭉친 생각 없는 지금의 포스트 진정성 세대들에 대해서 잡아뜯는 식의 표현은 한편으로는 너무 거북했다. 386세대만큼 사회적 자각과 책임성이 없는 경박한 존재만으로 표현되기엔 사회적 배경의 상이함을 왜 인정하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도 다수의 너무나도 현학적인 논문들로 인해 사회학도임에도 나의 무지함을 일깨워 줄 정도로 너무나도 현학적이고 너무나도 지적인 논문들을 끝까지 소화해내려 노력하느라 애먹었다. 마침내는 끝끝내 이 책을 다 찢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고나 할까. (그저 아직도 무지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학부생의 의미없는 발악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만.) 

그럼에도 진정성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던 계기였으며, 스노비즘에 대해서 또 오타쿠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어렵고 어렵게 읽었지만 또 그만큼 생각을 하게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저 한 번 읽는 것으로는 전혀 만족할 수 없을 만큼 가치있었다고 평하고 싶다.  

인문학적 상식이 탄탄히 깔려 있는 독자들만이 완벽히 소화해낼 수 있는 논문집이다. 나의 부족한 어휘력부터가 이 책을 읽는데에 걸림돌이 되었다. 자격 없는 독자라고나 할까. 그래서 아쉬웠고 실망하게 된 계기를 준 책이다. 누구에게?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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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 위기의 시대를 돌파해온 한국인의 역동적 생활철학
탁석산 지음 / 창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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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석산을 처음 알게 된 계기가 KBS의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의 진행을 그만둔 지 한참이 지난 후인 지금에서야 내가 탁석산의 책을 처음 만나게 되었지만 그때부터 그가 쓴 책에 대해서는 굉장히 궁금했었다. 무엇보다도 방송인이 아니었음에도 꽤 프로그램을 잘 이끌었던 그의 위트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이 책이 물론 탁석산의 대표적인 저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진행자로서가 아닌 철학자로서의 그의 생각들을 처음 책을 통해 들여다보니 사실 실망이 크다.  

평소에 인문학에서도 철학 관련 책은 거의 읽지 않는터라 구체적으로 철학이 어떤 학문이며, 철학과 관련한 책이 어떤 성격을 갖추고 있는지도 낯설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비판한다는 것이 무리인것은 확실하나 누가 보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된 설득력이 부족한 책이었다고 본다. 탁석산, 그가 바라 본 대한민국과 국민에 대한 생각들이 마치 모두들 동의라고 하고 있는듯한 성격으로 주장한 점이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그의 생각이 논리정연하고 설득력이 있으면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만, 사실 그렇지 못했던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읽는 내내 찝찝한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더군다나 다른 철학자를 대놓고 비판한 부분에서는 그의 인격마저 의심스러워졌다. 

탁석산은 한국인이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 그리고 실용주의로 이루어진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 한국인만의 특성이 바로 딱 이 네 가지의 관념으로 정리된 것이다. 그러나 이 네 가지의 한계점은 설득력이 부족한 그의 주장일 뿐이라는 점이다. 비록 한국이라는 나라가 정교분리이고 종교의 영향력이 비교적 크지 않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내세를 중시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무조건 현세주의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길거리에서 할렐루야를 외치며 천국과 지옥을 미친듯이 외치는 기독교인들은 한국인들이 아닌것인가. 또한 현세주의적 관점이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그럴듯하지만 종교와 내세를 믿지 않는 현세주의,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기자는 인생주의 외에도 다른 이유가 분명 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인생무상, 일장춘몽으로 정의되는 허무주의가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내재된 문화적 관념인지 의문스럽다.  

이 책은 그저 저자의 철학적인 에세이로 정의내리는 게 좋을 것 같다. 너무나도 많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긴하지만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을 새롭게 보는 참신함과 무엇보다도 충분히 부정적일 수 있는 부분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전환해서 보았다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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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biwon 2010-10-3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의견입니다. 현세주의를 지적한 부분은 저자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겉보기엔 종교에 열심인 듯해도, 종교 교리 자체에 모든걸 의탁하는 종교인은 드문듯 합니다. 오히려 구복을 위해 종교를 내삶에 끌어왔다고 보는게 맞다고 봅니다.

한국에선 개종이 큰 일이 아니잖아요. 내 가정에 평화와 행복을 준다면, 그것이 불교든 카톨릭이든 나의 종교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의 참뜻 보다는 가족의 안녕이 더 우선한다고 봅니다. (근본주의자들이나 교조주의자들이 대세를 이루는 국가들의 경우나 중세의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과 비교해 보면 확연히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로 드신 길거리에서 할렐루야 외치는 것이 종교에 신실한 종교인의 예는 아닌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율로 보자면 특이한 예일 뿐 일반적인 예는 아니지요.
 
몸 숭배와 광기 - 개정판
발트라우트 포슈 지음, 조원규 옮김 / 여성신문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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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아름다움의 추구'란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특성이 있다. 즉 아름다움이란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유연하고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지나쳐서 오히려 이 사회가 아름다움에 대한 병리적 현상에 처해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런 아름다움의 역사와 실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지만, 점점 성별을 분리하여 여성 위주의 아름다움에 기인하는 페미니즘의 색깔이 짙어서 책의 원래 취지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제는 남성들 또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대가 다가왔고, 관련 미용 시장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인간의 의식 속에서 아름다움이란 자연스레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기에, 사회속에서의 아름다운 인간은 자연스레 사회의 바람과 잘 용해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아름다움을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나무만을 본 채 숲을 바라보지 않으면 아름다움이란 쫓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숲을 본다면 결국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는 허황된 실체에 불과하다. 숲을 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아름다움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뿐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것이 결코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은 인간의 내재적인 본질에 충실한 것이 당연한 현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자본주의와 미의 추구는 둘을 상생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부각한다.

이제는 '옷이 날개'가 아닌 '몸이 날개'가 된 시대가 되었다. 너도 나도 아름다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실 이 책이 다른 관련 책들과는 큰 차별이 없어서 지겨웠지만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한 시대적 변화의 서술은 그나마 유익했다. 페미니즘에 관한 부분이 뒤로 갈수록 큰 비중을 차지했기에 책 제목에 필히 '여성'이 붙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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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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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작가들의 성장소설이 지금의 세대가 읽기에 다소 괴리감이 느껴진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열이면 아홉 작품에서 운동권 시절을 풀어놓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면>이 내게는 그런 소설이었다.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지금의 시대에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나같은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란 역시나 동시대를 함꼐 경험했던 이의 손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김영하는 내가 처음 접한 그의 소설 <검은꽃>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재기발랄함 사이로 우리 세대의 아픔을 후벼팔 정도로 신랄하면서도 정확한 부분을 보듬어주고 있다.  

책은 사생아로 태어나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외할머니가 세상을 뜨면서 갑작스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빚을 탕감해야 하는 주인공 민수를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이야기로 풀어진다. 하루 아침에 집을 팔고 고시원의 창문도 없는 방에 기거하며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그에게 유일한 활력소는 바로 인터넷 채팅 퀴즈방이었다. 채팅을 매개로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텔레비전에까지 등장하게 된 그는 누군가의 유혹에 의해 생업으로서의 퀴즈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한 순간도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소설다운 소설이면서도 현 세대에 대한 푸념에서는 소설같지 않은 소설이었다. 현실을 반영하는 소설이야말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소설은 어느 정도 그 값어치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마지막에 이르러 아니나 다를까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함에 오히려 더 씁쓸함이 느껴졌다. 역시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소설인건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면 소설로서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하는 건가라는 회의로 괜한 독자로서의 심술이 생겼다. 어쩌면 대학 졸업을 앞둔 구직자인 지금의 내가 이 책의 주인공과 매우 비슷한 입장이기에, 괜히 그렇고 그런 끝맺음이 현실같지 않다고 느낀 것은 아닐까.

몇 년 만에 접한 김영하의 또 다른 소설에서 나는 <검은꽃>에서 느꼈던 조금의 실망감이 이 책으로 충분히 상쇄되었기에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유명한 작가가 왜 유명한지를 깨닫게 된 이유도 한 몫하지만,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기다릴 수 있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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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지배 - 돈과 영혼
폴커 라인하르트 지음, 김희선.최정미 옮김 / 말글빛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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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내가 몇 권을 읽은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딱히 손이 쉽게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뭔지 모를 과거의 실망감이 한 몫 했으리라. 그러나 책의 제목이 무척이나 매력적이기에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하고 읽어보았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수전노'이다. 역사상 수전노로 악명높은 인물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놀랍게도 저자가 수전노로 평가한 인물들 중엔 내가 알고 있었던 인물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찝찝했던 것은 탐욕과 인색에 대한 저자의 사고방식이 정말 객관적일까라는 점이다. 인색과 절약에 대한 구분 또한 모호하기에 설득력이 없어서 유감이었다.  

오타를 발견한 것은 흔히 있는 일이기에 넘어갈 수 있다고해도, 매끄럽지 못한 번역과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가 난해한 이런 책을 읽으면 독자로서 무척이나 화가난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 느낀 뿌듯함을 대신한 분노로 인해 이 책의 가치는 정가의 10%인 1,380원을 줘도 살까말까 망설여질 정도였다. 탐욕의 지배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이들에 대한 빈정거림이 독자들의 공감을 살 수 있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이해를 돕기 위해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림 몇 개 붙여 놓고 그럴듯하게 꾸며놓은 것은 확실히 기만이다. 그렇기에 독자로서는 그 이전에 이 책부터 빈정거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최악의 선택, 최악의 시간 낭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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