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
샤오 춘레이 지음, 유소영 옮김 / 푸른숲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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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인체란 그 얼마나 신비로우면서도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잘 설계되어있는지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 건강한 삶을 살고 있을 때는 그것을 망각하고 있다가, 남들과 다른 부족함을 어딘가 지니거나 인생의 노년에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인체의 퇴화를 경험하면 새삼 우리 몸의 고마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감히 '사전'이라는 단어로 제목을 내건 이 책의 저자 샤오춘레이는 사실 우리 몸을 정의한다고 하면 쉽게 생각할 직종에 몸담고 있지 않다. 시인이면서 작가인 그가  이런 책을 집필했다고 하기엔 어딘가 쉽게 납득되지 않지만, 그것은 큰 오산에 불과할 뿐이라는 걸 몇 페이지 읽어보면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오히려 딱딱한 '사전'이라는 명칭에 충실한 책보다는 문학적인 부드러움이 가미된 말랑말랑하면서도 때로는 유쾌한 '사전'이 더욱 읽기 쉽고 매력적인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더불어 책을 읽다보면 작가라는 직업이 무색할 정도의 박식함에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몸'에 대해 다루었지만, 그저 신체 각각의 기관만 다루지는 않았다. 눈빛,체취 그리고 섹스 등의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지만 인간의 신체에서 발현할 수 밖에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충실히 다루었는데 바로 이런 부분에서 그의 문학성이 더욱 드러나보여서 흥미로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가 중국인이니 만큼 중국의 역사 속 신체기관과 관련된 사료를 다분히 이용한 점인데, 그 도가 지나쳐 이 책이 중국 역사 사료집인지 아니면 인간의 몸을 탐구한 책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을 정도라는 점이다. 중국의 그 장대한 역사 속에 숨겨있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보일 때, 마치 독자가 당연히 중국인이라는 점을 전제로 했다는 느낌이 든 것은 나처럼 중국 역사에 전혀 문외한인 독자로서는 군데군데 친절하게 느껴지지 않은 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이 책 덕분에 새삼 인간의 '몸'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다. 책 제목 그대로 '욕망'과 '지혜'를 담고 있는 우리의 몸이 그 각각의 기관마다 나름의 흥미로운 역사를 가졌고, 또 지금도 끊임없이 그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바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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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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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새해가 되어도 나의 일본 미스터리물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 의미로 2010년 가장 먼저 읽은 책이 바로 이 책이 되겠다. 예전부터 단편은 어떤 소설이던 별로라는 선입견으로 일단 제쳐두고 장편만을 찾던 내게 그래도 꽤나 호평이 많은 이 책이 내 손길을 원하고 있는 듯 보여 기대 반, 망설임 반으로 읽어보았다.

책의 구성은 이 전에 전혀 볼 수 없을 정도로 특이했다. 책의 저자가 다니는 회사의 사보 속에 단편 소설을 연재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후 연재되는 사보와 비슷한 형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단편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각 달의 사보 차례가 꽤나 그럴듯해 보였다. 연재 부탁을 받은 그녀는 고작 아마추어 작가에 속할까 말까하는 능력으로 회사의 사원들이 모두 읽을 사보에 아마추어 소설을 연재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그녀의 대학 선배에게 이를 부탁하게 되었고, 선배는 또 그의 절친한 친구에게 부탁을 하여 익명을 보장한다는 조건 하에 일년동안 단편을 연재한다.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고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하는 내게 이 책은 꽤나 신선했다. 한국에 번역 된 것은 2007년이지만, 사실 이 책의 원작은 십년도 더 된 1991년이다.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장대한 스케일과 복잡한 트릭, 그리고 길고 긴 서사와는 반대로 당시엔 '일상의 수수께끼'계열의 추리가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는 말 그대로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궁금증을 가지고 추리를 해 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실제로 이 책에 실린 열두편의 단편 모두 일상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괴담 따위를 다루고 있다. 책 제목 또한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이 아닌가. 이 책의 단순하지만 솔직한 제목으로서 퍽 친절하다고 하겠다.

단편을 한 편씩 읽으며, 과연 이것을 미스터리라고 해야 할까라는 의혹과 당혹감이 교차했던 적이 많았다. 몇몇 단편을 다 읽고 나서 '이건 뭐지?'라는 어이없음으로 이 책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기도 했었다. 미스터리와는 거리가 먼 괴담에서부터 실소밖에 나오지 않는 장르를 딱히 꼬집어서 말 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단편들까지.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은 책의 마지막 부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열두편의 단편의 연재가 끝난 후, 편집자가 직접 작가를 찾아가서 이때까지 베일 속에 감추어졌던 그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후의 전개가 더욱 흥미진진하다. 미스터리 같지 않은 단편들을 읽은 후의 불쾌함을 일순간에 날려준 이 책은 첫 인상은 별로지만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는 사람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새해 첫 날 읽은 책으로서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역시 난 일본소설의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바로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 볼 것이 뻔한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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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5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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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모방범>의 후속작인줄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만, 갓 출간된 이후 한창 붐이 일었을 땐 막상 읽어보지 못했었다. 그리고 지금 정말 뒤늦게나마 읽게 되었는데, 사실 <모방범>의 그 장대한 스케일과 숨막히는 내용의 흡인력에 빠져들었던 때가 너무나도 먼 옛날이었기에, 그 내용도 거의 머릿속에서 흐릿해져버렸다. 그 사이에 내가 모방범의 모든 것을 기억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어서일까.

사회파 추리소설가라고 감히 부를 수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거의 일년만에 접해보았다. 아주 긴 시간의 여백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그녀 작품이 나를 끌어들이는 이유는 왕성한 활동과 그에 못지 않은 높은 작품성 그리고 그에 더해 제법 훌륭히 번역되어 나오는 이유 등이 있을 것이다. 사실 그녀의 게임에 관련된 책은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만큼 따분했지만, <모방범>이나 <화차>같은 책들은 정말 훌륭히 평가해주고 싶다. 

현대사회는 보이지 않는 '정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과 고도로 발전된 기술이 조화를 이루며 대체적으로 풍요한 환경이 되었지만, 그 틈에서의 인간성을 상실해버리고 그 상실감이 범죄로 채워지는 횟수는 그만큼 늘어간다. 이해관계가 고독을 만들고 고독이 불신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극한으로 달했을 때 범죄를 낳게 되는 공식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든 작품들은 바로 그런 범죄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범죄 뒤의 보이지 않는 꼬인 실타래를 되돌아가면서 하나씩 풀어보면 결국 거기엔 따뜻함에서 기인했지만 이내 차가움으로 변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고, 사실 그 이유들은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재들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바로 많은 독자들이 그녀의 작품을 접하고 공감하며 또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작품 또한 예외가 아니다. '사이코 메트리'라는 내게는 약간 생소한 단어가 의미하는 다른 사람의 기억을 읽어낼 수 있는 소년의 죽음, 그리고 그 소년이 남긴 그림속에서 드러내는 비밀을 <모방범>에서의 주인공이 다시 파헤치고 있다. 이 작품 또한 미야베 미유키 작품의 특징인 인간 본연의 누구나가 간직했을 '따뜻함'을 다시 되찾자는 메세지를 주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접해도 여전히 그녀 작품의 공통적 특징은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 '낙원'이 존재함은 그녀 작품의 주인공의 생각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지만, 고독과 불신의 뒤편에 하나의 희망으로 존재하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 조그마한 희망마저도 사라진다면 사실 이 사회는 정말 메마른 위험사회가 됨은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낙원'을 지켜주고 존중해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복잡하게 생각하기에 앞서 '따뜻함'과 '관심'이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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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마지막 연인 아트 픽션 3
앨리슨 리치먼 지음, 정은지 옮김 / 아트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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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갤러리에서 반고흐의 해바라기를 보고 이유없이 느꼈던 슬픔에 한동안 정신이 멍했던 적이 있었다. 그 후에도 한 번 더 그 작품을 보러 갔었고, 언제나 그렇듯 그의 모든 작품은 이상하게도 날 슬프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의 인생사가 슬프고 불쌍해서 그런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그만큼 그의 드라마같은 인생의 한 조각을 필두로 한 아트픽션은 많다. 최대한 그림과 자료를 근거로 실제에 가깝게 그려내려는 노력으로 예술가의 인생 또한 예술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닐까. 이 책 또한 그 중 하나로 보아도 될 것 같다. 

반고흐가 정신적인 치료를 받기 위해 머물렀던 오베르의 가셰 박사의 딸인 마르게리트와의 사랑이 이 책의 중심적인 스토리이다. 평생을 집안에 갇혀서 아버지인 가셰박사와 남동생인 폴의 시중을 드는 일에 바쳐야 하는 마르게리트는 기차역에서 단번에 반고흐의 비범함을 알아본다. 그 후 서로에게 점점 끌리게 된 둘은 결국 그녀 가족의 반대와 반 고흐의 자살로 끝내 사랑을 이루어내지 못한다.  

이 책이 더욱 각별한 이유는 저자가 직접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가셰 박사 컬렉션 전시회의 카탈로그와 여러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썼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에 살고 있던 두 명의 이웃들의 생생한 증언 또한 토대로 하였기 때문에 이 작품이 그저 픽션에 그친다고 할 수 없다.  

결국 스스로 세상과 담을 쌓고 오직 그림으로만 소통했던 반고흐이기에 그에게 사랑은 어떤것인지 더욱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홀로 살아갔던 마르게리트를 그린 두 점의 초상화가 반고흐의 그녀에 대한 마음을 가늠해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지만 진실은 그 둘 외에는 어느 누구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 누구도 알지 못하는 진실과 그 진실을 그저 상상해볼 수 있는 그림만으로 소설을 만드는 것이 아트픽션이 언제나 매력적인 이유이다. 더군다나 반고흐를 주인공으로 한 것은 무엇이든 그저 예술적이고 드라마틱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내가 그와 그의 작품을 너무 사랑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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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던지는 외침 시공 청소년 문학 25
구마가이 다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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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라는 단어가 내가 10대 였을 때 처음 만들어졌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는데, 당시엔 일본에 '이지메' 또한 큰 사회적 문제였다. 따돌림이야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겠지만, 이런 말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오랜 기간동안 널리 쓰인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군중 속엔 으레 왕따가 존재하는 것이 이젠 무척 자연스럽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아직 사회생활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학교생활을 해 보면서 느낀 것은, 정말 '왕따'가 너무나도 흔하다는 것이다. 매일 같은 얼굴을 1년 동안 봐야 하는 교실 안에서는 무리짓기에 대한 은근한 신경전이 존재하게 되고, 이 무리에서 제외된 몇은 겉돌고 그 몇을 제외한 나머지가 바로 '왕따'의 역할을 맡게 된다. 어린 나이의 학교생활에서 이런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았고, 환멸도 많이 느꼈다. 그리고 느꼈던 것은 보이지 않는 '따돌림'과 '정의'는 공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을 공유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한 채, 미움받는 이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쉽게 하기 힘든 행동이기 때문이다. 당장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정의를 생각할 수 있는 이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러나 내게 이 책이 더욱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바로 사회적 '차별'에서 기인하여 자연스레 '왕따'를 도맡을 수 밖에 없는 친구들을 주인공 가즈야가 '정의'라는 신념하에 감싸주고 함께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이 작가의 어렸을 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는지, 혹은 정말 허구적인 소설인지는 책 속에 나와있지 않지만, 잔잔함과 순수함 속에 깃든 감동에 오랜만에 읽은 일본문학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따돌림을 받는 누군가를 보며 사실 난 '정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 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 뿐이었고, 혹시라도 그 사람처럼 되지는 않을까하여 가슴 졸였으며, 따돌림을 받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외국에서 만난 여러 친구들과 함께 학교 생활을 해보며 느낀 것은 획일화에 조금이라도 어긋난다 싶으면 왕따로 만들어버리고, 다양성에 대해서는 결코 너그럽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몇몇 한국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때도 그렇지만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은 정말 내가 어른이라면 더이상 숨어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사리판단을 할 수 있을만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며, 이는 즉 '정의'를 그저 머릿속으로만 담아두지 않은 채 실천할 수 있어야 하는 의무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내게 '정의의 실천'이라는 아주 중요한 과제를 던져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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