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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기성작가들의 성장소설이 지금의 세대가 읽기에 다소 괴리감이 느껴진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열이면 아홉 작품에서 운동권 시절을 풀어놓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면>이 내게는 그런 소설이었다.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지금의 시대에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나같은 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란 역시나 동시대를 함꼐 경험했던 이의 손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김영하는 내가 처음 접한 그의 소설 <검은꽃>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재기발랄함 사이로 우리 세대의 아픔을 후벼팔 정도로 신랄하면서도 정확한 부분을 보듬어주고 있다.
책은 사생아로 태어나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외할머니가 세상을 뜨면서 갑작스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빚을 탕감해야 하는 주인공 민수를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이야기로 풀어진다. 하루 아침에 집을 팔고 고시원의 창문도 없는 방에 기거하며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그에게 유일한 활력소는 바로 인터넷 채팅 퀴즈방이었다. 채팅을 매개로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텔레비전에까지 등장하게 된 그는 누군가의 유혹에 의해 생업으로서의 퀴즈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한 순간도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소설다운 소설이면서도 현 세대에 대한 푸념에서는 소설같지 않은 소설이었다. 현실을 반영하는 소설이야말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소설은 어느 정도 그 값어치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마지막에 이르러 아니나 다를까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함에 오히려 더 씁쓸함이 느껴졌다. 역시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소설인건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면 소설로서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하는 건가라는 회의로 괜한 독자로서의 심술이 생겼다. 어쩌면 대학 졸업을 앞둔 구직자인 지금의 내가 이 책의 주인공과 매우 비슷한 입장이기에, 괜히 그렇고 그런 끝맺음이 현실같지 않다고 느낀 것은 아닐까.
몇 년 만에 접한 김영하의 또 다른 소설에서 나는 <검은꽃>에서 느꼈던 조금의 실망감이 이 책으로 충분히 상쇄되었기에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유명한 작가가 왜 유명한지를 깨닫게 된 이유도 한 몫하지만,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기다릴 수 있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